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낭인 안철수’ 신드롬
지난해 9월초, 서울시장 보궐선거 정국에서 급부상한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조금 특별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의사를 밝혔을 당시에는 그 역시 여느 예비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정치낭인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일파만파 퍼진 후 불과 며칠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안 원장은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 20여 분 간 진행한 면담을 통해 선거출마를 포기하고, 박 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하는 한편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로써 안 원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정국에서 사라졌다.
이른바 ‘아름다운 양보’로 불리는 이 행보는 우리 정치계에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당시 안 원장은 박 시장보다 몇 배나 앞선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 준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단 20분 동안의 이뤄진 면담을 통해 안 원장이 양보를 결심하게 된 이유도 화제였다. 단지 “본인보다 상대가 더 서울시장직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대개의 정치낭인은 자신의 이력과 열정을 과시하며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벌이는 게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허물을 덮고, 상대의 허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 지키지도 못할 헛공약을 남발하며 유권자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이렇게 따지면 안철수 원장이 정치낭인 생활을 한 기간은 불과 일주일 남짓이다. 그가 정치계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9월 초순이지만, 권력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비치고 실제 이러한 활동을 벌인 것은 박 시장과의 단일화가 이뤄지기 직전인 단 며칠 동안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그는 유력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라 4년 동안이나 독주하며 대세론을 구가해온 박근혜 새누리당 前 비대위원장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그가 대선출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 며칠 동안 보여 준 그의 모습이 전부였을 뿐이다.
“안철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다. 안 원장은 정치와 관련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대선에 대한 이렇다 할 발언도 없었으며, 출마의사 또한 적극적으로 내비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유력한 정치낭인 신분이다. 이는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권자 여론과 언론 그리고 잠재적 상대자들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다. 그동안 안 원장은 본업에 충실해 왔다. 학자로서 연구와 강의를 이어왔고, 사회적 멘토로서 각종 강연과 집필 활동에 매진해 왔다.
이러한 ‘안철수 현상’을 바라보는 정치권 안팎의 분석은 다양하지만 대략적인 풀이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염원”으로 모아진다. 실제 안 원장은 우리 정치계의 오랜 경계선이었던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잣대에 놓여 있지 않고, 지역주의에서도 자유롭다. 심지어 소속 정당도 없는 상태다. 일정기준의 대척점을 형성하고 끊임없이 싸움을 일삼아 왔던 기존 정치구도와 사뭇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안철수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언론과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띄워주고 있는 모양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잠재적 대권주자 안철수’의 파괴력이다. 정치권과 언론계 안팎에서는 안 원장의 출마선언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상황인데, 예상대로 안 원장이 대권행보에 직접 나설 경우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드롬의 재부상

나날이 안 원장이 대선출마선언 관측과 요구가 높아지고 있었음에도, 이렇다 할 의사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신비주의 전략’, ‘무책임한 침묵’ 등 안 원장을 공격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래도 복수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조사에서는 1위의 박근혜 前 비대위원장과 비등한 지지율을 기록해 왔다.
그런데 최근 안 원장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포착됐다. 신간 ‘안철수 생각’을 발간해 서점에 돌풍을 일으키더니, SBS TV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전격 출연해 해당 프로그램 자체 시청률 최고점을 돌파한 것이다.
이로써 안 원장의 대선후보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해 방송출연 직후 발표된 대다수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박 前 비대위원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에 여야 대선후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안 원장의 행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대선경선 레이스를 이미 시작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더욱 분주해 보인다. 다시 불기 시작한 ‘안철수 바람’이 몰고 올 여파를 따져보느라 각각의 정당과 캠프에는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계산기 두드리느라 분주해
공고한 대세론의 주인공인 새누리당 박 前 비대위원장 측에서는 신간출간, 방송출연 등 안 원장이 단기간에 쏟아낸 ‘안철수식 컨벤션 효과’로 인한 일시적 결과에 불과하다며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안 원장이 보여준 정치파워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인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안 원장의 재부상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오히려 민주통합당이다. 사실상 그가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안 원장의 예상행보는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2차 경선을 치르는 것이나 제3세력으로 대선에 출마하는 방안 정도다. 어떻게 하든 민주통합당과의 단일화 과정은 불가피한 셈이다.
