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을 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대선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11월23일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한다고 밝혔다. 선거를 26일 앞둔 상황이었다. 기존의 3자 구도가 박근혜-문재인 양자구도로 재편됐다. 안 전(前) 후보는 이날 저녁 서울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한다”며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라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사퇴 배경, 단일화 협상 결렬 때문인 듯
안철수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은 시종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였다. 그는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을에 대해 저를 꾸짖어주시고 문 후보께 성원을 보내 달라”고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또한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며 향후 행보를 암시하기도 했다. 끝으로 안 전 후보는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불러주신 고마움과 뜻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잠시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안 후보가 전격 사퇴한 것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결렬이 가장 큰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후보 등록일을 불과 이틀 앞둔 이날까지 양측이 단일화 방식에도 합의하지 못한 채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안 전 후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책임감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1월6일 두 후보는 첫 회동을 갖고 후보등록일 전 단일화를 합의한 후 13일 경선룰 실무협상팀을 꾸렸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파행을 빚어왔다. 급기야 실무협상팀 활동 하루 만인 14일, 안 전 후보 측에서 ‘협상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문 후보 측에서 이른바 ‘안철수 양보론’이 언론에 보도되고, 민주통합당 차원에서 문 후보 지지를 독려하는 문자메시지가 돌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협상중단 닷새 만인 19일 가까스로 실무협상팀이 재가동됐지만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방식문제를 두고 양측이 평행선을 그어왔다. 22일에는 두 후보가 비공개로 3차 회동을 가지고 담판을 시도했지만, 여기서도 입장차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 급기야 안 전 후보는 22일 밤 기자회견을 열고 ‘가상 양자대결’+‘지지도’ 여론조사를 마지막 방안으로 제안했지만 문 후보 측에서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이날에는 실무협상팀 외에도 별도의 특사까지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극적인 타격에는 결국 실패한 셈이다.
朴-文 양자구도, 안철수 지지율은 누가 가져갈까
이제 선거구도는 박근혜-문재인 후부의 양자구도로 재편됐다.
박근혜 후보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이며, 문재인 후보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친구였다는 점에서 두 전직 대통령이 간접적으로 대결하는 형국으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무당파 및 중도층으로 요약되는 안 전 후보의 지지층이 어디로 얼만큼 흡수될 것인가가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사퇴 직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안 전 후보의 지지자들 중 무당파 유권자들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이들의 지지세가 문 후보에게 흡수될 경우 보수 대 중도 및 진보라는 구도를 만들어내면서 문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안 전 후보의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는 과정에서 야권 성향 유권자들이 문 후보로 결집하는 추세를 보인 바 있어 문 후보 측에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 중도 및 중간층의 지지세가 박 후보에게 몰리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안 전 후보의 사퇴의 결정적 요인이 단일화 협상결렬이었다는 점에서 민주통합당과 문 후보에 대한 실망을 표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지세가 몰리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겠지만, 안 전 후보 지지자들이 아예 투표를 포기 하는 것 또한 박 후보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가장 긴장하고 있는 쪽은 문 후보 캠프 측이다. 안 전 후보 측에서 한 차례 협상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22일 두 후보 간의 담판회동 역시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나온 전격적인 사퇴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지지하며 성원을 부탁하긴 했지만, 안 전 후보의 지지자들이 충분히 승복할 수 있는 승부과정 없이 일방적인 양보로 단일화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향후 안 전 후보 지지자들의 반응을 예단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또한 단일화 룰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양측 사이에 패인 감정의 골이 외부에 노출된 데다 안 전 후보 캠프에서 “노회한 민주당의 전략에 무릎을 꿇었다”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후보 캠프 측은 안 전 후보의 중도 및 무당파 지지자들을 흡수할 수 있는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의 다음 행보는
안 전 후보는 전격 사퇴를 선언한 뒤 지방으로 내려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곳에서 향후 행보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관심사는 사퇴 당시 지지의사를 밝힌 문재인 후보와의 관계이다. 그를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지에 대한 일체의 내용이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향후 안 전 후보의 거취에 따라 그를 지지했던 중도, 무당파층의 표심이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안 전 후보의 지지층 가운데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은 자연스럽게 문 후보에게 흡수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도를 표방하는 무당파 지지층이다. 당초 안 전 후보가 ‘새 정치, 개혁의 정치’를 표방하며 유입된 지지층인 만큼 기존 정당 소속인 문 후보에게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적지 않은 규모의 표심이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안 전 후보가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기자회견 내내 격앙된 목소리로 단일화 과정의 문제점을 언급한 점을 상기해 보면 일단 안 전 후보다 문 후보 측 캠프에서 공식 직책을 맡아 직접적인 지원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안 전 후보 캠프 측 관계자는 “단일화 실무협상 과정에서 문 후보 측으로부터 안 전 후보 본인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면서 문 후보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것으로 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와 만난 뒤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해 후보 양보를 선언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혼자서 회견을 진행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만약 예상과 달리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펼치려면 두 후보 간 가치연대와 정책연대를 기반으로 한 ‘국민연대’의 틀이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11월18일 발표한 ‘새정치공동선언문’에 단일화 이후 정권교체를 위해 국민연대를 이룬다는 합의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발표한 ‘새정치공동선언문’ 중 ‘국회의원 정수 조정’이라는 문구를 놓고 양측이 큰 입장차를 보이는 등 연대의 결집도도 약한 측면이 있어 이를 낙관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안 전 후보의 ‘지방칩거’는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곧 상경하는 대로 문 후보 지원 여부와 그 범위 그리고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후보 측 관계자는 지난 11월25일 “안 전 후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예상할 수 없다”면서 “휴식이 끝나야 어떻게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신드롬’의 시작부터 후보사퇴까지
안철수 전 후보가 정치권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1년 9월2일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서울시장 출마의사를 밝히며 초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그의 지지율은 50%를 가뿐히 넘기며 4년 간 지속되어 오던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했다.
