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정계 혼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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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정계 혼맥은
  • 글/김영민 부장
  • 승인 2006.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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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대물림하는 정재계 인맥 혼맥
시대에 따라 실세들과 얽힌 혼맥 존재, 정경유착 원인 제공
한국사회에서 ‘기득권 대물림’이 정말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참여연대 부설기관인 (사)참여사회연구소는 1987년 이후의 30대 재벌기업에 관한 DB를 구축하는 ‘재벌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한 방송사의 의뢰로 ‘52개 재벌가의 혼맥관계’를 조사해 거대한 ‘혼맥도’를 만들어 냈다. 이것을 통해 드러난 것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보여지는 현 한국사회 권력층의 힘의 권력도를 분석해보았다.


참여사회연구소 재벌연구팀은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1987년부터 30대 재벌기업에 대한 DB를 구축해 그 결과를 분석하는 '재벌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에 한 방송사의 요청으로 '52개 재벌가의 친인척과 3,000여 명의 정관계 지도층'을 대상으로 '한국사회 지도층의 혼맥도'를 작성하게 되었다.
11명의 박사급 이상의 연구진과 20여 명의 보조연구원들이 참여한 이조사는 각종 인물DB와 문서자료는 물론 1991년 이후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일간지에 나온 인물동정란을 통해 혼맥관계를 추적해 이뤄졌다. 그 결과 재계· 정계·관계·언론계·학계 등 사회지도층을 총 망라하는 거대한 혼맥도가 완성되었다.
이번 혼맥도를 통해 한국의 상류층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일종의 계약을 통해, 그들만의 기득권을 구축하고 재생산하고 있는 현황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기득권 대물림'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한국사회 상류층 혼맥의 핵은 LG그룹
우선 복잡한 혼맥도를 관통하는 줄기를 찾을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 상류층 '혼맥의 핵'은 LG그룹이다. LG그룹의 소유주 그룹은 1957년 삼성그룹과의 혼사로 재계 통혼의 효시 역할을 했으며, 이어 삼성·현대·대림·두산·한일·한진·금호 등 굴지의 재벌과 직접 사돈을 맺어 왔다. 그뿐 아니라 해당 시기의 실세 정치인들과도 직접적인 사돈관계를 맺어오며 상류층 혼맥의 큰 줄기를 형성해 왔다.
두 번째는 삼성그룹을 중심으로 언론사 3사가 모두 연결되어 있는 맥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중앙일보 홍진기 회장의 차녀와 혼인한 것부터 출발한 이 혼맥은 노신영 전 국무총리, 현대그룹,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 LG그룹을 거쳐 결국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장남에게로 연결된다. 또한 이한동 전 국무총리와 동아일보와도 혼사로 연결되어 결국 삼성을 중심으로 '조-중-동' 언론3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세 번째는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보는 맥이다. 조선일보 역시 태평양, 롯데(농심), 조양상선, 김치열 전 내무부 차관, 대전 피혁, 효성그룹을 거쳐 이명박 현 서울시장의 자제에게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혼맥관계에서는 또다른 맥을 파생시키고 있다. 흔히 서로 반목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사돈관계에 놓여 있었다. (후에 이혼함). 마찬가지로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이 혼맥들로 연결되며 이 혼맥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권노갑 전 고문에게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몇가지 예시들만 보더라도 이른바 한국의 상류층이라고 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서로간의 혈연맺음을 통해 '기득권의 재생산'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족벌언론으로 불리우는 언론사들과도 질긴 유착의 관계를 갖고 있음도 드러났다. 이들이 이러한 질긴 인연을 통해 부의 축적은 물론 권력의 안정화 및 세습을 공고하게 만들어 특권을 공유해 왔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재벌가 혈맹관계에 관한 시민들의 시각은 분분하다. 하지만 현재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정경유착의 고리와 정략결혼으로 모아지고 있다. 실제 혼맥도를 보면 이런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는 게 정설이다.

정경유착형
혼맥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재벌가와 권문세도가의 혈맹관계다. 국내 굴지의 재벌들 중에는 권문세도 집안과 사돈관계를 형성한 경우가 많다. 지난 6공 때까지 이런 행태가 주류를 이뤘다.
흔히 정경유착의 고리의 핵심으로 ‘win-win 전략’을 비유한다. 서로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집안끼리 혼맥을 형성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재벌이 정치권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즉, 든든한 바람막이에다 수시로 알짜배기 사업특혜까지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이점이 있기 때문에 정치권과의 혼인에 적극적이란 말이다.
정치권 역시 재벌가와의 혼사에서 손해 볼 것은 없다. 정통성이 결여된 관계로 정권연장을 위한 안정적 비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이 같은 이유에서 정경유착의 고리가 생성됐다는 게 정설이다.
일례로 지난 1992년 정부가 이동통신 사업권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SK그룹(구 선경그룹)에 주기로 한 결정에 대해 정경유착에 따른 특혜라는 반대여론이 빗발친 적이 있다. 물론 이런 결혼풍속이 모두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수가 따른다. 전문가들 역시 부모들의 뜻이 앞선 정략결혼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자유의사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권력자들이 재벌과 사돈관계를 맺게 되면 결과적으로 기업의 성장을 돕게 되고, 재벌사돈은 역시 정·관계 사돈들의 세력기반 확장에 음양으로 도움을 주게 되며, 이런 긴밀한 정경유착은 그동안 일반화되어 왔다고 이들은 강조하고 있다.

