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 성공신화로 차별 개선 움직임, 편견이 문제
북미 프로미식축구리그(NFL)의 영웅으로 떠오른 한국계 선수 하인스 워드(30) 열풍 을 계기로 국내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이 기회에 혼혈인 차별 개선을 위한 정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슈퍼볼 최우수선수로 뽑힌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59)는 동족의 차별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 일간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워드가 고교시절 외모가 다르다고 한인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을 때가 정말 힘들고 외로웠으며, 워드만 빼고 한국아이들만 식당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는 한국애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말했다”며 울먹였다.
한국계 풋볼 스타의 성공신화가 ‘워드 신드롬’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다문화가정 2세(혼혈인) 문제를 시대적 과제로 정립해야 한다는 견해가 일고 있다. 국내의 외국인 근로자가 43만명을 넘었고, 지난 10여년 사이 국제결혼한 부부도 20만쌍을 넘어선 마당에, 혈통주의에 얽매인 한국의 국적법 등 법과 제도를 대폭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주한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을 시작으로, 최근 아시아인과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코시안(Kosian)에 이르기까지 반세기가 흘렀으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은 변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1999년 이후 국제결혼한 11만5천여쌍의 자녀들이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시점이지만, 몇 년 후면 도시의 공장 밀집지역이나 농촌지역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다문화가정 2세의 입학이 이뤄져 새로운 교육과제로 부각될 전망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다문화가정 2세는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고, 대다수 가정이 의사소통의 어려움,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갈등과 가정폭력, 빈곤 등에 시달리고 있다. 제일사회복지관 관계자는 “코시안 가정은 엄마가 한국말에 익숙지 않고, 한국문화에 적응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도 5∼6세가 되도록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정부의 체계적인 대책, 사회전체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 관계자는 “국제결혼은 다문화가 섞인 것”이라며 “한국에 시집온 동남아 여성이 우리 문화에 적응토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의 박순종 목사는 “먼저 한국이 단일민족이라는 순일코드를 버려야 한다”고 전제하고 “국제결혼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하인스 워드의 경우를 본격적인 사회적 통합을 위한 계기로 삼아 다문화 가정의 2세를 배려하는 제도적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에서는 혼혈인 냉대
“한국계 혼혈 선수 하인스 워드가 슈퍼볼의 스타가 된 것을 계기로 한국인들도 이제 혼혈인에 대한 완고한 생각을 버렸으면 합 니다.” 워싱턴에 거주하는 한국계 혼혈인 모임인 ‘워싱턴다문 화가족협회’의 회장은 지난 5일 미국 프로 풋볼(NFL) 슈퍼볼에서 한국계 워드가 최우수선수로 선정됐을 때 혼혈인으로 살았던 지난 삶의 아픔이 다 씻기는 것 같았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오 회장은 특히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 씨가 홀몸으로 가난 속에 서도 아들을 자랑스럽게 키워내 정말 대단하다”면서도 “그러나 워드는 미국인 아버지가 있어 합법적으로 시민권자가 된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수많은 혼혈인들이 아직도 한국사회 그늘에서 냉대 받고 산다”고 지적했다. 오 회장은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 성동구에서 자랐지만, 혼혈인에 대한 주변의 질시로 인해 제대로 공부도 할 수 없었고, 직장도 구하기 힘들어 1985년 이주, 20년 째 워싱턴 인근에서 살고 있다. 그가 미국에 오게 된 것은 1982 년 미국에 혼혈인이민법이 만들어지면서, 미국계 혼혈인에겐 자 동적으로 영주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혼혈이민법 제정 후 오 회장처럼 미국으로 건너온 혼혈인들은 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다문화가족협회에는 혼혈인으로 구성된 6가족이 모여 활동 을 하는데, 워싱턴을 비롯한 뉴욕·뉴저지 등에도 혼혈인가족모 임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곳의 회장은 “미국에서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경우가 적어 아이들 키우기가 한결 수월하다”면서 “한국도 이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며, 한국인들도 이제 는 혼혈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협회의 총무인 김운택 씨는 “한국사회에서 혼혈인이 장군이 되거나, 고위 공직자로 출세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니냐”면서 “한국인들은 머리색 을 빨갛고 노랗게 바꿀 줄은 알아도 머릿속 생각은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한국 사람들은 재일교포의 차별 문제에 대해선 흥분하면서도 한국내 혼혈인 차별은 방치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인종 차별을 법으로 금하듯이, 한국도 혼혈 차별 금지를 특별법이 아닌 일반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드 성공은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
