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 해남에 자리 잡은 이레유통영농조합법인은 100여 명의 농민들이 만든 농업기업이다. 약 190억 원의 연매출을 기록하며 80여 명의 근로자가 이를 꾸려가고 있다. 주 취급품목은 해남호박고구마와 양파, 겨울배추인데 특히 해남호박고구마는 이레유통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발전시켜 왔다. 이레유통이 해남고구마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해남고구마 시장은 침체기였다. 하지만 밤고구마 일색이었던 전국 고구마시장에 해남호박고구마를 유통시켜 확대, 보급함으로써 홈쇼핑을 비롯한 온라인 시장에서 급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지금은 해남군이 전국적인 고구마 주산지로 발돋움하게 됐다. 이에 이레유통 임직원들은 호박고구마 시장은 해남에서 주도한다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농산물의 생명력 불어 넣는 ‘상생의 힘’
한미FTA가 영농시장을 뒤흔들고 값싼 중국산 농산물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농업기업으로서 연 200억에 육박하는 매출을 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1세기의 농업이 기술화, 과학화 추세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는 하지만 결국 사람의 손길과 열정 그리고 집념 없이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는 분야다. 이레유통을 이끌고 있는 김영진 대표의 이야기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었다.
“이레유통을 지탱하고 있는 힘은 해남군 지역사회와 그 울타리 안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농업인들에게 있습니다. 특작물이 아닌 기초농산물로 이 정도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농산물의 상품화와 유통을 진행함에 있어서 지역사회와 지속적인 상생의 길을 모색해 왔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 기업이 ‘이레농업’이 아니라 ‘이레유통’인 이유를 알게 됐다. 제 아무리 천하제일의 농산물을 생산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유통이 되지 않는다면, 한낱 거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 대표와 이레유통은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소통 가운데 만들어진 철저한 ‘상생의 이념’으로 시시각각 생산되는 농산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이레유통은 농민들이 만든 기업이다. 그래서 농산물의 유통에 집중했다. 그러나 업력이 쌓이면서 기초농산물의 판매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해남고구마의 가공을 목표로 해남고구마식품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이 역시 오로지 지역주민들의 힘 덕분이었다.
이를 계기로 청과형 농산물을 식품으로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올리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해남에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기업체를 모아 통합유통망을 구축하는 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산지 유통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과 유통을 아우르는 통합농업회사로 거듭나려는 목표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해남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어업도시다. 이는 농산물과 수산물의 기초자원이 매우 풍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산업은 바로 이렇듯 풍부한 기초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에 의해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역의 태생적 산업구조 덕분에 박철환 해남군수도 지역기업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인정하며 행정과 기업, 그리고 기업과 기업 간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지자체와 지역기업의 상생은 전국적으로 많은 모범적 모델들이 나와 있다. 그러나 해남군의 그것이 특별한 이유는 지역 내부적으로 지산지소 활동을 강화하고, 기업 활동에 대한 측면 지원의 폭을 넓히면서 튼튼한 공생체를 구축하는 협업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건비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
이레유통 김영진 대표는 고교시절 농업을 가르치셨던 김창호 선생님을 인생의 멘토로 꼽았다. 당시 김창호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봉사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셨다고 한다. 이러한 학창시절의 영향으로 김 대표 역시 봉사와 헌신의 삶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과 실천을 하게 됐다.
“인건비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도회지의 대기업처럼 많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주지는 못하지만 회사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지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장은 돈을 버는 공간이 아니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 아침에 눈을 뜨면 가고 싶은 곳, 직원 스스로가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렇듯 김 대표의 봉사와 헌신은 직원들을 향한 사랑과 애정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봉사정신은 마치 풍선처럼 점점 불어나고 있는 듯 보였다. 농산물 생산자에 대한 봉사, 도시 소비자에 대한 봉사, 작게는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봉사, 회사 내부고객에 대한 봉사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봉사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독거노인을 포함한 지역사회 봉사활동, 불우이웃돕기 참여, 군에서 실시하는 교육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회사 내 남성인력에 비해 여성인력의 비율이 많아 여성친화적인 경영으로 2011년도에 여성친화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김 대표는 다문화가족의 외국인 여성근로자 취업이 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차별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에 힘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의 노력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바로 회사 내외부의 사람들에 대한 기업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레유통이 바로 그러한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으면 한다는 김 대표의 의지 때문이었다.
취재_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