‘최고권력층을 잡아라’
30대 재벌 중 정치권과 가장 많은 인연을 맺은 곳은 한화그룹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서정화 국회의원의 큰딸과 지난 1982년 혼인했다. 아울러 김신 전 교통부장관과도 이어진다. 한화가는 또 박정희 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천하의 권문세도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사돈관계다. 김 회장의 누님인 영혜 씨가 이 전 부장의 장남인 동원 씨(제일화재 회장)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SK그룹 역시 정치권과 밀접하긴 마찬가지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는 사돈관계다. 최종현 전 SK그룹 창업주의 형인 최종건 회장의 막내딸 예정 씨가 이 전 부장의 막내며느리다. 때문에 한화그룹과 SK그룹은 ‘가깝고도 먼’ 사돈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SK그룹은 또 노태우 전 대통령과도 사돈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고 최 창업주의 맏아들 태원 씨(현 SK 회장)가 노 전 대통령의 장녀 소영 씨와 혼인의 관계를 맺었다. 이를 따라가면 전직 국회의원을 지낸 김복동 씨(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의 오빠)와 연결된다. 김씨의 둘째 딸은 한일그룹 창업자인 고 김한수 회장 다섯째 며느리다. 따라서 SK그룹과 한일그룹도 줄사돈지간이 된다.
역대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형성한 재벌가는 또 있다. 한국제분과 풍산금속이 주인공이다. 한국제분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지간이며 이는 권노갑 씨에게까지 이어진다. 풍산그룹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IMF 때 몰락한 벽산그룹 김인득 씨 집안과 사돈지간이다. 박 전 대통령의 셋째형인 박상희 씨의 딸 설자 씨가 김씨의 둘째 며느리다. 이를 따라가면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와 연결된다. 설자 씨가 김 명예총재의 처제다.
풍산그룹은 또 박 전 대통령과 직접적 사돈관계를 맺은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둘째딸 근영 씨가 지난 1982년 유찬우 회장의 장남 청 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일상생활이 순탄치 못해 6개월도 안돼 갈라서고 말았다.

실세와 혼인관계로 권력 재력 키워
국어사전에서 ‘정략결혼’을 찾아보면 ‘주혼자가 제 이익을 위해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억지로 시키는 결혼’으로 나와 있다. 목적성을 갖고 혼인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물론 해당 재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겠지만 혼맥도를 보면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 많은 게 사실이다.
혼맥도를 보면 한 때 실세를 자청하거나 자청했던 위치에 있던 정치인 집안과 직·간접적 인연을 맺고 있다. 일례로 재계 서열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인은 홍진기 전 내무장관이다. 이를 따라가면 노신영 전 총리와 인연이 닿는다. 홍 전 장관의 딸이 노 전 총리 집안에 시집을 간 탓이다. 또 홍 전 장관 가문은 김복동 전 국회의원과 연결돼 있다.
현대가 역시 노신영 전 총리와 사돈지간이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의 큰 딸이 노 전 총리의 큰 며느리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은 현대그룹과 직접적 성혼은 없었지만 한 다리 건너 사돈지간으로 얽혀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6남인 정몽준 의원도 김동조 전 외무장관과 ‘장인과 사위’란 연을 맺고 있다. 정 의원의 부인이 김 전 장관의 막내딸인 영명 씨다.
재계서열 26위인 코오롱그룹과 재계서열 44위인 풍산그룹과도 사돈지간이 된다. 이 관계의 중심엔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있다. 이원만 전 코오롱그룹 회장의 둘째아들인 동보 씨가 지난 1974년 당시 공화당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큰딸 예리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들의 결혼은 당시 고 육영수 여사가 이씨 집안과 대통령 조카사위인 김 명예총재 집안을 연결시키기 위해 적극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그룹은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 씨와 신병현 전 부총리의 사돈간이다. 이 전 회장의 셋째동생인 원천 씨의 아들이 정씨 딸과 혼인했다. 또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의 딸이 신 전 총리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코오롱그룹은 재계 서열 31위인 영풍그룹과도 혼연 관계에 있다. 영풍그룹 집안과 정일권 씨 집안과는 사돈지간이란 이유에서다. 영풍그룹은 또 김세련 전 재무장관과도 연을 맺음으로써 인맥을 구축했다.
한때 당대 실세를 자처했던 정치인과의 혼맥관계는 또 있다. 동부그룹과 태광그룹, 강원산업, 미원그룹 등이 그들이다.
동부그룹은 이철승 전 야당총재와 사돈관계다. 김준기 회장의 동생인 택기씨가 거물 야당 정치인이었던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의 사위다. 롯데그룹과는 또 여동생을 통해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태광그룹은 이기택 전 민주당 고문과 한 집안이다. 이 전 대표의 누님인 선애 씨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모친이다. 이 때문에 정경유착 의혹을 끊임없이 받았지만 ‘깨끗한 장부’란 모토를 지속시킴으로써 결백성을 입증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그룹의 혼맥은 동국제강과 롯데그룹으로까지 연결된다. 이 회장의 형님인 영진 씨가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 집안과 연을 맺었다.
강원산업은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과 사돈관계다. 때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 연결될 뻔했으나 불운(?)으로 연이 끊어졌다. 박 전 최고위원의 넷째 딸인 경아 씨가 지난 1987년 전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 재용 씨와 결혼했으나 성격 차이에 따른 불화로 2년5개월 만에 합의 이혼한 탓이다. 미원은 김복동 전 국회의원과 사돈지간. 따라서 혼맥도를 따라가 보면 삼성그룹과 멀고도 먼 사돈지간이 형성되고 있다.

