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문업계 최고의 기업 금전기업사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 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잡초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하면 순탄하지 않은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밟아도 쉽게 넘어지거나 생명력을 잃지 않는 잡초의 강인함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요소일지 모른다. 우리나라 수문업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자랑하는 금전기업사의 홍종길 회장은 이러한 잡초와 꼭 맞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시련을 이겨내고 업계 정상에 오른 홍회장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고 젊은 청년들이 가장 본 받아야 할 인물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국토를 종합적인 시각에서 관리하고자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 추진해 오고 있다. 이 계획은 국토가 협소하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의 실정에서 국토의 효율적 이용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토의 효율적 이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 중하나는 바로 물의 이용과 관리이다. 많은 자원중 물은 인간의 생활과 생명의 원천으로서 국가의 경제 성장은 물론 각종 문화활동을 지속하게 해주는 기초 자원인 것이다. 과거 농업사회에서 치국(治國)의 근본은 치수라 하였다. 치수는 오늘날과 같이 농업의 부가가치가 국민 총생산의 9%에 불과한 사회에서도 같은 논리가 성립한다. 또한 현대사회는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잦은 홍수와 가뭄현상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유)금전기업사는 수문제작 관련 기업으로 가뭄과 홍수에 대비에 국내 최고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신념과 신용이 가장 커다란 재산
(유)금전기업사는 김제 연고의 향토기업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기반을 다지며 수문 제작관련 국내 최대의 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오늘의 금전기업사가 있기까지는 홍종길 회장의 눈물겨운 노력이 내제 되어 있다.
홍 회장이 부친이 경영하던 철공소를 가업으로 이어받을 때는 철공소는 파산지경에 이르러 있었던 상황이었다. 장남인 홍 회장은 쓰러진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뒷수습에 나섰다. 당시 채무 원금은 3천8백만원.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던 철공소 였던지라 원금은 고사하고 이사를 상환하는데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런 연유로 채무금액은 누적되어 커져만 갔고 급기야 공장을 처분해도 감당해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홍 회장은 부친을 모시고 이자 1부만이라도 줄이기 위해 사채업자들을 찾아 다녔지만 모두 외면을 당하고 뒤돌아서야만 했다. 홍종길 회장은 “그때 사회가 이토록 비정하고 냉정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당시 나이가 어렸던 터라 너무나 큰 충격이었지만 장남으로 쓰러진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았다”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오로지 성공해야 겠다는 신념하나로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부친이 남긴 3천8백만 원의 부채를 청산하게 되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부채를 청산한 홍 회장에게 호기가 찾아왔다. 1977년 농업진흥공사의 대단위지구 남강 1공구사업 계획을 듣게 된 것이다. 공사를 맡기 위해 여러 차례 농업진흥공사를 찾아갔지만 김제라는 지방의 조그만 철공소에서 이처럼 큰 공사를 맡기기엔 미덥지 않던 터라 담당자는 홍 회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번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되다는 신념으로 홍 회장은 서울에 방을 얻어 놓고 매일 새벽 담당자 집 문 앞에 기다렸다가 집안에 불이 켜지면 집안으로 들어가 담당자를 설득하였다.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홍 회장의 노력에 담당자는 감격하였고 결국 남강 제 1공구사업은 금전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막상 공사를 맡긴 했지만 그에게는 공사를 치를 만한 재력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맡은 대공사를 놓치면 자신의 신용이 떨어져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이 같은 대 공사를 맡을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너무나 잘알고 있던 홍 회장은 궁여지책 끝에 3형제의 도움으로 지역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데 성공하여 주어진 시간 내에 완벽하게 남강 1공구 사업을 끝낼 수 있었고 그 이후 금전기업의 이미지는 날이 갈수록 부각되어져 공사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기술개발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지원
수문제작,설치 분야의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금전기업사의 원천은 홍 회장의 끊임없는 노력 외에 기술력 강화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금전 기업사가 시공한 전국 주요공사를 보면 영산강 3-1지구,홍보지구,화웅지구 배수갑문 제작 및 설치공사를 비롯하여 영종도 신공항 남측 및 동측 방조제 배수갑문 기계공사, 아산만 포승지구 국가공단 수문공사, 남강댐,밀양댐,용담댐 강재설비제작 공사 등이 있다. 이중 화웅지구 수문은 12×16m, 용감댐 수문은14×14m의 크기로 관련분야에서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제품들이다. 또한 금전은 국가적 대 역사인 새만금배수관문(32×15m)을 시공완료 하였다.
