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강남스타일’이 세계를 강타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한류열풍의 정점을 보는 느낌이다. 드라마로부터 시작되었다가 한 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한류열풍은 K-POP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점령하며 세계만방으로 뻗어가는 중이다. 당초 이러한 한류열풍을 일시적인 문화현상으로 봤던 비평가들조차 안정권에 접어든 하나의 영역으로 구축되었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에 문화계를 넘어 학계로부터 불기 시작하는 한류열풍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학계 한류열풍의 주역

“남을 알기 위해서는 역으로 우리를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가 갖는 잠재력과 고유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문화행사와 학술행사를 함께 기획하였지요.”
또한 이 교수는 한국-에스토니아 수교 20주년 기념과 2011년 1월 부산대학교에서 개최한 제1회‘한국-발트국 국제심포지움’을 현지에서도 이어냄으로써 발트3국과의 문화 및 학술교류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실제 이교수가 ‘코리아 페스티벌’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준비를 마치는 기간만 따지더라도 1년이 걸렸다. 그리고 실제 행사는 일주일에 걸쳐 진행됐다. 1년의 준비기간과 일주일의 진행기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다. 행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타르투 대학의 역사박물관에서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주재 겸임 박동선 대사와 타르투 대학의 총장이 테이프를 끊은 사진전에서부터 현지의 대학과 주민들의 관심이 컸다. 이는 한국인의 일상을 전통과 현대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그곳에서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악단체인 ‘서도소리’팀의 네 번에 걸친 한국의 전통음악 공연에서 나타난 일반시민들의 반응은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시민들의 호응이 컸습니다. 학술행사의 마무리로 특별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요. 특히 박준영 단장의 <배뱅이 굿>은 현지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 측의 추천으로 상영한 우리 영화는 매회 만석을 이룰 정도로 호응이 컸다. 이제는 김기덕 감독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한국의 독립영화인 <혜화, 동>, <계몽영화> 그리고 <밍크코트> 등 세 편이 사흘에 걸쳐 모두 6회 상영되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단순히 영화만 상영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영화제에 앞서‘한국의 대중문화와 KPOP’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와 발트3국의 영화’에 관한 전공자의 강연을 관객들을 상대로 했을 뿐만 아니라, 각각 영화상영 이후 곧바로 관객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서, 한국의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배려를 했다고 밝혔다.
문화축제와 학술축제의 어우러짐
무엇보다도 학술행사인 제2회‘한국-발트국’ 국제심포지움에서는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언어와 문학뿐만 아니라, 한국의 괄목할만한 성장에 직면한 새로운 도전, 에스토니아 경제변화의 동인으로서의 경제위기 등 시의성 있는 주
제들이 전문가를 통해 논의됨으로써 현지 대학과 학계에 한국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반응이다. “이번 행사의 핵심은‘문화축제’와‘학술축제’가 잘 어우러진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에 대해 우리가 먼저 제대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한류열풍은 문화계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대중적인 연예계에만 집중된 한류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 또한 높습니다. 한국문화의 뿌리와 전통, 보편적 정서를 폭넓게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는 한류를 단순히‘일본문화’의 아류로 이해하거나, 단순히 재미있는‘아시아 문화’의 일부로 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해외, 특히 유럽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것, 아시아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이 교수는 학술축제의 한류에 대한 고민을 내비쳤다. 학술축제는 학술행사라는 전문가 집단만이 갖는 틀에 갇힌 기존의 사고를 벗어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학술행사가 놀이는 아니지만, 일상과 연계되는 외연의 확대도 가끔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는 “순수 학문적 연구의 결과나 과정을 발표하는 중요한 의미를 결코 무시하는 뜻이 아니라, 발표와 토론, 질의와 응답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윤리 그리고 전망을 매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학술과 축제를 함께 어울리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라며 학술축제의 향후 전망을 내다봤다. 이에 이 교수는 이를 위해 학술행사에 문화적 콘텐츠를 가미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들불처럼 번지는 그의 열정 그렇다면 이 교수가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발트3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동기와 그 동안 발트전문가로서의 활동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먼저는 독일에서의 인연을 떠올렸다.
2004년 연구차 방문한 독일에서 당시 유럽연합의 회원국 확대에 관한 일간지 기사 가운데 낯선 나라 발트3국을 처음 접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멀게는 1970년대 초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공과목에 속했던 독일문학사에서 이 교수에게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질풍노도 Sturm und Drang>의 원천이 바로 이곳이었다. 억압과 피지배의 고통 속에서 비로소 싹튼 민중의식과 그들의 목소리를 민요와 신화로 담아 내었던 헤르더와 젊은 괴테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시 대학생으로서 품었던 먼 나라에 대한 동경은 40년이라는 긴 시간여행을 통해서라도 해소하고 싶은 순수한 열정에 맞닿아 있었다.
최근 6년 동안 독일발트문학의 발생과 전개, 발트국 최고의 작가인 얀 크로스(Jaan Kross)의 역사인식과 문화적 기억력을 포함한 발트국 관련 4편의 논문을 비롯하여, 이를 토대로 <발트3국의 역사, 문화, 언어>와 <독일발트문학과 에스토니아문학> 그리고 현지 체험을 바탕으로 <발트3국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슬픔>이라는 산문집, 이어 연구차 출국에 앞서 에스토니아어 입문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순수한 학문적 동기에서 시작됐다는 그의 활동은 어느새 문화계를 넘어 학계의 한류열풍의 들불로 번지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열정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다시 한반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또 어떤 분야에서 제2의 이상금 교수가 등장해 한류에 불을 지필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