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마다 비리 ‘봇물’ … 핵심 참모·측근들 줄줄이 리스트에

국내 정치사를 돌아봐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자신이나 그 측근이 연루된 부정부패 사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일어난 스캔들이나 친인척 측근비리는 과거 정권과 대등소이하다. 어떤 스캔들과 친인척-측근 비리가 있었고 과거 정권과는 어떻게 다른지 알아봤다.

MB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기 4년차에서 터진 ‘상하이 스캔들 사건’은 돈과 권력, 애정 문제가 뒤얽힌 대표적인 스캔들이다.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들을 통해 중국인 여성 덩신밍(鄧新明·34)씨에게 MB 등 정권 실세 200명에 대한 기밀이 유출된 사건이었다.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자료 중에는 국내 유력 정관계 인사 200여명의 휴대전화번호와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정부 내부통신망의 인사 정보와 상하이 총영사관의 비자발급 자료 등 각종 문서들이 포함돼 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정부의 기밀 문서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휴대전화번호는 경우에 따라 도·감청 관련 자료가 될 수 있는 등 덩씨가 확보한 자료 중에는 기밀 문서들이 포함돼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유출된 자료에는 김정기(52) 전 상하이 총영사로부터 빼낸 것으로 보이는 현정부와 여권의 인사 200여명의 연락처와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이재오 특임장관, 한나라당 이방호 지방분권촉진위원장 등 현정권 실세들의 휴대전화번호 등이 기재돼 있다. 또한 덩씨가 보관해 온 자료 중에는 ‘특채 파동과 연평도 혼란에 묻힌 외교부 인사’라는 제목의 파일도 있다. 지난 2010년 9월 유명환 당시 외교부 장관의 딸 특채 파동에 따른 후속 인사가 G20 정상회의 준비와 연평도 포격 도발 수습으로 뒤로 밀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차관직에 대한 하마평도 들어있다. 또 붉은색 글씨로 ‘대외보안’이라고 찍혀 있는 ‘주상하이 총영사관 비상연락망(2010년 9월)’과 ‘2008년 사증발급 현황’, ‘사증개별접수 대행 여행사 현황’ 등 비자 발급 관련 자료도 포함돼 있다.
물론 이전 정권에서도 여자 문제가 권력 비리와 결부된 적은 있다. 노무현 정권 임기 말에 터진 ‘신정아 사건’은 돈과 권력, 애정, 학력 문제가 뒤얽힌 대표적인 스캔들이다. 또한 김영삼 정부 시절, 국방사업인 ‘백두사업’ 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고위층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린다 김 사건’ 경우다. 린다 김이 이양호 전 국방장관과 주고받은 연서(戀書)가 공개됐고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2010년 말 법원 소송 과정에선 국가정보원의 한 여직원이 간부 및 직원 4명과 수년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가 무더기로 해임 및 징계 당한 사건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40대 중반의 이 여성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국정원 내부의 직원 4명과 해수욕장에 놀러가거나 드라이브를 즐기며 지냈다. 감찰 조사를 받던 한 남성 상사는 사무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고, 해당 여성은 “부적절한 행위는 없었다”며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은 청와대 참모의 정신적 해이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대통령리더십연구소의 관계자는 “개인 문제라기보다는 권력기관의 탈정치화나 최고 정책결정기구의 인적 자원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이 느슨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정부의 스캔들은 역대 정부에 비해 횟수나 규모 면에서 뒤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과거 정권의 경우, 대통령의 권력 기반을 흔드는 스캔들이 임기 중반 이전에 터진 뒤 이것이 레임덕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취임 3개월 뒤부터 생수회사 ‘장수천’과 관련해 안희정씨, 이광재 의원을 비롯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의 정치자금 등 각종 의혹이 제기돼왔고, ‘신정아 사건’ 같은 대형 사고가 터졌다. 대형 스캔들이 임기 말에 연달아 터지면서 정권에 입힌 타격이나 파급효과는 더 크다. 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 경남에서 치러진 여권(대통합민주신당)의 국민경선에서 친노파가 고배를 마신 것도 이런 스캔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MB 정권에서도 대통령선거 전부터 터져나온 BBK 사건을 시작으로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 ‘함바비리 사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박희태 국회의장 등 이 대통령 측근들의 뇌물 수뢰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MB정권 들어 터진 많은 비리나 스캔들에는 유독 도드라진 특징이 있다. 국가 존망이 달린 외교·안보·정보 분야에서 총체적인 시스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의 국정 장악력이 현저히 저하하면서 오는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정치권·학계에 따르면 상하이 스캔들, 국가정보원의 인도네시아특사단 숙소 잠입 발각 사건,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의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문 번역 오류는 외교·안보·정보 분야의 국정 난맥상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올 초 발생한 ‘다이아 게이트’는 MB정부의 대표적인 비리 스캔들이라 할 수 있다.
‘다이아 게이트’는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을 둘러싼 씨앤케이인터내셔널(CNK)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자원외교는 다이아의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고 CNK의 주가조작 혐의가 확인되면서 MB 정권에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또한 이번 사건은 이 대통령의 레임덕(통치자의 임기말 권력누수)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업체인 CNK 주가조작 사건의 발단은 2010년 12월 김은석 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가 만든 자료였다. CNK가 카메룬에서 추정 매장량이 전 세계 연간 생산량의 2.5배인 4억2000만 캐럿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김 전 대사가 다이아몬드 추정매장량 4억2000만 캐럿이 CNK 자체탐사 결과라는 점과 추가발파 결과가 추정매장량의 1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허위 보도자료의 작성·배포를 주도한 것이다.