안 원장과 상당수 지지층이 겹치는 문재인 캠프 측에서는 비상등이 켜졌다. 캠프 입장에서는 경선 레이스 초반에 터진 ‘악재’라 할 만하다. 그러나 캠프 내부에서는 오히려 이를 호재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안 원장 측의 대선출마 여부가 보다 선명해짐에 따라 당 내 유력 후보인 문 후보와의 단일화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다른 후보들 역시 각자 나름대로 긍정적인 풀이를 내놓고 있다. 안 원장의 지지율 상승폭이 커질수록 문재인 후보에 대한 대안론이 급부상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현재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후발주자들이 공략할 수 있는 ‘틈새’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큰 그림에서 보자면 민주통합당이 궁지에 몰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보궐선거는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시장 등 제3세력의 잔치나 다름없었다. 박영선 의원이라는 거물급 히든카드를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서 안 원장이 출마를 선언하고, 민주통합당과의 경선까지 승리한다면 이번에도 민주통합당은 후보를 내지 못하는 ‘불임정당’의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야권 단일화 과정을 거쳐 그야말로 모양새 좋게 안 원장을 지원한다 해도, 제3세력에게 대권후보직을 건네줬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 대망론, 실현 가능성 얼마나 되나

정 회장의 경우에는 자수성가한 대기업 총수로서, 국민경제와 주택문제 해결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나와 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 前 경기도지사의 경우에는 박정희 前 대통령과 비슷한 외모로 경제성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정 의원은 대선을 치르기 직전인 2002년 6월,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에 힘입어 단숨에 유력 대선후보로 발돋움했다. 또한 문국현 前 의원의 경우에는 청렴하고 사회공헌도가 높은 기업인으로 큰 지지를 받았다.
이들이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켰던 요인은 거의 비슷하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강렬한 갈망이 반영됐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현재 안 원장이 받고 있는 지지나 기대와 비슷한 측면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서 볼 만한 점은 이러한 ‘새 인물들’의 돌풍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주영 후보와 이인제 후보는 본선에서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로 낙선했고, 정몽준 후보는 노무현 前 대통령과 단일화를 했다가 이를 번복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문국현 후보의 경우에는 5%대 득표에 그쳤다.
그렇다면 이들의 패배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결과적인 분석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고정 지지층과 후보 검증의 부재, 이른바 ‘세력’의 부재 등을 주요 요인으로 제시했다. 이들 요인은 안 원장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러나 현재 안 원장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돌풍은 예전과 크게 다르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우선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보여준 화통하면서도 합리적인 후보직 양보를 통해 각인효과를 크게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특히 이를 통해 철옹성과도 같았던 당시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박원순 시장을 탄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 야권 지지자들에게 크고 지속적인 감동을 주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또한 안 원장이 행해왔던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이 알려지면서 이념을 넘어선 나눔의 이미지를 완성했다는 점도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아니라, 평소 많은 대중들과 지성인들로부터 존경받고, 선망의 대상으로 존재하던 사람이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안 원장 역시 이전의 제3세력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본선에서 고배를 마실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안 원장의 출마방식에 따라 승패의 여부가 갈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에서 관측하고 있는 것처럼 무소속이나 신당 창당을 통한 출마의 경우,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대선이 불과 5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력과 자금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한 탓이다.
그렇다고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기존 정당의 힘을 빌리는 것도 여러 부담이 뒤따른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반작용에 의해 형성된 지지율인 탓에 기존 정당과의 적극적인 협력은 이러한 열망으로 안 원장을 지지했던 계층이 무더기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제기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단독 출마를 선언한 뒤, 민주통합당 후보 혹은 범야권 후보와의 재경선을 치르는 방식이다. 단일화 과정을 통해 기존 정당의 지원을 받으면서 제3세력으로서의 명분과 참신함을 잃지 않는 최선의 방안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 말기에 속속 터지고 있는 각종 권력형 비리에 더해져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백병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역사적 변곡점에서 나타난 안철수 원장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대선출마선언을 했다고 보는 유권자들 입장에서 향후 안 원장의 행보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