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별 예비주자 지지도 변화 나타나
신년 벽두부터 여야의 차기 대선주자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유력 예비주자들의 지지도 추이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난 것.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독주가 강화되면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선두그룹에서 밀려났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주춤거리는 가운데, 김근태 의원이 바닥에서 치고 올라가고 있다.
이명박 시장의 기세는 더욱 강화됐다. ‘대세론’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동안 이 시장은 박 대표와 2강 구도를 형성했으나 새해 들어서는 아예 독주체제를 갖췄다. 한나라당 내부는 이명박-박근혜-손학규 순으로 수직계열화 됐다.
‘차기 정치인 호감도 조사’에서도 이 시장의 강세는 두드러진다. 이름을 제시하지 않은 ‘비보조선호도 조사’에서 1004명의 응답자 중 ‘이명박’을 꼽은 이가 218명(21.8%)이나 됐다. 2위인 고 건 전 총리를 꼽은 응답자는 132명(13.2%). 지난달까지는 이명박-고 건-박근혜의 3강 구도였으나 새해 들어 1강2중구도로 바뀐 것.
이명박 시장의 이런 기세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인 안부근 소장(디 오피니언 안부근연구소)은 “청계천 등 그동안 이 시장이 보여준 실적에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실망이 겹쳐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표의 지지도 하락 추세 또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양강 구도가 무너지면서 한나라당 대선구도 전체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강 구도를 바라는 유권자의 심리상 박 대표의 하락은 손학규 지사에게 또 다른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
박 대표 지지도의 하락과 관련,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사학법 투쟁의 고리를 잘못 잡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박-고건 상승세
다음 대선 주자들과 관련, 올해 초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이명박 기세’과 ‘고건의 상승세 유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역시 선두그룹이지만 기세 면에서는 이들에게 쳐진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정동영 장관과 비슷한 지지를 받았던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 효과 등에 힘입어 압도적인 우위를 기록하고 있다.
‘차기 정치인 중 가장 호감을 느끼는 사람’을 묻는 내일신문·한길리서치의 정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4~15일 조사 당시 이 시장은 4.7%(1,120명 조사 대상자 중 53명이 이 시장을 꼽음), 정 장관은 4.5%(11,209명 중 50명)를 기록했다.
그러나 12월 16~17일 같은 질문의 조사에서 이 시장은 15.5%(1,004명 조사 대상자 중 156명이 이 시장을 꼽음)를 기록, 2.8%(1,004명 중 28명)의 정 장관을 압도했다.
고건 전총리의 지지도도 여전히 상종가다. 지난해 1월부터 내내 차기 주자군 중 선두를 유지하던 고 전 총리는 후반 들어 ‘청계천 효과’에 힘입은 이 시장에게 맹추격을 받으면서 주춤거렸지만 여전히 선두그룹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 기세’와 ‘고건 상승세 유지’는 다음 대선과 관련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 현재의 지지도가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대선구도의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명박 기세’가 ‘대세론’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2002년 대선구도의 재판이 될 수 있다. 지난 2002년 대선을 ‘이회창대 반 이회창 전선’으로 치렀던 여권으로서는 ‘이명박 대 반이명박 전선’ 형성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이 시장을 ‘보수’ ‘한나라당’ ‘영남’으로 몰아붙이면서 ‘진보’ ‘반한나라’ ‘영남역포위’라는 반대 전선 확산에 주력할 계산이 나온다.
여권 내부에서 ‘이 시장이 후보가 되면 오히려 쉽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도 이런 계산에 근거한 것이다. 전선을 긋기 쉽다는 얘기다.
