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9일(현지날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양곤대학에서 연설을 통해 “이곳 양곤에서 나는 아시아를 가로질러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며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는 북한 지도부에 핵무기를 손에서 놓고 평화와 진보의 길을 선택하라고 제의해 왔다”며 “그렇게 한다면 민국이 손을 뻗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한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대북 메시지어서 관심이 집중됐다. 더구나 그곳은 50년 군부독재와 국제적 고립 끝에 민주화 과정을 밟고 있는 버마였다.
“북, 핵 버리고 평화·진보의 길 택하라”
버마를 방문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9년 취임 당시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당시 그는 민주적 선거와 양심수 석방, 시장개방 등 최근 버마가 보이고 있는 변화를 언급하며 “버마에 우정의 손을 내민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미국 원조개발청 사무소를 버마에 재개설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버마 정부가 자국민들의 민생을 챙기는 데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 지난 재선을 위한 대선기간 동안 북한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재선 성공 이후 첫 해외순방지였던 버마에서의 언급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집권 1기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이 지역이 한반도가 소재하고 있는 아시아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끈다.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관한 공식 논평을 일체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노동신문을 통해 우회적이고 유화적인 신호를 내치비고 있을 뿐이다. 지난 11월19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조선반도 평화보장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제목의 개인 논설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면 ‘조선’과 미국 사이에 신뢰 조성이 이뤄질 수 있고, 호상(상호)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기초한 관계 개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먀 “대화와 협사을 통해 조선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공통된 지향으로, 시대의 절박한 요구”라고 썼다.
이와 함께 이 논설은 “미국은 조선반도 핵 문제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기본 당사자이다.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조선반도 핵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상적으로 어떤 요구를 내놓고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게 북한의 논설방식이었는데, 단지 ‘적대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핵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요지의 다소 부드러운 화법을 쓴 것은 인상적인 대목이다.
한편 우리 정부의 6자회담 차석대표인 이도훈 외교통상부 북핵외교기획단장은 11월20일 미국을 방문해 클리퍼드 하트 미 국무부 6자회담 특사를 만나 향후 대북정책 공조를 협의했다.
미국의 대북전략 변화 있을까
이렇듯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공식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것과 관련하여 미국의 대북전략이 바뀌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북한이 핵을 먼저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당초 미국이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이후 북한에 대한 ‘전략적인 무시’로 일관해 왔다는 점에서 전향적인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특히 그의 발언 중 “과거의 감옥에 의해 규정될 필요는 없다”는 대목도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기 집권 중 초기에 북한과의 직접 대화방침을 표명했다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 정책을 수정한 바 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활동 중단과 미국의 식량지원을 합의한 2012년 2.29합의 역시 광명성 3호 발사 이후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연설이 더욱 주목을 끄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과거를 모두 덮어두고 새롭게 협상을 시작해보자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버마에서 북한을 지목해 발언한 것은 확실히 북한에 메시지를 건네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본다”며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를 이행한다는 전제로 대화에 나서면 미국도 손을 내밀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내부적 관점에서 봐도 의미가 깊다. 미국의 외교, 안보 고위관리들은 최근 오바마 2기 정부의 외교정책 중심이 아시아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를 잘 풀어가기 위해서는 동북아시아의 긴장의 핵심인 북한 핵문제를 배제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북한으로서도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경제 안정화가 절실한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렇듯 북한과 미국이 절묘한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는만큼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외교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다. 오바마도 북미협상의 과거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가 대북정책을 바꿀 가능성도 있고, 비핵화와 상관이 없는 버마와 북한은 근본적으로 다른 처지에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변화를 쉽게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버마, 같으면서도 다르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버마식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버마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핵을 포기하면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할 수 있으며 미국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요지인 것이다.
과거 버마는 오랜 기간 동안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태로 지내왔다. 이후 테인 세인 정부가 수립된 이후 본격적인 개혁, 개방에 나선 바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적극적인 유인책을 펼친 결과 국제원자력기구의 핵 사찰도 수용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국제개발처를 통한 1억7,000만 달러를 지원했고, 버마제품에 대한 금수조치 해제를 약속했다.
버마 정부의 개혁, 개방정책 덕분에 다국적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몰려들고 있다. 이러한 오바마 정부의 ‘버마 모델’은 앞서 ‘리비아모델’을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조지W부시 행정부의 대북접근 방식과 닮은꼴이다. 리비아는 2003년 말, 대량살상무기 우선 폐기를 선언한 이후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나선 바 있다. 이에 미국은 리비아 통상, 직항, 수입 금지를 해제했고, 자산동결 조치도 풀었다. 이 결과 미국과 리비아는 2006년에 이르러 국교정상화의 결실을 맺었다.
이에 당시 부시 정부는 북핵문제도 리비아 사례와 비슷하게 풀어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쏟아졌다. 하지만 북한이 핵 포기를 거부하면서 사실상 해당 정책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북한은 먼저 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핵 포기와 미국의 적대정책의 포기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이후 수차례 열린 6자회담에서도 이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 비밀접촉에서도 북한은 같은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의 ‘버마 모델’이 북핵문제 해결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1월20일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은 버마에 비해 한층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고 독재가 심한 국가이기 때문에 정상 국가로 만들기는 훨씬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에는 아웅산 수치 여사처럼 잘 알려진 민주화 지도자가 없고, 미얀마 개혁, 개방의 단초가 된 2007년의 대규모 시위 조짐도 없어 북한 민주화를 지원하려는 미국의 물밑 움직임 역시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시진핑 시대의 한중, 북중 관계는
최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본격 개막하면서 향후 한반도에 끼칠 영향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외교전문가들은 일단 한중관계에 있어서는 교류와 협력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시진핑을 비롯해 5세대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 모두 한국 방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 신임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그동안 우리나라를 3차례나 방문했으며 중국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자유치를 위해서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도모해온 바 있다. 당서열 2위로 올라선 리커창(李克强) 역시 2005년 9월과 지난해 11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5월, 중국을 국빈 방문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만나 한중관계를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이후 양국은 ‘외교, 국방차관 전략대화’를 매년 1차례씩 열어 양자문제 뿐 아니라 지역문제와 국제문제에 대해 전략적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북중관계는 조금 복잡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북한과 중국은 전통적인 혈맹관계였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기존의 관계지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을 일컫는 ‘G2'시대가 본격화 됨에 따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상에 걸맞게 북한을 관리해 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핵개발이나 대남 도발 등에 대한 억지정책을 펼칠 가능성도 높다. 실질적 관점에서보자면 이러한 조치들은 북중관계보다는 미중관계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정책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한층 가열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에 기반을 두면서도 한중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은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외교를 펼쳤다면,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국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만큼 한중협력을 보다 긴밀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을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중국도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편다면 한중관계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한미동맹에 너무 지나치게 치중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보다 너무 이념에 치중한 대북 강경책을 편다면 한중관계도 악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北日, 안전보장과 납치문제 관련 국장급 회담 개최
지난 11월16일 북한과 일본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이틀 일정으로 국장급 회담을 열고 북핵문제를 포함한 안전보장과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심화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북일 국장급 회담에 참석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은 기자단에게 “북일 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등 안전보장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심화하는 데에 합의했다”고 밝히고,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를 위해 앞으로도 협의를 계속하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북한 측에서는 송일호 조일국교정상화 교섭담당대사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대사 역시 전날 “진지하고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고 밝힌 바 있다. 북일 간 외교 정책에 실질적 협상 권한을 가진 국장급 이상의 고위급 회담은 지난 2008년 8월 이후 처음 열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