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비리 척결 법안 놓고 한나라 ‘이념논쟁’으로 번져
사립학교법 강행처리를 놓고 정국이 급랭했다.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돼야 한다며 법안을 강행처리한 반면 한나라당은 개방형 이사제는 사립학교를 장악하기 위한 음모로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대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개정 사학법'에 대한 최근 국민여론조사결과 52.5%가 찬성, 38.4%가 반대의 의견을 나타났다.
개정된 사립학교법의 핵심은 개방형 이사제로 이사 7명중 2명을 학교운영위원회가 추천한 4명 중에서 이사회가 선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당은 사립 중·고등학교 운영비의 98%를 국민이 부담하고 있다며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사립학교의 93.1%는 의료보험, 연금 등 법정 부담금도 내지 못해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만큼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사립 중·고등학교에만 3조9,000억원을 지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모든 사립학교에 경영간섭을 법으로 강제한 사례는 없다며 법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개방형 이사를 통해 사립학교에 대해 ‘재산권’ 행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사립학교가 사적 영역임을 인정한 헌재의 판례에 비춰볼 때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고지원을 한다는 이유로 사학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사유재산권과 경영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는 게 한나라당의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또 비리 사립학교가 전체 사학의 1.7%로 극소수에 불과한 만큼 개방형 이사제는 건전한 사학까지 발목을 잡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학법은 색깔론으로도 번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개정된 사학법으로 전교조가 사립학교를 장악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반면, 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주장이 ‘침소봉대’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전체 교직원 중 전교조가 소수이지만 특정 이념과 조직력으로 무장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교육정책과 학교운영을 좌지우지하는 마당에 이사 선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한국의 교육은 전교조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우리당은 교사는 소속 학교의 이사가 될 수 없을 뿐더러 전교조 교사는 사립학교 전체 교사의 12%에 불과해 교원위원으로 참여할 확률이 매우 낮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교조 교사가 이사 7명중 참여할 확률은 현재로선 거의 ‘0%’라는 게 우리당의 주장이다. 우리당은 또 한나라당의 반미친북 전위대 언급은 사학법 저지에 대한 비난여론을 피하기 위한 정략적 정치공세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사학법 처리절차를 놓고도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우리당은 민주당, 민주노동당과 함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학법을 통과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날치기 처리했다며 국회의장의 해임결의안을 제출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발의한 법안을 통해 부패·비리 사학을 척결하자는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는데도 일방적 주장만을 반영한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면서 “향후 다른 주요 교육정책에서도 정치 세력화를 통해 관철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교육현장에 끝없는 혼란과 갈등의 악순환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정진석 대주교 “공산주의들이 하는 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대주교는 지난해 12월 16일 “사학의 자유를 인정해 줘야 한다. 통제를 하고 감독을 하는 것이 공산주의인데 공산주의는 통제강화 때문에 망한다”고 말해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 강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정 대주교는 이날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과 김덕규 국회부의장 등을 면담한 자리에서 “사립학교의 근본 취지는 자유다. 북한처럼 자유를 인정하지 않아 나라가 파탄되면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주교는 “(사학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국회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 처리해 위헌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사학의 자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천주교의 주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 대주교는 또 정 의장 등에게 사립학교법의 개방형 이사제 도입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학교법인이 원하지 않는 (개방형) 이사는 안 보내실 거죠. 나는 확실히 듣고 싶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정 의장 등은 “기업도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학교는 공공성이 있는 만큼 관여하지 말라는 말은 옳지 않다”며 거듭 협조를 요청했으나 정 대주교는 “오늘 좋은 말씀을 들었지만 내가 다른 주교를 설득할 힘이 없다”고 말해 사학법 반대를 고수할 뜻을 분명히 했다. 정 대주교는 사학이 정부보조금을 받는 만큼 공공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열린우리당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부가 사학을) 통제하는 대신에 돈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돈을 안 줘도 사학은 잘하는데 왜 병 주고 약 주느냐”고 반박했다.
7대 종단 “사학법 거부권 탄원”
국내 7대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는 12월 1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모임을 열고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줄 것을 탄원하기로 결의했다.
