트롤 소년과 마법의 그림 숲 '페어리랜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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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 소년과 마법의 그림 숲 '페어리랜드 4'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7.12.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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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된 트롤, 트롤이 된 소년의 엇갈린 운명과 그 놀라운 비밀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1권에서 마녀의 스푼을 찾아 금지된 비밀의 숲으로 들어갔던 셉템버는 2권에서 지하 세계로 내려가 지하 세계의 여왕이 되어 있는 자신의 그림자와 만났다. 페어리랜드의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를 넘나들며 독재 정치의 억압과 폭력, 그리고 혼돈의 무정부주의로부터 페어리랜드의 주민들을 구해낸 셉템버는 3권에서 자동차 아루스투크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페어리랜드의 천상 세계로 향한다. 4권에 이르러, 우리의 셉템버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그리고 트롤 소년이 인간 소년으로 바뀌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며, 셉템버의 뒤를 추적할 수 있게 된다.

트롤 ‘호손’이 강제로 인간 소년 ‘토머스’로 바꿔치기당한 뒤 트롤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겪게 되는 좌충우돌 모험담! 토머스는 자신이 트롤이었던 사실조차 잊어버리지만 자기 안에서 자꾸 트롤 호손의 목소리를 듣고 트롤과 같은 독특한 행동을 일삼는다. 나아가 독특한 소녀 탬벌레인과 친해진 뒤 더욱 혼동에 빠지며, 트롤 호손으로서의 자기 자신과 충돌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토머스는 탬벌레인과 함께 방 벽에 그려진 마법의 그림 숲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인간 세계로부터 페어리랜드에 이르는 신비롭고 놀라운 탐험을 겪게 된다. 웜뱃 나팔총, 축음기 스크래치, 페어리랜드의 요정 왕 크런치크랩, 해마 구두장이 비스포크 등 수없이 많은 존재들과의 소통에서, 토머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묻는 질문에 비로소 답할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바꿔친 아이들의 환상 여행

이번 편에서는 트롤 ‘호손’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 소년 ‘토머스’로 뒤바뀌어 살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하는 하나의 비유로 읽을 수 있다. 즉 페어리랜드 시리즈가 가진 특유의 매력인 ‘발상의 전환’으로, ‘나’와 ‘나’의 본질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다루는 것이다. 본편에서 원래 트롤이었던 토머스는 자신의 본질을 잊고 끝내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토머스는 인간 부모의 슬하에서 성장하는 중에도 트롤의 성격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와 곤혹스럽기 일쑤이다. 그로 인해 토머스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다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바꿔친 아이’인 탬벌레인과 함께 그림 숲으로 떠남으로써, 토머스는 온갖 모험을 통해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본질에 관해 하나하나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끝내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된다. 토머스와 탬벌레인이 모험을 하는 마법의 그림 숲은, 바로 그처럼 자아가 성숙하는 장이자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인 것이다.

이 여정 속에서 토머스는 단순히 성숙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 캐서린 M. 밸런트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낸다는 것이란, 사실 단 하나로 규정된 모습으로 끼워 맞춰지는 것이라고 속삭인다. 그동안 전형적으로 제시되어온 자아의 모습이 단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은 오히려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선한 문제제기의 이면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를 다채롭게 바라볼 줄 아는 창조적인 시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유의미한 교훈이 자리하고 있다. 작품 속 4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토머스’는 트롤 ‘호손’이라는 자기 진짜 모습을 깨닫고도 “맞아, 나는 트롤이야”라는 한 마디를 꺼내지 못해 힘들어한다. 그런 그에게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자아를 찾는 여행을 같이하는 탬벌레인, 그리고 그녀와의 여행에서 지나쳐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기한 존재들이 토머스에게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호손인 동시에 토머스일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체험을 경유하는 것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가능성,

원초적 생기를 머금은 꿈의 대지, 페어리랜드!

페어리랜드 시리즈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특히 기존의 방식대로 세계를 바라보지 않고 새롭게 바라볼 줄 알게 만드는 독창적인 시선은, 변함없이 진실하고도 정교하다. 이 기발한 상상력은 그저 현실의 세상을 삐딱하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이유를 가진 뚜렷한 주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이번에는 자아를 단 하나만 가질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자아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트롤이자 인간 소년의 여정을 통해서 그 재기발랄한 질문에 직접 대답한다. 이 문제의식을 마주하게 되는 배경으로 마법의 그림 숲이 등장한 것은 페어리랜드의 세계관이 지닌 정체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미하다. 트롤이라는 자기 본질을 외면하면서도 그것을 알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는 토머스와 그런 토머스를 이끌어주는 천진하고도 성숙한 트롤 소녀 탬벌레인, 그들이 페어리랜드를 휘젓고 다니는 모험담을 지금 여기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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