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전망보다 크게 앞서, 연금 재정건전화·개혁 ‘시급’
국민연금기금이 21년 후인 오는 2027년부터 재정적자로 돌아선 후 2040년이면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는 ‘2036년 재정적자, 2047년 기금고갈’이라는 정부 전망보다 각각 9년, 7년 앞선 것으로 그만큼 최근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3년 가까이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국민연금 재정 건전화와 구조개혁이 더욱 시급해지고 있다.
과장된 홍보가 불신 키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06년 중장기 재정소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현 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기금이 2040년에 완전히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같은 결과는 예산정책처가 지난 2005년 통계청의 인구전망에 기초해 추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비율은 2003년 8.3%에서 2019년에는 14%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0년에 이미 65세 이상 노인인구비율이 7%이상의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데 이어 2018년에는 노인인구비율이 14%이상인 고령사회, 2026년에는 20% 이상인 초고령화사회로 급속히 이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오는 2022년이면 국민연금 총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기 시작해 2027년에는 총지출이 총수입을 넘어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2003년 통계청 인구전망을 기초로 국민연금연구원이 전망한 2025년, 2036년에 비해 각각 3년, 9년 앞서는 것은 물론 기금 소진시점도 7년이나 앞서는 것. 또 2003년 인구전망에 기초로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전망했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31년 적자전환, 2042년 기금소진’ 시나리오에 비해서도 4년, 2년 앞서고 있다. 이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옴에 따라 정부 전망치에 대한 조정이 불가피해진 것은 물론 3년 이상 끌어오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정부는 세출증가 억제를 통한 균형재정기조를 유지하면서 국민 부담의 최소화와 세입기반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국민연금의 조속한 개혁추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가입자 자격관리와 불법체납 방지를 위해 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 건강보험공단, 지방자치단체, 국세청 등에서 중복적으로 시행하는 소득파악업무를 국세청으로 일괄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이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당초 예상보다 빠른 재정 악화가 예상됨에 따라 정부 재정지출 건전성을 보다 강화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과장된 홍보가 불신 키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민연금 기금과 관련, “홍보부터 제대로 하라”는 쓴 소리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또 최근 오는 2040년께로 알려진 국민연금기금 고갈시기와 관련, 향후 임금상승률이 높아지는 만큼 수입도 늘어 최종적인 고갈 시기는 2047년이 될 것으로 수정 전망했다.
KDI에 따르면 이 같은 전망치와 조언을 담은 ‘인구구조 고령화의 경제ㆍ사회적 파급효과와 대응과제’ 2차 보고서가 곧 발표된다. KDI는 지난해 하반기 1차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으며 이번에 발표될 보고서에는 ‘인구고령화와 보건의료’ ‘인구고령화와 노후소득보장’ ‘인구고령화와 재정금융대책’ 등의 연구주제를 담을 예정이다. 이와 관련, 문형표 KDI 재정ㆍ사회경제연구부장은 “국민연금 하나만 가지고 마치 노후소득이 저절로 다 보장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알려서는 곤란하다”며 “이 같은 홍보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더 심화 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국민연금을 지급받는 이들이 미래세대보다 보장을 더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연금개혁을 위해 국민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는 사실까지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며 “이런 노력이 뒷받침돼야 국민들이 연금재정을 걱정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KDI는 아울러 추가적인 연금개혁 없이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연간 30조원이 넘는 부족액이 발생할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국민연금기금의 고갈 시기는 당초 알려진 2040~2042년이 아니라 국민연금발전위원회의 재정추계(2003년 6월 발표)와 같이 2047년께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연금수급액이 많아지면서 지출이 커지지만 임금상승률이 올라 연금기금 수입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수혜자 89% “연금 꼭 있어야”
정부가 제출한 국민연금법안은 국회에서 2년5개월 동안 낮잠을 자고 있다. 그사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깊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받아본 사람들은 연금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한 언론사에서 만 20세 이상 남녀 1,067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을 한 결과다.