반면 ‘고건 상승세 유지’는 여권 내부 진용 변화와 맞물릴 수 있다. 이명박 시장 등 한나라당 후보가 상승세를 유지하고, 여권의 정동영 김근태 후보군이 상대가 되지 않을 때 여권 내부에서는 ‘고 건 대안론’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물론 이런 구도의 전제조건은 고 전총리가 적어도 지방선거 후까지도 현재의 지지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고 전총리의 지지도에는 거품이 많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인물대결구도 주목
‘이명박 돌출’이나 ‘고건 상승세’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점은 ‘인물요소의 부각’이다. 전통적으로 대선은 정당요소가 중심이었고, 인물요소가 부차적이었다. 1997년 이회창과 김대중의 대결, 2002년의 이회창과 노무현의 대결이 모두 그랬다. 그러나 이명박 고건의 상승세는 정당요소를 부차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모 여론조사 전문가는 “만약 인물대결구도로 간다면, 그것은 인물간의 이합집산이 훨씬 용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여야 구도에 승복하지 않는 인사들이 뛰쳐나오면서 대선구도가 훨씬 복잡해 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지난해 여론조사에 나타난 2007년 대선구도는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아직 어떤 인물도 제대로 검증이 안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2007년 대선에서의 결정적 요소가 될 ‘시대정신’에 대해서는 어느 후보군도 제대로 된 의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연말 발표한 전문가 여론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 크다. 당시 KSOI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향후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 이명박 34.3%, 김근태 17.2%, 고 건 15.4%, 손학규 11.6%, 정동영 8.4% 이해찬 6.1%, 박근혜 5.1% 순으로 꼽았다. 특히 언론계 관계자들은 이명박, 김근태, 손학규에 대해 똑같이 높은 점수를 줬다. 여론 주도층인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은 현재의 여론조사와 좀 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2006년 한해 이들 주자군들의 부침 또한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2007년을 맞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권 정동영-김근태 변화도
열린우리당 내부의 지형변화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정동영 전장관의 하락세가 김근태 의원의 상승세와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 김근태계는 보조 선호도에서 김 의원이 정 전장관에게 0.1%P 앞선 데 대해 “전기가 마련됐다”며 크게 환호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정당 지지도 1위를 회복 하겠다’는 정 전장관의 구호보다 ‘바꾸면 이긴다’는 김 의원의 주장이 열린우리당 지지층이나 국민들에게 훨씬 잘 먹히고 있다”며 “우리당 내 기득권적 이미지를 심어준 정동영계에 비해 ‘바꿔버리자’며 도전자 이미지를 보여준 김근태계가 득표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도 “최근의 정동영·김근태 싸움은 2002년 민주당 전대에서의 이인제 노무현 싸움을 연상시킨다”고 덧붙였다.
정동영 전장관의 지지도 하락은 고 건 전총리의 잠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비보조선호도에서의 정동영 약세는 고 전총리의 흡입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 중에는 ‘향후 우리당 내부 경선구도가 고 건-김근태 구도로 갈 수도 있다’는 섣부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연초부터 나타난 차기 주자군들의 지지도 변화는 향후 대선판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 전망이다. ‘이명박 대세론’은 거꾸로 ‘반이명박 전선’을 앞당기면서 차기 대선 구도변화를 조기에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다.
정 전장관과 김근태 의원의 지지도 접근은 열린우리당의 흥행을 보장하는 보증수표가 될 수 있다. 아직 상대가 되지 않지만, 사회적 의제가 양극화 해소로 집중되면 김근태 의원의 상승세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정 전장관이 ‘몽골기병식 전투력’을 회복하면 과거의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다. 김-정 양자 대결에 고 건 전총리가 끼면 흥행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 뻔하다.
진보 지식인들 “김근태” 지지율 1위
2006년을 맞이하는 진보·개혁 성향 지식인들이 선호하는 대권주자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양극화 해소’를 한국 사회의 최우선 해결 과제로 생각하고 현재 진보진영이 가장 취약한 분야는 ‘성장동력 확충’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겨레신문이 지난해 12월 20∼23일, 진보·개혁성향 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2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진보적 지식인들은 ‘선호하는 차기 대선 후보’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34.4%)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이어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15.1%),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12.9%) 순이다. 특히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11.8%)이 뒤를 이어 눈길을 끌었으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8.6%를 얻었다. 심상정, 단병호 민노당 의원, 이해찬 국무총리, 천정배 법무장관 등도 진보적 지식인들이 선호하는 대선 후보 명단에 거론된 반면,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은 현저히 낮은 선호도를 보였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1.1%에 그쳤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선호하는 응답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응답자들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49.5%가 ‘매우 또는 비교적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매우 또는 비교적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14.1%에 머물러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정치권 안팎으로 개헌론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진보 지식인들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한 진보 지식인 중 62%가 ‘현 정부 임기 이내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없다’는 응답은 38%였다. 개헌 필요성을 부정한 응답 중 ‘개헌은 필요하지만 현 정부 임기 이내에는 곤란하다’는 의견도 포함돼 있다.
