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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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시사매거진
  • 승인 2003.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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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인터넷 검열, 도·감청 등 생활 속으로 들어온 감시시스템에 ‘유리병 안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우울한 자화상
무인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은행 점포, 은행강도들의 범행장면이 감시 카메라에 포착돼 체포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은행 직원이나 불특정 다시 고객에게는 사생활 감시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조지 오웰의 공상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빅브라더(大兄, Bigbrother)는 감시카메라를 통해 인민들을 24시간 감시한다. 이 내용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인공위성이, 현관의 전자자물쇠가, 백화점·은행의 폐쇄회로TV가 끊임없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유리병 안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검퓨터 관련 회사의 45%가 직원들의 활동을 온라인으로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한 설문에 의해 밝혀졌다. 또한 트럭회사의 3분의 2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트럭의 위치와 운행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컴퓨터 회사의 경우 ‘게이트키퍼(gate keeper)’같은 프로그램을 이용 직원들의 전자우편, 컴퓨터 파일, 전화통화 등을 감시한다. 이는 개인 사생활 보호 문제와 충돌할 우려가 크지만 회사내 컴퓨터는 회사 소유이기 때문에 지난해를 기준으로 미국법상 커네티켓주를 제외하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검사가 가능하게 돼 있다. 회사측은 또 음란물 열람 등 직원들의 부당한 근무 태도 역시 감시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들의 업무의 효율성·정확성을 높이자는 취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근로자들의 사생활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터에서 일상적 감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첨단 기술에 의해 자신의 노동과정이 감시당하고 있다. 증권사의 경우, 거래 주문 담당 직원들은 고객과 통화하는 모든 내용이 녹음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전화통화내용을 녹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거의 전 지점에 설치해 놓았다. 증권사들은 “금융분쟁방지와 고객 및 직원보호 취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며 문제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직원들은 “녹음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사생활 보호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인터넷의 확산은 새로운 감시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온라인 감시체제이다. 실제로 정보통신부와 경찰청, D통신, H신문 등 40여개 기업에 보안솔루션을 공급한 소프트웨어업체 W사 관계자는 자사의 제품이 “원래는 침입탐지 시스템이지만 실시간 메일 감시 등의 기능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제품은 메일의 첨부파일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각각의 사용자가 키보드로 무엇을 입력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유명 S기업의 경우 특정한 단어들을 ‘키워드’로 입력해 놓고 키워드가 들어있는 E메일이 들어오면 버저가 울린다.
서비스업계도 마찬가지다. 한국통신 안내사업부 관계자는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전국 10개 지역마다 무작위로 뽑아 114안내원들에게 고객을 가장한 전화를 걸어보고 있다”며 “덕분에 고객에 대한 안내원들의 친절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통신은 분기별로 포커스를 실시해 부서단위로 내부평가를 하지만 안내원 개개인에 대한 평가자료로는 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6월 노동조합이 이 제도를 “노동자의 업무를 감시하는 제도”라며 반발한 것을 계기로 개개인은 평가대상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한데 따른 것이다. 과거에는 개개인의 친절도평가에 따라 안내원은 인사와 급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해왔다.
시내버스, 공장 작업장, 증권사, 정보통신업체 등 대기업 등에서 보여지는 감시 사례들. 단순히 일부 일터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사례들로만 여길 수 있을까? 이들 사례는 정보기술 등 각종 기술의 발달로 어느덧 우리 생활 속으로 감시시스템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실례들이다.

‘몰카’신드롬을 일으킨 CCTV(Closed Circuit Television, 폐쇄회로 텔레비젼)
우리나라 무인 감시카메라 설치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법규는 ‘주차장법’이 유일하다. 시행규칙 6조 10항에는 ‘주차대수 30대를 초과하는 규모의 자주식(自駐式)주차장으로서 지하실 또는 건축물식에 의한 노외(路外)주차장에는 관리사무소에서 주차장 내부 전체를 볼 수 있는 폐쇄회로 텔레비젼 및 녹화장치를 포함하는 방범설비를 설치·관리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CCTV는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에 친숙한(?) 기기가 됐다. 주차장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몇번씩 무슨 이유에서든 카메라앞에 찍히기 때문이다. 은행, 슈퍼, 백화점 혹은 무심히 지나쳐왔을 길에서조차 카메라는 어김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가장 흔히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교통 감시용 무인카메라다. 경찰청은 전국의 과속 예상지역, 사고다발(多發)지역 등에 모두 441대의 감시카메라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성남시의 경우에는 불법 주정차와 난폭운전을 뿌리뽑기 위해 무인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단속차량을 운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산불단속을 하기위해 산림청에서는 산불 감시용 무인 카메라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발생한 전남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의 산불을 무인 카메라가 조기 발견, 피해면적을 줄일 수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의 D운수는 버스. 운전석 머리꼭대기에 달린 폐쇄회로TV(CCTV)가 달려있다. 운전수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일거수일투족을 판박이처럼 담아낸다. 버스문이 열릴 때나 승객이 요금함에 돈을 넣거나 할 때면 천장에 달린 센서를 통해 어김없이 카메라가 돈다. 카메라는 운전석은 물론 뒷문까지 모조리 담아내고 있다. D운수 관계자는 “운전기사들의 ‘삥땅’을 막고 기사들이 담배를 못 피우도록 하는 등 운전상 안전을 위해서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말하지만, 운전기사들은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불쾌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D운수의 차량에 설치된 카메라는 버스 안 승객의 표정도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거동 하나하나가 테이프에 기록돼 누군가가 살펴보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이 있을까?
CCTV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단순히 범죄예방, 안전을 위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순기능이 있는 곳에 역기능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 무인 카메라는 단순히 문명의 이기(利器)를 넘어서 변질되고 있다. 얼마전 노조 사무실과 회의실 등에 도청장치와 몰래 카메라 등을 설치, 노조 활동을 감시하며 노조를 와해시키려 한 악던 기업주가 검찰에 적발됐다. 또한 몇해 전에는 백화점 여자화장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건이 있어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감시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사회가 우리 한국사회다
벗어날 수 없는 숫자

