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리’ 공포 여파…전자 충격기 등 때 아닌 호황, 택시도 승객도 ‘발바리 증후군’
최근 어린이와 여성을 상대로 한 납치나 강도 사건이 잇따르면서 호신용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위성위치 추적시스템이 적용된 휴대전화 단말기와 호신 경보기, 최루액 스프레이 등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연쇄 성폭행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여성들 사이에서는 ‘호신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서울, 용인, 경기도 시흥과 안산에서 각각 동일범의 소행으로 확인된 성폭행 사건으로 불안해진 마음을 호신용품으로 달래 보려는 여성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찰측은 저출산 등으로 인해 ‘1인 가족’ 또는 ‘핵가족’이 크게 늘어나면서 원룸 등의 새로운 형태의 주거지가 생겨나 검문검색은 물론 수사·단속·예방이 어려워지는 것이 발바리가 늘어나는 하나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불안한 여성들, 귀가시간 빨라져
대학생 김고은(22ㆍK대 2년) 씨는 지난주 말 인터넷 쇼핑몰에서 립스틱 크기의 ‘호신용 스프레이’를 하나 구입했다. 김 씨는 "성폭행 사건이 빈발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호신용품을 구입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며 "개중에는 전자충격기와 휴대용 경보기를 가지고 다니는 친구도 있다"고 전했다. 김 씨와 같은 여성이 급증하면서 ‘호신용 스프레이’와 ‘호루라기’ ‘전자 충격기’ 등은 이미 히트 상품으로 자리를 잡았고 혼자 사는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집 안팎 문단속에 관심을 갖는 여성들 또한 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들은 이런 수요층을 겨냥한 방범용품 특별기획전을 열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실제로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에서는 ‘발바리’ 사건 이후 하루 평균 500여건 이상 호신용품이 거래되고 있다. 옥션 관계자는 "잇따른 성폭행사건 여파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30% 이상이나 늘었다"며 "단순한 호신용품뿐만 아니라 지문인식 도어락과 침입탐지 경보기 등 방범 보조제품을 찾는 주문도 많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여성들의 귀가 시간도 빨라졌다. 실제로 밤 11시 정도만 되면 평소 젊은 여성들로 붐비던 홍대 앞 클럽과 신촌 등지는 예전에 비해 한산한 모습이다.
회사원 김희진(29) 씨는 "예전과 달리 최근엔 오후 9시 이전에 귀가하는 친구들이 많은 편"이라며 "미니스커트와 같은 튀는 옷도 가급적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 ‘심야손님 급감’ 경계하는 시선에 곤혹
"발바리 사건 때문에 손님들의 시선이 따가워요" 10여 년 동안 110여회에 걸쳐 성폭력을 저질러온 발바리 이 모(45)씨가 검거되면서 택시기사들이 때 아닌 곤혹을 치르고 있다.
발바리의 첫 범행이 택시기사를 할 당시에 이뤄졌으며 “택시기사가 길도 모르냐”며 자신을 무시하는 여성 승객을 집까지 뒤따라가 성폭행 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은 이 같은 경찰의 사건발표가 나온 이후 “승객들이 운전석 옆 조수석에 앉는 경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며 “심야시간대에 택시를 타는 여성 승객이 크게 줄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10년째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최 모(54)씨는 “예전 같으면 손님들이 기사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했는데 지금은 대화는 고사하고 경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정 모(34)씨는 “발바리가 한 때 택시를 몰았다고 해서 승객들이 모든 기사가 범죄를 저지를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하다”고 말했다.
반면 승객들은 여전히 택시기사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발바리 사건 외에도 택시기사가 여성승객을 상대로 성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3일 아산에서는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에 탄 만취한 주부 A씨(43)를 여관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운전기사 이 모(42)씨가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해 8월에도 택시에 승차한 B양(19)을 대전 서구 둔산동 모 아파트 인근에서 성폭행 한 택시기사 김 모(44)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택시기사가 여성 승객들을 성폭행 하는 것은 대중교통수단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킨 것으로 사회 전체에 대한 큰 해악이다”고 말했다.