“나도 차라리 미국에서 딸을 키웠다면… 그 애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흑인계 혼혈인 딸을 둔 A씨는 미식축구 스타 아들 하인스 워드를 키운 어머니 김영희 씨의 감동적 스토리를 보면서 자신의 회한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런 일은 미국이었기에 가능했으며, 한국에선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혼혈아를 기른 어머니들은 대체로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A씨는 경기 동두천시의 미군기지 인근에서 작은 주점을 운영하며 혼자 살고 있다. 미국인과 결혼한 딸(44)이 한국을 떠난 지 20여년이 지났다. 정식 결혼으로 얻은 딸이 아니었고, 군인이었던 아버지 얼굴 한번 못보고 자랐지만, A씨는 온갖 정성으로 딸을 키웠다.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에 소질을 보인 딸을 훌륭한 선수로 키워내겠다며 연습과 시합을 꼼꼼히 챙겼다. 허드렛일을 해가면서도 딸 교육만큼은 최우선이었다. 딸을 혼혈아라고 비하하는 사람, 얼굴색을 이유로 딸을 선수 선발에서 탈락시킨 협회 관계자들과 멱살잡이를 한 일도 부지기수다. 어머니의 열성 덕에 딸은 20여년 전 고교졸업 후 국내 실업팀에 진출했다. 하지만 입단 후 3년이 됐을 때 딸은 15년간 해온 운동을 스스로 접었다.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서 접한 차별의 충격에 좌절하고 말았다. 딸은 “이젠 지쳤다”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고, A씨는 그런 딸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A씨는 “딸이 딱히 이유를 밝히지도 않고 운동을 포기했지만 오죽했으면 이러겠나 싶었다”며 “엄마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뜻이었는지 이전까지 딸애는 놀림 당했다는 투정 한번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나는 딸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꿈을 품었던 것”이라며 “지금은 미국에서 비슷한 사람들 속에 살고 있으니 딸애 마음고생이 덜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에 혼혈인 포함
지난 2003년 ‘기지촌 혼혈인 인권 실태조사’를 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시 ▲인종 차별 금지를 위한 정책 마련 ▲혼혈아동의 학교생활 지원 ▲실질적인 복지정책 마련을 권고했다.
연구책임자였던 두레방(기지촌여성인권단체) 상담실장은 “3년이 지난 지금 도 혼혈인들을 위한 정부 정책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며 “각종 차별과 냉대에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3만5,000여 명(펄벅재단 추정)에 달하는 혼혈아동에 대한 교육 지원이 가장 절실한 것으로 꼽혔다.
한국혼혈인협회에 따르면 정부 차원의 소규모 생계지원이 중단된 98년 이후부터는 혼혈아동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 혼혈 1세대의 고통이 혼혈 자녀에게 그대로 이어져 편견과 가난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혼혈인 단체인 국제가족한국총연합 배기철 회장은 “혼혈인은 어렸을 때 놀림이나 왕따를 당해 학교를 그만두는 사례가 많고 저학력 때문에 다시 취업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펄벅재단이 혼혈아들의 학업상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중학교 기준)이 17.5%에 달한다. 이지영 펄벅재단 간사는 “혼혈인은 교육 혜택에서도 소외돼 세대를 거듭할수록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혼혈인을 차별받는 사회적 소수자로 인식하고 취업할당제와 같은 정책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역 의무에서도 혼혈인은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병무청은 지난해 혼혈인이 원하면 현역 입대가 가능하도록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아시아계 혼혈인과 달리 외모상 혼혈이 명백한 백인계ㆍ흑인계 혼혈인들은 여전히 의무 복무 대상에서 제외시켜 ‘역차별’이 여전한 것으로 지적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재 차별시정본부 산하 인종차별팀을 중심으로 혼혈인 차별 개선에 관한 사업계획 수립을 검토하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올해에 제정할 ‘차별금지법’에 혼혈인 차별 금지 내용도 담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혼남녀 “혼혈과 결혼 가능”
미혼남녀 5명중 3명은 혼혈인과 사귀는 것에 대해 선입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회사 피어리(www.piery.co.kr)가 ‘사랑하는 사람이 혼혈인이라면?’ 설문조사를 미혼남녀 3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0%가 ‘상관없다. 사귄다’고 한 반면 40%는 ‘사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대답한 이유에 대해서는 56%가 사랑이 중요. 혼혈이어도 상관없다‘고 답했고 이어 ‘2세의 양육이 고민될 것 같다’(24%), ‘가족들이 싫어할 것 같다’(15%), ‘사회의 편견이 두렵다’(5%) 등의 순이었다.
‘혼혈인과의 결혼이 힘든 이유’에 대해서는 58%가 ‘자녀양육 문제가 고민될 것’이라고 답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고, 성별로는 남성의 66%가 이와 같이 응답해 여성보다 2세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가족들의 반대가 문제될 것’이라는 응답이 27%로 나타났는데, 여성의 경우는 37%로, 16%인 남성에 비해 가족들의 반대를 더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좋아하는 혼혈인이 다니엘헤니, 하인즈 워드같은 스타라면?’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전체 51%가 ‘사랑한다면 상관없다. 결혼한다’고 답했다. 이어 ‘스타라도 혼혈인과의 결혼은 부담스럽다’(17%), ‘동양계나 백인이라면 결혼한다’(16%), ‘부와 명예를 지닌 사람임으로 결혼한다’(15%) 등의 순이었다. 결혼한다는 의견이 66%로 나와 일반적인 혼혈인과의 결혼을 물었을 때보다 긍정적인 답변이 나왔으나 동양계나 백인이라면 결혼한다는 조건부 의견이 16%로 나타나 스타라도 인종에 따라 결혼에 대한 호감도가 다르게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