당시 새누리당 측 서울시장 후보였던 나경원 후보를 꺾을 비여권의 다크호스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 전 후보는 지지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하던 당시 박원순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박 후보가 더욱 서울시장으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양보의 이유를 밝혔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의 간곡한 만류와 본인의 망설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안 전 후보는 불출마 선언과 동시에 후보직을 박원순 당시 후보에게 양보하는 형식을 취했다. 50%의 지지율을 가진 사람이 5%의 지지율을 가진 사람에 모든 것을 양보했다는 사실에 유권자들이 큰 충격과 함께 감동을 받았다. 이후 이 일은 ‘아름다운 양보’라는 말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당초 지지율 5%에 머물던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 또한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에도 이른바 ‘안철수 열풍’은 쉽게 식지 않았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대선주자로 부각됐고,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선 출마는 가당치도 않다”며 선을 그으면서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후 1년 동안 실체 없는 40%대 지지율이 그를 휘감았다.
공식적인 정치활동은 전무했지만, 이와 유사한 행보는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대학을 순회하며 강연을 펼치는 한편, 각종 저서를 출간하고 방송에 출연하는 등 정치활동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보를 이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2011년 11월14일,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안랩의 지분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해 12월1일에 기부방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안 전 후보는 신당창당을 추진하지 않고, 총선에도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정말 정치에 뜻이 없다는 분석이 있었던 반면, 대선이라는 더 높은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지난 7월19일엔 저서 ‘안철수의 생각’을 발간하며 다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책을 통해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처음으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9월19일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 이후 야권지지자들은 물론이고, 각 재야단체들이 안 전 후보에게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를 이기도 야권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단일화라는 전술적인 연합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민주통합당 측에서도 이에 공감해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11월4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안 전 후보를 향해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는 약속만이라도 하자”는 제안을 처음으로 던지면서 단일화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다음날 안 전 후보는 전남대 강연에서 이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틀 뒤 두 후보는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만나 새정치공동선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는 사실상 단일화 논의의 시작이었다.
11월11일에는 선언문 작성과 함께 본격적인 후보 단일화 룰에 관한 협상을 시작하는데 합의하고 13일부터 협상에 돌입했다. 하지만 시작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안 전 후보 측은 “문 후보 측의 겉의 말과 속의 행동이 다르다”며 단일화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문 후보는 즉각적으로 “우리 쪽 캠프 사람들이 뭔가 안 후보 측에 부담이나 자극을 줘 불편하게 한 일이 있다면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리고 싶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테니 다시 단일화해 나가자는 말씀을 안 후보 측께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 재개는 요원해 보였다.
다급해진 민주통합당은 이해찬 당대표 등 지도부 총사퇴와 함께 “안 후보에게 단일화 방식 결정을 일임하겠다”는 초강수를 내놨다. 그리고 결국 안 전 후보 측은 협상장으로 돌아왔다. 이후 두 후보는 TV토론과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화하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문 후보 측의 ‘적합도 조사+가상대결안’과 안 전 후보 측의 ‘지지도 조사+가상대결안’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안철수의 새정치에 관한 꿈과 실험은 일단 거기까지였다. 그는 11월23일 저녁 기자회견을 열고 전격적으로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 그는 “비록 새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불러주신 고마움과 뜻을 결코 잊지 않겠다” 말해 완전한 정계은퇴가 아님을 암시했다.
朴-文 후보등록일 첫날 등록 마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후보등록 첫날인 11월25일 등록절차를 완료하고 사실상 본선에 돌입했다. 이날 두 후보는 각각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등록을 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11월23일 전격 사퇴함에 따라 중도 및 무당파층을 끌어안고 승기를 거머쥐기 위한 두 캠프의 치열한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셈이다.
두 후보는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는 11월27일부터 22일 동안 선거운동을 펼치게 된다. 정권재창출을 노리는 새누리당과 정권탈환을 목표로 삼고 있는 민주통합당의 접전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후보는 후보 등록 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의 뜻에 보답하고자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고 모든 국민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민의 선택을 받으려고 한다”며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저의 정치 여정을 마감하려고 한다”고 밝혀 사실상 정치적 배수진을 쳤다. 이어 서병수 사무총장 겸 선대위 당무조정본부장과 조윤선 대변인을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에 보내 후보등록을 마쳤다.
문 후보 측도 이날 오후 우원식 캠프 총무본부장이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를 방문해 후보 등록한 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문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갈망한 새 정치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 됐다”며 “그 힘으로 정권교체와 새 시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문 후보는 “야권 단일후보의 막중한 책임, 정권교체의 역사적 책임이 제게 주어졌다”며 “무거운 소명의식으로 책임을 감당하고 반드시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안 전 후보 지지 세력, 후보단일화를 염원했던 모든 분들과 대한민국 미래를 바꾸는 국민연대를 이루겠다”며 “민주화세력과 미래세력이 힘을 합치고, 합리적 보수 세력까지 함께 하는 명실상부한 대통합 선거진용을 갖추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