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정치 개입 여부를 놓고 여야 공방이 뜨겁다. 검찰이 관련 특별수사팀을 꾸려 국정원 전 심리정보국장 민 모 씨를 소환해 조사하자 민주당은 “정치공작을 지시한 국정원 지휘부를 즉각 수사하라”고 요구했고,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향해 “여전히 박근혜 정부를 인정하지 못하는 행태”라면서 “정치공작을 즉각 멈추고 검찰 조사 결과를 침착하게 지켜보기 바란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 중이던 경찰이 “일부 국정원 직원이 댓글 등의 형식으로 정치에 개입한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다.
4월18일 이번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한 서울 수서경찰서는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및 정치관여 협의 고발사건을 수사해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 직원 김 모 씨, 이 모 씨와 일반인 이 모 씨 등 3명을 기소하고 출석 불응 중인 국정원 심리정보국장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은 사건수사가 최종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공직선거법 공소시효 임박 및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검찰에서도 최소한의 수사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확인된 혐의에 대해서만 송치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이 날 “송치 후에도 추가 수사가 필요한 부분은 계속 진행하고 필요시 수사 인력을 지원하는 등 검찰과의 합동수사를 통해 향후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발표 직후 민주당은 “서울경찰청 수사부가 의도적으로 국정원 댓글 수사를 왜곡·축소·은폐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증거”라고 비판하며 “경찰은 이제라도 중간수사결과를 왜곡한 정치경찰의 배후를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땅에 떨어진 경찰의 명예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라”고 경고했다.
‘대통령 사과’, ‘여직원 인권유린’ 놓고 팽팽
4월24일 박근혜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도 여야가 뜨겁게 맞붙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 사과’,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이라는 입장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을 벌였다.
야권은 이번 국정원 사건을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며 대통령 등의 사과를 촉구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은 “경찰이 ‘여론은 조작했어도 선거개입은 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것은 ‘숨은 쉬었지만 공기는 마시지 않았다’는 거짓이다. 황당한 수사다”라며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과를 촉구했다. 또한 박 의원은 “검찰에서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려고 하지만 남재준 국정원장이 조직보호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박근혜정부의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문병호 의원 역시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무너뜨린 국기문란 행위다”라고 말하며 “꼬리가 아닌 몸통을 밝혀내 관련자를 엄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 의원은 “이번 사건은 국정원 조직 자체가 공식적으로 불법 행위를 한 것이다. 당연히 대통령과 총리, 국정원장이 입장을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런가 하면 진선미 의원은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된 경찰의 수사 내용 중 서울경찰청의 컴퓨터 분석 결과 및 16일 저녁 11시 발표 계획이 실시간 새누리당에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새누리당의 초점은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유린’이었다. 유승우 의원은 “전형적인 정치공작”이라면서 “민주당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의 이 같은 발언에 야당의원들은 고함을 지르며 반발하기도 했다. 김진태 의원도 야당의 공세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오히려 이 사건은 야당에 의한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이 미혼의 28세 여성을 감금하고 미행했다. 성폭행범들이나 사용하는 대담하고 악질적인 수법이다”라고 말한 김 의원은 “민주당이 보호하려는 인권은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의 인권이냐”고 따져 물었다.
