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 235호_김옥경 기자) 미국과 중국 간 관계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진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강대국들이며, 우리나라와 경제적으로나 외교·안보적으로 긴밀히 얽혀있기 때문이다. 양국 간 관계는 지금까지 약 60년간 이어져오면서 때로는 협력 측면이, 때로는 갈등 측면이 우세한 양상을 보여왔다. 최근 10여 년
간은 갈등과 대결 측면이 두드러진 모습인데, 앞으로 몇 년간 이러한 흐름이 고조되면서 양국관계가 자칫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요동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자칫 ‘경중안미(經中安美·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존)’의 균형잡기로는 헤쳐 나가기 힘든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향후 미중관계의 전개를 예상해볼 때 시기상으로는 향후 5년이 특히 주목되는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롭고 강력한 리더십의 등장이다. 두 나라 모두 2017년이 정치 일정상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는 올 1월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서 4년 임기를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올 가을, 아마도 11월 초에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가 열린다. 시진핑의 두 번째 5년 임기의 시작을 알리는 빅이벤트다. 이들 두 강대국의 최고지도자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자국민의 열망을 국정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트럼프는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과거 정부의 약속을 뒤집고 대외정책의 관례를 깨고 있다. 시진핑은 기득권 세력과의 대결이 수반되는 개혁과 구조조정 작업을 적극 추진하는 가운데 이를 위한 당내 규율 강화와 사회기강 세우기를 명분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기간에 미중 간 협력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상황이고, 두 나라 간 주고받기가 충분히 가능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자기 뜻대로 처리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북한 핵문제다. 북한은 이미 미국을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ICBM급 탄도미사일 개발의 막바지 단계에 진입해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다. 문제는 ‘핵 시설 선제타격’이나 ‘김정은 제거’ 같은 리스크가 상당한 군사적 해법이나 ‘북미 간 직접협상’을 배제할 경우, 중국을 앞세운 제재 또는 협상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이다. 무역 불균형, 중국과 주변국들 간 영토분쟁 등 여러 이슈에서 갈등하고 있는 중국과 협력하지 않고서는 북핵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갈 수 없는 곤혹스런 상황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북핵에 대한 미중 간 공동대응이 가능할 수 있는 명분과 조건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두 나라 모두 북핵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점과 양국의 어젠다상의 우선순위를 고려해볼 때 두 나라 간 주고받기식 대타협이 성사될 만한 여지도 있다. 국가 간 협상은 모든 이슈에서 50대 50으로 균형을 맞추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몇 가지 이슈에서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고, 다른 몇 가지 이슈들에서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주고받기(barter)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상례다. 트럼프는 대외 영향력 확대보다 무역적자 감소,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이득을 중시한다. 반면 시진핑은 대외 영향력 확대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성장보다 구조조정을 중시한다. 서로 우선시하는 것이 다른 만큼 최우선 요구사항들을 주고받는 절충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중관계의 흐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시기별로 보면, 1950~60년대에는 봉쇄(Containment), 1970~80년대에는 소련 견제를 위한 전략적 포용(Strategic Engagement), 소련 해체 이후는 포용과 봉쇄의 혼용(Congagement) 정책을 적용해왔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냉전 시기 양극체제 하에서는 ‘사회제국주의’ 소련의 위협에 맞서 미국과 전략적 제휴 관계를 유지했으며, 소련 해체 이후의 일극체제(팍스 아메리카나) 하에서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지침에 따라 내실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금융위기 이후 다극체제로의 이행기에 들어와서는 미국에 ‘도전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는 한편 꾸준히 대외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미중관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들의 시각을 종합해보면 ‘경제 규모에서는 역전이 시간문제이지만 군사력과 소프트파워 면에서는 미국 우위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며, 양국 간 패권경쟁은 결국 전쟁을 포함한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은 크게 ‘미국의 우위가 지속된다’는 시각과 ‘미중 간 패권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관점으로 나눌 수 있고, 후자는 다시 ‘패권경쟁 양상이 평화적일 것’이라는 입장과 ‘패권경쟁은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점으로 양분된다.
