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개혁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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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개혁 해법은
  • 글/ 신혜영 기자
  • 승인 2006.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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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발목 잡는 ‘규제’, 경제성장 막는다
경제분야 행정규제 4,383건 달해, 말로만 규제완화
정부가 목표대로 경제를 이끌어 가려면 무엇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은 지금 조용히 엎드려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는 명령으로 안 된다”며 “특히 규제는 시장경제의 흐름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기업들은 소득 2만 달러 달성을 위한 첫번째 관문은 규제완화라고 입을 모은다. 규제는 불확실성과 더불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다.

지난 2002년 현재 경제 관련 행정규제는 4,383건에 달했다. 기업의 국가경제 기여도에 비해 규제의 양이 너무 많고, 지나칠 정도로 경색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경련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은 본질적으로 커지기를 희망한다”며 “매출액이나 이익이 매년 줄어드는 기업은 존재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혁신의 핵심 바로미터 중 하나는 규제완화다. 역대 정부가 틈만 나면 규제완화를 외쳤지만 규제 완화 체감지수는 여전히 바닥권이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규제개혁 체감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참여정부의 규제개혁 성과에 대해 37.9%만이 ‘만족한다’고 답했으며, 신속한 후속조치에 대한 만족도는 15.3%에 불과했다.
한 경제학 교수는 “관치경제란 관이 최적의 자원배분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과신에서 비롯되는 것” 이라며 “참여정부 역시 이 같은 덫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지난해 11월 “지난 80년대 영국이 추진했던 ‘금융빅뱅’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금융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보험, 증권 등 각 금융 영역의 칸막이를 허무는 진정한 의미의 금융빅뱅은 물 건너간 상태다. 정부는 지난 2003년부터 2년 가까이 이 문제를 논의해 왔지만 결국 금융 전업주의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냈다.
규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법안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국회통과를 추진하고 있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이 대표적 사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산법을 개정할 경우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고, 해당기업은 인수합병(M&A) 위협으로 인해 보수적인 경영형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건설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제시한 제3차 수도권 정비계획 역시 공장의 신ㆍ증설 제한 등 기업 규제의 큰 틀이 바뀌지 않은 채 공공기관이 빠져나갈 지역에 대한 ‘보상용’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기업정서도 한몫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의 20세 이상 성인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성장을 통해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성장의 주체인 기업에 대해서는 반감이 크다.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는 기업으로 하여금 매사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요한다”고 말했다. 정당한 방식과 절차를 통해 특정 기업을 인수하려 해도 특혜시비 등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예상보다 후한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본부장은 특히 초ㆍ중ㆍ고교 경제관련 교과서에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내용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계은행과 국제금융공사(IFC)가 지난해 9월 발표한 ‘2006 기업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민간기업 활동 환경은 27위로 평가됐다. 이는 태국(20위), 말레이시아(21위)보다 떨어지는 수준이다. 이처럼 민간기업 활동 환경이 좋지 않은 데는 규제와 함께 반기업 정서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다.
지난해 한국경제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성장, 일자리, 소득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최근의 경기가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증대를 위한 시장 메커니즘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 또는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을 동북아의 금융허브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금융부문의 숨통을 죄고 있는 각종 규제부터 과감히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한 공공기관을 전국에 분산ㆍ이전하기로 결정한 만큼 기업들의 수도권 공장 신ㆍ증설을 허용, 경기회복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특히 집단소송제를 도입함으로써 기업의 경영행위에 대한 사후적 문책근거를 마련했다면 신규투자를 틀어막고 있는 촐자총액 규제와 같은 사전적이고 원천적인 투자봉쇄장치는 2~3년 뒤가 아니라 당장 폐지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한 경제전문가는 “정부의 규제개혁이 성과를 보기 위해서는 각종 사전규제를 사후감독 방식으로 바꾸고, 출자규제의 예외허용이나 근로자파견업종 제한 등 허용행위 열거방식의 포지티브 시스템을 금지행위만 열거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당 규제가 경제발전의 적
사례하나, S사는 부산시의 한 항만구역 안에 1만2000㎡ 면적의 창고를 지으면서 1억1,000만원을 들여 현대미술품을 구입했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에 1만㎡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는 미술장식품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미술품을 접할 기회를 넓히자는 취지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준공 승인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항만구역은 일반인의 출입이 차단된 곳이다. 일반인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인데도 이 회사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큰돈을 들여 미술품을 구입했다. 회사 측은 아무도 볼 사람이 없는 이 미술품을 어떻게 설치할지 고민 중이다.
