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맞아 사랑의 손길이 한파를 녹이고 있다.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에 위치한 중국음식점 성풍관(成豊館)을 운영하는 장학열 대표는 2주에 한번씩 불우이웃들에게 손수 만든 사랑이 가득 담긴 짜장면을 대접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해마다 이웃들을 위해 직접 만든 짜장면은 1만 그릇이 넘는다. 이러한 봉사활동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데 이어 지난 연말에는 도전한국인운동본부가 주최한 ‘제5회도전한국인’(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신년특집으로 짜장면에 얽힌 그의 인생과 봉사철학을 들어봤다.
“어려운 이웃 봉사하고 맛있게 드는 모습이 기쁨이자 보람”
“세상을 너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고, 또 그 만큼 내가 힘들게 살았는데, 나는 지금은 그 분들 덕을 보고 살거든, 세상이 나쁜 거만 있는 게 아니고 좋은 게 많다고.” 중국집 성풍관의 대표이자 한국중식봉사 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학열 회장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소박한 부산 사투리를 써가며 말문을 열었다.

중식당과 탄광, 공사장 등을 돌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경험한 그가 부산 영도에 삶의 터전을 잡은 것은 지난 1987년 12월. 죽기 살기로 힘겹게 살아온 그는 채소 도매업을 하며 부산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그 무렵 장 회장은 영도구 청학1동 주민들이 김치를 만들어 이웃들에게 나눠먹는 것을 봤다. 장 회장은 품질에는 문제가 없지만 상처가 나 팔지 못하는 채소를 이웃들과 함께 나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후 월남 참전용사와 거동이 불편한 이웃들을 찾아다녔다. 짜장면 봉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자신의 중국집을 개업한 1997년부터다. 장 회장은 식당 정기휴일인 매월 첫째, 셋째주 화요일 새벽마다 자신의 차량에 이동식 조리기구들을 싣는다. 휴일에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가족여행이나 자신의 취미활동을 포기한 지는 오래다.
그는 차량을 이끌고 어르신과 장애우, 소년소녀가장 등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한다. 아내와 아들, 딸 등 7명의 가족이 함께 매번 300~500그릇의 짜장면을 만든다. 식당에서 쓰는 것보다 더 좋은 재료를 구입해 만든 정성 듬뿍 담긴 짜장면이다. 그가 해마다 불우이웃을 위해 직접 만든 짜장면은 1만 그릇이 넘는다.
“저에게 중식은 천직입니다. 우리 집에 오시면 곱빼기를 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손님이 달라고 하면 원하는 만큼 더 드리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이웃에 봉사하고 사람들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가장 큰 기쁨이며 보람입니다.”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 전세금 날리고 좌절때 주변서 도와줘
장 회장이 본격적으로 중국집에서 일을 배운 것은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동성원’이다. 처음엔 춘장보이로 일을 배웠고, 나중엔 만두 빚으면서 열심히 일해 중국인 주인의 눈에 들어 주방장 바로 밑 서열인 ‘칼판’까지 올라갔다. 여기서도 중화요리 기술 습득에 부족함을 느낀 장 회장은 서울 응암동의 유명한 요리집 ‘북경’으로 옮겨 요리기술을 섭렵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다.
1년 동안 모든 요리를 조금씩 배웠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 장 회장이 25살 때 경기도 송탄에 미군들이 많은 곳에서 중국집을 개업했다. 1년간을 잘 운영했으나 임대계약 사기를 당해 전세금 600만 원을 몽땅 잃는 좌절도 맛봐야 했다.

장 회장은 지금도 가끔씩 그때를 회상하며 자신은 인복이 많다고 말한다. 성풍관(成豊館)이란 간판 이름도 그 어르신들이 정해주었단다. 당시 식당 근처에 관공서가 많아 손님도 많았는데 여름 한철 바짝 해서 모든 빚을 다 갚았다고 한다.
장 회장은 그때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중국집 운영하면서 단골도 많았다. 10년 이상 찾아온 손님들도 있었다.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중국집을 하고 있을 때 해양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왔단다.
“기숙사 생활을 하니 집에서 용돈이 오기 전에 돈이 떨어지면 돈을 꾸러 오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노트에 적어놓고 갚으러 오고 또 빌려가고 그랬습니다. 어쩌다가 다른 동네에서 짜장면을 먹으려고 연락이 오면 근처 회원 식당이나 장학열 이름대고 먹으로 옵니다. 세상이 나쁜 것만 있는게 아니라 좋은 것이 더 많습니다.”
단체 회장 맡아 2,300명의 회원과 열정적 봉사활동 펴
현재 한국중식봉사총연합회 회장이자 부산중식봉사연합회 회장이기도 한 장 회장은 이제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2,300명의 중식요리사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있다. 장 회장은 일하며 봉사하는 열정적인 인생을 살며, 이웃들 가까이서 꾸미지 않은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훈훈한 사랑을 선사하고 있다. 이런 봉사활동을 지난 1997년부터 해오면서 혹시 매출에 도움이 되는지 물었다.
“결론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내가 봉사를 많이 했다고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내가 힘들 때 많은 분에게 덕을 보고 살았습니다. 분명히 봉사한 것은 되돌아 온다고 믿습니다. 주변의 어르신들이 자식들이 짜장면 한 그릇 시키는데도 ‘니 어데 시키노, 성풍관에 시키라. 사장이 평생을 이래이래 살아왔는데’ 하며 도와주십니다. 지금은 내가 주는 것 보다 받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장 회장은 “초등학교도 못나온 내가 지금은 어디가도 상석에서 대접을 받고 있으니 복을 받은 것 같다”며 “어느 곳을 가도 나는 떳떳하게 편하게 앉아서 밥 한 숟가락 얻어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연합회 사무실에 들어서면 단체를 규정하는 특별한 선언문이 눈길을 끈다. 그가 이끄는 단체에 대한 특별한 선언문이다.
“단체란? 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 나를 위해서 사심을 갖거나 내 주위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그런 단체는 이미 존재 가치가 없다. 모든 단체란 잠시 회원의 위임을 받아 회원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고 나를 버릴 때 원칙과 약속도 지킬 수 있고 단체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도 얻을 수 있다. 몇 번을 읽어도 지겹지 않다. 이 단체만이 국민을 섬기는 자리에 있는 모든 단체를 맡는 분들이 꼭 새겨볼 만한 것이다.”
장 회장은 그동안 쌓아온 봉사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봉사상을 수상했다. 특히 지난해 2월 봉사부문(개인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데 이어 지난 연말에는 도전한국인운동본부가 주최한 제5회 도전한국인(봉사부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장 회장처럼 불우한 이웃들과 함께 나눌려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 사회의 연말연시가 춥지만은 않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