‘미국 우위 지속’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대표적 학자인 조지프 나이(Joseph Nye)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국력이 압도적 지위를 잃게 되더라도 미국이 만든 제도적인 틀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게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세기’ 즉 미국이 세계 질서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장악하진 못하지만, 글로벌 세력균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시기는 최소한 (이 개념이 처음 나온 1941년부터 100년째 되는 해인) 2041년까지는 유지될 것이라고 본다. 경제 규모에서 중국에 추월을 당하더라도 군사력과 소프트파워에서 미국의 현격한 우위가 지속될 것이며, 중국의 패권 도전은 인도, 일본, 호주 등 지역 라이벌 국가들의 반(反)중국 동맹 형성을 촉진시키는 반작용을 불러옴으로써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2012년에 발표한 <대안적 세계:글로벌 트렌드 2030> 보고서에서, 나이 교수와 비슷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즉 2040년대 전반기에 중국의 종합 국력이 비로소 미국을 능가할 것이며 그 이전에는 경제력에선 중국이 역전에 성공하지만 미국이 다른 영역에서 앞서고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함으로써 여러 강대국들 가운데 ‘동급최강(First among Equals)’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편 최근 30여 년간의 눈부신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결코 미국과 어깨를 겨룰 만한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중국 출신의 비판적 중국 연구자인 민신페이(Minxin Pei)는 중국이 체제상 한계로 결국 2류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본다. 공산당 일당독재에 뿌리를 박은 고질적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관료주의 등 문제들은 체제 변혁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현 체제가 유지되는 한 결국 성장정체와 체제파산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패권경쟁 불가피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끼는 미국의 현실주의자들과 중국의 부상을 선전하는데 열을 올리는 중국의 관변 이데올로그들이 공통적으로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 ‘공격적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미어세이머(John J. Mearsheimer)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인구 규모와 경제력 측면에서 중국은 나치독일이나 소련보다 강력한 지역패권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이후에 전 세계를 지배하는 글로벌 패권국(global hegemon)은 존재한 적이 없으며,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서반구의) 지역 패권국(regional hegemon)이 되었다. 동시에 미국은 다른 대륙의 잠재적 지역 패권국을 바다 건너에서 견제하는 해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이제 막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의 잠재적 지역 패권국인 중국에 대해서도 해외 균형자로서 억제력을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본다. 미어세이머 교수는 강대국들은 국제 체제에서 생존을 제1의 목표로 삼는데, 상대국의 의도를 결코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자국의 상대적 힘을 극대화하는데 매달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강대국들은 국제체제의 속성상 패권적 지위의 확보를 위해 전력투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국이 지역패권을 추구하려 하는 한 미국과
의 안보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아시아 지역은 한반도, 대만, 남중국해 등 일촉즉발의 분쟁지역이 많고, 냉전 시기 미소가 대립했던 유럽대륙보다 핵무기가 전쟁에 동원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미중 간 재래식 전쟁이 터질 가능성은 냉전 시기보다 크다는 게 그의 관측이다. 한편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잘 대변하는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2023년경이 되면 중국이 GDP에서 미국을 상회하지만 군사력이나 문화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뒤질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옌 교수는 하지만 미중은 상호간 최대의 무역 상대국으로서 공멸의 결과를 낳게 될 전쟁은 서로 회피할 것으로 낙관한다.
