匠人(장인):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전념하거나 한 가지 기술을 전공하여 그 일에 정통하려고 하는 사람을 말함.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일정한 직업에 전념하거나 한 가지 기술을 전공하여 그 일에 정통한 사람을 ‘장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철저한 장인 정신과 직업윤리의 한 표현이다. 즉 ‘장이’는 순수한 우리말로 전문가를 뜻하며 사람이 전력을 다하여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철저한 장인 정신의 소유자를 말한다.

일제 말기 당시 국수는 전시의 식량으로, 해방 이후 물자가 부족하고 특히,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 밥을 대신하는 주요 식량이 되어 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부산 구포에서 유명했던 구포국수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에 구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구포연합식품(www.gupo.co.kr)의 곽조길 대표를 만나보았다.
“예로부터 다른 지역에서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 국수를 만든다고 해도 구포국수의 독특한 맛을 흉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구포국수는 다른 지역에서 만든 국수에 비해 삶으면 쫄깃쫄깃한데 그 이유는 건조과정에서 바닷바람과 낙동강 바람 등 습기가 많은 구포 지역의 특성 때문이죠.” 이는 그만큼 구포국수가 지역적 영향을 받는 신토불이 명산품이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1950~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려 당시 구포 장터 주변으로는 20여 개의 국수 공장이 있었으며 공장마다 뽑아낸 국수를 장대에 꽂아 길게 늘어 말리는 모습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다른 지역에서 만든 국수가 구포국수로 둔갑하는 유통산업의 문제점과 자동화 시설을 갖춘 대량 생산 및 면류 제품의 다양화 등으로 인하여 구포국수를 만드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구포국수는 우리 고장의 역사를 간직한 엄연한 향토의 명산물로서 옛 명성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향토 사랑의 시작이며 소비자에게 왜곡되어 있는 구포국수의 이미지를 바로 잡아 구포국수의 다양한 상품 개발을 통해 그 맥을 이어 묵묵히 앞장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구포국수’들의 새로운 독자 브랜드는 주로 낙동강 고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잉어표, 숭어표, 붕어표 등 많은 고기종류가 있었지만 곽 대표는 인삼모양이 좋아 인삼표라고 이름을 붙였다. 당시 부산에 남아 있던 대여섯개 업체들과 뭉치자고 약속하고 옛 거북제면에서 구포연합식품으로 이름을 바꾼 게 1990년 초. 하지만 그 후 약속은 흐지부지되고 결국 곽 대표 홀로 구포에 남게 되었다.
“대부분의 국수는 하룻밤 건조해 다음 날 나오지만 인삼표 구포국수는 이틀 만에 완성됩니다. 오늘 면발을 뽑으면 하룻밤 12시간 동안 재우고 다음 날 건조해 이틀 뒤 아침에 자릅니다. 옛날방식 그대로 숙성하고 있습니다. 국수는 면발이 가늘기 때문에 절대 급하게 말리지 말고 서서히 속 수분부터 빠져나가면서 야물게 해야 면발이 더욱 쫄깃해 지기 때문입니다.”
국수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음식인 만큼 숙성뿐만 아니라 그날그날의 습기와 바람에 따라 반죽 단계부터 물의 함량이나 창문 바람 조절까지 달리해야 하는데, 이것은 이론만으로는 힘들다고 한다. 때문에 길게는 이십 년 이상 숙련된 직원들이 뽑아내는 인삼표 구포국수를 진정한 ‘장인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인삼표 구포국수는 1980~90년대만 해도 하루 3~4t씩 생산해 부산은 물론 창원, 울산의 전통시장과 슈퍼마켓에 납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절반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대기업이 대량 생산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대형유통업체의 입점 제안을 거절한 뒤 구포시장 일부와 부산·경남의 국수 전문 식당들에만 주로 납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부산 북구청의 지원으로 조리판매 업체들과 공동으로 조합을 만들고 ‘구포국수’의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상품화 되어 있는 백년초, 녹차, 치자, 메밀외에 디포리 육수와 현미, 검은콩 등을 넣은 건강식 구포국수도 상품화가 될 예정이다.
“구포국수는 단지 수십 년의 맥을 이어온 전통 먹거리로써의 역할 뿐만 아니라 구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역사입니다. 때문에 이런 향토 명산물을 누군가는 이어가야 한다면 3대째 남아있는 인삼표에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가업과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면을 뽑고 있는 곽조길 대표. 그를 통해 이 시대에 점차 잊혀 지고 있는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