사례 둘, 국제표준기구(ISO)나 한국산업규격(KS)에 따라 컨테이너 차량의 높이는 4.1m로 통일돼 있다. 하지만 도로교통법 시행령은 높이가 3.5m 이상인 차량은 경찰서에서 운행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 때문에 모든 컨테이너 차량은 같은 코스일 때는 연 1회, 다른 코스일 때는 매번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례 셋, A무역은 제주시 탑동 연안에 3,000t 규모의 배를 정박시켜 해상 예식장 겸 뷔페사업을 하려고 제주시에 사업허가를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해상 예식장이라는 업종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관광진흥법 시행령은 해양관광업종으로 수상관광호텔업, 관광유람선업, 요트장업 등 3개만 허용한다. 돈을 투자해 고용도 늘리고 새로운 관광서비스 산업을 개척하겠다는 기업의 의지는 경직된 규제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무역협회의 ‘규제현장 조사위원회 활동 보고서’에 적시된 사례들이다. 이 보고서에는 재정경제부의 의뢰로 무역협회가 지난해 8월부터 5개월간 기업현장을 찾아다니며 조사해 정리한 불합리한 규제들이 담겨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기업인을 주축으로 한 100여 명의 경제 암행어사가 발로 뛰어 확인한 총 293건의 규제 중 우선 없애야 할 42개를 지난해 말 두 차례(10월, 12월)에 걸쳐 한덕수 경제부총리에게 보고하고 개혁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42건의 규제는 ▲관광 12건▲유통.물류 7건▲기업활동 7건▲공장설립 5건▲외국인 3건▲기타 8건 등 각 분야에 골고루 나뉘어 있다. 예를 들어 경남 통영시 도남동의 3층짜리 충무관광호텔은 한려해상공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천혜의 조건 때문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1971년 건설돼 낡은 시설을 고치고, 손님을 더 받기 위해 증축하려 해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해안공원의 건축물 높이를 5층 이하로 규정한 자연공원법 시행규칙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 밖에 산학협동을 장려하면서 대학 캠퍼스 안에 세울 수 있는 공장을 바닥면적 500㎡ 이하로만 제한한 것도 불합리한 규제로 꼽았다. 보고서를 받은 재경부는 불합리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없애겠다고 밝혔다. 재경부 관계자는 5일 “무역협회가 1차로 건의한 20개 과제 중 15개를 전면 또는 일부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게 많은 데다 영리목적의 의료법인 허용 등 업계에서 요구하는 핵심 건의사항은 대부분 수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양대 관광학과의 한 교수는 “정부가 강조하는 서비스 산업의 육성이 제대로 되려면 말로만 하지 말고 특단의 리더십을 통해 규제를 과감하게 푸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경제계 “출자총액제 규제 풀어달라”
국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출자총액제 적용기준을 현행 6조원에서 7조~14조로 늘리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월16일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한 공정거래제도 개선방향’ 건의서를 통해 ‘국내 대기업들은 출자총액제 때문에 신사업분야로의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고 ‘기업의 성장전략과 투자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출자총액제란 30대 그룹에 한해 순자산의 25%가 넘는 비용을 계열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로 기존 회사의 자금으로 또 다른 회사를 손쉽게 설립하거나 혹은 타사를 인수함으로써 기존업체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경제계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킨 구조조정기업의 공개매각이 올해부터 본격화되는데 이들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출자총액제 적용을 제외해 달라고 요구했다.
공적자금 투입기업은 사실상 민영화의 성격을 갖는 만큼 현행 공정거래법상 공기업 민영화 혹은 국가지분이 30%가 넘는 회사주식 매각시 출자총액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는 규정을 준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자금여력이 있는 국내기업들의 인수참여기회를 보장함으로써 과거 만도기계, 극동건설 등 수많은 알짜기업들이 외국계 펀드에 인수된 전례를 되풀이하지 말고, 인수경쟁을 유발해 더 많은 공적자금이 회수될 수 있도록 규제 해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는 또한 현행 6조원으로 못박혀 있는 출자총액제 적용기준금액을 GDP의 1%(7조2,000억원) 내지 2%(14조4,000억원)로 정률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매년 기업의 성장속도나 경제성장률과 연동해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자산 4조~5조원대 중위권 그룹들이 투자를 많이 해 자산규모가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새로 규제대상에 편입되는 것을 막아 달라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지주회사 전환요건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했다. 현행 부채비율 100%이내 유지,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 50%(상장회사는 30%) 이상 등의 엄격한 요건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도 유례가 없는 일로서 대기업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오늘날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계속 변신해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을 키울 관심과 투자의욕이 높은 많은 기업들이 미래에 대비해 활발한 사업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상의 걸림돌을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상의가 출자총액제 적용대상 14개 민간그룹 중 조사에 응한 13개 그룹의 경우 출자를 통한 신규사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중 10개 그룹은 출자총액제 때문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 자산운용사 자본금 완화 검토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은 2월8일 부동산 등 전문화된 자산운용사에 대해서는 설립 자본금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위원장은 이날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초청 오찬 연설에서 “자산운용사 설립 자본금 요건을 3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이미 한차례 낮췄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농협 등에 대한 퇴직연금 상품판매 허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체국과 농협 등도 건전성 감독에 있어서 민간 금융회사들과 마찬가지로 균형 있는 경쟁을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관계부처와 협의가 되지 않아 금융감독원 감독대상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지연되고 있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성사될 것”이라면서 “일본의 우정국 민영화가 좋은 시사점”이라고 말했다. 윤위원장은 또 공정경쟁 기반 보장과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의 차별 없는 동등 대우, 시장질서 교란행위 및 신뢰 훼손행위 엄정 대처를 외국자본에 대한 세 가지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그러나 외국계 자본이라 하더라도 불공정 행위나 불건전 회계와 공시 등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엄정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외국계 금융회사의 고충을 처리하고 영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오는 4월 금융감독원에 ‘국제감독지원실’을 신설, 한 자리에서 감독 업무 서비스를 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윤위원장은 특히 “경제의 질적인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금융부문에 대해서는 금융 수요자 입장에서 모든 규제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경련, 올해 사업목표 확정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월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강신호 회장 등 회원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5회 정기총회를 열어 성장동력 확충과 시장경제 창달, 윤리. 투명. 상생 경영확산 등을 올해 사업목표를 설정하고 10대 중점사업을 통해 이를 수행해 나가기로 했다.
우선,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서 투자 활성화와 경영환경 개선활동을 강화하고 서비스 산업의 인프라를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또 시장경제 창달을 위해서는 시장경제교육의 확대와 활성화, 경제계 이미지 개선을 위한 홍보 강화, 자유무역협정 관련 산업계 대책 수립 사업 등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그리고 윤리, 투명, 상생 경영 확산을 위해서 기업 윤리경영의 확산, 선진 노사관계 여건 조성,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강화 사업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올해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력의 회복에 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있다고 강조하고 기업도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경제의 성장과 고용창출을 견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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