미중관계의 새로운 구도
트럼프와 시진핑은 둘 다 개성이 상당히 강한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론을 자기들 뜻대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포퓰리스트적 언행 속에 강한 권력욕을 감추고 있으며, 기존 질서나 관례에 순응하기보다 그걸 바꾸고자 한다. ‘관리형 지도자’라기보다 ‘변혁적 지도자’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전반적인 정책 방향, 특히 대외정책의 방향은 과거 자국 정부의 정책 수행 과정에서 형성된 대외정책의 추세나 흐름을 거스르거나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도리어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와 시진핑의 대외정책들이나 그것들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상호조율을 거쳐 도출되는 양자 간 합의들은 후임자들에게도 계승되어 향후 미중관계를 규정짓는 프레임의 중요한 일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5년간 트럼프와 시진핑 간 주고받기, 즉 미국과 중국 간의 국가이익 조율은 어떠한 구도와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두 사람의 정책 어젠다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먼저 국정 목표를 비교해보면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목표로 내걸고 국내 경제의 성장제고와 일자리창출에 초점을 맞춘다. 시진핑의 목표는 ‘중국의 꿈’ 실현이다. 이를 위해 대내적으로는 경제발전과 정치사회적 안정, 대외적으로는 안보·외교·군사 방면의 영향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 중 어느 하나를 우선시하지 않고 동시에 추진하고자 한다.
대내정책을 보면, 트럼프는 미국 경제가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도 경기를 부양하고자 한다. 재정건전성 제약하에서도 성장률을 3%대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으며, 성장을 위해서라면 ‘환경’이나 ‘국제협력’ 같은 과거 정부에서 중시되던 가치들을 희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진핑의 대내정책 키워드는 개혁과 구조조정이다. 성장률 목표는 실제 성장률 추세에 맞춰 유연하게 하향조정할 의향이 있으며, 성장이 둔화되어도 저(低)탄소경제 전환이나 친환경산업 육성 등 경제의 질적인 변화를 적극 추진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대비된다.
대외정책에서도 트럼프와 시진핑은 관심의 방향이 다르다. 트럼프 대외정책은 한 마디로 보호주의와 신고립주의다. 기후변화 등 전 지구적 이슈들을 외면하고 TPP 등 다자간경제협력에서 발을 뺀다. 대미 무역흑자를 많이 내는 나라들에 흑자를 줄이라는 압력을 넣고 동맹국들에게 안보비용 부담을 늘리도록 요구하고, 이민 규제를 강화한다. 반면 시진핑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옹호하고 글로벌 이슈 대응과 관련해 미국이 주도권을 내려놓는다면 중국이 이를 흔쾌히 넘겨받겠다는 의향을 드러내고 있다. 국제 경제질서와 안보질서를 ‘가이드’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 다자간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의 이민 규제로 미국이 시끄럽던 시기에 ‘외국인들에게 중국 영주권을 적극 부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요컨대 두 사람 모두 자기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으나 방법과 수순이 다르다. 트럼프는 대외이슈에 비해 대내이슈를 우선시하고, 대내정책에선 성장률 수치를 중시한다. 반면 시진핑은 대외이슈를 대내이슈만큼 중시하고 대내정책에선 성장률 수치보다 성장의 내용을 중시한다. 또한 트럼프는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이 필요한 영역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지만, 중국은 이런 이슈들을 리드해 나가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정책 우선순위가 뚜렷이 다른 만큼 두 사람 간에 협상을 통해 주고받기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양자의 정책우선순위와 협상 스타일로 미뤄볼 때, 트럼프는 경제적 실리를 얻고 시진핑은 지역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타협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자국의 취약한 재정 상황을 고려해 섣부른 대외확장을 삼가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경제적 실익, 특히 자신의 준거계층인 백인 근로자들이 환호할 만한 실익을 얻어낼 수 있다면 (물론 그 대가로 중국의 관심사에 대해 어느 정도 양보를 해야겠지만) 자신의 협상 능력을 증명하고 정치적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해볼 만한 거래라 할 수 있다. 시진핑 역시 경제 구조조정 작업에 차질을 빚지 않는 한도에서 미국 제품의 시장 접근성을 높여주는 대신 대외 영향력 확대와 직결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영토문제에서 미국의 협조 또는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래라고 볼 수 있다.

