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끝없는 방송사고와 악재로 시청률 광고 추락
일 터지면 추스르기 바쁘고, 그러다 한숨 돌리는가 싶으면 민망한 장면에(성기노출사건), 또 인재 사고(상주참사)…. 2005년은 MBC엔 ‘최악의 해’로 각인되고도 남을 만큼 악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드라마 왕국’ ‘공정 보도의 산실’ 등 MBC가 수 십 년간 쌓아온 명성이 일거에 무너지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MBC에도 통할까 싶을 정도로 연타를 맞아 넉 다운 된 상태다. 최근엔 PD수첩이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자 보도 내용에 불만을 품은 시청자들이 MBC 앞에서 촛불시위까지 벌이기도 했다. 2005년 한 해 동안 드라마 예능 보도 등 어느 하나 조용히 넘어간 사건이 없다.
드라마·보도·예능 등 전방위적 문제 노출
MBC를 둘러싼 불운한 기운을 놓고 여의도엔 말들이 많다. 삼재(三災)가 겹쳤다는 무속신앙에 기댄 ‘설’이 MBC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을 정도니 MBC를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이러쿵 저러쿵은 물을 만난 격이다.
최문순 사장 취임 이후 진행된 MBC의 파격적인 인사 발령도 호사가들의 단골 메뉴다. 최 사장은 사장에 취임하기 전 부장 대우의 직위를 갖고 있었는데 단번에 수장 자리에 오른 뒤 단행한 연공서열 파괴 인사 조치가 내부 결속력을 흔드는 작용을 했다는 분석이다.
경영진과 실무 제작진 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없는 건물 구조 탓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영센터와 방송센터가 떨어져 있어 경영진과 제작진 간의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드라마·보도·예능 등 전방위적 문제 노출
2005년 12월 2일은 문화방송 44돌이었다. 그러나 축하 분위기는커녕 초상집 분위기였다. 올 들어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문을 여섯 차례 발표한 데 이어 ‘PD수첩’ 취재윤리 위반으로 또 한 차례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최문순 사장 취임 이후 9개월 내내 거론돼온 위기감이 최근 극에 달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프로그램들의 부진이다. 고소영과 비를 주연으로 쓰려던 드라마 ‘못된 사랑’이 불발됐고, 문근영을 문화방송의 ‘잔 다르크’로 기용하겠다던 원대한 계획도 좌절됐다. 또 인정옥 작가와 표민수 PD, 고현정을 내세운 드라마 ‘내가 나빴다’의 방영 계획도 무산되었다.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의 알몸 노출 실수도 문제가 적지 않았다. 이 밖의 드라마들도 시청률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조기종영이 줄을 잇고 있다. 시청자 및 네티즌의 비난이 높았던 '알몸노출 사건'이나 '상주 참사' 등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데다 행사 진행사의 잘못도 있어 MBC의 책임 부담이 덜한 편이었지만 'PD수첩'의 경우 문제제기에 따른 부담감을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보도국은 올 초 구찌백 파문으로 시작해, 안기부 엑스파일 보도 문제로 홍역을 치른 뒤 간부들의 브로커 홍씨 비리 연루로 해고되는 일까지 빚었다.
예능국도 문제가 많았다. 상주참사를 막지 못한 도의적 책임을 비롯해 신설과 폐지를 거듭하며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는 예능오락 프로그램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듯 보인다.
인사의 난맥상도 엿보인다. 드라마국장과 예능국장을 교체하고, 제작본부장을 특임이사로, 부사장을 제작본부장 겸임으로 배치한 인사에, 어떤 원칙이 있는지 의문이다. 문화방송 자회사인 ‘MBC 프로덕션’의 국외사업권 회수 조처와 제작·유통 분리안도 충분한 논의와 협의 없이 돌출돼, 파열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MBC의 위기는 프로그램 경쟁력에서도 감지된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이 발표한 11월 첫 주 시청률 순위 20위안에 MBC 프로는 단 하나도 들지 못했다. 일일극과 주말극, 미니시리즈 등 간판 드라마들이 타사에 줄줄이 밀리는 것은 물론이고 잦은 개편에도 불구하고 오락 프로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엔 '뉴스데스크'마저 SBS '8시뉴스'에 추월 당했다.
결과는 지난해 11월 광고 수주액 집계에서 SBS보다 30억원 적은 433억원이라는 수치로 나왔다. 주간 시청률 집계에서 20위에 드는 프로그램이 ‘꼭 한번 만나고 싶다’ 하나밖에 없는 등 경쟁력 상실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근본적 문제는 장기 전략과 철학의 부재라는 지적이 많다. 과거 광고주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리미엄 채널이라는 이미지에 기대어, 문화방송 스스로 뿌리 깊은 위기의 원인에 대한 해법보다는 임기응변에 매달리며 좌충우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방송의 한 PD는 “간부들의 보신주의적 행태가 문화방송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며 “과거의 오만과 자부심을 모두 버리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직원은 “위기의 직접 원인은 프로그램 경쟁력의 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과거의 악습을 반복하며 제 이익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간부들의 고질적 행태가 더욱 깊은 문제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위기돌파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여러 악재 속에서도 효자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과 ‘굳세어라 금순아’의 성공뿐 아니라, ‘대장금’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일으킨 한류 바람 등은 문화방송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또한 예능 부문에서도 ‘!느낌표’는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까지 충실히 맡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도 악재만나 추락
KBS도 2004년 638억원의 사상최대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내내 경영혁신안을 둘러싼 노조와의 극한대립, 김모 PD 자살기도 등 각종 악재에 시달렸지만, 프로그램에 관한한 참신한 포맷 개발로 시청률 독주체제를 굳혀 위기관리 면에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시청률이란 부침이 있게 마련이지만 문제는 침체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12월 8일자 노보에 실은 ‘최문순 체제 8개월 평가’에서 “파격적인 인사가 일 중심의 조직과 조직 활성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활기 저하라는 부작용만 나타났다.
