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비리 수사할 ‘공수처’ 설치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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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비리 수사할 ‘공수처’ 설치 가시화
  • 김현기 실장
  • 승인 2012.08.1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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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고위공직자들 감시시스템 설치 필요성 공감”

이명박 정부 5년, 한국 검찰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검찰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최근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제안했던 ‘고위 공직자비리 수사처(공수처)’ 설치가 현실화되고 있다.
MB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속속 터지고 있는 천문학적인 권력형 비리 얘기다. MB정부의 실세중의 실세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구속됐고, 왕수석·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씨는 온갖 비리 추문에 시달리며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측근·친인척 비리에 대해 검찰은 레임덕 시기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는 것이다. 정권 초부터 야당은 물론 정두언·정태근 의원 등 여권 일부에서도 실세들의 인사전횡과 비리의혹을 적극 지적했음에도 묵살했다. 민간인 불법사찰만 해도 벌써부터 양심선언 등을 통해 불거져 나왔지만 검찰은 덮기에 급급하다 뒤늦게 올해 재수사에 나서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에서 찾는다.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되는 큰 사건들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검찰이 정치로부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행정부 소속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최근 여야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다.

고위공직자 별도 수사할 공수처 설치 필요

최근 공수처 설치 문제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제안했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공감이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야권의 유력한 대권 잠룡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최근 출간한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사법처리 된 대통령의 측근이 40여 명에 이른다”며 “우선 검찰이 제대로 엄정하게 적극적으로 수사에 힘을 써야 한다”고 말해 검찰이 제대로 못 한다면 공수처와 같은 기관을 만들어서라도 고위 공직자의 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모습이다. 야당의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도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볼 때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 기소 독점권을 가진 검찰을 견제하려면 특검 상설화나 공수처 설치 등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 중에서도 정권 비리 때마다 만들어진 특검이 시간·예산·비용 투입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주요 공직자의 부패만을 별도로 수사·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를 설치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5월 검찰은 개혁 대상 1순위로 거론되는 수모를 안아야 했다. ‘스폰서 검사’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정치권은 전방위적으로 검찰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여야가 공수처 설치와 특별검사 도입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보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도 검찰과 경찰 개혁을 강하게 주문하던 터였다. 결국 국무총리실 산하에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되고, 개혁 대상으로 검찰과 경찰을 동시에 겨냥했지만, 방점은 검찰에 찍혔다.

개혁안의 핵심 내용으로 상설 특별검사제 도입에서부터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완화하는 기소심의제 도입,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신설, 검찰의 수사권 일부를 경찰로 넘기는 방안 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에 대한 검찰의 반응은 그야말로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스폰서 검사’를 계기로 자체 개혁안을 마련하던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바로 ‘반기’를 들었다. 김총장은 “검찰의 권한과 권력을 쪼개서 남을 주든지 새 권력을 입히는 것은 답이 아니다. 검찰이 요즘 시련을 맞고 있지만, 검찰만큼 깨끗한 조직은 없다”라며 정치권 외부로부터의 개혁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대통령 지시에 ‘항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김총장의 발언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으며 오히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각인시켜주는 역효과만 불렀다.

검찰의 막강한 권한 견제할 장치로 제격

정치권과 학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검찰 개혁과 관련된 핵심 논란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정치검찰과 부패검찰 논란이다.
우선 정치검찰 논란의 핵심은 정경유착 사건과 같은 대규모 권력형 비리사건은 수사를 해야 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수사가 흐지부지되거나 몸통을 밝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별검사제나 국정조사 얘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까닭도 결국은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할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부패검찰 논란의 핵심은 현재 검찰 전체가 부패했다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일부라도 부패하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신호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랜저 검사, 벤츠 검사, 떡값 검사 문제는 여전한 난제다. 그렇다면 정치검찰이나 부패검찰이 문제가 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이일까. 전문가들은 검찰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고, 그 권한을 견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내부 감찰 기능과 외부 견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은 사법처리의 대상과 범위 등을 독자적·독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공수처와 같은 상시적인 감시·통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비대해진 검찰권한을 조정하고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수부가 폐지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대검의 직접수사 기능을 폐지하여야 한다는 것. 대검에 수사 부서를 존치하는 것은 정책 수립과 집행을 담당하는 대검의 기능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검찰총장의 직할부대인 중수부의 성격상 검찰총장이나 정치권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행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국회가 권력형 비리 수사의 공백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 검찰의 비대해진 권한을 분산하고 상호 견제하면서도 권력형 비리 전반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왜 하필 시점이 지금인가