관료와 재벌간 혼인관계
당대 관료들과 혼인관계를 맺은 경우도 많다. 이들과의 혼연은 정부정책 및 정보에서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점으로 정경유착의 또 다른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물론 관료들이라고 해서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벌 가문과의 인연은 소위 ‘실탄’을 확보한 것과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이런 필요충분조건에 의해 집안과 집안이 맺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혼맥도를 보면 재벌가 중 LG그룹이 관료 집안과 가장 많은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둘째 동생인 정회 씨(작고)의 둘째아들인 자헌 씨는 조종열 전 대한수산회장의 딸인 금숙 씨와 결혼했다. 셋째동생인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녀는 이계순 전 농림부장관 집안으로 출가했고, 구자경 전 그룹회장의 장남인 본무씨(현 LG그룹 회장)가 김태동 전 보사부장관의 딸인 영식씨와 혼인했다. 또 장녀는 김용관 대한보증보험 사장의 아들인 화중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인 구두회 명예회장의 장녀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 집으로 시집갔다. LG그룹은 이처럼 당대 관료들과의 혼맥 형성에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LG그룹에 못지않은 혼맥을 갖고 있는 곳은 효성그룹이다. 효성 역시 5개 관료 집안과의 혼맥도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는 홍금식 전 변호사회 회장과 사돈지간이다. 차남인 양래씨가 홍문자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효성그룹과 관료집안의 혼사는 조 창업주의 동생인 성제 씨(작고)가 적극적이었다. 홍재선 전 전경련 회장의 딸인 애수 씨가 셋째며느리(3남 경래 씨와 결혼)다. 넷째 아들인 익래 씨는 원용석 전 경제기획원장의 딸인 정선 씨를 아내로 맞아 들였으며 장녀인 정숙 씨는 정종철 전 서울시장의 아들인 창순 씨와 혼인, 정씨 집안으로 출가했다.
한진그룹과 금호그룹 역시 만만치 않은 혼맥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집안과 사돈관계를 맺은 관료집안 각각 4곳과 3곳이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이 전 차관의 딸인 명희 씨를 장남인 양호 씨와 혼인시킴으로써 직접적 사돈을 맺었다. 또 이 전 은행장의 아들인 태희 씨를 사위로 맞아들였다.
또 조중렬 씨(조 창업주의 형)의 둘째 아들인 지호 씨는 이 전 상공장관의 딸인 숙희 씨와, 조중건(조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의 장녀 윤정 씨는 이 전 외부장관의 아들인 정훈 씨와 혼인함으로써 사돈관계를 형성했다.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경우엔 관료 집안과 직접적 사돈관계를 모두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차남인 정구씨(작고)는 김익기 전 국회의원의 딸인 형일 씨를, 3남인 삼구 씨는 이정환 전 재무부장관의 딸인 경렬 씨와 혼인했다. 장녀인 경애 씨는 배태성 전 제헌의원 집안(영환 씨와 결혼)으로 출가했다. 이러한 계약 관계는 시대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이다. 60∼70년대에는 정계와 재계가 만나는 정략결혼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IMF 이후 1990년대 후반에는 재벌3세대끼리의 혼사가 대부분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이미 스스로의 위치를 확고히 굳힌 대기업들이 각종 비리사건을 포함해 권력의 몰락과 부침이 잦은 정치인들과 혼사맺기를 꺼리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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