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 233호 / 신혜영 기자] “또?” 최근 일어난 살충제 달걀논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AI, 햄버거병, 족발, 편육 등 연일 먹거리 논란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더니 이번엔 친환경이라 믿고 먹었던 달걀이 살충제 달걀이었단 사실에 국민들은 먹거리 공포마저 느끼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안심하고 먹을 만한 게 없다. 친환경도 믿지 못하겠다”며 불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례행사를 하듯 터져 나오는 먹거리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먹거리 논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이 먹거리 불안에 떨고 있다. 식품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서도 “혹시 이것도 문제 있는 식품인가?”하는 의구심이 떠나질 않는다. 안심하고 먹을 게 없다는 게 소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30대 주부 신 모씨 “5살 아이가 먹을 달걀이라 친환경 달걀을 샀는데 살충제 달걀이었다니…내가 그동안 비싼 돈을 주고 일반 달걀보다 더 해로운 달걀을 먹였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진다. 다른 친환경 제품도 예외는 아닐 거라 생각하니 이제는 뭘 믿고 사먹어야 하나 싶다. 직접 생산하지 않고선 방법이 없나 보다”고 했다.
60대 주부 양 모씨도 “당분간 달걀은 계속 안 사 먹을 예정이다. 몇 개 빼고 안전하다더니 계속 추가적으로 검출되고 있다. 먹기가 더 힘들다”고 밝혔다.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확산된 소비자들의 먹거리 불안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안전성이 검증된 달걀판매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연일 터져 나오는 먹거리 논란으로 생겨난 농산물에 대한 불신이 이번 사건으로 확신을 준듯하다.
지난 8월 초 유럽지역에서 처음 시작된 ‘살충제 달걀’ 파동은 지난 8월 14일 경기도 남양주 농가에서 생산된 달걀에서 문제의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되면서 우리 사회를 일대 혼란에 빠트렸다. 피프로닐은 개와 고양이의 몸에 붙어 있는 벼룩과 진드기를 죽이는 살충제로 닭에 살포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이런 성분이 달걀에서 검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먹거리 불신은 더욱 커졌다. 더욱이 국민 식재료로 사랑받고 있는 달걀에서 살충제가 잇따라 검출됨에 따라 소비자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실 먹거리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례행사처럼 숱하게 빈발하고 있다. 먹거리 논란, 먹거리 안전불감증이란 단어는 언론에서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5년에 ‘가짜 백수오’ 사태로 대한민국은 먹거리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소비자원은 당시 홈쇼핑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건강기능식품 백수오관련 제품 상당수에 식품 원료로 인정되지 않고 인체에 유해한 이엽우피소가 섞여 있다고 발표했다. 이엽우피소는 1990년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도입된 외래종으로 백수오와는 전혀 다른 종이다. 간 독성·신경 쇠약 등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식품 원료로의 사용이 금지돼 있다.
지난 7월에는 5살 난 여자아이가 고기패티가 덜 익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용혈성요독증후군(HUS)으로 인해 신장이 90%가 손상되면서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며 그의 피해자 가족이 맥도날드 한국지사를 식품안전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추가 고소가 이어지면서 유사사례 피해 아동은 총 5명으로 늘었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주로 고기를 갈아서 덜 익혀 조리한 음식을 먹었을 때 발병하는데 미국에서는 1982년 햄버거에 의해 집단 발병 사례가 보고됐다. 이 사건 이후 한국소비자원이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등 주요 햄버거 프랜차이즈 6개 업체 등의 햄버거 38종을 조사한 결과, 맥도날드 불고기버거에서 식중독균인 황색포도상구균이 기준치(100/g 이하)의 3배 이상 검출되기도 했다.
8월 초에는 한 초등학생이 입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일명 ‘용가리 과자’를 사먹은 후 위에 5㎝ 크기의 구멍이 뚫려 응급 수술을 받았다. 이 과자는 먹으면 입에서 연기가 나는 과자로 액체 질소가 첨가됐다.
잊을 만 하면 터져 나오는 먹거리 논란,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 달걀은 국민들의 가장 대중적이고 친숙한 음식이라 그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바른 먹거리를 표방한 친환경 제품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 됐다는 사실에 소비자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바른 먹거리를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친환경’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친환경 농산물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소비도 늘었다. 그리고 많은 농가에서는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했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친환경은 믿을만한 먹거리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거기까지. 우후죽순 친환경 먹거리들이 생겨나면서 그동안 곪아 있던 문제점들이 하나 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친환경 인증은 1999년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인증을 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관리원이 업무를 전담했고 2002년부터는 민간업체가 참여하기 시작했고 올해 6월부터 민간업체가 모든 인증 업무를 맡고 있다. 국립농산물관리원은 인증 업무가 제대로 처리됐는지에 대해 사후관리만 한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는 정부로부터 친환경농산물 직불금을 지원받을 수 있고 정부의 시설 현대화 등 사업에서도 우선권도 부여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친환경 인증 농가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는 도입한 이후 ‘부실인증’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2013년에는 대규모 부실인증 사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민간 인증대행업체 직원이 자신이 경작한 농산물에 직접 ‘셀프인증’을 하거나, 인증 취소 후 재인증을 받는 데 필요한 기간(1년)이 지나지 않은 농가에 인증서를 교부한 사례 등이 적발되면서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었다. 2014년에는 부실인증 적발 건수만 6411건에 달했다. 2016년에도 2734건이 부실인증으로 드러났다.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는 이러한 폐단을 여실히 드러냈다. ‘살충제 달걀 파동’ 뒤에는 정부의 ‘허술한 친환경 인증 사후관리’가 크게 한 몫 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시민들 불신이 ‘친환경 인증’ 시스템 전반으로까지 퍼지고 있다.
