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리얼리티 예능의 대세로 떠오른 ‘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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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얼리티 예능의 대세로 떠오른 ‘욜로’
  • 이은진 기자
  • 승인 2017.08.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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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라

(시사매거진232호 = 이은진 기자) 붉게 물든 바닷가를 등진 방파제 위로 강아지 세 마리가 앞장서 달리고, 그 뒤를 따라 걷는 가수 이효리와 아이유는 “오늘 저녁에 무얼 먹지?”를 고민한다. 그러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은 그들은 석양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민박>의 한 장면이다.

제주 한담해변을 산책하는 이효리와 아이유 / 사진 출처 = JTBC

"변화하는 TV 예능, 시청자의 니즈는 힐링" 

<효리네민박>은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제주도로 이주하여 실제 거주하는 집을 민박집으로 꾸며 손님을 맞는 콘셉트로, 비연예인 손님을 맞고, 그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밥을 지어먹는 등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곳엔 인위적인 캐릭터 설정이나 출연자들끼리의 게임 혹은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렇듯 꾸밈없고 느린 일상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최근 예능의 트렌드다. 속도와 경쟁하고 타인과 비교하는 현실에 지친 것일까. TV 앞에서만이라도 편안한 힐링을 얻고픈 게 시청자의 바람이다.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의 ‘힐링’ 바람에는 <꽃보다할배>를 연출한 나영석PD가 있다. 2013년 방영한 <꽃보다할배>는 평균나이 76세, 머리가 희끗한 할배들(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보조역할을 해내는 배우 이서진, 최지우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난다. 카메라 렌즈에 담긴 유럽 곳곳의 경관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연예계에서 한 가닥하는 원로배우들이 낯선 문화를 접하는 조금은 어수룩한 모습 또한 인간적인 매력으로 어필한다.

이후 시즌오프 <꽃보다누나>, <꽃보다청춘>으로 이어지며, ‘꽃보다’ 시리즈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1년 후 나PD는 <삼시세끼>를 연출하며 ‘끼니 챙겨먹기’라는 단순한 목표 하나만으로도 출연자들이 조개를 줍고, 생선을 손질하는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신선함을 어필했다. 이어 구혜선·안재현 부부의 신혼 일상을 담은 <신혼일기>, 윤여정·신구·이서진·정유미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식당운영하기를 보여준 <윤식당>을 내놓으며, 리얼리티 예능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물론 예능에서 ‘여행’이나 ‘요리’는 시각적 볼거리가 많은 카테고리인 것이 사실이지만 나PD의 연출작뿐 아니라 최근 인기의 수직 상승곡선을 달리는 예능은 지극히 일상적인 출연자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대리만족’을 얻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청자의 니즈인 ‘힐링’이다.

아프리카에서 마주친 여행객이 건네준 인사말 ‘욜로’의 의미를 회상하는 류준열 / 사진출처 = tvN

"욜로(Yolo)의 현실적 진단"

예능 <꽃보다청춘 : 아프리카 편>에서 ‘욜로’라는 말이 등장한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출연자들은 홀로 여행하는 한 미국인 여대생을 길에서 마주친다. 도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멋있다고 말하는 출연자들에게 그녀는 ‘욜로’라고 답한다. “욜로(Yolo · You Only Live Once)” 라는 단 두 글자가 자유롭게 도전하는 그녀의 삶의 철학을 설명하는 듯했다. 우연히 스쳐간 예능 속 한 장면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사는 현대인에게 지금을 즐기고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을 행하라고 주문하는 기폭제로 다가왔다. 욜로는 마케팅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단어이다. 여행, 식사, 취미 활동 등 즐거움을 주는 모든 행동에 ‘욜로’라 칭하며 2017년 가장 핫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본래 의미에서 멀어진 문맥 또한 공존한다.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는 말처럼 욜로를 수단으로 부추긴 일회성 소비와 이로써 얻는 보상심리에 중독되는 경우다. 끊임없는 욕구와 불만족감을 키우는 어감은 위험해 보인다. 사실 욜로는 거창한 게 아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값지게 쓰기 위해, 지금 내가 존재하는 시공간을 더 많이 느끼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라면 일상의 모든 순간이 욜로가 된다.

"슬로우 라이프 예능, 엇갈린 반응"

슬로우 라이프를 보여주는 리얼리티 예능에 엇갈린 반응도 나타난다. 잠시나마 속도의 경쟁을 잊을 수 있다는 긍정적 반응이 있는 반면, 물질적 여유가 전제된 스타들의 생활에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낭만을 느끼고, 한적한 섬에 나만의 집을 짓고,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장면을 볼 때, ‘나도 비행기에 몸을 싣고 훌쩍 떠나볼까’, 일요일 저녁 TV 앞에 앉아 이런 상상을 했다면, 다가오는 출근이 더 야속해질 뿐이다.

아일랜드 길거리에서 버스킹하는 밴드 비긴어스 / 사진출처 = tvN

"힐링 예능 속 주인공이 되는 방법"

욜로의 자세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누구든지 주인공이 된다. 1인칭 시점일 때 놓치기 쉬웠던 일상적인 순간들을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느껴보자.

(1)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거리를 걷기

거리의 행인들이 목적지를 향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춰 ‘비긴어스’ (이소라·유희열·윤도현)의 버스킹을 감상한다. 그들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번진다. <비긴어게인>

예능 '비긴어게인' OST

(2) 주변 사람과 긍정적인 대화 나누기

서툴게 식당을 운영하는 윤식당의 크루들(윤여정, 정유미, 이서진, 신구)이 서로를 응원한다. 이해와 다독임은 긍정 에너지를 만든다. <윤식당>

(3) 맛있는 음식 먹기

다양한 음식과 사람냄새가 있는 전통시장은 추억을 선물할 뿐 아니라 알뜰 장보기까지 책임진다.

우리 동네 전통시장

(4) 열심히 아무것도 하지 않기

여름 바캉스 시즌이지만, 많은 인파와 긴 이동시간에 피로를 느낀다면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을 추천한다. 집이나 숙소에서 머무르는 스테이케이션을 통해 충분한 휴식과 안정감을 만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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