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부머’ 그들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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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부머’ 그들이 떠난다
  • 글/신혜영 기자
  • 승인 2006.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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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만 ‘베이비 부머’가 떠날 자리 누가 메우나
퇴출 위기에 처한 경제의 핵심 축 ‘베이비 부머’… 경제에 큰 파장 예고

198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현장을 지켜 온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가 앞으로 3~11년에 걸쳐 사회 전면에서 퇴장한다고 한다. 현재 81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6.8%를 차지하는 이 세대가 모두 물러나면 한국 사회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미 일부 퇴장이 시작된 이들 세대가 본격적으로 떠나면 한국 사회는 소비 위축과 더불어 노동력 부족을 한꺼번에 겪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렇게 경제에 큰 파장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자리를 과연 누가 메울 것인지, 대책 강구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816만 베이비 부머 그들이 떠난다
베이비붐 세대의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출산율을 근거로 1955~1963년 출생한 인구집단을 베이비 붐 세대로 부르는 학자가 많지만 가족계획이 1962년 시작된 점을 들어 1955~1961년 출생자로 보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시대적으로 ‘산업화 세대’의 권위에 눌리고 ‘386세대’와 ‘인터넷 세대’의 기세에 밀린 일명 ‘낀 세대’로 40대가 대부분인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퇴출 기로에 서 있다. 현재 나이 42~50세인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바람 속에서 이미 상당수가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남아 있는 베이비 붐 세대들도 평균 53세경에는 은퇴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는 경기침체, 기업문화 변화 등의 영향으로 일정 나이가 되면 능력이나 경력 등과 관계없이 조기 퇴출시키는 관행이 정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정년 연령은 57세이지만, 실제로 직장을 그만 둔 나이는 53세로 집계되었다.
특히 7~8년 뒤인 오는 2012년쯤부터 시작해 2020년 사이 무더기로 은퇴할 전망이어서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더욱이 주력 소비계층인 이들 세대는 은퇴 이후 장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벌써부터 지갑을 꽉 닫고 있어 경기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줄고, 청년실업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제기 되고 있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면이 훨씬 크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경제의 핵심 ‘베이비 부머’
베이비 붐 세대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인구 비중인 16.8%보다 훨씬 크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위업한 이들이 아직 기업에 남아 있다면 차장, 부장, 임원급들이다. 생산직도 고참 조장이나 반장급, 기사 등으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 자동차의 전체 임직원 5만3,000명 중 베이비 붐 세대는 1만 9,000명으로 35.8%나 된다고 한다. 포스코도 전체 1만 8,888명 중37.3%인 7,037명이, 두산중공업은 4,798명 중 1971명으로 전체 41%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비 부머들은 생산의 주체로서 경제성장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소비 주체이기도 했다. 삼성증권 김학주 애널리스트는 “90년대 한국에서 승용차 시장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것은 이들 베이비 부머들이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일제히 자동차를 구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시장이 역시 장기 상승세를 탄 1980년대는 55~63년 생 1차 베이비 부머들이 사회에 진출해 집을 사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들이 돈 버는 재미를 깨닫는 30~40대 연령에 들어선 90년대 이후 한국의 종합주가지수는 세 차례 1000을 넘어섰다. 또 이들이 자녀의 교육, 문화 등 생활환경을 고려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는 강남 아파트 붐이 일어났다. 최근 붐이 일었던 판교, 용인 근교역시 이들의 영향력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베이비 부머들은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지출을 늘리며 한국의 내수를 떠받쳐 왔다. 하지만 이들이 떠나기 시작하면 한국 기업들은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특히 숙련된 근로자 부족 현상이 우려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에 통계청은 2016년을 정점으로 15~64세의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이후 중고령층이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두산중공업 인사팀 관계자는 “향후 꾸준히 줄어들 고참 근로자들의 숙련기술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기업들의 과제”라고 말했다.

