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한 축구감독 신태용이 전하는 ‘축구 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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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한 축구감독 신태용이 전하는 ‘축구 청사진’
  • 김옥경 부장
  • 승인 2017.07.1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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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有望株)를 유망주(有望走)로 키워내는 시스템 필요

 

   
▲ U-20 올림픽 대표팀 신태용 축구감독.

이 달의 스포츠 스타는 신태용(47) 감독이다. 얼마 전 U-20 월드컵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그를 분당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블랙 니트 티에 감색 정장바지를 입은 그는 무심한 듯 편안한 느낌이다. ‘오늘은 오늘 걱정만 한다’는 긍정적인 성격 탓에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이 무색했던 이날 인터뷰도 시종 무심한 듯 편안했다.
   
신태용 감독의 축구는 변화무쌍하다. 승패에 전전하며 눈치보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기는 길을 찾아간다. 무리한 전략과 전술로 폼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예리한 관찰과 실행으로 현실적이고 가능한 포메이션을 구축한다. 우리 팀의 전력은 최대한 방어하면서 상대방을 교란시켜 허점을 만든다. 단순한 공수(攻守)의 반복에서 벗어나 다양한 변칙과 변수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때문에 신 감독의 변칙적인 축구는 언제나 이목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런 만큼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치른 U-20올림픽 또한 그러했다.
 
   
▲ 5월 2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A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대한민국 신태용 감독이 선제골을 넣은 이승우와 기뻐하고 있다.
 
먼저 U-20 올림픽에 대해 나름대로 총평을 한다면 어떠한가.
 
우리 선수들 잘했다. 조별 예선 통과하면서 분위기 띄운 것만 해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대의견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보고 느낀 사람들은 다 안다. 아니까 취재기자들도 기적이라고 말한다. 아르헨티나전도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잉글랜드전이나 포르투칼전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일반 팬들은 잘 모른다. 그저 한국 대 잉글랜드, 한국 대 포르투칼 이렇게만 생각한다. 그런데 잉글랜드 선수들은 A대표팀을 왔다갔다 하는 선수들이고, 포르투칼도 유럽의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빅3 팀의 선수들이다. 그런데 우리 애들은 11명 중 1명만 빼고는 경기 한 번 뛰어보지 못한 선수들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나 UEFA 챔피언스리그는 세계 축구를 이끌어가는 리그다. 여기에서 뛰는 애들이랑 후보 선수로 게임 한 번 제대로 못 뛴 우리 선수들과는 비교자체가 안 된다. 우리 애들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들이 있나.
 
예를 들면 대학교 1학년 선수들은 시합을 못 뛴다. “아직 2, 3, 4학년 선배들도 게임을 못 뛰는데, 니가 무슨 게임이냐?” “3, 4학년 선배들 게임 뛰어서 프로 보내야 돼. 안 돼.” 이런 식이다. 프로에 입단해도 마찬가지다. 까마득한 선배들이 있다. “2~3년은 더 기다려. 그 동안 웨이트트레이닝하면서 프로 물도 먹어보고 그래.” 사정이 이렇다보니 U-20 선수들은 제대로 된 경기 한 번 뛰어보지 못한 선수가 전부다시피한다. 소속팀에서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데려와서 조직력만 다지면 된다. 그런데 경기를 뛰지 않은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훈련을 통해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있고, 경기를 통해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있다. 경기를 하는 감각, 평상시 가지는 자신감이나 노하우, 상황 대처능력 등은 훈련에서는 가질 수 없는 감각이다. 여기서 우리가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신 감독의 현역시절 별칭은 ‘그라운드의 여우’였다. 크지 않은 체구에 뛰어난 순발력으로 영리한 축구를 했기 때문이다. 미드필더(MF)로서 갖춰야할 경기에 대한 감각과 기민함, 탁월한 위기대처 능력은 매번 판세를 주도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고등학교 2학년 말 U-16 대표팀에 뽑힌 이후 16~17세 월드컵, 19세 청소년 대표, 23세 올림픽 대표, 그리고 국가대표까지 섭렵하며 줄곧 엘리트코스만 밟았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하지 못한 것이 월드컵 대표선수다. 울분 속에서 다시는 축구를 안하리라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나, 축구는 그에게 애인이자 마누라이다.
 
   
▲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16강전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하루 앞둔 5월 29일 오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천안축구센터에서 신태용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번 U-20 때도 그렇고 결정적인 순간에 선수들이 부진한 경우가 종종 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리는 평가전만 잘못해도 언론의 뭇매를 맞는다. ‘신태용호’ 문제 있다고 까기 시작한다. 그래서 평가전부터 200%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번 U-20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루과이전, 세네갈전, 기니전, 아르헨티나전, 잉글랜드전, 포르투칼전까지 치르는 총 20일가량을 어린 선수들이 계속 이런 긴장감을 가지고 갔다. 그러니까 가면 갈수록 떨어진다. 그런데 잉글랜드나 포르투칼 같은 경우는 70%, 80%, 90%식으로 치고 올라오는 경기를 한다. 이들은 한 경기 못해도 그걸 보완해서 다음 경기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역량을 끌어올린다. 그런데 우리는 한 게임도 지면 안 되니까 예선전 경기부터 결승전처럼 한다. 우리가 세계대회 나가서 성적을 못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U-20을 통해 보여준 감독님의 축구가 한국 축구가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는 평가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보다는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축구 시스템 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이번 U-20에 참가한 잉글랜드 선수들은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첼시, 리버풀, 에버턴, 뉴캐슬 등에서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유망주를 발굴해 진짜 선수로 키워내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우리는 말 그대로 유망주일 뿐이다. 우리는 감독이 성적을 못 내면 무능하다고 잘린다. 감독들이 성적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유망주를 키워낼 수가 없다.
 
그럼 한국 축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나 혼자 떠든다고 될 것은 아니지만, 대학교에서는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키운답시고 C학점이 안 되면 경기를 못 나가게 한다. 개인적으로 불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또 프로에 갓 입단한 선수들도 보다 나은 경기를 뛸 수 있도록 ‘R리그(Reserve league·2군 리그)’를 좀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권역별 경기가 아니라 1, 2부로 나눠서 잘하는 팀은 잘하는 팀끼리, 못하는 팀은 못하는 팀끼리 경기하게 한다. 그래서 실력이 향상되면 1부로 넘어가고, 못하면 2부로 내려가는 업다운제로 운영해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등학교부터는 운동에 소질이 있는 선수들은 전문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사진_시사매거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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