빠르게 분열하고 있는 ‘발바리 세포’
10년 가까이 여성들을 공포에 떨게 한 대전의 ‘원조 발바리’는 잡혔지만 발바리로 불리는 연쇄 성폭행범은 늘어만 가고 있다. 지난 2월 1일에는 시흥 일대에서 15건의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박 모 씨(26·무직)가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연쇄 성폭행 사건들도 많다. 약자 대상의 ‘손쉬운’ 상습범죄인 데다, 모방성이 강하고 피해자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범죄여서다. 사회 일각에서는 상습범에 대해서는 격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연쇄 성폭행범죄의 특징=지난달 19일 붙잡힌 대전의 ‘원조 발바리’ 이 모 씨(45)는 경찰에서 “의외로 범행이 쉬웠고 피해여성이 신고를 꺼려해 이후 계속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택시기사를 하던 중 차에 탄 여성이 자신을 깔보자 화가 나 충동적으로 첫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후 과거 7년여 동안 전국을 돌며 74차례에 걸쳐 80여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이 씨는 대학생을 포함한 자녀 2명과 부인을 둔 ‘지극히 평범한’ 가장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붙잡힌 ‘용인 발바리’ 이 모 씨(38)는 초·중교 여학생들만을 노려 범행을 했다. 순진한 데다 저항이 어려운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 씨는 지난 1년간 경기도 용인·수원·성남의 아파트 단지를 돌며 1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못된 짓을 저질렀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지난달 27일 붙잡은 김 모 씨(34)는 서울지역 술집 등을 돌며 여주인 등을 노린 경우다.
연쇄 성폭행범들은 술 취했거나 원룸 등에서 문을 열어놓고 자는 여성, 초등학생을 포함한 미성년자 등을 범행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원조 발바리’ 이 씨는 잠깐 슈퍼마켓에 다녀오거나 외출해 돌아오는 여성들을 따라 들어가 범행을 저지른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용인 발바리’에게 성폭행당한 초·중교 여학생들은 자신이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발바리, 왜 늘어나나=경찰은 ‘1인 가족’ 또는 ‘핵가족’이 늘어나고 원룸 등 새로운 형태의 주거지가 생겨나면서 검문검색은 물론 수사·단속·예방이 어려워지는 것이 발바리가 늘어나는 하나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방범죄성’ 발바리가 늘고 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발바리 수사에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이유는 DNA검사의 위력이 갈수록 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전의 ‘원조 발바리’ 검거에도 ‘DNA검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역별 연쇄 성폭행사건 현장의 모발·정액 등으로부터 수집한 DNA 분석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하면 범인 검거율이 대폭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폭행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죄책감도 덜 느끼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강력한 처벌과 사회로부터의 격리, 정신과적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범죄 발생 '대낮 다세대 지역'조심
지난해 마포 발바리가 저지를 12건의 성폭행 사건, 범행 시간은 모두 대낮이었고, 장소는 다세대나 원룸 주택가였다.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상대적으로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많은 지역이다. 결국 치안이 허술한 지역에 사는 서민들이 연쇄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라는 결론이다. 연쇄성폭행범은 남성적 우월감에 빠져 범행을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동국대 곽대경 교수는 "굉장히 강하게 인사이 남았던 그 경험을 갖다가 다시 반복하고 싶고, 그런 충동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재범의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한국성폭력 상담소 이미경 소장은"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는지 반성하고, 그런 제대로 된 교정이 필요하다'며 전문가들은 범죄 다발지역에 대한 치안력을 강화하고 성폭행범에 대한 정신과정 교정이 수반돼야 연쇄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정말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일시적인 사회적 공분이 아니라 다시는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성폭력의 문제를 더 이상 가해자나 피해자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성폭력과 관련한 그 어떤 고정관념도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에서 “성폭력피해자 설 곳 없어”
상담소는 1일 연쇄성폭력 사건보도에 대해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만을 양산하고 있어, 피해자가 설 곳이 없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1월 26일, 27일 보도된 대전지역 연쇄성폭력 건수가 100건을 넘어섰다는 기사들에 대해 “언론의 관심의 대상은 범죄 행각과 범죄자일 뿐”이었다며, “언론이 피해자에게 관심을 둘 때는 오로지 피해자가 이번 범죄를 유발했다거나 피해자의 허술한 문단속이 이번 사건을 불러왔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라고 꼬집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은 연쇄성폭력범을 언론이 “발바리”라고 칭한 것에 대해 성폭력 사건을 희화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제는 아예 ‘발바리’라는 속칭이 ‘대구 발바리’, ‘용인 발바리’와 같은 제2, 3의 아류 ‘발바리’들을 만들어 내며 이제는 모든 연쇄성폭력범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며 우려를 표했다.