금전기업이 수행한 수많은 공사중에는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업체와 입찰 경쟁에서 당당히 수주를 따낸 것으로 금전기업사의 신용과 기술력의 수준을 알 수 있으며 금전기업사가 보유하고 있는 수문 인양기 제작 관련 실용신안특허만 4종에 이른다. 또한 자동제진기의 제작을 위해 기술제휴를 일본과 맺었다가 로얄티 가격 문제로 상공부로부터 기술도입허가가 나지 않자 자체 기술력만으로 신제품 개발에 성공하여 김제반월지구배수장과 익산화산지구배수장에 설치하는 쾌거를 이룩해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성과들은 “남보다 앞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 중심의 경험축적이 중요하다”는 홍 회장의 신념이 이루어낸 결과물들이다.
인식변화를 통한 경제지원이 절실
지난 7월1일 홍종일 회장은 제12기 민주평통 전북지역부의장으로 취임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라이온스 지구 총재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던 홍 회장이 민주평통전북지역 부의장직을 맡는데는 지난 2001년의 경험이 컸다. 그해 1월 북한에서 춘향전 공연을 보며 북한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홍 회장은 그들과 한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갖고 있던 잘못된 편견과 인식을 새롭게 정립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홍 회장은 앞으로 다양한 모금운동을 통해 재정적 방안을 마련하여 북한을 돕고,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북한을 직접 방문하여 자신이 느꼈던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자 한다. 요즘 북한과의 관계가 다시 정상화가 되면서 국민들이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점에 대해 홍 회장은 “독일도 통일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서독이 경제적인 지원을 하면서 흡수 통합을 하였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편차가 극심해 서독주민들이 그 짐을 짊어지며 독일경제 전체가 침체의 늪으로 빠졌다. 이같은 독일의 케이스는 우리에게 좋은 예가 된다. 앞으로 북한이 대외개방과 외자도입 등을 통해 경제성장 후 남북이 평화통일이 된다면 통일 후 한반도는 보다 안정되면 강성하게 될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금전기업사를 우리나라 수문업계 최고의 기업체로 키우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매진하는 홍종길 회장을 통해 우리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의 그날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 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잡초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하면 순탄하지 않은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밟아도 쉽게 넘어지거나 생명력을 잃지 않는 잡초의 강인함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요소일지 모른다. 우리나라 수문업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자랑하는 금전기업사의 홍종길 회장은 이러한 잡초와 꼭 맞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시련을 이겨내고 업계 정상에 오른 홍회장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고 젊은 청년들이 가장 본 받아야 할 인물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국토를 종합적인 시각에서 관리하고자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 추진해 오고 있다. 이 계획은 국토가 협소하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의 실정에서 국토의 효율적 이용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토의 효율적 이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 중하나는 바로 물의 이용과 관리이다. 많은 자원중 물은 인간의 생활과 생명의 원천으로서 국가의 경제 성장은 물론 각종 문화활동을 지속하게 해주는 기초 자원인 것이다. 과거 농업사회에서 치국(治國)의 근본은 치수라 하였다. 치수는 오늘날과 같이 농업의 부가가치가 국민 총생산의 9%에 불과한 사회에서도 같은 논리가 성립한다. 또한 현대사회는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잦은 홍수와 가뭄현상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유)금전기업사는 수문제작 관련 기업으로 가뭄과 홍수에 대비에 국내 최고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신념과 신용이 가장 커다란 재산
(유)금전기업사는 김제 연고의 향토기업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기반을 다지며 수문 제작관련 국내 최대의 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오늘의 금전기업사가 있기까지는 홍종길 회장의 눈물겨운 노력이 내제 되어 있다.
