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화학 물질 누출 재앙 남의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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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화학 물질 누출 재앙 남의 일 아니다
  • 박치민 기자
  • 승인 2013.04.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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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업체서부터 삼성,LG 등 대기업까지 산업계 안전사고 초비상

작년 9월, 경북 구미에서 불산가스 누출사고로 근로자 5명이 숨지고 인근 주민 2,000여 명이 대피하는 등 554억 원에 이르는 피해가 발생했다. 지역 일대를 한 순간에 불모지로 만들어버린 재앙을 보면서 우리는 화학물질 누출의 여파가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느끼기만 했던 것일까. 피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 화성을 비롯해 충북 청주, 경북 상주, 경북 구미 등 타 지역에 또 다시 화학물질이 유출됐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나도 피해를 주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나에게 피해를 주지 마라’는 식의 생각이 전반적으로 내재해 있다. 법과 질서를 지키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건 이상적인 삶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그 이념에 더욱 가까워 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주의가 극대화 되면서 그 이면의 부작용들이 점점 심각해진다는 게 문제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으면 사람이 죽든, 동물이 죽든, 자연이 죽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자신과 관련 없는 사회문제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면 괜히 나서는 사람 취급받거나 오지랖 넓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기 전에 각종 불감증 사회가 돼버린 것이다. 여기에 자극적인 사건들이 연신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불감증은 더해지고 있다. 최근 연이어 터진 화학물질유출사고에서도 ‘불감증 사회’란 말이 자주 들렸다. 한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이 사고에 타 지역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냉랭했기 때문이다.

재앙의 시작 구미불산유출사고

지난해 9월, 경북 구미시 산동면 구미국가산업4단지 내 화학제품 제조공장 (주)휴브글로벌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인 ‘불산(불화수소산)’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공기 중 유출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로 근로자 5명이 사망하고 근로자를 포함한 인근 주민 등 15명이 경상을 입었다. 

이날 사고는 근로자들이 화학제품이 담긴 20t짜리 탱크로리에서 공장 내 작업장까지 호스를 연결하고 불산을 옮기는 작업 도중 폭발과 함께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현장을 목격한 서영환 씨는 “공장마당에서 ‘쾅’하는 폭발음이 두 차례 들렸다”고 밝혔고 근로자 이모 씨는 “실내 작업 중 외부에서 폭발음이 들려 밖을 확인해보니 불산탱크에서 가스가 누출돼 황급히 대피했다”고 말했다.

탱크로리에 적재된 불산은 플루오린화 수소(HF)의 수용액으로 녹물을 제거하거나 반도체를 만드는 데 이용되는 화학물질이며, 금속과 유리병을 녹일 정도의 강력한 부식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산은 표면 장력이 작고 침투력이 강해 일반적인 산보다 빠르게 신체 내부로 흡수된다. 불산이 피부에 닿을 경우 신체의 수분과 수소결합을 하면서 순식간에 뼈 속까지 침투해 화상 등을 입을 수 있다. 또한 호흡 등으로 인체에 유입될 경우 신경계 교란을 일으킨다. 

액체 상태로 보관되는 불산은 끓는점이 19.5도, 중화된 용액이라도 23도에 불과해 상온에서는 기체 상태로 퍼져나간다. 사고 발생 직후 현장이 뿌옇게 변한 것은 불산이 공기 중 수분과 반응해 진한 농도의 기체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위험성 때문에 폐기도 쉽지 않아 전문 업체에 맡겨지는 요주의 화학물질이다. 문제는 불산은 시간이 지나도 자연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프링클러나 소방호스 등으로 인근 지역에 물, 알칼리성 수용액을 뿌려 불산을 중화시키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환경운동연합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따르면 구미누출사고 당시 공기 중 불산 농도가 위험 기준치의 50%까지 오를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두 단체는 “사고 지점 인근 마을의 식물에서 측정한 불소 농도를 토대로 사고 당시 대기중 불산 농도를 역계산 한 결과 지점에 따라 최고 15ppm에 달해 한때 IDLH 값인 30ppm의 50%까지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심각한 사태에 당시 정부의 초기 대응은 밋밋하기만 했다. 행정안전부의 해당 매뉴얼에 따르면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와 현장지휘본부가 핫라인을 설치해 현장 대응활동을 통제하게 돼 있지만, 실제 구미시는 구미코(컨벤션센터)에 설치했던 종합상황실을 사고 다음날 구미시청으로 옮겼다가 2차 피해가 확산되자 다시 구미코로 옮기는 등 통제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구미시는 사고 직후 “인체에 영향이 없다”라는 발표로 주민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이후 잇따른 피해가 속출하자 일주일이 지나서야 재난합동조사단을 파견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도 불산 가스 누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하고 사고 발생 12일이 지나서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등 늑장 대응을 보였다.

시민들은 뒤늦게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으니 각 부처와 지자체는 여러 시민·환경단체와 함께 전체적인 사고 조사와 피해 보상은 물론, 위험물질 취급업체 점검 및 관리체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늑장 대응에 대한 질타가 부족했던 것일까. 아님 내 지역이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이 구미를 제외한 한반도 전체에 내재해 있었기 때문일까. 누출된 불산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 화성을 비롯한 타 지역에 연이어 유독물질이 누출됐다.

화학물질 누출·폭발 사고 올해 들어서만 이미 9건

새해를 맞이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벌써 9건이나 발생했다.

지난 1월12일, 경북 상주에 위치한 웅진폴리실리콘 공장에서 올해 첫 염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구미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일어난 지 4개월여 만이다. 주민들은 긴급 대피했고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다. 

