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팀은 사저부지 매매계약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청와대 핵심인물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이 대통령의 장남인 이시형 씨가 지난 10월25일 특검조사에서 제출한 자료와 조서내용을 검토하면서 사저부지 계약 당시 구체적인 정황과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보기 위해 매매거래를 주도한 청와대 핵심인물에 대한 직접 소환이 불가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심 인물 소환조사 임박
이번 소환조사에서 우선 순위로 거론되는 인물은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전 경호처장은 청와대 전문계약직 김태환 씨와 내곡동 사저부지 선정과 매입계약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인물로 시형 씨와 공동 구입한 3필지의 공유지분에 대한 매매가액 산정과 분담기준, 계약과정에서 지분비율 변경 이유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4월 검찰은 김 전 경호처장을 소환해 매매거래상황 전반에 대해 조사했지만 시형씨와 함께 과실이나 고의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배임죄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을 낸 바 있다. 당시 검찰은 김 전 경호처장과 시형 씨가 3필지의 매매가액을 지가상승 요인과 주변 시세 등을 토대로 합리적인 기준으로 산정했고, 적정한 방법으로 매매대금을 분배한 점을 근거로 이같이 판단했다. 이 중 김 전 경호처장은 지분비율에 비해 경호처가 매입금을 지나치게 많이 부담해 결과적으로 국가에 손해를 끼친 배임혐의에 관여했거나 이를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김 전 경호처장외에 이른바 청와대 '윗선'에 대해선 사저부지매입에 관여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아 조사의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 수사대상을 확대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최근 김세욱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실 행정관에 대한 옥중조사에서 대통령 집사로 불렸던 김 전 총무기획관이 계약에 깊이 관여한 정황을 포착, 직접 소환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 전 행정관은 시형 씨의 땅값과 세금처리 업무를 김 총무기획관에게 보고한 뒤 지시를 받았고, 청와대 부속실이 시형 씨의 대출이자 납부를 담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김 전 총무기획관으로부터 “청와대가 이시형씨에게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소명서만 제출받고 배임 혐의와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고발을 각하 처리했다.
한편 특검팀은 이르면 11월 초, 시형 씨에게 사저부지 매입금 6억 원을 빌려준 이상은 다스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한한다. 이 회장의 부인이자 시형 씨에게 돈을 전달한 박모 씨에 대해서도 동시 소환할 가능성이 높다. 특검팀은 이 회장을 상대로 내곡동사저터 매입자금의 출처와 자금 성격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특히 거액의 돈을 계좌이체 대신 자금 흐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 현금으로 빌려준 경위에 대해서도 캐물을 계획이다. 부지 매입 하루 만에 지목 변경한 이유는 한편 특검팀은 시형 씨가 검찰 서면 답변과 달리 일부 진술을 번복한 것과 관련해 부지매입 당시 역할과 행적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형 씨는 특검조사에서 “검찰에 제출했던 서면답변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다”며 부지매입을 위해 큰아버지인 이상은 회장으로부터 현금 6억 원을 빌린 날짜가 지난해 5월23일이 아닌 5월24일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튿날인 25일 청와대 경호처는 이시형 씨 명의로 내곡동 20-17번지 등 사저부지 3필지를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바로 다음날인 26일 서울 서초구청에서 밭으로 돼있는 필지를 대지로 바꾸는 지목변경이 이뤄졌다. 특검팀은 시형 씨가 돈을 빌린 뒤 경호처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지목변경을 마치는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형씨가 계약과 지목변경 과정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 면밀히 파악해 실소유 의사가 있었는지 판단할 계획이다. 특히 지목변경의 경우 통상적으로 건물의 건축계획을 제출하고 허가받은 뒤 준공을 하는 등 개발행위가 있어야 이를 해당 관청이 승인하도록 절차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당시 서초구청 측은 “오전에 지목변경 신청이 들어왔고 그 날 오후에 변경이 이뤄졌다”고 밝히며 “해당지역이 1980년대에 이미 건축허가가 났었기 때문에 절차상에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던 바 있다.