‘한국 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의제’를 묻는 복수선택 응답에서 이들 중 62%가 양극화 해소를 골랐다. 남북·대외관계 개선(29%), 분배·복지 강화(26%), 비정규직 해결(24%), 정치·정당 개혁(23%)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노무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의 하나인 국토 균형발전(6%), 과거사 규명(8%) 등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았다.
‘진보진영이 가장 취약한 의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성장동력 확충(44%)을 가장 첫 순위로 꼽았고 양극화 해소(36%), 비정규직 문제(29%), 정치·정당 개혁(24%) 등이 뒤를 이었다.
이념갈등 다음 대선 최대 이슈
다음 대선에서 작용할 가장 중요한 변수는? 오피니언 리더(여론 주도층)들은 이념갈등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2월13일부터 12월20일까지 국회의원(27명), 대학교수(38명), 정치부 기자(27명), 시민단체 관계자(14명) 등 106명의 정치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다음 대권을 판가름 낼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이념갈등(39.5%)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계층갈등(28%) > 지역갈등(20.7%) > 세대갈등(11.8%) 순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차기 대권주자들의 이념 지형도는? 정치전문가 집단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가장 진보적,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가장 보수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념 성향을 점수로 나타내 1~4점을 ‘진보’, 5점을 ‘중도’, 6~10점을 ‘보수’로 정의했을 때, 김 장관의 이념 성향은 평균 2.91, 박 대표는 8.19로 조사됐다. 그 사이는 이해찬 총리(3.33) > 정동영 통일부 장관(3.97) > 손학규 경기지사(5.87) > 고건 전 총리(7.04) > 이명박 서울시장(7.33) 순이다. 이념 성향을 점수화한 것과 별도로 오피니언 리더들은 김근태 장관에 대해 88.5%가 “진보적”이라고 답했고,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는 95.9%가 “보수적”이라고 답했다.
오피니언 리더들과 일반인들의 인식 차이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연구소에서 지난 10월31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정동영 장관이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이어 김근태 > 이명박 > 이해찬 > 손학규 > 고건 > 박근혜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명박 시장의 이념 지형은 독특하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명박 시장이 박근혜 대표 다음으로 보수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일반인들은 이해찬 총리나 손학규 지사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봤다. 오피니언 리더의 88.2%가 이명박 시장이 “보수적”이라고 응답한 반면, 일반인들은 “진보에 가깝다”(47.1%)는 응답이 “보수에 가깝다”(33.1%)는 응답보다 많았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일반인들이 이 시장에 대해 청계천 복원, 교통체계 개편 등 강력한 추진력과 업무 성과 등으로 인해 ‘변화와 개혁 추구’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지난해 3월12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이 시장은 중도를 기준으로 약간 왼쪽에 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시장은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이외에 논란이 된 많은 쟁점 법안과 정책에서 보수적인 한나라당의 당론에서 벗어난 입장을 거의 취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은 박근혜 대표와 달리 이 시장이 이념논쟁의 전면에 나서지 않은데다, 변화와 개발을 개혁과 진보의 이미지와 혼동해 인식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 시장은 실제 자신의 이념 지형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유권자들이 중도 성향의 인물이라고 봐주는 것이 표밭을 넓히는 데 불리할 게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또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이 시장(68%)을 꼽았으며, 다음으로 고건(8.1%), 박근혜(8.1%), 정동영(7.9%), 김근태(4.2%), 손학규(1.8%), 이해찬(0.9%) 순으로 답했다. 특히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의 58.3%, 진보개혁 성향층의 63.9%가 이 시장을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