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을 위해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제주 올레길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낭만과 추억을 안겨주던 올레길이 최근 범죄의 올레길이 되버렸다. 최근 잇따른 살인사건으로 물들면서 혼자 여행은 커녕 밤길을 다니기조차 불안하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지난 달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힐링을 위해 찾은 올레길, 다시는 걷지 못할 길 돼
지난달 12일 제주도에서 실종된 여행객 강 모(40, 여)씨가 실종 12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7월11일 혼자 제주도 올레를 찾은 피해자 강 모씨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를 묵은 뒤 다음날 아침 7시 반경에 길을 나선 이후 8시 12분 경 핸드폰 사용을 끝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실종 8일 후 만장굴 일대의 버스 정류장에서 피해자의 신체 일부와 운동화 등이 발견 되었고, 23일 제주동부경찰서는 용의자인 지역주민 강 모(44, 남)씨를 체포했다.
그는 수사 초기 범죄를 완강히 부인했으나, 경찰은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 받고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말미오름 인근 농로 변 대나무 밭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제주 올레 1코스 구간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발견 당시 피해자의 시신은 일부 옷이 벗겨진 채 대나무 숲 속에 버려져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피의자 강 씨는 “소변을 보는데 피해자가 성추행범으로 오해해 신고하려 하자 핸드폰을 빼앗으려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나 범행과정이 치밀해 계획된 ‘성폭행을 위한 계획적 범행’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고 있다.
10살 초등생 살해범, 이웃에 사는 전과12범
지난 달 25일 경남 통영에서 실종됐다 엿새 만에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초등학생 한모(10) 양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장례식에는 유가족과 학교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유가족은 오열하고, 주민들은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피의자 김 모(44)씨는 지난 7월16일 학교에 가기위해 집을 나선 한 모양을 성폭행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가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한 양의 집에서 10km정도 떨어진 야산에 매장한 혐의로 구속됐다. 조사 결과 그는 한 양의 이웃주민으로, 지난 2005년 인근 마을에 사는 60대 노인을 성폭행 하려다 폭행하고 실형을 선고받아 4년을 복역했으며 사기 등의 전과를 포함한 범죄 전과 12범인 것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줬다. 김 모씨는 조사과정에서 성추행과 한 양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한 양의 집근처 하수구에 버린 사실 등을 시인하고, 현장검증까지 마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남부분원은 한 양을 부검했지만 시신의 부패정도가 심해 성폭행 여부는 알아내지 못했다. 경찰은 성폭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다.
사회적 약자인 아동과 여성 대상 범죄, 갈수록 심각해져
연이은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사회를 불안하게 하자,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 살인사건의 피의자 강 씨는 이미 2차례의 강도 전과가 있는 강력범죄자였지만 출소 후 2년간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는 2008년 특수강도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복역하는 등 강도 전과만 2범이다. 2010년 가석방으로 출소 후 4개월간 보호관찰 대상자로 법무부관리를 받았지만 보호관찰 이후에는 법적 통제가 없었다.
법무부의 보호관찰이 끝난 후 강력범에 대한 제도적 관리장치는 경찰의 ‘우범자 관리’가 전부다. 그러나 피의자 강 씨는 ‘관리 대상 우범자’에도 속하지 않았다. 우범자의 분류 요건은 ‘3회 이상 실형을 받고 출소한 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강간 등의 성범죄의 경우 2010년 발생한 ‘김길태사건’ 이후 관리감독이 강화되어 아동 성범죄의 경우 1회, 청소년 성인대상 성범죄의 경우 2회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 우범자로 분류되도록 한 것과 비교된다. 우범자 첩보 수집 등에 관한 규칙에 의해 법적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강도범의 우범자 편입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범죄자 우범자에 대한 관리 감독도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다. 통영 초등학생 납치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 모씨도 성폭행 전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피의자가 전자발찌 제도와, 성범죄자 신상정보공개제도 성범죄자 알림e 적용 대상자가 아니다. 김 씨의 성폭행 범죄 사실은 노출되지 않았고, 일부 주민들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정부가 2010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성범죄자 신상공개 사이트인 ‘성범죄자 알림e’사이트에는 성범죄자의 거주지역과 범행내용, 신상 정보와 사진 등이 공개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성범죄 우범자는 2만 219명이고, 서울의 경우 4,8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는 345명에 불과하다. 전체 우범자 중 10%도 되지 않는 수치다. 재범의 비율이 높은 성범죄 우범자들이 도사리고 있는 도시에서 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 자체 예규에 의거해 중점 관리하는 대상도 1,426명밖에 되지 않으며, 중점 관리 받지 않는 ‘성인 대상 성폭력 전과자 중 실형을 3회 이상 받은 첩보수집 대상’은 6,646명으로 통영 초등학생 납치살해사건의 피의자도 여기에 해당됐다. 또한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 이용을 위해서는 복잡한 실명인증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접근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별다른 효용 보지 못하고 있는 전자발찌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성범죄자 대상 전자발찌제도도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위치추적전자장치 이른바 전자발찌를 착용한 악성 성범죄자들에 대한 정보를 경찰이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성범죄자에 대한 정보와 권한을 법무부와 경찰 등 정부기관이 나눠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성범죄자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경찰은 성폭력우범자로 따로 관리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전자발찌 착용자는 982명으로 전자발찌 위치추적 관제센터 요원과 현장보호관찰관등 법무부에서 관리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정보는 경찰과 공유하지 않아 전국의 경찰서가 자신의 관내에 몇 명의 전자발찌 착용자가 거주하는지와 범죄내용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다만 이와 별개로 성범죄를 저질러 15년 이내에 5년 이상 10년 이하의 실형을 받은 경우나 5년 이내 3회 이상 입건된 전과자 약 2만 명을 성폭력 우범자로 분류해 따로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인 문제로 전자발찌는 실효성도 보지 못한 채 여성과 아동 등 취약계층이 계속해서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올레길을 비롯한 전국의 탐방로 등에 대한 관리와 CCTV설치 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사건이 있었던 올레1코스가 폐쇄되고 대대적인 보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이은 흉악범죄를 CCTV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는 병든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범죄가 잦아지고 잔인해지는 이유에 대한 더 근본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부의 집중과 빈곤의 대물림이 대립각을 이루며 복지가 안정되지 못하고, 무한경쟁과 사교육에 내몰리는 병든 사회는 흉악범죄를 양산하는 온상이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강력범죄는 금전문제, 치정, 과다한 음주 등이 주요 원인이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서로의 교감이 부족해 범행수법이 더 잔혹해 지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어려운 사회현실의 반영으로 현대인들 스스로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본적이고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을 불안에 휩싸이게 하는 흉악범죄를 CCTV와 같은 안전장치부족이나 범죄자 한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해 처벌규정과 예방대책을 강구하고, 사람 중심의 가치와 존중이라는 시민교양과 인성교육을 먼저 이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