현재 제기되고 있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은 그동안 줄곧 강조돼 왔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개혁안을 보더라도 과거의 내용과 다를 게 없다. 이미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논란을 빚었던 사안들이다. 그것이 재탕·삼탕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 말에 이른 시점에서 여야 정치권이 다시 공수처 설립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 ‘권력형 비리’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된 듯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구속, 민주당통합당의 박주선 의원과 박지원 원내대표, 새누리당의 정두원 의원 등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저축은행 관련 사건들이 여의도 정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관측이다. 검찰에 대한 정치권의 오랜 불신도 무시할 수 없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거듭 밝히지만, 솔로몬이나 보해 저축은행이나 어디로부터도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단언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이미 문제가 있던 곳으로부터 로비를 위해 금품을 수수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는 더 나아가 검찰의 이번 수사가 정치수사, 표적 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을 비롯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자, 검찰이 물타기를 위해 자신을 수사한다는 것이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도 “제1야당 원내대표를 검찰에서 근거도 없이 출석하라는 소환 통보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검찰이 뭘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시대가 많이 변해 민주화되고 투명한 사회가 됐기 때문에 옛날처럼 검찰이 무소불위하게 검찰권을 남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고 일침을 놨다.
그러나 검찰 역시 만만치 않다. 검찰은 중수부와 특수부 검사를 총동원해 박지원 원내대표를 수사했고, 혐의 입증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제1야당과의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인 것 같다. 정치권과 검찰의 싸움에서 지는 쪽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제1야당이 지면, 나이 일흔에 달한 박지원 원내대표의 정치인생이 끝나는 것은 물론 민주통합당은 대선을 앞두고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반면, 검찰이 진다면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과 함께 엄청난 검찰개혁 요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검찰의 반발 누르고 성공할까

공수처 신설이 과거처럼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회 법사위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공수처 설치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지만 결국 없던 일로 되고 말았다. 국민들은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고 보겠지만 ‘살아 있는 권력’과 정치인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기관이 아닐 수 없다. 자칫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공수처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의 목을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 한 관계자도 “정치권에서 검찰개혁 방안으로 논의 중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수사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혼선을 유발하는 ‘옥상옥’에 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법적으로 아무 제한 없이 엄연히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검찰이 있음에도 옥상옥의 역할을 하는 별도기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제도 개혁방안으로는 검찰의 중립성 확보를 위한 검찰총장추천위원회 설립, 피의자 소환 횟수 제한, 정치적 사건의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기소배심제도 도입, 부당한 불기소를 견제하기 위한 검찰심사위원회 구성, 자의적 구형을 막기 위한 구형기준 마련을 제시했다.

서울의 모 법무법인의 관계자도 “부정부패 행위의 적발과 처벌 강화라는 장점은 있지만, 형사처벌상의 차별과 새로운 사찰기구의 탄생, 국민권익위원회와의 기능 중첩 등 간과할 수 없는 단점들이 많다”며 공수처 도입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검찰 내부 분위기도 실현 불가능 쪽이다. 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공수처가 설치된다 해도 구성원은 검찰 등 기존 수사기관에서 차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결국 공수처는 ‘옥상옥’이나 ‘검찰 분소’가 될 가능성이 높아 예산과 수사력의 낭비만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 당국의 한 관계자도 “공수처를 논의하기 이전에 청와대나 감사원 등이 암행 감찰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각 행정 부처의 감사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무조건 제3의 기구를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공수처가 만들어졌다 치자. 만약 검찰에서 수사하다 고위 공직자 비리가 불거지면, 공수처로 사건을 넘겨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공수처의 수사도 결국 검사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공수처와 검찰의 관계가 애매하다. 솔직히 감이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공수처가 ‘옥상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었다.
유례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한국 검찰의 권력 행사는 항상 공정성을 의심받아 왔다. 비대해진 권력에 대해 우려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때문에 실제 개혁의 메스를 들이대려 했던 적도 있었고 절반의 성공에 그쳤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공수처 설치가 현실화될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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