또 “생각보다 쉽다는 생각에 계속하게 됐다”는 연쇄성폭력 범죄자의 말에 대해, “성범죄일 경우 피해자가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음을 철저히 이용한 결과”라는 점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며,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재차 고통을 주는 일이 없도록 당부했다.
특히 검거된 성범죄자 키가 160cm도 안 된다거나,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열등감에 시달렸다는 “단편적 내용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그 열등감을 누구에게 표출하고 있는지 보아야 하며, “인면수심을 강조하기 위해 남매를 둔 아버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는지” 짚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범죄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현행법에서는 집행유예를 받은 성폭력범에게만 수강명령이 내려져, 상대적으로 중범죄자로 실형을 받은 경우에는 따로 교정 교육이 실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큰 문제로 지적했다. 즉, 성폭력범죄자들이 자신의 행위가 무엇인지 충분히 반성하고 사죄할 수 있도록 교도소 내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바리' 사건으로 호신ㆍ방범 용품 시장이 확대
호신용 스프레이를 비롯해 호신용 경보기, 호신용 전자 호루라기 등은 물론 경찰이 휴대하는 3단 진압봉에 이르기까지 제품군도 다양하다.
2일 국내 최대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여성이 주 고객층을 이뤄 호신 용품이 하루 평균 500여건씩 판매되고 있다. 1월 달에는 전년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한 5,000여개 제품이 팔려 나갔다.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을 보면 8000원에서부터 2만 원대까지 저렴한 가격에 경고용 호루라기를 비롯해 공격용(?) 가스 스프레이까지 다양하다. 콤팩트한 디자인을 갖추고 핸드백에 가볍게 들어가는 소형이 많다.
옥션에서 판매 중인 300여종의 호신-방범 용품 중에는 호신용 스프레이(1~3만 원대)와 호신용 경보기(1만원~2만2,000원대), 호신용 전자 호루라기(8,000원~2만 원대) 등이 많이 팔리고 있다.
이중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호루라기로서 하루 평균 100여개가 판매되고 있다. 평소에는 목걸이 형태로 착용할 수 있으며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경보음이 울려 구조요청을 할 수 있다. 시중에 유통 중인 호루라기 종류는 약 50여종에 이른다.
치한 퇴치용 휴대용 가스 스프레이는 하루 평균 60여개가 판매되고 있다. 호흡기 계통의 점막을 자극해 기침과 눈물, 콧물을 유발시키는 효과가 있다. 가스 재료는 식물성 원료라서 인체에 해가 없다. 보다 적극적인 치한 퇴치를 위해 경찰, 경호업체 등에 주로 사용되던 '3단 호신 진압봉'도 인기 제품이다.
옥션 관계자는 "발바리 사건으로 여성들이 자기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호신용품 판매가 부쩍 증가했다"며 "혼자 사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집안 문단속을 강화하는 ‘도어락’ 제품 수요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