주민등록제도는 1968년 도입돼 30여년 동안 시행해 온 제도. 한국 국민은 태어나면 1달안에 행정관청에 이름, 성별, 출생일, 부모의 이름과 본적, 주소 등을 신고해야 한다. 출생신고를 받은 관청은 아기에게 13자리의 번호를 부여한다. 이 번호는 그의 일생동안 절대 바뀌지 않는다.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변별점이 이 주민등록번호인 것이다. 의료서비스를 받을 때나, 행정서비스, 교육서비스 등을 받을 때도, 일반 금융거래에서도 우리는 수시로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야 한다. 한마디로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사회가 우리 한국사회다.
특히 동사무소에서 보관하고 있는 개인별 주민등록표는 그 개인의 총체적 정보체이다. 이름, 생년월일 등 기초정보는 물론 자라면서 정보는 계속 추가되는데, 혈액형, 혼인여부, 배우자 이름, 군입대 여부, 예비군 훈련상황, 개인별 주소이동상황, 학력과 직업도 기록된다. 무려 그 항목이 140여개. 그런데 이 항목 가운데 73개 항목과 전화번호, 의료보험증 번호, 호주변경사유 등 5개 항목이 추가돼 모두 78개 항목의 정보가 국가행정전산망에 수록돼 국가행정기관이 공유하게 된다. 주민등록번호는 한국사회에서 그야말로 국가가 언제나 ‘빅브라더’로 변할 수 있는 핵심적인 감시제도이다.
태어날때부터 의례 가지고 있는 이 주민등록제도에 대해 이 정도로 생각할 필요가 있냐라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의 우리의 호적제도가 비정상적으로 확대발전한 것이다. 세계 어디에 혈연관계를 기초로 한 호적제도 같은 게 있는 나라는 없다. 번호를 통해 자국민을 구분, 관리하는 나라는 미국 스웨덴 등 북구뿐이다. 그들에게는 사회보장번호로 우리처럼 전 국민을 통제하는 식별기호는 아니다. 우리의 일상과 내면에 너무나 깊숙이 스며들어 본격적으로 국가 감시망이란 차원에서 문제를 삼지 않게 되버렸다.

지문날인을 거부한다

경찰은 일찍부터 만 17살 이상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을 컴퓨터에 전산입력해왔다. 전국민의 지문날인은 범인색출과 변사자 신원 확인작업의 시간을 줄여 경찰수사 업무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지문감식기만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지문날인은 범죄자나 외국인의 감별을 위해 쓰이고 있다. 실제 지문날인은 범죄자를 지문 하나로 신속히 잡을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박정희 군사정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범죄자 색출을 위해 도입됐다고 보기는 어렵
다.
지난해 이러한 이유로 “민주국가에서 모든 국민에게 지문을 등록하도록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며 지문날인 거부 운동이 있었다. 지문날인제도는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며,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지문날인 거부운동은 지문날인 거부선언을 한 이후 본격화되어 지난해 9월에는 지문날인제도와 지문전산화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유리병 안으로의 탈출

엿보기, 감시사회는 필연적으로 그늘을 만들어낸다. 얼마전 비전향 장기수의 자살은 이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초저녁 일찍 잠에 드는 사람과 같이 내 인생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평생 감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죽음으로 그 그늘을 벗어나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매일매일 감시시스템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나를 감시한다. 누군가, 국가가 나를 미행하고 있다’고 호소하며 정신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몰카 공포증이 확산되면서 ‘몰카 탐지정비’를 생산하는 업체,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성업 중이다. 몰카 탐지기는 가격이 10만원선이며 월 1000개 정도 판매되고 있으며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에서 몰카 탐지기를 구입하고 있기 때문에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에는 도로상에 새로 설치된 교통 감시용 무인 카메라의 위치를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도 등장하기도 했다.
날로 발전하는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누리는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기술이 꼭 편리함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것 같다. 우리의 사생활은 ‘유리병 안의 인생’과 같아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경거리가 많은 사회가 아니라, 엿보기·훔쳐보기가 주를 이루는 감시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유리병 안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기계에 의한 사회가 아닌 인간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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