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실세, 농부 강기갑에게 덜미 ▲ 선거 초반 강기갑 후보가 출사표를 냈을 때는 ‘달걀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훨씬 더 많았다. 심지어 투표 마감 직후 공개된 4개 방송사 출구조사 때 어느 한 곳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의외적인 일이었다. 승리를 자신한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에 맞선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불과 178표차로 당락을 갈랐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이변으로 꼽히는 지역구는 바로 경남 사천이다. 여당의 실세,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이방호 의원이 진보진영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에게 덜미가 잡힌 것이다. 선거 초반 강기갑 후보가 출사표를 냈을 때는 ‘달걀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훨씬 더 많았다. 심지어 투표 마감 직후 공개된 4개 방송사 출구조사 때 어느 한 곳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의외적인 일이었다. 승리를 자신한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에 맞선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불과 178표차로 당락을 갈랐다. 강기갑 의원 자신마저도 당선되리라 장담하지 못한 입장에서 이는 “사천도 놀라고, 대한민국도 놀랐다”고 할 만큼 큰 이변이었다.
선거초반 여론조사에서 두 배 이상 밀리던 강 후보는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에서도 패배한 것으로 나왔지만 결국 ‘각본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전국농민총연맹 경남의장 출신인 강 후보는 한미FTA반대 단식농성 등 온몸으로 농민과 진보의 입장을 대변하며, 농민층과 노동자들이 많은 사천에서 기반을 다져온 것이 이번 선거에서 큰 역할을 했다. 더군다나 선거 중반 이후 당지도부의 집중적 지원과 한나라당 공천파동에 따른 박사모의 이방호 의원 낙선운동 등이 선거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고난의 가시밭길, 엇갈린 운명의 두 후보자들
진보정당 불모지이자 한나라당의 전통적 강세지역인 경남 사천은 강 의원의 승리로 울산·창원에 이어 또 하나의 진보 메카로 부상했다. 강 당선자는 “한 표 한 표는 오만한 권력에 대한 심판이자,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세상을 열라는 엄중한 주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섬김의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개인의 당선으로 볼 수 없다. 사천 시민들의 위대한 승리”라며 영광을 지역민에게 돌렸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농·어민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면서도 “앞으로 고난의 가시밭길을 가야 한다는 사명,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한나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못된 지역당 병폐가 있었다. 지역 유권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선거농사 지으면 선거 끝나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에 천대와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4년 농사 망치는 건데 어느 종자가 알곡이고 쭉정이인지, 씨나락 종자 가릴 때 소금물에 띄워 쭉정이는 걷어내 파종하지 않느냐’고 200개 마을 돌아다니며 설득했다. 여기에 지역민들이 동의했고, 새롭게 하자는 바람이 사천으로 모였다”라고 이번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을 밝혔다.
한편 공천심사에서 좌지우지하며 국민들의 미움을 받았던 이방호 의원은, 이명박계 핵심이자 한나라당 사무총장까지 맡고 있는 상황에서 낙선함으로써 충격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방호 의원은 모 지방지와의 인터뷰에서 “새끼들을 낳고 나면 마지막에 어미가 산화하는 법”이라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 뒤, “결과를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냐”고 담담히 심경을 밝혔다. 이 의원은 최근 한나라당 영남권 의원들과 만찬 회동을 갖고 향후 진로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 실세들이 대거 총선에서 낙마한 한나라당은 전반적인 당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
‘사천의 기적’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53년 사천에서 태어난 강 의원은 1971년 사천농고를 졸업하고, 공무원을 하라는 아버지와 형의 권유를 뿌리치고 젖소와 과수를 기르며 농민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976년 한국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면서 농민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강 의원은 고향 사천에서는 농민회를 만들었다. 지역 농민회를 이끌던 그는 200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의 결성과 함께 전농 부의장, 경남도연맹 의장, 농가부채대책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각종 농민운동을 주도했다.
강 의원은 지난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직후부터 고향인 사천에서 표밭을 갈았다. 지난해부터는 사천 쪽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150여 차례에 걸친 의정보고회를 열었다. 강 의원 측근의 말에 따르면 “보고회 때 ‘우리 마을에 국회의원이 찾아온 건 처음’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강 의원이 열악한 농촌의 현실을 털어놓는 주민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그 자리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서울 강서구에 있던 전셋집까지 빼 잠자리가 없었던 강 의원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해결했다. 보다 못한 보좌관들이 연대해서 5천 만 원을 빌렸고, 선관위 선거 기탁금 1,600만 원도 이런 식으로 간신히 낼 수 있었다.
강 후보 쪽은 돈은 없어도 전략이 있었다. 한나라당의 구호인 ‘잃어버린 10년’을 패러디한 ‘잃어버린 8년’을 주제어로 내걸었다. 재선 이방호 후보가 8년간 제대로 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강 후보는 후반에는 두루마기를 벗고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낡음’이 아닌 ‘젊음’의 이미지를 주자는 목적이었다. 진주 경상대 앞에서 원더걸스의 ‘텔미’에 맞춰 춤까지 췄다.
상대적으로 이방호 후보는 지역 관리에 느슨했다는 게 중평이다. 이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에도 당 사무총장으로서 공천을 진두지휘하며 중앙 정치에 몰입하다 막판에야 유세를 시작했다. 거기에다 결정적인 것은 그가 주도한 ‘공천’의 역풍이었다. 경남 지역의 공천 탈락자들과 박근혜계 의원들은 이방호 총장을 공천 파동의 주범으로 꼽았다. 특히 남해의 박희태 의원 공천 탈락에 남해 주민들의 반감이 만만치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사천의 놀라운 결과를 보면서 한 전문가는 “이번 총선에서 강기갑 의원의 당선을 가장 높게 평가합니다. 그는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기 문제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라며 앞으로 진보세력들이 나아갈 향방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