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초 한국불교의 전통선풍을 수호한 ‘선학원(禪學院)’
전통과 미래를 함께 하는 한국 불교 청정 선맥으로 정평이 난 선학원은 국내 최초로 한국불교의 전통선풍을 수호하고 불조정맥(佛祖正脈)을 계승한다는 취지아래 만해, 만공, 성월, 남전, 도봉, 석두 스님 등 설립조사들의 원력으로 1921년 10월 상량식을 거쳐 1921년 11월30일 설립되었다.
일반적으로 ‘사(寺)’나 ‘암(庵)’ 등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선학원’이라 명명한 것은, 일제 당시의 모든 사암(寺庵)이 사찰령(寺刹令)과 사법(寺法)의 직간접적인 사찰(査察)을 받고 있었기에 본말사의 주지취임까지 일제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야 했고, 모든 행사와 동산·부동산의 변동사항까지 사찰을 받아 사암(寺庵)등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총독부의 통치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일제하 선학원에서 진행한 호법(護法)과 항일운동은 한국불교가 일본불교에 부속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선학원의 창설은 한국불교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임제종(臨濟宗)운동을 전개했던 백용성·한용운·박한영 등 민족불교의 선각자들이 그 이념적 기반을 제공했다. 예컨대 불조정맥 계승과 수호, 한국불교의 왜색화(倭色化) 경향을 막고 한국불교가 지닌 독자성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고승들의 이념과 실천이 선학원의 설립정신과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만해 한용운 스님은 선학원 창설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청정비구의 수행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창설한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의 의장소임도 역임하였다.
“선학원 창설이 일제의 불교정책에 대항하는 항일의식의 자연스러운 발로였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고 설명하는 법진스님은 “재정 빈곤으로 인하여 1926년 범어사 포교당으로 전환되며 몇 년간의 침체기를 겪었다. 이에 1931년 적음스님이 선학원을 인수하면서 새롭게 재건한 후 재정기반을 확립, 선의 대중화에 정진해 한국불교의 청정전통을 사수하고자 1935년 3월7일 조선불교전국수좌대회(朝鮮佛敎全國首座大會)를 개최하였다”며 조선불교선종 종무원을 발족시킨 사연에 대하여 전하였다.
선각자들의 정신계승을 목표로 활발한 활동 전개

나아가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은 선(禪)수행을 중심으로 다양한 불교 수행문화 및 불교 인접분야와 연계한 문화 활동도 전개하여 세속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내적 좌표를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등불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매년 학술회의 개최 및 학술총서 발간, 우수논문공모 및 월례발표회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선리진작(禪理振作)이라는 선학원 설립정신을 현대적으로 승화하여 선(禪)수행과 다양한 불교수행 전통들을 재해석해 프로그램화 하는데도 일조하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불교는 신행과 교학이 수레의 양 바퀴처럼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불교학의 현 실정은 불교학 관련 학자들이 제대로 자리매김하여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못한, 학문적으로 아주 열악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하는 법진스님은 한국불교학 연구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불교발전은 물론 한국불교의 저변확대를 위해 ‘선(禪)’수행과 다양한 불교수행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일조할 전망이라고 한다.
올해는 만해 한용운스님의 열반 68주기가 되는 해이다. 만해스님은 일제강점기 선학원의 설립조사이자 우국지사로 한 평생을 민족불교 수호와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던 분으로, 재단법인 선학원은 매년 추모다례재를 거행하고 있다. 선학원은 추모다례재를 통해 스님의 사상과 정신을 기리고 후대에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위해 진력하고 있다.
성인의 탄생지 ‘홍룡사’

또한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수백 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던 상태에 1910년 통도사 승려 법화(法華)가 중창하면서 사찰 이름을 홍룡(虹龍)폭포에서 발췌해 명칭을 변경하게 된 ‘홍룡사’. 이는 양산시에 위치한 홍룡폭포에 관한 전언으로 과거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에 머물다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설이 전해지며, 1970년대 말 우광(愚光)이 주지로 부임한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종각·선방·요사채 등이 있고, 폭포 옆에 옥당(玉堂)이 위치해 있다.
불사에 전념, 지역민들의 휴양지로 거듭나고자
“선방 개원을 통해 수행승들의 편안한 수행도량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건물증축 및 새로운 시도에 앞장서나갈 것이다”고 전하는 법진스님은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극복하고 꾸준히 사찰을 키워나가 지역민, 불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이에 8복전(福田)중 하나인 험난한 길을 닦아 평탄한 길을 만들어 불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사찰에 발걸음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 전력을 다할 것을 주장하는 법진스님은 현재 험난한 오르막길인 진입로를 평탄한 길로 만들고자 적극적인 참여활동과, 양산시의 지원을 통해 불사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개인의 소유가 아닌 주민들의 소유이기도 한 토지부분이라,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한다”고 덧붙이는 법진스님은 주민들과 소통·화합을 통해 주차시설 및 진입로 등을 편리하게 만들어 개발되길 기대하고 있다.
매달 음력 24일 관음제일에 홍룡사에 방문해 법문을 펼치고 있는 법진스님은 “홍룡사는 관세음보살의 기도도량이라 규칙적으로 법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 홍룡폭포 옆 관음전에서 직접 설법을 전하고 있다.
또한 “천성산의 명칭에 걸맞게 성인(聖人)이 홍룡사에서 대량으로 배출될 수 있길 바란다”며 선학원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펼칠 예정이라 밝힌 법진스님은 “사찰은 마음의 번뇌를 정화하고 지혜를 닦는 수행공간으로서, 부처님을 모신 신성하고 장엄한 성전이며 중생들이 기도하고 참회하는 신앙의 귀의처이다”고 전달, 홍룡사가 성인(聖人)이 수행하고 탄생할 수 있는 수행도량으로, 바쁜 현대인들에게 휴양지로 거듭나길 기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법진스님은 ‘조고각하(照顧脚下)’를 강조, “이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과, 자신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의 허물만 헐뜯는 행동을 해선 안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각박해진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모든 현대인들이 새겨두어야 할 메시지다”고 전하며 모든 이들이 자기 성찰 수행을 통해 인격수양을 이루길 발원한다고 덧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