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마녀사냥, 우리도 자유로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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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마녀사냥, 우리도 자유로울 순 없다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7.10.0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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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뒷전, 퍼나르기식 확대 글 양산에 2차 피해 우려

이슈에 치중한 언론도 문제…자정 움직임 필요

[시사매거진 234호=신혜영 기자] 지난 9월 12일 ‘240번 버스’가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며 이슈로 급부상했다. 사건의 발단은 9월 11일 한 네티즌이 올린 “240번 버스가 아이만 내려둔 채 엄마를 태우고 그냥 출발했다”는 글에서 시작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각종 언론이나 누리꾼들은 ‘240번 버스 운전기사’의 잘못으로 사건을 몰아갔고 급기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버스 기사를 고발한다’는 청원까지 올라갔다. 그로부터 이틀 후 CCTV가 공개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저지른 무차별한 ‘마녀사냥’에 대한 문제가 다시금 지적되고 있다.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채 악인적인 글들이 인터넷을 달군 이번 사건으로 자정의 목소리가 높다.

온라인 마녀사냥 문제가 심각한 건 단편적인 사실만 가지고 단편적인 내용들을 정교하게 만들며 마치 사실처럼 포장되어 익명의 네티즌들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기 때문이다. [사진_뉴시스]

240번 버스 사건으로 재조명 된 마녀사냥

인터넷의 발달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편리함을 준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글을 올려 대중에게 널리 알릴 수 있고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다. 이는 어느 기관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보다도 더 파급효과가 크다. 그런데 이점이 있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진실 여부가 확인 되지도 않은 글들이 마치 사실처럼 전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되는 얘기치 않은 상황은 이미 여러 사건에서도 문제로 드러난 바 있다. 사건의 진실은 뒤로 한 채 익명의 누리꾼들은 해당 글에만 집착하며 글 속의 악인에게 악성댓글을 올린다. 매번 그럴 때마다 마녀사냥이 도마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240번 버스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정작 당사자들의 얘기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목격자가 올린 글만으로 운전기사의 잘잘못만을 따지며 악성댓글이 쉴 새 없이 달렸다. 사건 결과 목격자의 글과는 판이하게 다른 진실이 있었다.
지난 9월 11일 한 네티즌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 따르면 “미어터지는 퇴근시간에 5살도 안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내리고 바로 여성분이 내리려던 찰나 뒷문이 닫혔다. 아주머니가 울부짖으며 문을 열어달라는데도 (기사분이) 무시했다. 다음 정류장에서 아주머니가 울며 뛰어나가는데 (기사가) 큰 소리로 욕을 했다”는 글이다. 이 글만 보면 명백히 240번 버스 운전기사의 잘못으로 판단된다.
이 글은 온라인 공간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급속도록 퍼졌고 공분한 네티즌들은 사실이 확인되기 전 너도나도 운전기사를 향해 악성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운전기사는 사건의 가해자, 몹쓸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급기야 청와대 홈페이지에 ‘버스 기사를 고발한다’는 청원까지 올라갔다.
여기까진 운전기사의 잘못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진상조사에 착수한 서울시에 따르면 해당 기사의 경위서와 내부 CCTV 등을 조사한 결과 버스가 정류소에 도착한 후 약 16초간 정차하는 동안 아이 3명을 포함한 10여 명의 승객이 하차했다. 아이 1명이 다른 보호자와 함께 내리는 아이 2명을 따라 함께 내렸고 아이 엄마는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 어머니가 하차를 요청했을 때 이미 버스가 건대입구 사거리를 향해 4차로에서 3차로로 진입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 CCTV가 공개되면서 이 사건을 둘러싼 분위기는 급변했다. 5살 정도의 아이였다는 당초 글과 달리 아이는 7살이었고 떠밀려 내려졌다 하기엔 자발적으로 내렸다. 오로지 목격자의 글에만 의존해 진실 공방이 이뤄졌던 사건이 CCTV공개로 오히려 처음 글을 올린 네티즌에 대해 처벌하라는 여론까지 형성됐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아이 엄마에게도 비난이 쇄도 했다.
우리가 인터넷 문화 발달에 비해 얼마나 성숙하지 못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240번 버스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났다. 그간에도 간간히 인터넷에 올라온 글만으로 온라인 ‘마녀사냥’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그 정점을 찍었다.