소비자단체 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이번 사태로 인해 사후관리는커녕 사전관리부터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소홀한 관리 체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며 “피프로닐·비펜트린 등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살충제의 잔류기준 자체도 세워지지 않은 채 관리·감독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가는 모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으로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곳들이다. 현행 인증절차는 ‘서류심사→현장심사→결과통보→사후관리’ 순으로 진행되며, 인증서 교부까지 전 과정을 민간 인증기관이 대행하고 있다. 인증 과정에는 민간 인증기관이 수행하는 현장검사도 포함된다. 주로 사육과정에서 동물의약품과 살충제를 포함한 유기합성농약 성분 함유 자재를 사용했거나 사용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한다. 이처럼 인증과정에서 살충제를 포함한 유기합성농약 성분을 축사나 주변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지만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인증 이후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이뤄지고 있는 ‘사후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6일 식품의약품 안전처 검사 결과에서 비펜트린 살충제가 기준치의 21배(㎏ 당 0.21㎎)까지 검출된 나주 공산면 A농가의 경우 올 초 연 1회 이뤄진 사후관리 검사에서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최근 경기 지역에서 촉발된 살충제 달걀 파동이후 정부가 실시한 최근 전수검사 과정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허술한 사후관리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후관리’는 민간 인증기관을 포함, ‘농관원’이 직접 담당하는 분야여서 ‘친환경 인증’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가중 시키고 있다. 이번 사태로 먹거리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과 사후관리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축산물 유통분야 한 관계자는 “사후관리 강화를 위해서는 연 1회로 규정된 검사 횟수를 2~3배로 늘리고 관련 공무원 인력증원, 분석관련 예산 증액 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안이한 식품 안전 관리로 연이은 뒷북 대응도 도마위에 올랐다. 앞서 발생한 용가리 과자 후속대책도 마찬가지다. 식약처는 액체질소가 최종적으로 제품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첨가물 공정’을 10월까지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정부는 질소과자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언제나 뒷북대응을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이번 달걀 사태에서 계속된 부처 간 엇박자로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혼선만 부추겼다는 비판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살충제 달걀이 검출된 농장이 모두 4곳이라고 발표했지만 식약처는 그외 다른 농장 2곳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고 밝혔다. 전수검사 대상인 전국 산란계(알낳는 닭) 농장 1239곳 중 일반 농장 556곳에 대한 살충제 성분 검사를 농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과 지자체가 나눠 진행했다. 하지만 지자체가 자체 조사한 420곳에서 표준시약이 없어 정부 기준을 미달해 일부만 검사한 사실이 드러나자 8월 19일부터 보완조사를 벌였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자고 일어나면 늘어나있는 살충제 달걀 농가 리스트에 이제는 아예 달걀 섭취를 중단한 가구도 늘고 있다”라며 “일반 농가보다 오히려 친환경 인증 농가에서의 부적합 판정 달걀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 달걀뿐만이 아닌 전반적인 식품에 대한 불신도 함께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살충제 성분이 나온 농장의 난각코드(달걀껍데기 위에 찍혀 있는 생산자 확인 번호)와 이름을 몇 차례 수정해 혼선을 빚은 가운데 지난 8월 21일 7개 농장의 난각 코드를 또 정정했다.
이원영 춘천YMCA 시민사업국 국장은 “정부의 안일한 상황 파악이 이런 사태를 야기한 것이 아닌지 안타깝다”며 “도대체 우리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먹거리가 있기는 한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고 했다.
농식품부와 식약처 간 엇박자로 드러난 식품안전관리 컨트롤타워 부재와 ‘농피아’(농축산 분야 공무원+마피아) 척결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번 살충제 달걀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달걀의 생산단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관할하고 유통단계는 식약처가 담당하는 일원화 되지 않은 행정시스템으로 식품안전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식품의 생산·유통·판매 관리 시스템이 농식품부와 식약처로 이원화 되어 있음에 따라 부처간 엇박자 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의 일원화를 포함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는 “산란계에 대한 광범한 살충제 사용의 원인은 생산성만을 우선하는 성장주의 생산방식의 문제에 있다”며 “케이지 사육이 금지돼 있는 유기인증 축산물과는 달리 무항생제 인증축산물은 일반축산물과 같이 몸을 돌리기도 힘든 공간에서 생산해도 되는 법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식품안전시스템에 대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진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한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8월 18일 브리핑에서 “살충제 달걀을 포함해 친환경 축산에 대해 느끼는 국민의 신뢰감 상실이 대단히 컸다고 생각한다”면서 “축산물의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즐겨먹는 요리에 달걀이 쓰이는 경우가 많아 살충제 달걀 파동은 일반 가정과 식품 제조업·유통업계뿐 아니라 자영업자가 밀집한 요식업계에도 큰 타격이다.
이 총리는 살충제 달걀 파동과 관련, 식품안전 보장장치 관련 유착 등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 총리는 “금지된 약품을 제조하거나 판매한 것뿐만 아니라 사용한 업체, 상인, 농가 등 관계법을 어기고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 신뢰를 배반한 경우에 대해서도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회 을지국무회의에서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국민들께 불안과 염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지난 14일 사태가 터진 지 일주일 만에 정부를 대표해 사실상의 공식 사과를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범부처 살충제 달걀 대응팀(TF) 구성, 축산관리시스템 점검 등을 지시했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살충제 달걀 사태는 예고된 인”라며 “정부는 긴장감을 갖고 전체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비양심적인 불법 농가에 대해 확실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는 “국민의 먹거리와 식량문제는 생산하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이며 이를 안전하게 생산해 국민에게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은 국가가 나서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농식품부를 넘어서는 범부처적인 기본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