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하는 벼랑 끝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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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하는 벼랑 끝의 아이들
  • 이지원 기자
  • 승인 2012.07.1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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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마음의 병,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혜안 필요

‘아이들은 모두 이방인이다.’ 세상 속에 하나의 인격체로서 성장해가는 단계인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낯선 땅에 발 들인 이방인처럼 본질적으로 불안하고 미성숙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본질적 특징은 때론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래 친구를 괴롭히는 가해자의 모습으로 혹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 줄기 희망이며, 따뜻한 보살핌이다. 희망과 보살핌이라는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학교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 목격자, 나눌 것 없이 모두가 피해자이다.

용서받지 못한 아이들

언어폭력, 모독, 물고문, 불고문, 손을 봉쇄하고 때리고, 전기줄로 끌고 다니고, 돈을 뺏는 것은 물론 집에 침입해 물건을 가져가고, 공부를 못하게 하고, 시험을 일부러 못 보게 하고, 강제로 게임을 시키고… 어느 조폭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자살한 한 중학생이 당한 학교 폭력의 이야기다.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에는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유서에서 지목된 가해자 두 명은 급우를 괴롭혀 자살에 이르게 한 혐의로 2심에서도 실형을 받았다. 기소된 A(14)군은 장기 3년에 단기 2년 6월을 선고 받고 소년교도소에 수감될 예정이다. 법원은 “가해자들의 나이가 어리지만 죄질이 나빠 실형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난 6월2일 대구에서 고등학교 김모 군(15)이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자살한 김 군은 학교성적도 상위권에 성격도 밝았다고 한다. 김 군을 사지로 내몬 것은 축구 동아리활동이었다.
축구를 좋아했던 김 군은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과 주말 축구경기를 했다. 하지만 이는 폭행과 괴롭힘의 시작이었다. 함께 축구를 하는 동급생에게 오랜 기간 괴롭힘을 당해왔던 김 군은 끝내 유서를 남기고 몸을 던졌다. 유서에는 “거의 매일 맞았다. 2년째 견디는데 힘들다”라고 적혀 있어 김 군이 상습적인 폭행을 당해 왔고, 지난 1월에는 폭행으로 인해 고막이 손상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숨진 김 군은 이날 오후 가해학생을 만나기로 했지만 극도의 공포감 때문에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군은 부모에게는 끝내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다. 김 군에게 폭력을 가한 가해학생도 실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에서는 이런 자살사건이 지난해 12월 이후 10번째다. 6개월여 동안 10명의 청소년이 자살을 시도했고 이중 8명이 숨졌다. 대구시와 교육청은 충격에 휩싸였고 이에 대구시 교육청은 다양한 예방책을 내놓았지만 이어지는 자살행렬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모방자살을 일컫는 베르테르 효과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행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모르는 이유 없는 폭력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학교폭력의 가해이유로 ‘단순한 장난으로’가 가장 많다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초중고교생 9,174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가해이유를 묻자 가장 많은 34%가 ‘장난’이라고 답했고 ‘이유 없이’라고 답한 학생들도 18%에 달했다. 그밖에 ‘상대학생이 잘못해서’, ‘오해와 갈등’, ‘화가 나서’ 등이 뒤를 이었다. 