불안정한 노후, 기댈 수 없는 ‘낀 세대’
대기업 A사의 김모(50) 상무는 한국 ‘베이비 붐 세대’의 맏형 격이다. 그는 재수를 한 뒤 1975년 대학에 입학했지만 ‘10월 유신’의 여파로 1년의 절반은 휴강이었다. 그래도 군대 제대 후 1982년 여유 있게 대기업에 취직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동기 120명 중 1명만 오른다는 임원 자리를 따냈지만 퇴직 이후에 대한 불안감은 여느 동년배와 다름이 없다.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나 경제적 풍요를 누린 미국 ‘베이비 부머(1946~1964 출생)나 일본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와는 달리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들은 ‘준비 안 된 퇴장’을 해야 한다. 이에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세대는 사회 제도나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면서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열매’를 얻지 못한 세대”라고 말했다.
이렇듯 이들의 노후가 편안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부모를 오래 부양하고도 정작 자신들은 자녀들에게 노후를 기댈 수 없는 ‘낀 세대’이기 때문에 노후 생활의 불안정성이 높다. 또한 이들의 자산이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집중되어 있고 소비성향이 높아 노후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점과 평균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으로 연장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선진국처럼 사회보장이 확실하지 않고 지난 2005년 12월부터 실시되고 있는 퇴직연금은 이들이 혜택을 누리기에는 적립기간이 너무 짧다. 대부분의 베이비 붐 세대는 정신적 압박감에 사로 잡혀 있다. 은퇴 후 국민연금에 기댈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실제로 IMF 외환위기 이후 상시화 된 구조조정으로 직장인들은 끊임없이 압박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게청에서 조사한 2003년 사회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준비 상태는 절반 가까이가 노후 준비가 없다는 통계치가 나왔다. 이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선진국처럼 복지가 발달한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의 노후는 철저하게 개인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축률 상승, 내수부진 장기화 우려
인구비중이 높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50대에 접어들고 노후불안에 따른 고령층의 저축률이 상승함에 따라 앞으로 내수부진이 장기화 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2005년 3분기 전 가구의 가구주 연령대별 저축률을 보면 40~44세는 18.3%, 45~49세는 17.1%로 떨어지다 50~54세는 20.9%, 55~59세는 21.2%로 상승했다. 이 같은 저축 행태는 최근 고령층의 소비 증가율이 줄어드는 현상과 관련된다.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가구주 연령대별 소비 증가율을 살펴보면 20대가 8.1%로 가장 높고 30대와 40대는 5%와 4.3%의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50대와 60대의 경우 1%와 1.1%에 그쳤다. 이에 현대경제연구원의 박덕배 연구위원은 “이들은 자산을 주로 부동산이나 예금, 적금으로 갖고 있어 저금리에 부동산 값이 안정되면 은퇴 후 소득이 급격히 줄 수 있다”며 “이들이 모두 은퇴하면 한국의 전체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50대 이후 연령층에서 저축률이 증가하는 데에는 고령화에 따른 노후불안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후불안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저축을 늘리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 전체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득보다는 실이다. 현재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이르는 한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가 이제 막 50대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활력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그대로 들어맞는다면 이들이 내핍생활을 지속할 경우 우리 경제는 만성적인 내수부진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에 따라 가장 구매력이 높은 편인 고령자들이 안심하고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든든한 노후 안전망을 구축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40대 중년층은 자산운용에 적극적이고 노후대비를 위한 투자욕구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5년 9월 초 크레디요네증권은 한국의 주식시장이 이러한 인구통계학적 측면에서 볼 때 아시아시장 중 호재가 가장 뚜렷해질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적극적인 자산운용을 선호하는 40대 계층이 급증하는 시기에 들어간 한국증시는 향후 10~15년간 30%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우호적인 전망을 내 놓았다.