국정원의 정치공작 지시인가, 민주당의 정치공작인가
여야의 날선 공방은 대정부질의 이후에도 계속됐다.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이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면서 “경찰도 국정원 여직원에 대해 ‘국정원법은 위반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낸 만큼 민주당은 검찰의 조사결과를 좀 더 지켜봐 주기를 당부 드린다. 아울러 경찰과 검찰은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에 대한 고발사건도 철저히 수사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 주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말하자 이와 관련, 민주당 허영일 부대변인은 24일 “국정원 출신인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의 친정집 감싸기가 눈물겹다”고 밝혔다. 허 부대면인은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국기문란사건이라는 본질은 애써 외면하고, 국정원을 두둔하고 본질 흐리기에 바쁘다”면서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제 식구를 감싼다고 국정원의 엄중한 위법행위가 없어지지 않는다. 애국심을 갖고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국정원 직원들을 모욕하는 행위가 될 뿐이다”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민주당의 이 같은 입장에 다시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정치공작을 즉각 멈추고 검찰 조사 결과를 침착하게 지켜보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의진 원내 대변인은 25일 원내프리핑을 통해 “민주당이 급하기는 급한가 보다. 국정원 내부기밀을 빼내는 국기문란행위를 서슴지 않게 벌이고, 국정원 여직원을 희생양 삼아 대선개입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실이 드러날까 봐 불안한 것인가”라며 “밥도 익기 전에 솥뚜껑 열면서 호들갑 떨지 말고 차분하게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기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향해 “제1 야당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것은 여전히 박근혜 정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자신들이 잘못해 한 패배의 원인을 다른데서 찾으려는 비겁한 행동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신 대변인은 이어 민주당은 검찰과 경찰을 향해 행사하고 있는 모든 정치적 압력과 공세를 즉각 중단하라면서 “지금의 행태는 국기문란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책임을 모면해 보려는 기만적은 꼼수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도 알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모든 정치공작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 논란의 중심 심리정보국 전격 폐지
거센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등의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25일 국정원 심리정보국장 민 모 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피고발인 신분인 민 씨는 변호인 입회하에 10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다.
민 씨는 지난해 12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 등과 함께 국가정보원법 위반(정치관여) 혐의로 고발됐다. 하지만 경찰의 두 차례 출석요구에 모두 불응해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에 검찰은 민 씨를 상대로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이 있었는지, 대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한 것은 없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가 인터넷 사이트에 정부와 여당을 옹호하는 글을 게재한 것과 관련해 직접적인 지시나 보고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검찰은 18일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특별수사팀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의 총괄 지휘 아래 윤석열 특수1부장을 팀장으로 공공형사수사부장, 검사 6명(공안 3, 특수 1, 첨단 1, 형사 1), 수사관 12명, 디지털포렌식 요원 등 수사지원인력 10여 명으로 구성됐다. 특별수사팀은 “국민적 의혹의 대상이 된 국정원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성역 없는 수사로 한 점의 의혹도 남김없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전했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이후 국정원측 인물에 대한 소환이나 민 씨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직접 조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검찰 관계자는 “민 씨는 성실히 수사에 응했고 충분히 진술했다”며 “재소환할지 여부는 향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글을 분석, 또 다른 정치, 선거에 개입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한다는 계획이다.
검찰의 소환 조사가 이뤄지자 민주당은 27일 “정치공작을 지시한 국정원 지휘부를 즉각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김 현 대변인은 “국정원의 불법 정치개입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행해진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면서 “검찰에 소환된 국정원 심리정보국 민 모 국장은 댓글작업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인터넷 종북 활동에 대한 대응이었을 뿐 정치나 선거에 개입할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정치개입 의도가 없었다는 것은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검찰은 국정원 차원의 말맞추기와 증거인멸의 우려에 대한 국민적 의혹도 규명해야 한다면서 “국회 정보위에서 대북심리정보국 존재를 일관되게 부인한 또한 원세훈 전 원장을 즉각 소환조사하고, 당시 지휘계통의 제3차장, 원장 지시사항을 점검하는 기조실장 및 감찰실장 역시 수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 대변인은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빠른 시일 안에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정원이 최근 ‘대선·정치 개입’ 의혹이 제기된 심리정보국을 전격 폐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재준 원장이 취임한 뒤 국정원은 심리정보국을 폐지하고 해당 국장을 비롯한 일부 간부를 보직해임 또는 대기 발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민 모 국장이 최근 보직 해임된 뒤 대기 발령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심리정보국은 지난 2011년 말 3차장 산하의 대북심리전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해 새롭게 출범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인터넷 댓글’ 등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큰 논란을 빚은 데다 최근 각종 고소·고발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자 심리정보국을 전격 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