소방관계자는 “염산이 들어 있는 280t짜리 탱크 배관이 동파되면서 생긴 틈으로 농도 35%의 염산이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탱크 안에는 약 200t의 염산이 있었는데, 이 중 100t가량이 밖으로 새어나온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했다. 

흘러나온 염산 중 일부는 바닥에 쌓여 있는 눈과 섞여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유독 기체인 염화수소로 변해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3일 후, 충북 청주공단 내 유리가공업체에서도 불산이 누출됐다. 이어 27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 화학물질 중앙공급시설에서 불산이 누출돼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경찰과 삼성전자에 따르면 1월 27일 오후 1시30분쯤 화성사업장 생산 11라인 외부에 있는 경보기 센서가 작동해 이상 징후가 있음을 발견했다. 문제의 생산라인에는 500ℓ규모의 불산저장탱크가 있는데 탱크로 연결되는 밸브관 가스킷이 너무 낡아 불산이 누출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은 최초 이상 징후를 파악했을 당시 불화수소희석액이 배관에서 한두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협력사인 STI서비스를 통해 밤 11시부터 수리에 들어가 다음날인 28일 새벽 4시46분 수리를 마쳤다. 누출된 불화수소희석액은 2~10ℓ가량으로 경기도와 경찰은 추정했다. 삼성전자는 불화수소희석액이 유출되면 폐수처리장으로 자동 이송되는 구조여서 회사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리를 마친 뒤 박모 씨 등 작업자 5명이 오전 7시30분께 목과 가슴의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를 받던 박 씨는 오후 1시55분께 끝내 숨졌다. 같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다른 작업자 4명은 오후 7시35분께 ‘이상이 없다’는 의료진 소견에 따라 퇴원했다.

3월에는 24일 현재, 약 3주 만에 무려 5건의 누출·폭발사고가 발생했다. 

2일, 경북 구미의 LG실트론공장에서 불산·질산·초산 등이 섞인 용액이 새는 사고가 발생한데 이어 3일 뒤 구미공단 내 (주)구미케미칼에서도 염소가스가 누출됐다. 이어 22일엔 구미 LG실트론공장에서 또 다시 불산·질산 등이 섞인 혼산액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은 구미시민들은 결국 폭발했다. 구미시민 김모 씨는 “잊을 만하면 사고가 터져 불안해 살 수가 없다”며 “작년부터 대책마련에 온갖 부산을 떨지만 사고가 끊이지 않아 말로만 대책 운운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미뿐만이 아니다. 14일 전남 여수에선 대림산업 화학공장이 폭발해 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당시 현장목격자들은 “인부들이 탱크에서 작업을 하던 중 폭발음과 함께 불이 났다”고 말했고 대림산업 관계자는 “저장창고에서 작업 중 발생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500t짜리 대형 폴리에틸렌 저장탱크에서 용접작업 중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 사고 외에 22일 충북 청주에선 SK하이닉스반도체공장에서 가스배관 지지대를 옮기려고 분리작업을 하던 중 배관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밸브 부분이 내려앉으면서 염소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연이어 터진 사고를 보면 재앙이라 불려도 무리가 아니다. 더 이상 타 지역, 남 얘기가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마련 시급 국민들도 목소리 높여야

대책이 시급하다. 이에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해당 기업들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잇따른 누출 사고가 발생한 구미 현장에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자를 파견하고 유독성 화학물질 사고에 대한 근본 대책 수립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유 내정자에게 전화를 걸어 “염소 가스 누출 사고 현장과 선박 전복사고 현장에 직접 가서 재발방지 대책을 보고하라”며 “유독성 화학물질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원인을 파악해 근본적인 예방 대책을 수립함으로써 국민생명과 안전보호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유 장관에게 당부했다.

구미시의 경우 유해물질관리지침을 새롭게 개편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와 환경부는 사고 예방을 위한 종합대책 마련에 나섰다. 또한 구미시는 19일 구미상공회의소에서 경북소방본부, 삼성화재, 구미상의,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경권본부 등과 구미산업단지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 방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각 기관은 4월까지 구미산업단지 입주기업을 상대로 화재, 폭발, 유독물, 홍수, 태풍, 안전실태 등 6개 항목의 위험성을 평가할 예정이다. 또 5월까지 화학사고 방지대책에 대한 기관별 대응 매뉴얼(안내서)을 수립하기로 했다.

남유진 구미시장은 “각종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만큼 매뉴얼 보강이 필요하다고 판단, 위험성 평가를 거쳐 매뉴얼을 수립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위반사항 중 대다수를 즉시 시정조치 하겠다고 밝혔으며 조직개편을 통해 경영진들이 환경안전 실태를 직접 점검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유해 물질을 다루는 사업장 임직원들의 경우 환경안전 관리 실태를 인사 고과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 마련에도 해당 지역 내에 불안감은 쉽게 가시고 있지 않다. 구미의 한 시민은 “대책마련이란 말을 이제는 믿을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사고가 한두 번 발생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 국민 전체의 관심이 미지근한 것도 문제다. 95년 처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삼풍백화점붕괴 당시에 국민들의 관심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엔 온 국민의 걱정과 우려가 한 곳에 집중돼, 사태 발생 후 진행 상황이나 후속 대책 방안에 자신의 일처럼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 구미 사태에는 주로 사람들의 시선만 느껴질 뿐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

이제는 한 기업, 한 부처의 책임으로 볼 수 없다. 온 국민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의 각 부처를 하나로 융합하고 탁상행정의 분석이 아닌 현장의 실질적인 근본대책을 수립하게끔 해야 한다. 아울러 유독물질을 관리하는 6,874곳의 업체들의 주의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켜야 한다.

우리의 이목이 집중 되고 목소리가 높아질 때 비로소 잇따른 유독물질 누출사고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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