파격적인 인사정책이 몰고 올 후폭풍에 대비책이 전혀 없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한 PD도 “특히 제작 부문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한 결과, 현장에서 뛰어야 할 사람이 ‘책상’으로 물러앉고 결국 가뜩이나 부족한 현업 인력이 더욱 감소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당장의 시청률 부침에 일희일비하는 안일한 대처도 문제였다. 한 직원은 “한, 두 프로그램이라도 선전을 해줘야 여유가 생겨 좋은 기획도 나오는 법인데, ‘내 이름은 김삼순’과 ‘굳세어라 금순아’가 떴을 때 내일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라고 진단했다. 최 사장은 9월 초 노조와의 대화에서 뚜렷한 대책 없이 “시청률이 추석까지는 고전하겠지만 가을개편 이후 안정적 2위를 확보하고 내년에는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드라마-예능 양 국장을 교체하고 신종인 부사장에게 제작본부장을 겸직케 하는 궁여지책 끝에 내놓은 가을개편 성적표는 참담하다. 시청률을 의식해 편성에 무리수까지 뒀지만, 오히려 하락세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고작 ‘웃는 Day’와 ‘섹션TV 연예통신’ 시간대를 맞바꾸고 ‘뉴스데스크’에 앞서 방송하던 주말 ‘스포츠뉴스’를 원래 시간대로 되돌리는가 하면, 시청률은 낮지만 드물게 호평을 받은 ‘추리다큐 별순검’을 조기 종영키로 한 것이었다. 근본적인 전기 마련 없이, 그간 경쟁력 하락의 한 요인으로 지적됐던 졸속기획-조기종영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한 대중문화평론가에 따르면 “요즘 MBC는 새로운 시도에 걸맞은 전략도, 결과를 이끌어낼 뚝심도 없어 보인다”면서 “마음이 급할 법도 하지만 과실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데, 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모든 걸 다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 사장 취임 후 코드 논란도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12월 5일 오후 긴급 간담회를 열고 ‘PD수첩’ 파문의 경과와 후속 대책 등을 논의했다. 방문진 이사들 간의 토론에서는 최문순 사장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함께 이 모든 책임을 올해 2월에 열릴 주주총회에서 묻기로 했으며, 사장을 보필하는 임원진에도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MBC 내부에서도 최 사장이 이번 파문을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MBC 한 관계자는 “최 사장 취임 후 대형 악재가 줄줄이 터지고 있다”면서 “누구도 내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최 사장이 직접 나서 입장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MBC는 이날 최문순 사장 주재로 임원회의를 열었으나 PD수첩 제작진 징계안과 PD수첩의 향후 방송계획 등에 대해 구체적인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MBC 폐쇄’ 인터넷 서명을 이어가고 있다. 미디어다음에서 진행 중인 이 서명에는 12월 5일 오후 4만2,000여명이 가담했다.
황우석 교수 파문으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MBC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내부 소통의 강화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한 조직의 관료화 타파, 코드인사에 따른 내부 견제 및 조정기능의 강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MBC 전임 임원 중 한 명은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문순 사장이 취임 이후 20년 가까이 후배로 있던 사람이 선배들보다 직책이 높아지는 파격 인사가 단행됐는데, 이후 서로간의 관계가 이전보다 어색해진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러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발생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조율과 게이트 키핑에 다소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또“지금의 MBC는 예전과 달리 젊은 PD들에게 막대한 책임이 주어지면서 윗사람들과의 대화가 부족해진 것 같다”며 “방송은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드인사에 따른 후유증에 대해서도 경계론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 사장 취임 후 구성원들 간 코드의 차이가 과거보다 심해졌다면서 이에 대한 해소가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올해 들어 MBC내부에서 급진 개혁 성향을 가진 직원들과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사원들 간생각의 차이가 더 커졌고, ‘힘의 추’가 급진 개혁 성향 쪽으로 쏠리면서 각종 사건사고들을 양산하게 됐다는 게 일각의 주장이다.
그럼 MBC가 악재의 터널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PD 수첩’사건 이전에 발생한 문제 해결방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직 개편이나 관련자 징계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MBC가 현실적으로 닥친 내외부의 문제들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내부 구성원이 혼연일체가 돼 객관적이고 양질의 방송 프로그램을 생산해 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MBC, 최문순 사장 퇴진 논란
'PD수첩' 파문 이후 MBC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사실상 MBC의 손을 떠난 상황에서 MBC는 나름대로 위기에 대한 대처 방안을 찾느라 부산하다.
현재 가장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최문순 사장의 퇴진 여부. 이를 놓고 사내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사내 일부에선 'PD수첩' 보도와 관련해 경영진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최 사장의 퇴진론은 외부 세력의MBC 흔들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MBC 한 관계자는 "최 사장의 용퇴만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비단 'PD수첩' 파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최 사장 취임 후 계속된 악재와 MBC의 경쟁력 추락에 대해 최고경영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MBC가 이 정도 위기는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사장이 퇴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한다"면서 "외부에서 'PD수첩' 취재의 본질을 제쳐놓고 취재윤리위반이라는 점만 부각시켜 흔들기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징계에도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킨 만큼 제작진을 포함해 관련자들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제작진이 취재과정에서 황우석 교수에 대한 '구속'을 언급한 건 사실이지만 이것이 금품수수 등 개인의 이익을 위한 윤리문제와 동일시돼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MBC 내부의 '게이트 키핑'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에 이어 이번 사건도 결국 내부 '게이트키핑'에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낸 만큼 이번 기회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