이에 특검팀은 지난 10월19일 지목변경 문제를 포함해 매입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밝히기 위해 매도인 측 부동산업자를 불러 조사한 바 있다. 이 소환조사에서 시형 씨 본인이 부동산의 실소유자였고 거주 의사도 있었다고 밝힌 만큼 계약과 지목변경 과정에 어떤식으로 개입했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 한편 현금 6억 원을 빌려준 이상은 다스 회장을 이르면 다음주 초반께 소환 조사할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수사 개시 전날인 지난 10월15일 출장을 이유로 중국으로 출장 갔다가 24일 귀국한 이 회장에게 이번 주말 출석할 것을 통보했지만, 이 회장 측은 새로 선임한 변호인을 통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6월 내곡동 사저부지 매매 명의자인 이시형 씨를 서면조사만 하고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검찰이 노골적인 봐주기, 눈치 보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에 시달렸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검찰은 시형 씨를 서면조사만으로 무혐의 처분하면서 “진술내용이 아귀가 딱 맞아서 소환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형 씨의 서면답변 내용만 봐도 검찰이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 등을 간단하게 무혐의로 판단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서에 따르면 시형 씨는 아버지한테서 ‘사저 부지를 네 명의로 취득했다가 사저 건립 무렵 내 명의로 되파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이를 승낙했고, 김세욱 행정관에게 부탁하여 진행했으며, 부친으로부터 들은 내용에 따라 돈을 마련했다고 나와 있다. 명의만 빌려줬다고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김세욱 전 행정관은 이 대통령의 오랜‘집사’인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의 직속 부하였지만, 검찰은 김 전 기획관에 대해 “살펴볼 필요 없이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각하 처분을 했다. 최근 특검팀이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수감중인 김 전 행정관을 조사해 “김백준 기획관에게서‘시형 씨의 내곡동 땅 매입 실무를 도와주라’는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도 검찰을 곤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특검의 칼, 청와대 겨누나
이번 특검수사의 중간지점을 살펴보면 사저 부지 매입의기획, 자금조달·매매계약·송금 등 전 과정에서 명의자인 시형 씨의 역할은 빈약해 보인다. 오히려 이 대통령 내외가 관여한 정황은 뚜렷하게 보인다. 결국 특검팀의 수사가 이 대통령 내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우선 특검팀이 겨누고 있는 혐의는 부동산실명제법 위반과 배임 혐의다. 이는 이 대통령 내외가 퇴임 후 기거할 사저를 편법 증여하기 위해 시형 씨 명의로 부지를 매입했다는 것이다. 배임 혐의는 청와대 경호처가 시형 씨와 함께 사저·경호동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시형 씨의 부담액을 6억~8억 원 낮춰 그만큼 국고에 손실을 입혔다는 내용이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면 시형 씨 명의로 사저 부지를 매입한 동기와 과정을 따져봐야 한다. 명의와 관련해 청와대와 시형 씨는 이 대통령의 뜻에 따랐다고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정해준 방법대로 6억 원은 큰아버지인 이상은 다스 회장에게서 빌리고, 김윤옥 여사의 논현동 부동산을 담보로 농협에서 나머지 6억 원을 대출받아 사저 부지 매입자금 12억 원을 마련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 내외가 매입자금을 조달해준 셈이다. 시형 씨 명의의 사저 부지 계약업무는 경호처가 대행했다. 매입자금을 매도인에게 송금하는 업무는 김세욱 전 청와대 행정관이 했다. 김 전 행정관은 최근 특검 조사에서 “김백준 당시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일처리를 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총무기획관은 시형 씨를 대신해 부동산 중개 비용 등을 치렀다. 결국 명의만 자신의 것으로 했을 뿐 시형 씨가 사저 부지 매입 과정에서 한 일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세부 과정을 살펴보면 사저 부지의 실소유자는 이 대통령 내외에 가까워 보인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 당시 대통령 명의로 사저 부지를 매입하면 보안문제 등이 생길 수 있어 시형 씨가 부지를 매입한 뒤 이 대통령이 재매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했고, 이를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소명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물증은 제시하지 못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가 사후에 급조한 명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실명제법은 신탁자·수탁자·교사자·방조자를 모두 처벌토록 돼 있다. 혐의가 확인될 경우 현직인 이 대통령을 제외하고 김윤옥 여사와 시형씨 등 사건 관련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다. 배임 혐의는 시형씨와 경호처 간 땅값 분담률이 적정했는지, 땅값 분담률을 정하는 과정에 누가 개입했는지,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밝히는 게 핵심이다.
당시 청와대에서 사저·경호동 부지 매입을 주도한 실무 책임자는 김인종 전 경호처장이다. 청와대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특검팀은 배임 의혹을 밝혀줄 핵심인물인 두 사람을 아직 소환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6억 원의 출처가 이 회장이 아니거나 이 회장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이 수사 개시 직후 이 회장의 자택과 그가 운영하는 다스 사무실부터 압수수색한 것은 6억 원의 출처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고 있음을 방증한다. 게다가 다스는 이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제기됐던 회사다. 6억 원의 출처를 쫓는 과정에서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 재점화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