그 직후 CNK 주가는 17일 만에 5배 이상 폭등했다. 보도자료 배포 전날인 2010년 12월16일 3400원대였던 주가는 지난해 1월10일 장중 최고가가 1만6100원까지 급등했다. 지난해 6월 2차보도 이후에는 8월19일 주당 1만8500원까지 상승했다. 지난해 6월 언론으로부터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김 전 대사는 카메룬 정부가 추정매장량을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카메룬 정부에서 탐사 과정에 대해 엄격한 대조검토를 했고 추정매장량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취지의 2차 보도자료를 다시 배포했다. 이런 과정에서 김 전 대사의 동생과 비서, 전 국무총리실 자원협력과장, 한국광물자원공사 팀장 등이 CNK 개발 사업에 대한 정보를 입수, 주식을 거래해 수천만원대의 평가차익을 얻었다. CNK 이사 등 3명은 22만8000주, CNK는 자기주식 20만4222주를 55억원에 매도했고 오덕균 CNK 대표는 2010년 12월 이후 신주인수권 75만주를 장외 매도해 51억원을 챙겼다.
외교부는 CNK의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 주가조작 의혹으로 창설 이래 처음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이외에도 외교부는 현 정부 들어 각종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1차적으로 이 대통령의 보은 인사, 측근 챙기기에 따른 예고된 재앙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을 곱씹게 하는 대목이다. 주 상하이총영사관 직원들의 기강 문란 사건을 보고받고도 적극 개입하지 못한 것도 결국 김정기 전 총영사가 대표적인 ‘MB맨’이었기 때문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국정원장이 국정원에 입성한 뒤 충성심을 기준으로 주요 보직 인사를 해 국정원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조직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얘기도 나온다. “어설프게 임무를 수행하다 발각된 것도 문제이지만 이 사실이 낱낱이 공개된 것도 프로답지 못하다”라는 비판은 이 때문이다. 물가 앙등에 따른 민생파동과 갈등 조정 방치로 내정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외치(外治)마저 불안한 셈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역대 정권에서도 국정 시스템이나 인사 등에 문제가 있을 경우 정권 말기가 되면 권력 누수 현상으로 이런 문제가 물 위로 올라왔다”고 전제한 뒤 “최근 외교·안보·정보 분야에서의 여러 파문도 결국은 집권 후반기 권력 누수 현상에서 온 측면이 있고, 이런 문제가 불거짐으로써 레임덕을 다시 재촉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은 역대 정권에서 계속됐던 친인척·측근 비리를 예방하겠다며 핵심 관리 대상 100여명을 지정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통해 검찰과 경찰, 국정원에서 동향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툭하면 불거지는 측근 비리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저축은행에서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영일 대군으로 불렸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친인척·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되자 얼마 안돼 곧바로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 자신이 처음부터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갖고 출발해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월급을 기부하면서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부해온 것도 사실이다”며 측근 비리와 자신을 분리시켰지만, “그런데 바로 제 가까이에서 이런 참으로 실망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일어났으니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면서 “모두가 제 불찰이다. 어떤 질책도 달게 받아 들이겠다”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사과 원고도 자필로 작성했고 시점과 내용도 본인 홀로 결정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명박 정권에서 일어난 스캔들이나 비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스캔들이나 비리가 터진 뒤의 대응방식이다. 스캔들 의혹이 제기되면 우선 공격적인 방어 태도부터 보였던 노무현 정권과는 달리 이명박 정권에선 일이 터지면 청와대가 서둘러 초기 진화에 나서고, 대통령 본인은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사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태도를 보였다.
노무현 정부 당시 최대의 스캔들이었던 신정아씨에 대한 변양균 전 청와대 실장의 비호 의혹이 처음 불거진 무렵, 노 대통령은 “요즘 깜도 안 되는 의혹이 많이 춤을 추고 있다” “소설 같은 얘기가 난무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까지 나서서 언론의 의혹 제기를 비난하면서 변 전 실장의 변명을 전했다. 하지만 이후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 열흘 뒤 노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할 말이 없게 됐다. 난감하게 됐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스캔들 의혹이 제기되면 우선 공격적인 방어 태도부터 보였다. 노무현 정권에서처럼 의혹이 제기된 사건의 수사 과정에 청와대 대변인이 마이크를 자주 잡고 피의자인 당사자 입장까지 대변한 적도 없었다. 이러다 보니 내용보다는 형식이 커지고 사건을 더 키운 면이 있다. 특히 대통령이 나서서 사건의 규모와 성격을 초기에 규정하는 모습은 검찰 수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반면, 이 대통령은 일단 불거진 사건에 대해서 공세보다는 수세를 취하는 쪽이었다. 들어난 결과에 대해 본인 스스로 판단하고 혼자 의사결정을 하는 성향이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담화는 참모들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시점과 내용 모두 본인이 직접 결정한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기소됐을 때 기다려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는 참모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그 이전에 심정을 밝히는 것이 좋다는 판단도 대통령이 직접 했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답답하더라도 검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그것보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제 솔직한 심정을 밝히는 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대통령리더십연구소의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과거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해온 노무현 정권이 도덕성에 대한 자기 확신 때문에 스캔들이 터지면 일단 측근을 감싸고, 사태를 가볍게 다룬 것과는 달리 국민 정서를 고려해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한 뒤 곧바로 국민에게 사과를 하는 방편을 택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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