협상 전개 방식과 타결 구도
미중 간 주고받기는 한두 번의 만남으로 끝나는 잘 조직된 패키지딜의 형태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절충과 재절충이 누적되며 이루어지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나 시진핑 모두 현재의 양국 관계나 현존의 국제질서를 변경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만큼 협상 테이블에 올려질 어젠다의 범위가 넓고 최종적인 타협에 이르기까지 난관이 상당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협상을 통해 모든 이슈들이 이미 커버되었다고 해도 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추가협상과 재협상이 벌어질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무역적자 개선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미국은 한층 더 강도 높은 무역 불균형 시정 조치를 중국에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취함으로써 기존 합의의 틀을 수정하려 들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에 들어가더라도 북한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거나 합의를 깨고 도발적인 행동을 할 경우에는 새로 협상테이블이 마련되어 미중 간 북핵 해법 합의와 이익조율이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 수도 있다.
협상을 제안하고 협상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주로 트럼프가 될 것이다. 현상에 대한 불만을 더 많이 가지고 있고 협상의 효과에 대한 믿음과 협상에 대한 자신감이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특유의 과격한 발언으로 협상 옵션을 극대화한 뒤, 실무 논의 과정에서 실질적 관심사와 타협안을 노출시켜 ‘극적인’ 합의에 이르는 모양새로 협상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주고받기의 구도는 앞서 설명한 바대로 통상·투자 등 경제 영역에서 중국이 미국 측에 양보하고, 영토분쟁이나 다자간 협력 프로그램 추진 등 비(非)경제 영역, 즉 안보 및 외교 영역에서 미국이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중국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일차적으로 트럼프와 시진핑의 국정 어젠다상 우선순위 및 국정 운영 스타일의 차이에서 연역되어 나온 결론이지만, 나아가 두 나라 국력의 장기적인 추세와 부합하는 구도이다. 경제 실익은 미국이 취하고 안보외교상 이익은 중국이 취하는 타결 구도는 미중 간 협상 전초전이었던 ‘100일 계획’ 합의 과정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100일 계획’은 올해 4월 6~7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것으로, 양국 실무진의 논의를 거친 뒤 5월 11일 10개 항의 합의사항이 발표되었다. 당초 정상회담 100일 후인 7월 16일까지 합의사항 이행을 완료하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대부분 완료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다.
아시아 지역 패권
트럼프 재임 시기와 대부분이 겹치는 시진핑 2기는 2000년대 들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 노력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가 될 전망이다. 시진핑의 전임인 후진타오는 미국에 대한 도전 의사가 크지 않았다. 후진타오 임기 초기에 잠깐 중국 내부에서 대외정책 콘셉트로 ‘화평굴기(평화적 부상)’에 대한 논의가 잠시 벌어졌으나 외부의 견제와 내부의 우려를 의식해 ‘화평발전(평화적 발전)’으로 신속히 대체되었다. 시진핑은 오바마의 아시아 중심축 전략에 맞서 ‘신형 대국관계’를 제안했다. 미국에 대해 ‘너희와 맞서지 않겠으니 우릴 강대국으로 대우해달라’는 것으로, 후진타오 시기에 비해서는 대외확장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단적으로 시진핑은 영토분쟁 지역에 대해 ‘주권중국, 논쟁보류, 공동개발’을 원칙으로 접근하여 ‘주권 보류, 공동개발’을 원칙으로 한 후진타오보다 한층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시진핑은 2기에도 트럼프의 신고립주의와 정반대로 글로벌 어젠다에 대한 주도적 대응 자세를 견지하면서 미국이 남긴 공백을 조심스럽게 메워가는 방식으로 대외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2기에 중국의 지역패권 확보 노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안보적 고려와 경제적 고려가 한 덩어리로 결합되어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적극 추진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 대상 국가들은 중국의 ‘핵심이익’이 걸려있는 중요한 지역들이다. 단적으로 중국이 수입하는 전체 원유의 66%, 천연가스의 86%가 이들 국가에서 생산된다. 중국은 그 중에서도 태평양 및 인도양의 미국 해군력의 영향권을 최대한 빗겨갈 수 있는 파키스탄과 미얀마와의 협력을 중시한다. 미얀마의 인도양 항구로부터 중국의 쿤밍 시를 잇는 구간의 원유 및 가스 운송망이 올 4월 가동에 들어갔고, 파키스탄 과다르 항에서 중국의 신장성 카스로 이어지는 송유관, 도로, 철도망 건설이 올 3월 착수되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도로, 철도, 발전소 등 인프라(중국 해외수주액의 52%)와 국제협력공단(56곳, 1082개 업체 입주) 건설 위주로 추진되고 있다. 프로젝트 참여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며, ABB, 알스톰 등 일부 외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 주도의 콘소시엄에 하위 파트너(부품, 소재)로 참여하고 있다.