240번 버스기사 사건으로 우리가 저지른 무차별한 ‘마녀사냥’에 대한 문제가 다시금 지적되고 있다.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채 악인적인 글들이 인터넷을 달군 이번 사건으로 자정의 목소리가 높다. [출처_YTN화면 캡처]

사실 여부는 뒷전, 오직 인터넷 글에만 집착
이슈에 집착한 언론 보도도 문제

이렇게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글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일반인들이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전락해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 논란됐던 음식점 ‘채선당 임산부 폭행사건’과 ‘된장 국물녀’ 역시 ‘240번 버스사건’과 비슷한 경우다. 인터넷에 사실관계가 불확실한 글이 올라오고 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채선당에서 종업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임신부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일파만파 확산됐다. 식당 종업원은 온갖 인신공격을 받는 등 곤욕을 치렀고 채선당도 막대한 매출 감소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폭행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건의 당사자인 임산부는 “넘어져 태아에게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과 충격으로 정확한 기억을 하지 못했다”며 “임산부들은 자기의 의견에 모두 공감할 것을 생각해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미안하고 종업원 및 업체에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일단락됐다.
‘된장 국물녀’도 마찬가지다. 같은 해 화상을 입은 아이의 부모는 “한 여성이 국물을 들고 서 있다가 아이와 충돌해 얼굴에 뜨거운 국물을 쏟고 달아났다”는 글을 올렸다. 누리꾼들은 가해자의 신상 파악에 나서는 등 맹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CCTV 확인결과 피해 어린이가 뛰어오다가 충돌한 장면과 부딪힌 여성이 주방에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 녹화돼 사건은 일단락 됐다.
위 사건처럼 온라인상에 잘못된 글이 올라와 피해를 입는 사례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9월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 형법상 명예훼손 사건 수는 약 10% 감소한 반면, 2015년 신고 된 사이버명예훼손·모욕 범죄는 1만 5043건으로 전년(8800건) 대비 70%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1만 4908건이 신고 됐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글을 올린 뒤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 쾌감을 느끼게 되는 대표적인 SNS의 폐해”라며 “선의로 글을 올렸더라도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글을 사실처럼 올려놓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김윤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SNS에 올리는 개인 글도 미디어 효과가 있는 시대다. 일반 시민도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라며 “하지만 시민들은 언론을 통해 자기 글이 확산될 수 있다는 의식이 부족해 결과적으로 가짜 뉴스가 생산된다”고 진단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처음 글을 올린 사람은 본인 시야가 한정돼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동조하는 사람들로부터 문제가 커진다”며 “사회가 불안하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워져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글에 동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합리적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언론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240번 버스 사건이나 채선당 임산부 폭행 사건 등 언론 역시 사실 확인 여부를 하지 않고 ‘이슈’라는 이유만으로 제보자의 글만을 기사화하면서 마치 그 이야기가 사실인 양 언론공개를 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기사가 확대 재생산 되면서 사실은 묵인 된 채 퍼져나갔다.
실제로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240번 버스기사 A(60) 씨는 해당 언론사가 당사자에게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아 비난의 대상이 됐다는 점을 힘들어 했다고 한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속보 경쟁에 치우친 언론이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일단 보도하고 보면서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누리꾼들과 언론의 자정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악성댓글로 인한 마녀사냥을 막기 위해서는 법적인 제재보다는 정보를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는 선플달기 운동과 같은 대국민 홍보나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사진은 지난 8월 21일 있었던 ‘선플SNS인권위원회 출범식’. [출처_뉴시스]

사실 묵인한 마녀사냥…나도 주인공일 수 있어
시민의식의 성숙과 규제가 함께 이뤄져야 할 때

이번 240번 버스 사건 역시 일단락됐지만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만으로 잘잘못을 판단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온라인상에서의 ‘마녀사냥’은 자행될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240번 버스’ 사건 역시 마녀사냥의 표적이 됐다. 아이 엄마와 버스기사의 증언은 배제 된 채 오직 네티즌들끼지 진실공방이 이어지며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사실도 확인되지 않은 사건을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해진 마냥 극단적으로 여론이 쏠리고 확실한 죄의 유무가 밝혀지지 않은 채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사건의 당사자들은 극복하기 어려운 심적 고통을 겪는다.
실제로 240번 버스기사 A씨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지난 사흘 동안 자살을 생각했었다. 온통 나를 비난하는 글뿐이다. 이제껏 당해보지 못한 마녀사냥식 비난에 지금껏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자며 가족과 함께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심경을 토로했다.
온라인 마녀사냥 문제가 심각한 건 단편적인 사실만 가지고 단편적인 내용들을 정교하게 만들며 마치 사실처럼 포장되어 익명의 네티즌들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의 주인공은 누구나 될 수 있다. SNS가 발달하고 언제 어디서나 나 역시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자중의 목소리를 높이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염흥열 교수(53)는 “정부가 인터넷과 SNS상에서 개인윤리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교육할 수 있는 법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SNS 매체의 독특한 특성을 이해하고 법적인 제재보다는 정보를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는 선플달기 운동과 같은 대국민 홍보나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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