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분기 가계소비지출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소득은 늘었지만 경기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서민들의 씀씀이가 눈에 띄게 줄어 이른바 ‘불황형 흑자’가 이어지고 있다. 5월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1/4분기 가계동향’ 따르면 장기화되는 경기침체로 3월까지 가구당 월평균 소득과 소비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은 오르고 소비는 줄고
서민들의 지갑이 굳게 닫혔다. 1/4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19만 3,0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7% 증가했다. 2009년 3분기 -0.8% 이후 3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의 소득 증가율이다.
반면 소비지출은 254만 3,000원으로 전년 동기 256만 8,000원에 비해 1.0% 줄어들었다. 가계소비 감소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9년 1/4분기(-3.6%) 이후 처음이다. 물가상승분을 제외한 실질 기준으로는 소득이 0.3% 늘었고 소비는 2.4% 위축됐다.
소비지출 12대 비목별 동향을 살펴보면 주류(10.1%↓)와 담배(8.8%↓)지출은 2만 7,0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7% 감소해 우리 가계가 가장 많이 지출을 줄인 품목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교육비가 33만 9,000원으로 6.9% 감소세를 보였으며 식료품과 비주류음료가 33만 7,000원으로 1.6% 감소, 가정용품·가사서비스지출이 8만 9,000원으로 0.3% 감소, 음식·숙박지출이 29만 6,000원으로 0.1% 감소했다. 그 외 기타상품·서비스 지출은 20만 3,000원으로 12.3% 감소했다.
통계청 박경애 복지통계과장은 “올해 영유아 보육비 지원이 전 계층으로 확산해 소비지출이 낮아졌다”며 “다만, 보육비·유치원비 등 정책효과를 제외하더라도 1분기 소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0.08%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의류와 신발 지출이 16만 5,0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8% 증가했고, 주거·수도·광열 지출도 32만 6,000원으로 3.0%증가했다. 보건에 대한 지출도 17만 1,000원으로 2.9%, 교통 29만 4,000원으로 1.9%증가, 통신비 15만 1,000원으로 1.8% 증가, 오락·문화는 14만 3,000원으로 3.3% 증가했다.
비소비지출은 80만 2,0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5% 증가했다. 국민연금 기여금의 경우 가구당 월평균 11만 2,9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9% 증가했고,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료 지출은 11만 1,200원으로 6.6%나 급증했다. 연금 5.9%과 사회보험 6.6%는 늘었고 경상조세는 0.6% 감소했다. 이 가운데 이자비용이 월평균 9만 3,000원 수준으로 전년동기 대비 3.3% 감소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올해 들어 소득 증가율이 감소했고, 작년 9월경 세법이 바뀌면서 원천징수세율이 인하돼 가구당 경상조세 지출이 감소했다”며 “경상조세는 근로소득세 등 직접세만 대상으로 계산되며 간접세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고소득층도 지갑 꽁꽁 ‘불황형 흑자’ 규모 역대 최고 수준
주목할 점은 고소득층마저 지갑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에 시동을 건 데에 따른다. 새 정부 들어 과세당국이 세금을 더 걷겠다며 지하경제 양성화를 화두로 내세웠지만 오히려 정부의 이런 정책이 고소득층의 지갑을 완전히 얼어붙게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소득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고소득층은 분기마다 5% 안팎의 소비증가율을 보였으나 소득상위 20%인 5분위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이 396만 6,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8%나 줄었다. 이는 전국단위 가계동향 조사를 작성한 2003년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실제로 고소득층이 주요 고객인 백화점의 4월 매출이 3월보다 13.9%나 급감했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도 -1.9%를 비롯해 2분위 -1.7%, 3분위 1%, 4분위 0.8% 등 다른 계층도 지출 감소율을 보였다.
1분기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339만 1,000원으로 1.7% 증가했고 흑자액(처분가능소득-소비지출)은 84만 8,000원을 기록해 1년 전보다 10.8%나 늘어났다. 처분가능소득에서 흑자액이 차지하는 흑자율은 25.0%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평균소비성향은 75.0%로 2.1%포인트 감소했다.
소득은 늘었지만 경기 불확실성으로 씀씀이를 줄이면서 ‘불황형 흑자’ 규모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득증가율보다 지출이 더 크게 하락해 흑자액이 증가했다”며 “앞으로 소비여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 한다”고 설명했다.
박경애 과장은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소비를 줄이다 보니 흑자율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득 불균형 해소차원에서 대책 마련 시급
이러한 소비부진은 세수감소로 이어져 1/4분기 부가가치세는 지난해 말보다 2조 원 가까이 줄었다. 소비는 국세 세입의 4분의1을 차지하는 부가가치세 수입과 직결돼 소비가 위축될 경우 당장 세수에 빨간불이 켜진다.
문제는 경기 불황의 장기화로 저소득층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조사결과 소득 최고층인 5분위 소득은 831만 7,400원인데 반해 1분위는 123만 9,800원으로 무려 7배의 격차를 보였다. 특히 1분위 소득은 전년동기보다 6.7% 증가하고 5분위는 증가율이 1.6%에 그쳤지만 소득차는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2분위도 상황은 비슷해 소득 266만 2,800만 원으로 5분위보다 4배가량 적었다. 문제는 소득 1분위는 지출이 소득을 넘어서 사실상 생계유지 불능자라는 점이다.
소득 1분위의 가계지출은 153만 4,000원으로 24만 4,000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저축능력을 보여주는 흑자율도 -23.7%로 특별한 방법이 없는 한 매달 24만여 원의 빚을 누적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득 2분위도 적자는 면했지만 흑자율은 10.8%로 빠듯한 생활이 불가피해 소득 불균형 해소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런 극심한 소비감소는 2/4분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4월 이후에도 소비의 대부분이 이뤄지는 유통업체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어서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4월 대형마트의 매출은 11.2% 줄어 전년보다 9.8% 감소했다. 식품이 9.3% 감소했고 의류부문이 17.7% 감소세를 보였다. 스포츠 역시 12.2% 감소, 가전이 6.8% 감소 등 전 부문이 부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백화점 매출은 전년보다 1.9% 떨어졌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득은 소폭이나마 늘었는데 계층 전반의 소비가 감소하는 것은 경기에 대한 소비자심리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소비심리를 바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듯하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가계소득 및 지출 증가세가 둔화됐으나 흑자액 증가로 소비 여력이 커져, 추경이나 금리 인하 등의 정책 효과가 가시화되는 하반기 이후에 소비·지출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