가해자의 절반 가까이가 이유 없이 장난으로 급우에게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만큼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 모두에게 정서적 지원 필요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는 “학교폭력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공감기능 중 타인의 정서에 대한 인식과 정서조절 능력은 또래 따돌림 피해 위험성과 연관돼 있다. 지속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아동들은 또래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고, 사회적 불안도가 높고, 피해의식의 척도가 높다. 또한 가해자의 경우 공감능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낮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구를 지니면서 동정심이 없다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지닌다고 한다.
실제로 상습적인 학교 폭력으로 문제가 된 학생의 뇌를 자기공명영상장치로 촬영한 결과 타인의 정서에 공감하게 해주는 편도핵의 기능이 떨어져 혈류가 증가한 흔적이 뚜렸했다. 자신이 괴롭히는 학생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에게 동정을 느끼는 능력이 떨어지고 이것이 심각해질 경우 반사회적 인격이나 보다 심각한 형태의 인격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10대 초중반은 대뇌의 전전두엽 부위가 형성되면서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시기로서 공감이나 충동조절이 아동기보다 약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서적 공감은 타인을 배려하고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는 능력으로 이 능력이 결여되면 타인을 지배하고 학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주로 가해 학생들에게 부족한 부분으로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표정과 말투, 태도 등으로 생각을 이해하고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으로 이 능력이 결여되면 상황에 따라 적절한 태도를 취하지 못해 집단 따돌림의 표적이 되기 쉽다. 특히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경우 정서적 공감능력 결여와 함께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었거나, 경제적 또는 사회적인 환경에 의해 정서적 결핍이 생기면서 충동성 조절능력이 결여되는 것도 폭력성이 생기는 주요 이유로 꼽힌다. 공감능력과 충동성 조절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청소년기의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면 학교폭력 가해 행동이 발현된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일진이니까’, 혹은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규정과 처벌로는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없고, 영어와 수학만 가르치는 교육으로는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은 물론 방관하는 학생도 학습된 무기력감과 폭력에 대한 무감각으로 인해 잠재적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는 정신적 스트레스 반응을 성인기까지 보인다. 실제로 집단 괴롭힘을 목격한 학생들은 혹시 나도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감을 느끼고 주변 친구가 고통을 받고 목숨을 끊은 소식을 접하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김건찬 학교폭력 예방센터 사무총장은 “친구가 왕따를 당해 자살한 것을 목격한 학생들은 ‘학교에 가기싫다’, ‘무섭다’, ‘죽고싶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까지 이들 학생에 대한 치료는 소흘했다”면서 “최소 72시간 이내에 반드시 학생들을 상담해 심리치료를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연구결과로도 나타난다. 2004년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리처드 헤즐러 박사와 오하이오대 그레고리 젠슨 박사가 과거 집단 괴롭힘을 지켜본 대학생 77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이들이 받은 심리적인 충격이 천재지변이나 생명의 위협을 경험했을 때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이들이 받은 스트레스가 지진이 발생했을 때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받은 스트레스 수준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자살한 대구의 모 중학교 학생들 중 전교생 982명 중 약 12%인 116명이 이와 비슷한 불안증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실효 없어

