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26일 만에 정부조직개편안 국회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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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26일 만에 정부조직개편안 국회 통과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3.04.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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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 해양수산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신설

지난 3월22일, 50일 넘게 끌어온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관련 법안은 1월30일에 국회에 제출된 바 있다. 이날 본회의 처리에 이어 국무회의 의결과 법안 공포가 이뤄지면서 ‘박근혜 정부’는 비로소 온전한 출범을 하게 됐다. 박근혜정부는 지난 2월25일 취임 후 지금까지는 사실상 비상상태로 국정운영을 이어온 셈이다. 


정부조직개편안 지연 처리 후폭풍 예상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개편 지연으로 정부 출범이 임박한 지난 2월17일에야 조각 인선을 단행했고 임기가 시작된 지 열흘이 훌쩍 지난 3월 11일에야 장관 13명을 임명하고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하지만 정부조직법이 발효돼야 출범할 수 있는 박 대통령의 역점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의 장관은 아직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았고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임명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는 3월22일 자진사퇴했다.

정부조직개편이 완료됨에 따라 일단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철학을 반영한 정부조직을 토대로 경제·안보 위기에 대처하는 동시에 140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미 전날부터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필두로 부처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해, 새로운 정부조직에 국정비전과 정책구상을 전파하면서 임기초 부진을 만회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여권으로서는 임기초 50% 수준에 머물렀던 박 대통령 지지도가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가 전날 새누리당에 정부조직법안이 3월21일 본회의 처리 의지를 전달한 점도 정부개편을 시작으로 실타래처럼 꼬인 정국을 차곡차곡 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도 모처럼 한시름 덜며 지난해 총·대선 공약이행, 미완의 과제인 정치쇄신에 속도를 내는 한편 당면한 4·24 재보선 등에 당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새누리당과 정부, 청와대는 새로운 당·정·청 관계를 모색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은 5·4 전당대회를 통한 지도체제 개편에 몰두할 전망이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4·24 재보선 출마가 적잖은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향후 야권의 지형 변화가 주목된다. 

이번 정부조직개편은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막중한 과제를 남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여야가 정치력을 회복해 ‘정치실종’이라는 병폐를 극복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으로서의 ‘정치력 부재’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이다. 청와대와 야당의 정국 주도권 다툼에서 ‘새누리당은 보이지 않았다’는 말도 들렸다. 

민주당은  새 정부 ‘발목잡기’ 인상을 남겼다. 정부조직개편 협상과 병행된 주요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정쟁의 장’으로 활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된 상태다. 박 대통령의 경우, 협상 과정에서 두 차례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을 제안하며 소통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으나 번번이 절차상 문제를 노출하며 야당과 갈등을 되풀이했다. 

다만 박 대통령이 국가지도자연석회의를 제안한 바 있고 지난 2월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긴급 북핵회동에서 국정논의를 위한 협의체 가동에 합의한 만큼 향후 여야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지 주목된다. 

협상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청와대와 일부 관료조직의 이해에, 민주당이 각종 외부단체의 입김에 휘둘린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귀담아 들어야할 대목이 됐다. 또한 국회 폭력만 없었을 뿐 여야 정치권이 국민 실생활과 깊은 관련이 없는 방송 분야 논쟁으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나

어쨌든 이로써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를 신설해 ‘17부3처17청’으로 확대 개편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확정됐다. 박근혜 정부도 출범 26일 만에 정상 가동하게 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합의해 마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쳐 재석의원 212명 가운데 찬성 188명, 반대 11명, 기권 13명으로 가결 처리했다. 이에 앞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와 행정안전위, 법제사법위를 잇달아 열어 정부조직법·방송법 개정안 등 정부조직 개편 관련 법안을 소관 상임위별로 처리했다.

이날 의결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5년 만의 경제부총리 부활과,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다만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간 소관 업무는 당초 대통령직 인수위가 마련한 원안에서 일부 변경됐다.

지상파 방송의 허가·재허가 권한을 현행대로 방송통신위에 존치키로 하고, 미래부가 유선방송방송(SO) 등 뉴미디어 사업의 허가·재허가·변경허가, 관련 법령의 제·개정 시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 

지식경제부는 외교통상부의 통상기능을 넘겨받으며 산업통상자원부로 확대됐고, 외교통상부는 외교부로 축소됐다. 행정안전부는 국민안전 분야를 총괄하면서 안전행정부로 명칭을 바꿨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처(處)로 승격됐다. 특임장관실은 폐지됐다.

중소기업청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외청으로 남았지만, 중견기업 정책과 지역특화발전 기능을 넘겨받으면서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정부는 이날 중으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정부조직법 관련 법률안을 심의 의결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다음날 관보에 게재되면서 시행된다.

한편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지연돼 온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도 조만간 열릴 것으로 보인다.

국회선진화법의 명암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은 새로 도입된 ‘국회 선진화법’의 첫 시험대였다. 지난해 5월 국회는 여야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찬성해야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현재 152석의 원내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무소속의 우호 표를 모두 끌어 모은다 해도 야당과 합의 없이는 과거와 같은 단독 강행 처리는 사실상 힘들어진 것이다. 연말에 처리하는 예산안은 예외로 뒀기 때문에 정부개편안은 국회 선진화법이 효과를 발휘한 첫 무대였다.

당시 법안이 통과될 때도 혼선이 적지 않았다. 몸싸움과 같은 구태를 막기 위해 여야가 처리키로 약속했지만, 새누리당이 예상을 깨고 4·11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자 법 처리에 머뭇거렸다. 쟁점이 생길 때마다 처리가 늦어지면서  ‘식물 국회’가 될 것이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실제로 이번에도 새 정부가 출범하고 정부개편안이 장기 표류하자 여당 일부에서는 국회 선진화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역대로 정부개편안을 단독 처리한 전례가 없고, 폭력 국회를 막자고 도입한 법안을 제대로 운영도 해보지 않고 다시 개정하겠다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95% 이상의 법안은 여야 간 협의를 거쳐 원만하게 처리되고, 의장석 점거와 같은 물리적 충돌로 얼룩지는 경우는 1년에 기껏해야 2〜3건에 불과해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치는 것도 아니다. 

최루탄 투척이나 소화기 분사와 같은 극심한 대결로 외신의 조롱거리에 오른 대표적 사례가 18대 국회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노동법, 미디어법 정도고, 17대 국회에서는 과거사법, 사학법, 국가보안법 정도였다. 

이번에 만약 정상적인 정부 출범이 급하다고 해서 밀어붙였을 경우 다시 난투극이 재연되고, 정치권은 또 한 번 국민의 싸늘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을 개연성이 크다. 국회 선진화법이 다소 불편하지만 여야가 합의 정신을 지키고 운영의 묘를 살린다면 더는 국회 난투극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물론 소수 야당이 법을 악용해 발목잡기로 일관한다면 국정은 또다시 마비 상태가 될 우려도 없지 않다.

국회 선진화법은 대결의 정치가 아니라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법을 제대로 운영도 하지 않고 정부개편안 처리 지연을 이 법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여야 지도부가 리더십 부재의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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