둘째, 중국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FTAAP(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 등 다자간경제협력 틀 마련에도 공을 들일 것이다. RCEP는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과 이들 국가와 개별적으로 FTA를 체결한 6개국을 대상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ASEAN 중심으로 추진되어온 것으로, 대상국들 간 발전격차가 상당히 커 성사되더라도 낮은 수준의 자유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ASEAN 국가들은 일대일로와 RCEP 프로젝트가 동시에 추진되는 지역으로, 경제성장 잠재력이 뛰어난데다 영토분쟁 상대국들을 포함하고 있어 중국이 전략적으로 중시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 친(親)중국 성향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중국과 ASEAN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결합이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셋째, 공개적으로 드러내진 않겠지만 중국이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는 것은 영토분쟁 지역에 대한 지배력 강화다. 중국은 겉으로는 분쟁지역 자원 공동개발 등 평화적 제스처로 분쟁 해결을 주도하면서 은밀하게 군사적 확장을 계속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갈등이 표면화되면 경제적·외교적 실리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강경한 대응을 통해 이미 이루어진 군사력 확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방식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점진적으로 강화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중국의 확장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제스처를 취하겠지만 (트럼프의 스타일로 봐서는) 영토분쟁 관련 갈등이 군사적인 충돌로 가기보다는 미국의 경제적 실익 확보의 지렛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북핵 문제
미국은 ‘핵 없는 북한’을 동아시아전략(중국 견제)의 실행조건으로서 필요로 한다. 중국은 ‘(핵 없는) 북한’의 존재가 미국과의 완충지대로서 필요한 입장이다. 북한은 체제 유지를 보장받기 위해 미국을 공격 범위에 넣을 수 있는 핵무기(핵+ICBM)를 기필코 개발하고자 한다. 자기네 헌법에서 선언한대로 ‘핵보유국’ 자격으로 미국과의 일대일 협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일괄타결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제 특히 북한에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유일하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인 중국의 강력한 압박을 통한 해결 방식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국가’나 ‘체제’는 물론 현재의 ‘정권’을 존속시키는 한도 내에서 이뤄지는 압박을 통해 북한을 다자간 협상테이블로 불러내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핵 무장을 한 북한’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주변국들의 외교안보 전략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각국의 타산과 전략적 스탠스는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의 자신감과 발언권이 커지면서 미중 간 오월동주식의 대(對)북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나 북한과의 일대일 교섭 같은 극단적 해법을 취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는 일련의 제재와 압박 과정을 거쳐 다자간 협상의 장이 열리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아갈 가능성이 높다.
중국 역시 북핵 문제가 동북아 안보 환경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급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름의 불가결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핵무장은 동북아 핵 확산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중국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고, 이 점이 중국의 역할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북한을 협상장으로 유도하고 양측의 이견을 조율해 가는 중재자(moderator), 나아가 협상 타결 후에는 북미 양측에 대해 합의사항의 이행 가능성을 높이는 신뢰보강자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자료_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