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인류 ‘은둔형 외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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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인류 ‘은둔형 외톨이’
  • 글/김정숙 기자
  • 승인 2006.0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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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싫어요” 나홀로 외톨이족 급증
청소년부터 20~30대 남성이 많아, 지속적 관심 필요

김(17) 군은 고1 때 자퇴했다. 그 뒤 7개월 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컴퓨터게임 때문에 낮과 밤이 뒤바뀌었다. 점차 감정조절이 어려워졌다. 부모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고 때리기도 했다. 잘 씻지도 않고 식사를 거르는 때가 많다. 유일한 취미는 오래 잠자기와 인터넷이다. 김 군과 같이 세상을 등지고 사회 부적응자로 생활하는 청소년이 최근 들어 급증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생활의 대부분 방안에서
김 군과 같은 사람들을 최근에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신조어로 부르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는 학교와 친구 등 외부와 접촉을 피하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폐쇄적으로 생활하는 청소년을 일컫는 말. 학업 결손 등으로 이들 청소년은 향후 ‘반사회적’ 내지 ‘비사회적’인 성인으로 ‘고착’될 수 있는데다 자칫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높아 교육당국의 관심이 시급하다.

생활의 대부분 방안에서
서울에 사는 김모(27)씨는 최근 수개월째 집 밖에 나간 적이 없다. 4년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생긴 변화다. 그녀는 하루의 대부분을 방 안에서 지낸다. 가족들이 잠들면 음식을 자기 방으로 가져와 먹는다.
어쩌다 거실에서 어머니와 마주치면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퍼붓는다. 때로는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한다. “탤런트처럼 예쁘게 낳아주지 않았으니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상담치료사를 불러보기도 했지만 끝내 그녀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고교 3년생 박모(18)군도 올해 초부터 방 안에 틀어박혔다. 느닷없이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가족에게 폭탄선언을 한 뒤였다. 그가 하루 종일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아 담임교사와 친구들이 여러 번 찾아왔지만 허사였다.
두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박 군은 4개월 동안 컴퓨터 게임, 만화책 보기, 잠자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는 지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왜 방에 틀어박히게 됐는지를 의사는 물론 가족들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본인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방 안에만 머물러 일체의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방콕족(族)’ ‘은둔형 외톨이족(族)’이 국내에서도 늘어나고 있다.