경쟁력 전달할 수 있는 장 마련 시급
1990년대 미국의 베이비 부머들은 주식시장을 급등시킨 주요 동력으로 평가 받고 있다. 미국의 주식시장이 1990년대 베이비 부머들의 투자증가와 저금리, 간접투자의 활성화를 기반으로 무려 30.9%나 급등했던 모습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저금리와 간접투자의 활성화 속에 베이비 부머들이 중년에 접어든 한국의 주식시장은 2001년 이후 장기적인 상승추세를 기록하면서 아직도 그 열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시장의 간접투자는 변액보험과 적립식 펀드투자라는 큰 흐름에 의해 주도되어 오고 있다. 부동산 투자를 통한 투자수익 가능성이 작아지고 확정금리형 상품을 통한 노후대비는 이미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위험을 제어, 투자수익을 장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간접투자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올 12월 도입 된 퇴직연금은 주식시장을 떠받칠 또 하나의 큰 수요처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개인이 노후대비를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이 향후 불확실한 부동산 투자비중을 줄이고 주식 간접투자 비중을 높여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다. 또한 이들이 현재 40대라 해도 준비해야 할 노후기간은 20년 이상 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장기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도 퇴직충격에 대비해 고령자에게 맞는 직업개발,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정년 보장 등 다양한 대책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더불어 우리나라 베이비 붐 세대의 지식과 기술력, 사회적 학습능력 등을 전수 받을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 것도 시급하다. 그들의 노하우를 차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가 나서서 사회적 학습력, 지적능력을 데이터베이스화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비관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대는 교육 수준이 높고 건강 상태가 좋다. 한국의 산업 구조도 고령층에 유리한 서비스업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어 이들의 퇴장이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 인구학연구실 조영태 교수는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현재의 노년층보다 정치적 영향력과 발언권이 클 것이며 기업과 사회의 요구로 정년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일본,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한국 보다 10여년 먼저 베이비 붐이 일어난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난 46년생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85년부터 미국의 경제와 자산시장은 장기 상승세를 탔다. 이 시대에 태어난 7,400만~7,800만 명으로 수요는 더 이상 공급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 20세기 미국의 마지막 한 해는 주가 폭락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제 미국 베이비 부머의 아이들, 메아리 부머는 저성장 시대에 남게 됐다. 모든 자산의 값이 오르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요즘 미국 주식시장에선 배당수익과 시세차익이 높은 1등 기업, 독점기업 주가가 주도적으로 오른다. 오르는 상품만 계속 오르다 보니 자산시장 양극화는 심해진다. 나머지 자산은 저수익, 고위험 상품이 되고 있다. 현재 미국은 기업연금, 개인연금, 뮤추얼펀드가 커지면서 주가와 채권 값이 올랐다.
일본은 ‘단카이(團塊, 덩어리)’라고 해서 각 경제계에서 그들의 소비에 따른 새로운 경제 활력소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에 난리이다.
단카이란 1947~1949년 3년 동안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 800만 명(현재 생존인원 680만 명)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전 세대를 통틀어 숫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이 세대는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을 이끈 주인공이다. 이와 함께 거품경제를 만든 주범이라는 양면성도 갖는다. 일본은 ‘단카이(團塊) 세대’의 무더기 은퇴를 막기 위해 1998년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늘렸고,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더 늘려 65세까지 늦출 예정이다.
단카이는 일본에서 가장 돈 쓸 줄 아는 세대로 일본에서 최근에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퇴직 후 즐길 취미생활로 여행이(국내여행 52.1%, 해외여행 37.8%)이 압도적이며 드라이브, 영화?연극 관람, 스포츠가 뒤를 이었고 공부를 하겠다는 답변도 많았다. 사고 싶은 물건을 보면 자동차?오토바이, 대형화면 액정TV?홈시어터가 수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일본에선 단카이의 퇴장을 위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상품개발은 몰론 ‘단카이 펀드’라는 일본 자산운용회사들이 일제히 만들기 시작한 펀드가 유행하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2007년 단카이 세대가 정년 60세에 들어가는 시점이다.

베이비 붐의 시대상
박정희 정권 때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보낸 베이비 붐 세대들은 유신독재 아래 ‘반공’ ‘멸공’ 등 냉전 이데올로기와 한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받았다. 1979년 10.26사태에서 1980년 5.18민주화 운동, 그리고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실패는 이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줬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는 “청년기에 긴급조치, 대중가요 방송 금지 등을 경험하면서 권력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조대협 교수는 “일부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지만 대부분 정치적으로 소극적인 경향을 보였으며 현실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베이비 붐 세대들의 학창시절을 보면 이들이 초등학생이던 1965~1968년 초등학교의 학급당 인원은 65명으로 1960년 57.4명, 1978년 53명에 비해 매우 많았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경쟁이 심화되고 그 안에서 실력 차가 크게 벌여지게 된 것. 따라서 재수생 누적과 고액 과외가 부각된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이 세대는 자녀 교육비로 상당한 부분을 지출했다. 이처럼 일생동안 심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굳이 가른다면 일정 부분 보수적 성향을 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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