연금 가입자 10명 중 7명 정도(69%)는 “만약 국민연금 가입이 강제가 아니라면 탈퇴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는 3년 전인 2003년 2월 조사(63%)에 비해 6%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은 다르다. 응답자의 89%가 ‘국민연금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11%만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에 대한 불신이 컸다. 운용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국민은 14%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5년 국민연금기금의 운용 수익률은 전년도 5.89%에 비해 3.64%포인트 높은 9.53%를 기록했다. 비교적 양호한 수익률을 보였지만 응답자의 76%는 기금 운용을 잘못 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국민 5명 중 3명(60%)은 향후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걱정했다. 또 국민연금이 개인연금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응답자는 18%에 불과했다. 그 결과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26%)보다 개인연금에 대한 신뢰(66%)가 세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재정 개선안에 대해선 미세하나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금 고갈에 대비해 보험료를 올리거나 연금액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가 2003년보다 높아졌다.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2%에서 5%로, ‘보험료를 올리기보다 연금액을 줄여야 한다’는 25%에서 30%로 늘어났다. 대신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둬 재원을 충당해야 한다’는 응답은 30%에서 21%로 줄었다.
한편 한나라당이 국민연금 보완책으로 내놓은 기초연금제에 대해선 찬성(40%)보다 반대(52%)가 더 많았다.
여야 국민연금 개정 놓고 공방
여야 양당은 지난 2003년 10월 정부가 ‘더 내고 덜 받자’는 요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로 넘긴 이래로 2년4개월에 걸쳐 ‘한결같은’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요컨대, 열린우리당은 ‘더 내지는 말고, 일단 덜 받기만 하자’는데 반해, 한나라당은 ‘기초연금제를 도입함으로써 국민연금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재정안정화에 그 목표가 맞춰져 있었다.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납부하고, 소득의 60% 수준으로 연금액을 지급하는 현행 국민연금 제도대로라면, 오는 2036년이면 국민연금 재정의 적자가 발생하고 현재 만 20세인 사람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2047년이면 연금 재정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보험료율은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올려 2030년에 15.9%에 이르도록 하는 한편, 보험급여 수준은 2007년까지는 55%, 그리고 2008년부터 50%로 낮추는 게 정부안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이미 16대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된 상태. 이후 17대 국회에 들어 2004년 10월과 12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별도의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양당의 견해차가 워낙 커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기초연금제’ 도입안의 골자는 현행 9%인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7%로 낮추는 대신 기초연금을 위한 재원을 예산에서 충당토록 하자는 것. 이 경우 기초연금 도입을 위한 총 비용 규모는 9조3,000억원으로 늘지만, 세금과 보험료를 합한 총 국민부담액은 2조3,000억원으로 그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게 한나라당 측의 설명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연금의 재정안정화 효과를 감안할 경우 보험료 인상도 필요 없을 뿐더러, 현행 제도 유지를 위해 필요한 20조원에서 기초연금 도입 비용을 빼면 16조7,000억원의 국민부담이 감소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이 같은 기초연금제 도입 주장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기초연금 재원을 예산에서 충당한다’고만 할 뿐 그 구체적인 방법 제시는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윤건영 수석정조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어느 예산에서 어떻게 충당해야 하는 것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지난해 주장한 약 7조원 규모의 감세안과 관련해, “시행 첫 해 8조원에서 최대 10조원 가량이 소요되는 기초연금제 도입 요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반응 또한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윤건영 수석정조위원장은 “감세 정책과 기초연금제는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다”며 “두 정책은 한나라당의 기본철학인 공동체 자유주의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윤 위원장에 따르면, “감세정책은 경제활동의 주체를 정부에서 민간부문으로 이양하는 것”이며 “기초연금제도 현행 ‘비싼 보험료(9%∼17.5%)→공룡기금→기금을 통한 관치강화’ 구조를 ‘싼 보험료(7%)→작은 기금→민간부문 활성화’로 그 구조를 바꾸는 것”이란 설명이다. 이와 더불어, 열린우리당은 국민연금 제도 개선과 관련, 일단 보험료 인상은 유보하고 연금액수만 줄이자는 입장이나, 이 역시도 “재정 고갈 시점을 2070년으로 미룰 뿐”이란 지적이다. 여야는 현재 국민연금 제도 개선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국민연금제도 개선특위’를 구성, 논의를 진행 중이나 여전히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결과는 미지수
지난해 10월에 구성된 특위는 같은 해 11월에 두 차례, 그리고 지난 13일 한 차례 등 해가 바뀌는 동안 모두 세 차례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더구나 특위의 활동 시한이 이달 말로 종료되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시한을 연장하지 않는 이상 여야가 합의안을 마련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지난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으로 도입한 국민연금 제도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그 누구도 쉽게 손댈 수 없는 ‘시한폭탄’이 되고야 말았다. 때문에 한나라당의 주장대로라면 기초연금제를 당장 도입해야 하는 게 맞다. 전체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 3명 중 1명이 국민연금 미가입 상태인데다 ‘덜 내고 더 타는’ 가입자들이 매일 800억 원씩의 ‘빚’을 자식 세대에게 떠넘기고 있는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면 말이다.