교육과학기술부의 집계 결과 지난해 자살한 초겵?고교생은 모두 150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통계청의 자료도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대책을 내놓고 사태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묘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 학교가 내놓는 학교 폭력의 근절 방안은 실질적인 학교폭력 감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도교육청에서 지난 5월 도내 초겵?고교생 7만여 명을 상대로 ‘학교폭력이 이슈화되고 근절방안들이 실행된 올 3월 이후에도 학교폭력 경험이 있는지’ 물은 결과 9.2%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41.1%가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신고하지 않는다’는 학생의 비율이 40%가 넘었는데 신고하지 않는 이유로는 ‘보복이나 비밀 보장에 대한 두려움’이 39.8%로 가장 많았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라는 응답도 28.2%에 달했다. 실제로 대구에서 자살한 중학생도 ‘보복이 두려워 부모님이나 선생님 경찰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고 유서를 남겼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또 다른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 도움도 청하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탈출하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학교폭력 예방과 사후 치유에 있어 실효성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

청소년의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으로 풀이된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중겙慈내萱?느끼는 스트레스 인지율이 성인보다 높다고 한다. 19세 이상 성인의 스트레스 인지율이 30.6%인데 반해 여학생은 50.3% 남학생은 37.2%인 것을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스트레스란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상태다.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정책 아래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마땅한 탈출구도 없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남학생들의 절반가량이 게임에 의존한다고 답했고 여학생들은 영화나 예능프로 시청이 가장 많았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가장 스트레스로 느끼는 문제는 무엇일까. 1위는 57.6%를 차지한 공부였다. 그 뒤로 부모님과의 갈등, 외모, 교우관계, 가정형편 순이었다. 
우리 청소년들의 평균 수명시간은 6.2시간으로 청소년기의 적정 수면시간보다 2시간이나 부족하고, 청소년의 37.4%가 아침식사를 거르고 있으며 73.1%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잘못된 입시제도 아래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사는 아이들이 스트레스에 허덕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중겙慈내萱?가출경험은 10.2%이고 이 중 가출의 주요 원인은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청소년기는 인격형성을 위한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과 관심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자살률이나 스트레스 지수라는 객관적 지표만 보더라도 가정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실제로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의 자살원인 1위는 ‘가정불화’인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11년 학교 급별 자살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초겵?고 학생은 모두 150명이고 고교생이 99명, 중학생이 50명 초등생이 1명이었다. 통계상 수치로 가정불화가 54명로 가장 많았고 염세비관 33명, 성적비관 16명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주 3~4회 이상이라는 아이들은 60%밖에 되지 않으며 심지어 부모와 가장 많이 대화하는 때는 용돈 받을 때라고 답하고 있다. 아이들이 게임하는 시간은 늘었지만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은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맞벌이 부부와 이혼가정이 늘어나면서 부모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가정도 줄어들고 있다.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며,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런 시간은 아이들이 고민을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들의 결여로 아이들은 부모에게조차 자신의 고민을 터놓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하다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자살을 선택하는 아이들에게는 징후가 포착된다. 부모가 아이의 학교생활이나 행동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바라봤다면 눈치 챘을 수 있었던 경우도 많다. 실제로 자살을 선택한 아이들의 부모의 경우, 아이에게서 보였던 자살 징후를 쉬쉬했던 것을 후회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은 죽음과 관련된 일기나 유서를 쓰거나, 등교를 거부하고,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 등 평소 해왔던 행동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거나, 도전적인 발언을 하고, 평상시와 다른 반항이나 파괴적인 행동, 급격한 성격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그동안 고마웠어’등의 말을 한다거나 자신의 일에 대해 초연해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 주의 깊게 봐야한다.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 자살증가율 1위 불명예

한국의 평균 자살률 28.4% OECD 회원국 중 1위, 10대~30대 사망 원인 1위 자살, 어린이겷뻤女?행복지수 OECD 국가 중 최하위. 우리나라의 씁쓸한 현실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교육성취도와 생활방식을 측정하는 교육 영역과 행동겭煇갼營컥?1위를 차지한데 비해 주관적 행복지수는 66점으로 가장 낮았다.
주관적 행복지수는 스스로 느끼는 건강 정도, 학교생활 만족도, 삶의 만족도, 소속감, 주변상황 적응도, 외로움 등 6가지를 평가하고 100점을 만점으로 한다.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여러 가지 면에서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답변한 고등학생 비율도 13.7%로 일본이나 중국보다 1/3가량 낮았다.

전문가들은 근본원인 파악이 우선이라고 이야기한다. 청소년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학업 스트레스, 부모와의 관계, 학교 폭력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자살 징후가 보이는 학생의 조기 발견과 지원, 부모 자녀간의 관계증진, 인성과 사회성 제고를 위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때때로 몇몇 청소년의 자살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이슈화되고, 예방책과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지만 실질적 효과는 보지 못하고 다시 관심 밖으로 멀어지곤 한다. 실제로 뉴스에 언급되는 자살 청소년은 일부일 뿐 실제로 이틀에 한 명꼴로 아이들이 자살을 선택한다. 청소년의 자살심리는 주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절망감과 어려운 상황을 피하기 위한 도피의 심리로, 충동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까닭에 아이들의 평소와 다른 태도나 모습은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요청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청소년 자살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지나친 경쟁구조와 분위기의 사회, 이로 인한 약육강식의 아노미적 관계를 형성하는 학교,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윤리적으로 지도하지 못한 교사, 가정에서 자녀의 폭력가해에 대해 지도하지 못한 부모, 피해자녀의 고민과 괴로움을 해소해 주지 못한 부모, 모두가 이제 아이들의 외침을 듣고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10대. 낙엽만 보아도 웃음이 난다는 나이 아니던가. 오늘, 관심의 눈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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