위험군 고교생만 4만여명
청소년위원회는 지난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3층에서 열린 ‘사회부적응 청소년 지원방안 국제심포지엄’에서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에 속한 고교생 수가 4만3,000여명에 달하고 아예 학업까지 포기한 ‘고위험군’도 5,6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같은 결과는 청소년위가 한국청소년상담원과 동남정신과의원에 의뢰해 1,461명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11월 1~21일 벌인 사회부적응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응답자 가운데 집 밖을 나가지 않은 경험이 있는 ‘은둔형 외톨이 잠재형’ 학생은 137명(9.4%)이었고, 이중 은둔 경험이 있고 대화상대가 1명 이하인 ‘위험군’은 34명(2.3%), 학교까지 그만 둔 ‘고위험군”도 4명(0.3%)이나 됐다. 이를 2005년 현재 전국 고교생 185만5,000명에 대입하면 ‘위험군’은 4만3,000명, ‘고위험군’은 5,600명에 달한다는 추계가 나온다. 이들은 취업 의욕도 없고 일도 하지 않는 이른바 '니트'(NEET)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청소년위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1990년대 후반 이후 ‘히키코모리’라 불리는 은둔형 청소년이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으며, 아직도 히키코모리는 130여 만 명이나 된다. 일본에서는 70년대 입시전쟁에 지친 고등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처음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처음에는 이들을 특이한 정신병으로 봤고 극소수 문제청소년들의 일탈 정도로 넘겼으나 90년대 들어 이 같은 현상에 따른 청소년들 의 범죄가 확산되고 경기 침체로 인한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일본 전체의 사회문제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라 '~에 틀어박히다'라는 일본어 명사형에 어원을 둔 '히키코모리족'이라는 신조어마저 생겼고 일본 전체 인구의 약 1%에 해 당하는 120여 만 명이 히키코모리족으로 추산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전역에는 히키코모리족들이 원만하게 사회로 돌아 갈 수 있도록 돕는 비정부단체나 정부기관들의 활동이 활발하며, 지난 2003년부터 3년간의 연구를 토대로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하는 히키코모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전국의 정신보건복지센터와 시·읍·면 보건소에 의무적으로 배포해 설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대입 만능주의’로 대표되는 교육현장의 과도한 경쟁이 이러한 청소년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다 인터넷과 인터넷 게임의 급속한 보급, 집단 따돌림, 부모의 무관심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은둔형 외톨이 증세는 개인적, 가정적, 교육적,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복합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기간에 대처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학업중단자 청년백수가 대부분
은둔형 외톨이족은 국내에만 약 20만~30만 명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왕따, 부모와의 대화 단절, 게임 중독 등의 영향으로 최근 더욱 급증하고 있지만 그 실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방콕족’을 양산하는 토양이 중·고교 학업 중단자와 청년백수라는 분석도 있다. 중·고교 학업 중단자는 매년 5만 명가량 되고 청년백수는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 약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일본에서 조사한 결과 중·고교 학업중단자의 15% 정도가 히키코모리가 되며 국내에서도 양상이 비슷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일본 후생성은 최근 전 인구의 1% 가량인 120만 명의 히키코모리가 있다고 추산한 바 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왕따, 이성 친구와의 결별, 취업 실패,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좌절에 대한 경험, 심한 모멸감이 중요한 원인이 된다”며 “10대 후반에 많이 발생하지만, 최근엔 20대나 30대에 시작되는 ‘성인형 은둔형 외톨이’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해서 극도의 대인 기피증을 보이지만, 예외적으로 엄마나 동생에게는 폭언과 폭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기도 한다.
지난 5년간 은둔형 외톨이 107명을 상담·치료한 여인 중 원장은 ▲남자(73명)가 여자(34명)보다 2배 이상 많고 ▲완전 칩거형(41명)보다 담배나 음료수를 사러 잠깐 문 밖을 나서거나 밤에 잠깐 길거리를 배회하는 ‘제한 활동형’(66명)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대부분 가벼운 우울증, 대인공포증, 적응장애, 불안장애, 회피성 인격 장애 등의 정신과적 질환을 함께 겪고 있다.
한국교육심리연구소측은 “부모와 자녀의 대화단절이 가장 큰 원인인 만큼 관심과 대화의 재개가 가장 중요하다”며 “학업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 도덕성의 상실, 전통적 규범의 와해와 같은 ‘심리적 탁류(濁流)’를 없애는 사회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들 청소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질책하고 배제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만 무조건 기존 학교나 사회의 틀에 끌어들이기보다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익혀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남정신과의원 여인 중 원장은 "은둔형 외톨이 증세인지 약물 치료가 필요한 일반 정신병인지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겠지만 여리고 깨지기 쉬운 마음을 가진 은둔형 청소년들에게 '가족과 사회는 너희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식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히키코모리 日 120만명 추산
최근 일본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히키코모리’이다.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는 ‘(방안에) 틀어박히다’라는 뜻인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이다. 일체의 사회적인 관계를 거부하고 방안이나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어나 TV나 비디오를 보며 인터넷에 탐닉하는 행태를 보인다.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법한 행동이지만 문제는 지속 기간이다. 일본 후생성은 2001년 5월 그 기준을 ‘6개월 이상’이라고 제시했다. 길게는 3~4년, 심하면 10년 이상을 방안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자청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는 것도 특징이다.
히키코모리는 197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입시에 시달리던 학생들이 무단결석하고 낮에는 집안에 있다가 밤이 되면 외출하는 현상이 빈발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두고 일부 불량청소년들의 단순한 ‘등교거부’쯤으로 해석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학생들이 밤에 거리로 나와 행인을 폭행·살인하는 등 점차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 비슷한 시기, 은둔하는 성인들도 나타나면서 히키코모리는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일본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한 무렵이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전선에서 낙방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아예 집안으로 잠적해 버렸다.
히키코모리는 지난해 현재 대략 12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 인구(1억2천 만명)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일본에서 특히 우려하는 점은 이중에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야 할 30대의 비율이 30%에 이르는 데다 대부분 남성들이라는 것. 이들은 외부와 단절된 자기만의 공간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광장공포증·햇빛혐오증·우울증·현기증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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