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릇 하나, 수저 한 벌, 심지어 바늘 하나까지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비싼 가격만큼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아끼고 또 아껴 썼고, 고장이 나면 어떻게든 고쳐 쓰려고 애쓰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바야흐로 산업화시대를 맞이했고, 우리는 ‘공산품(工産品)’이 양산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공산품의 사전적 풀이는 “장인(匠人)이 물건을 만들어내다”이지만, 실제적인 의미는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을 의미한다. 많은 양을 동시에 만들어내다 보니 말 그대로 싼값의 물건이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모양과 품질로 쏟아지게 됐다.
끝없이 순환하는 생명체를 만들듯이
공산품의 시대를 부정적인 의미로 평가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물자는 풍족해졌고, 누구나 자신이 가진 여유만큼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다만 아쉬운 점은 공산품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다.

이렇듯 역설적인 시대에 공산품의 장점과 장인의 혼이 동시에 배어 있는 (주)혜덕은 더욱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1995년 설립된 이 회사는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사무용 칸막이를 제작하고 있다. 대부분의 장인들이 생산량 대비 생산비용을 맞추지 못해 경영난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20여 년 가까이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주)혜덕에는 무엇인가 특별함이 숨어 있을 듯 했다.
“사무실 칸막이, 흔히들 말씀하시는 파티션도 세월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이 변화했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한 사무집기로 분류되어 천편일률적인 공정을 거쳐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대량 생산됐지요. 그것에 생기를 불어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과모양의 마크로 유명한 미국의 컴퓨터 회사인 애플은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세상을 점령했고, 천하를 호령하고 있다. 이미 20여 년 전에 (주)혜덕의 배상윤 대표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읽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혜안은 단순한 예측을 넘어 100억대 매출이라는 현실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회사에서 출고되는 제품은 마지막 공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지요. 사무실 한 구석을 지키는 딱딱한 제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고, 은은한 미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생명체를 출산해내는 과정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배 대표의 경영철학은 꼼꼼하면서도 따뜻한 사후서비스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만들고, 팔리고, 버려지는 공산품의 운명과는 달리 (주)혜덕의 사무용 칸막이들은 배 대표와 그가 이끌고 있는 장인들에 의해 끝없이 순환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셈이다.
기능, 프라이버시 그리고 아름다움
(주)혜덕은 경기도 김포의 작은 공장에서 역사적인 첫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치의 한눈도 팔지 않은 채 지난 20여 년 동안 사무용 칸막이만을 만들어왔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세월 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숱한 어려움과 위기를 겪었을 법했지만, 배 대표는 그 신산스러웠던 세월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제가 아닌 오직 오늘과 내일을 위해 뛰다 보니 어느덧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있더라는 이야기다.
제조업에 있어서 연구개발 분야는 ‘내일’에 대한 확고한 자신과 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이에 (주)혜덕과 배 대표는 매년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왔다. 특히 신경을 써서 몰두하고 있는 분야는 다름 아닌 디자인이다.
“사무용 칸막이는 단순히 공간을 분할하는 기능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실용성과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미적인 기능을 충족시킬 때 완벽한 제품이라 할 수 있지요. 실용성을 비롯한 각종 기능은 쌓아온 생산 노하우로 점점 향상되지만, 디자인은 고스란히 시대를 반영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배 대표의 말대로 (주)혜덕이 쌓아온 기능적 노하우는 그리 녹록치 않다. ISO9001은 물론이고 조립식 파티션 K마크 획득, 특허우수제품 조달청장상, 100대 우수특허제품상, 2009년 대한민국베스트신상품 등 이른바 ‘업계의 선두’에 걸 맞는 숱한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그러나 배 대표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앞서 그가 언급했던 것처럼 이 일이 생명을 품은 유기체를 낳듯 이어가는 것이라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다만, 그는 보다 완벽해질 수 있는 ‘과정’이라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블록형 풀파티션 ‘HB082’가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회사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시공이 간단하고 빠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이 제품에는 블록 모듈 시스템이라는 신개념이 적용됐다. 말 그대로 블록의 틈새를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패널과 프레임을 연결할 때 못과 볼트 그리고 실리콘 등의 별도 부자재가 필요한 기존의 일체형 파티션과 비교하자면 매우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제품이라 할 수 있겠다.

“꿈이 아직 많습니다.
흔히 꿈은 잠을 잘 때 꾸는 것이라 하지만, 저에게는 내일을 위한 목표이자 제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것을 하나씩 현실 속으로 꺼내놓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지금 제가 꾸고 있는 꿈은 유리와 알루미늄프로파일로 구성된 노바이탈리아 신제품의 시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늘 그렇듯 시장은 신제품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대중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니듯 끝없이 먹이고 보살피는 가운데 어른으로 자라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제가 꾸고 있는 꿈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 무렵 배 대표의 집무실 벽면에 가득 붙은 각종 설계도면과 그의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서류뭉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주)혜덕의 미래였고, 배상윤 대표의 꿈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이 그들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매하고 활용하게 될 소비자, 바로 우리의 미래라는 것이 묘한 흥분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