홍 회장이 부친이 경영하던 철공소를 가업으로 이어받을 때는 철공소는 파산지경에 이르러 있었던 상황이었다. 장남인 홍 회장은 쓰러진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뒷수습에 나섰다. 당시 채무 원금은 3천8백만원.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던 철공소 였던지라 원금은 고사하고 이사를 상환하는데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런 연유로 채무금액은 누적되어 커져만 갔고 급기야 공장을 처분해도 감당해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홍 회장은 부친을 모시고 이자 1부만이라도 줄이기 위해 사채업자들을 찾아 다녔지만 모두 외면을 당하고 뒤돌아서야만 했다. 홍종길 회장은 “그때 사회가 이토록 비정하고 냉정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당시 나이가 어렸던 터라 너무나 큰 충격이었지만 장남으로 쓰러진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았다”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오로지 성공해야 겠다는 신념하나로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부친이 남긴 3천8백만 원의 부채를 청산하게 되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부채를 청산한 홍 회장에게 호기가 찾아왔다. 1977년 농업진흥공사의 대단위지구 남강 1공구사업 계획을 듣게 된 것이다. 공사를 맡기 위해 여러 차례 농업진흥공사를 찾아갔지만 김제라는 지방의 조그만 철공소에서 이처럼 큰 공사를 맡기기엔 미덥지 않던 터라 담당자는 홍 회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번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되다는 신념으로 홍 회장은 서울에 방을 얻어 놓고 매일 새벽 담당자 집 문 앞에 기다렸다가 집안에 불이 켜지면 집안으로 들어가 담당자를 설득하였다.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홍 회장의 노력에 담당자는 감격하였고 결국 남강 제 1공구사업은 금전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막상 공사를 맡긴 했지만 그에게는 공사를 치를 만한 재력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맡은 대공사를 놓치면 자신의 신용이 떨어져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이 같은 대 공사를 맡을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너무나 잘알고 있던 홍 회장은 궁여지책 끝에 3형제의 도움으로 지역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데 성공하여 주어진 시간 내에 완벽하게 남강 1공구 사업을 끝낼 수 있었고 그 이후 금전기업의 이미지는 날이 갈수록 부각되어져 공사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기술개발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지원
수문제작,설치 분야의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금전기업사의 원천은 홍 회장의 끊임없는 노력 외에 기술력 강화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금전 기업사가 시공한 전국 주요공사를 보면 영산강 3-1지구,홍보지구,화웅지구 배수갑문 제작 및 설치공사를 비롯하여 영종도 신공항 남측 및 동측 방조제 배수갑문 기계공사, 아산만 포승지구 국가공단 수문공사, 남강댐,밀양댐,용담댐 강재설비제작 공사 등이 있다. 이중 화웅지구 수문은 12×16m, 용감댐 수문은14×14m의 크기로 관련분야에서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제품들이다. 또한 금전은 국가적 대 역사인 새만금배수관문(32×15m)을 시공완료 하였다.
금전기업이 수행한 수많은 공사중에는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업체와 입찰 경쟁에서 당당히 수주를 따낸 것으로 금전기업사의 신용과 기술력의 수준을 알 수 있으며 금전기업사가 보유하고 있는 수문 인양기 제작 관련 실용신안특허만 4종에 이른다. 또한 자동제진기의 제작을 위해 기술제휴를 일본과 맺었다가 로얄티 가격 문제로 상공부로부터 기술도입허가가 나지 않자 자체 기술력만으로 신제품 개발에 성공하여 김제반월지구배수장과 익산화산지구배수장에 설치하는 쾌거를 이룩해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성과들은 “남보다 앞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 중심의 경험축적이 중요하다”는 홍 회장의 신념이 이루어낸 결과물들이다.
인식변화를 통한 경제지원이 절실
지난 7월1일 홍종일 회장은 제12기 민주평통 전북지역부의장으로 취임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라이온스 지구 총재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던 홍 회장이 민주평통전북지역 부의장직을 맡는데는 지난 2001년의 경험이 컸다. 그해 1월 북한에서 춘향전 공연을 보며 북한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홍 회장은 그들과 한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갖고 있던 잘못된 편견과 인식을 새롭게 정립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홍 회장은 앞으로 다양한 모금운동을 통해 재정적 방안을 마련하여 북한을 돕고,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북한을 직접 방문하여 자신이 느꼈던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자 한다. 요즘 북한과의 관계가 다시 정상화가 되면서 국민들이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점에 대해 홍 회장은 “독일도 통일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서독이 경제적인 지원을 하면서 흡수 통합을 하였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편차가 극심해 서독주민들이 그 짐을 짊어지며 독일경제 전체가 침체의 늪으로 빠졌다. 이같은 독일의 케이스는 우리에게 좋은 예가 된다. 앞으로 북한이 대외개방과 외자도입 등을 통해 경제성장 후 남북이 평화통일이 된다면 통일 후 한반도는 보다 안정되면 강성하게 될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금전기업사를 우리나라 수문업계 최고의 기업체로 키우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매진하는 홍종길 회장을 통해 우리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의 그날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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