지난 2년 여간 이렇게 쌓인 부채 규모가 벌써 70조원에 달하며, 2030년에 이르면 1,88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과의 형평성 문제는 일단 차치하더라도, 자영업자와 봉급생활자 간의 불합리성이나 영세 미납자에 대한 강제 압류 등으로 인해 국민연금의 제도 개선이 늦어질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들뿐이다.
더구나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사회보험연구소 등의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의 고갈시점이 당초 정부가 예상한 2047년에서 2040∼2042년으로 5∼7년 앞당겨진 것으로 나타난 만큼 하루 빨리 해결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안 가운데 일단 여야가 합의한 ▲중복 급여의 조정 완화 ▲감액 노령연금의 추가감액률 2.5% 폐지 ▲출산 크레디트(credit) 제도 도입 등의 ‘급여제도 개선방안’만을 우선적으로 처리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 또한 ‘복잡한 숙제’를 뒤로 미루려는 미봉책이 될 공산이 크다.
선진국도 연금으로 골머리
선진국도 연금제도의 개혁을 시도한 경우 예외 없이 정권이 교체되면서 연금제도는 어느 나라 정부도 쉽게 손대려 하지 않는 난제로 꼽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금 개혁을 하고 난 뒤 정권을 유지한 적은 없으며 전 정권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음 정권에서야 개혁을 추진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수혜자 중심의 고성장 다출산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를 일시에 뜯어 고치는 개혁은 대부분 국민의 강력한 저항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 선진국들은 선거 때마다 연금정책이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연금 개혁에 실패한 대표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1919년부터 연금제도를 도입한 이탈리아는 1970년대 이후 기금의 고갈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으나 정치권에서는 국민에게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결국 연금 지급을 위해 국가 재정이 한꺼번에 투입되면서 1992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급기야 유럽연합(EU) 통화권에서 축출됐다.
그러나 아직도 연금 적자가 매년 40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5.7%를 차지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연금 개혁은 미완성 상태에 놓여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1994년 중도우파정부가 ‘많이 내고 적게 받는’ 형태로 연금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했다가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정권을 내놓기도 했다.
여야 합의로 연금 개혁을 이뤄 낸 독일과 스웨덴도 진통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독일은 급여 수준의 하향 조정, 지급 개시 연령의 상향 조정 등을 주요 내용으로 1992년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독일통일에 대한 비용 부담 가중과 경기 침체에 따른 실업률 상승 등으로 연금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노조의 지지로 정권을 창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민당 정권은 여야 합의를 전제로 2000, 2001, 2004년 등 3차례에 걸쳐 급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쳤다. 하지만 지난해 슈뢰더 총리는 연금 개혁에 대한 지지층의 이탈로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스웨덴도 급여 축소에 대한 불만으로 집권당이 총선에서 참패(1991, 94년)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1985년 시작된 스웨덴의 연금 개혁은 모든 정파가 참여한 정당 간 합의를 통해 14년 만인 1998년에야 완성됐다.
일본도 2년 전 연금개혁방안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여당은 연금제도 일원화문제를 앞으로 5년 내에 결론짓고, 향후 급여 수준 50% 이하로 하락할 경우 개혁 재검토를 약속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제도 개혁을 밀어붙였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1987년부터 연금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손을 놓고 있었다. 알랭 쥐페 총리 내각은 1995년 공공부문 연금 개혁을 추진했으나 노조의 반대에 부닥쳐 실각하고 말았다. 볼리비아를 비롯한 남미 각국도 연금제도 개혁안을 놓고 정권의 운명이 뒤바뀌는가 하면 인기 정책이 계속되면서 국가재정만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