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막식에는 이수성(전 국무총리), 정종섭, 장석춘 국회의원과 김관용(경북지사), 우동기(대구시교육감), 이영우(경북교육감), 남유진(구미시장), 백선기(칠곡군수), 김정길(TBC사장), 김환열(대구MBC사장), 손인학(영남일보사장), 윤덕홍(전 교육부총리), 장영철(전 국회의원), 변태석(전 TBC사장), 홍종흠(전 대구매일논설주간), 조용철(전 연합뉴스대구경북본부장), 김월화(전KBS보도국장), 이용두(한국국학진흥원장), 김병일(도산서원장), 최문석(남명학연구원장), 김교홍(왕산기념사업회이사장), 노진환(영남유교문화진흥원장), 박연탁(담수회장), 조국래(박약회대구지회장), 정관(전 대구교대 총장), 최환(전 금오공대총장), 김기탁(전 상주대총장) 등 정, 관, 언, 유림, 학·교육계의 많은 귀빈이 참석했다.
여헌 장현광선생은 조선 중기 영남을 대표하는 유학자·교육자의 한 분이며, 서애 류성룡(영의정)에 의해 천거돼 보은현감, 의성현령, 사헌부 지평, 성균관 사업, 형조참판, 대사헌, 공조판서, 우참찬 등 20여회의 관직이 주어졌으나 대부분 사양하고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매진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는 경상도 호소사(號召使)로 임명돼 창의(倡義)와 군량조달에 노력했고, 1637년 입암(현, 포항시)에서 타계하니, 조정은 영의정을 추증하고 문강(文康)의 시호를 내렸다. 유림은 금오서원(선산), 동락서원(인동), 입암서원(포항), 임고서원(영천), 빙계서원(의성), 송학서원(청송), 천곡서원(성주) 등에 배향했다.
16세기 영남의 대표적인 유학자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이라면, 17세기에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년)이라 할 수 있다. 여헌은 퇴계와 남명보다 53년 뒤에 출생해 낙동강 중류지방(선산, 인동, 성주 등)에서 활동하며, 퇴계학, 남명학, 율곡학(栗谷學)을 두루 섭렵해 이기경위설(理氣經緯說)과 도일원론(道一元論) 등 독자적인 학설을 주장했다. 문하생은 355명은 여헌학파(旅軒學派)·여헌학단(旅軒學團)으로 불리는 거대한 학맥(學脈)을 형성했다.
여헌의 학문과 사상은 문인 미수(眉?) 허목(許穆, 우의정)을 통해 근기남인(近畿南人) 학자들에게 전해지고, 근기남인의 학통은 실학(實學)으로 이어졌다고 사가(史家)들은 말하고 있다.
여헌선생은 ‘우주요괄첩‘, ‘역학도설‘, ‘경위설‘, ‘우주설‘, ‘태극설‘ 등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경위설(經緯說)‘과 ‘우주설(宇宙說)‘은 시대적으로 중국보다 훨씬 앞섰다고 평가되고 있다.
국립과학관(경기도 과천시)의 제16관(여헌 장현광 코너)에는 한국을 빛낸 16분의 과학자로 선정해 전시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