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의 본고장 통영, 전혁림미술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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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의 본고장 통영, 전혁림미술관을 가다
  • 김태인 차장
  • 승인 2013.05.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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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피카소로 불렸던 故 전혁림 화백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 통영하면 뭐가 먼저 떠오를까?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과 맛난 먹거리들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통영은 또한 이러한 것들 외에도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도시이다. 시인 유치환,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등 대표적인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했다. 그 중 ‘한국의 피카소’로 알려진 故 전혁림 화백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지역민들에게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장으로써 통영의 아름다운 관광지와 더불어 꼭 한 번 찾아야 할 지역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전혁림미술관의 전영근 화백을 만나보았다. 

 

‘한국의 피카소’, ‘코발트블루의 화가’로 불린 故 전혁림 화백

통영에서 태어난 故 전혁림 화백은 ‘한국의 피카소’, ‘색채의 마술사’, ‘코발트블루의 화가’ 등으로 불렸다. 그는 바다의 화가로 잠시 고향 통영을 떠나 살기도 했지만 이내 돌아와 미륵산 자락에서 살았다. 전혁림미술관은 故 전혁림 화백이 1975년부터 서른 해 가까이 살았던 집터에 들어 있다. 미술관 외관은 특이하면서도 매혹적이다. 故 전혁림 화백의 작품과 아들인 전영근 관장의 작품을 7,500여 장의 세라믹타일로 만들어 붙였다. 전영근 관장은 부친을 예술적 스승이자 동지로 모셨고, 이 미술관의 외장 타일을 모두 손수 제작해 시공했다. 화업의 대를 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친에 대한 그의 극진한 효심은 통영 사람들의 오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故 전혁림 화백은 말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작업은 회화, 조각, 벽화, 도자기 등에 두루 넘나들었지만 작품들은 통영의 바다와 전통적인 ‘우리 것’으로부터 태어났다. 코발트블루의 색채와 오방색 색채의 사용이 그것이다. 故 전혁림 화백은 코발트블루를 “쪽빛 한술(숟가락으로 한 번 뜬 양)에 청색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일어나는 번짐의 가장자리색”이라고 했다. 또한 故 김춘수 시인은 시 ‘골동설’에서 “전화백(全畵伯),/당신 얼굴에는/웃니만 하나 남고/당신 부인(夫人)께서는/위벽(胃壁)이 하루하루 헐리고 있었지만/코발트블루(Cobalt blue),/이승의 더없이 살찐/여름 하늘이/당신네 지붕 위에 있었네”라고 쓸 정도로 전혁림 화백의 대표적 색채가 코발트블루였다. 통영 앞바다의 사철 변화가 그의 작품의 무궁한 원천이었고 그것이 코발트블루의 작품 세계를 탄생시켰으며 우리 전통에 대한 그의 독창적 해석은 우주적 오방색 색감과 민화적 풍물의 등장으로 드러났다.

故 전혁림 화백은 초기에는 반 추상적 표현을 구사하면서 코발트블루 계통의 색을 많이 사용했다. 작품 주제는 민화에 등장하는 한국의 전통적 기물이나 두루미, 항구의 풍경 등이다. 또한 중기에는 추상적 풍경과 함께 도자기와의 접목, 목조각과의 접목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한 탐구적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당시 유화에는 쓰이지 않던 한국의 전통채색인 오방색을 실험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작가로서 분명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후기에는 초기작품에서 볼 수 있는 민화적 미감과 중기에서 시도했던 원색의 강렬한 대비로서 절의 단청이나 전통보자기, 옛 장신구 등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의 민속정서를 재해석해 현대화하는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선과 면, 점 등을 기본으로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인 그의 그림은 얼핏 피카소를 연상케 한다. “예술과 문화는 국적이 있어야 해. 국적 있는 그림이 세계적인 그림이야”라고 했듯, 그의 그림에서는 남쪽 작은 도시 통영의 향기가 물씬 풍기며 이는 한국의 모습으로 정감 있게 다가온다. 

현대미술계의 신사, 전혁림미술관 전영근 관장

35여 년 간 미술작가로서 또 부친의 예술을 세상에 알리는데 헌신해 온 전영근 관장에게 미술관 경영은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었다. 매번 미술관을 운영하기 위한 예산확보가 만만치 않았던 것. 특히 도시에 비해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의 작은 미술관이라서 그 어려움이 더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화단의 거목으로 우뚝 선 故 전혁림 화백의 아들이 관장으로 있기 때문일까. 지역 일각에서 시샘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사재를 털어 만든 개인 미술관으로서 아버지가 보다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코자 한 아들의 효심이 당장 빛을 발하기엔 묵묵한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다. 전 관장은 미술관을 무료로 작품 관람을 한 후 감동받은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전혁림미술관’이 지닌 ‘통영 혼‘을 가지고 간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에 전 관장은 예술작품을 다양한 상품에 접목시킨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미술관을 무료로 개방하며, 미술관 구석구석에 자신의 손길과 애정을 쏟아 결국 미술관을 지역명소로 성장시켰다. 

이미 국내무대뿐만 아니라 해외 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전 관장은 회화적 평면성을 채우는 공간, 형태, 움직임에 대한 정교한 다의성을 지닌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정립해 화가로서의 명성을 떨친 그의 작품들이 해외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미국의 ‘아틀란타 포럼 갤러리 초대 개인전’, ‘버지니아 공대 부설 Perspective 갤러리 초대 개인전’ 등으로 이어졌다. 작년에는 서울 백송화랑 대표작가로 미국서 열리는 Korea Art Show의 전시회를 성황리에 개최했으며, 미국 뉴욕 초대전도 마친 그는 “뉴욕에서의 전시가 잠시 느슨했던 작품 발표의 기지개를 켜는 격이라고 보면 맞을 듯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큰 무대에서 작품 발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이 해외 무대에서 수많은 신작을 발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의 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전 관장은 부친 故 전혁림 화백을 기념한 사설 미술관인 ‘전혁림미술관’의 관장으로, 미술관을 통영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가꿔 예술의 고향 통영의 든든한 기둥 역할도 하고 있다. 

“각 지역의 개인미술관들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하며 지역주민들이 공공성을 지닌 공동의 지역재산이라 생각할 수 있는 제도적 계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전혁림미술관의 관장으로서의 일도 보람되지만 역시 내 본업은 화가이고, 내 일의 본령은 작품 창작에 있다”며 화가의 본업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개인미술관들이 상생할 수 있는 견해도 밝혔다. 지난 2006년, 세계의 정상급 인사들이 찾는 청와대 인왕홀에 故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이 가장 보기 좋은 곳에 전시된 것은 전영근 화백의 그간의 모든 인고의 결실로 볼 수 있다. 예술은 길지만 권력은 짧은 문화의 저력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준 높은 문화적 안목과 더불어 ‘통영이 세계적 그림의 영감’임을 인지한 것이다. 

“예술가에게는 예술의 순기능을 전파할 수 있는 많은 연구와 노력들이 필요하며 지역의 문화예술을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전영근 관장. ‘전혁림미술관’을 기존 갤러리나 화랑과는 다른 미술관으로서의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고 문화계를 이끌어 갈 젊은 작가들의 입지를 마련해 주는 한편 황폐해져 가기만 하는 현대인의 마음의 쉼터로 자리매김 하고 싶다는 그를 통해 앞으로 국내외 미술계에 어떤 청사진을 그려낼지 주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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