종지협은 이날 의장단과 운영위원회 회의를 잇달아 열어 국민 갈등과 사회 불안을 우려해 우선 대통령에게 사학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탄원하기로 했다. 이날 모임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최성규 목사,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가톨릭 주교회의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주교, 천도교 한광도 교령,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성균관 최근덕 관장 등이 참가했다. 이날 한기총 측에서 ▲사학수호 국민운동본부 결성 ▲헌법소원 ▲1,000만 명 서명운동 등의 실행안을 안건으로 제기했으나 불교와 민족종교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논의되지 않았다. 한기총 정연택 사무총장은 “국민운동본부 결성 등의 대응은 우선 한기총만이라도 펼쳐 나갈 것”이라며 “하지만 이후에 열리는 종지협 모임을 통해 다른 종단들의 동참을 얻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개신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은 12월 19일 낮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제2연수실에서 산하 초중고교 및 대학교의 이사장 총장 학장 교장 등 100여 명이 참가하는 사학법 개정안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사학법 갈등’ 여전히 평행선
사학법인들이 개정 사립학교법 불복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교육인적자원부는 관련단체들과 정면으로 부딪히며 ‘개정 사학법 수호’에 나섰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김진표 교육부총리외에 김영식 교육부 차관까지 나서 사학단체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 차관은 지난해 12월 19일 오전 김윤수(경기개군중학 교장)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을 예방한 데 이어, 20일엔 조용기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을 만났다. 김 차관은 특히 12월 19일 김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시행령 개정 단계에서 ‘사립학교법시행령개정위원회’를 구성해 사학측의 의견을 대폭 반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사학단체 2명, 종교계 3명, 학계ㆍ법조계ㆍ언론계ㆍ시민단체 등에서 5인을 위촉하고, 교육부 차관보가 당연직으로 배석하게 된다.
김 부총리도 이날 오전 서울 흑석동 원불교 본당에서 이광정 종법사를 만난 데 이어 오후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백도웅 총무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를 잇따라 방문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5일에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찾아 개정 사학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사학단체들과 종교계는 지난주 공언한 헌법소원과 법률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이번주안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개정 사립학교법을 이번주중 공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맞춰 헌법재판소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학법인연합회 등 4개 사학법인 단체는 지난주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바 있다. 또 이날 대한사립중고교학교장회와 한국기독학교연맹도 지난주 한국사립중고법인협의회의 결의에 따라 20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어 2006학년도 신입생 모집 거부를 재확인 했다.
개정 사학법 좌경화 아냐 ‘52.5%’ 찬성
사학법 개정이 끝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12월 18일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KBS가 여론조사기관 미디어 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63.9%가 ‘개정 사학법이 국가교육 체계를 흔들고 학생들을 좌경화 시킨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개정 사학법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 52.5%가 찬성한다는 응답을 보였고 반대한다는 응답은 38.4%로 나타났다”며 “개방형 이사제 도입, 사학법인 이사장 가족의 교장 임명 제한 등에 대해서도 찬성 여론이 높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사의 4분의 1을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에서 추천한 개방이사를 선임하도록 한 개방형 이사제 도입은 58.8%가 바람직하다고 답했으며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은 36.1%였다”고 전했다.
개정 사학법의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에 대해선 “공공 이익을 위해 사립학교의 운영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응답은 61.3%, 사유 재산권 침해라는 응답은 31.9%였다”며, 개정 사학법이 ‘종교사학의 건학이념을 훼손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훼손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51.5%로 38.4% 훼손 된다 보다 많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개정 사학법이 ‘국가교육 체계를 흔들고 학생들을 좌경화 시킨다’는 주장에 대해선 “동의한다는 응답은 31.7%,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그 보다 2배 정도 많은 63.9%로 나타났다”며 “학교 폐쇄, 신입생 모집 중단 검토 등 사학단체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동의 한다 24.7%, 동의하지 않는다 69.6%로 비판적인 여론이 매우 높았다”고 청와대측은 언급했다. 이와 관련, “학교 폐쇄는 학교가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불가능한 경우나 관할청이 가하는 제재수단으로 학교법인, 사립학교가 학교를 자체 폐쇄할 권한은 없다”며 “때문에 사학법 개정을 이유로 한 신입생 모집 중단이나 휴교는 현행법 위반에 해당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와대 발표에 의하면 개정 사학법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가 55.6%로 37.1%를 차지한 동의 한다 보다 높았다”며 “사학법 개정안의 국회처리 절차에 대해서는 ‘여당 위주의 일방적 강행 처리로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이 62%로 32.9%가 선택한 ‘조속한 법안 처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 보다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은 잘못’이라는 의견이 59.6%로 35.6%를 차지한 ‘잘하고 있다’는 의견 보다 높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KBS가 여론조사기관 미디어 리서치에 의뢰해 15일 전국의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으로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투쟁에 올인"
한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12월 19일 열린우리당이 이번 주에 민주당·민노당과 함께 임시국회를 강행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사립학교법을 무효화하기 전까지는 국회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분명히 했다.
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당이 겉으로는 민생이 급하다면서 국회에 들어오라고 하지만 진정으로 민생이 중한 줄 안다면 민생법안을 처리하고 나서 사학법을 날치기 하더라도 했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표는 이어 “여당이 국회를 열겠다는데 한나라당은 사학법이 무효화될 때까지 국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며 장외투쟁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박 대표는 또 여당의 반쪽 국회 강행 방침과 관련해 “임시국회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단독으로 열도록 놔둬서 국민 심판을 받도록 할 것인가, 양단간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며 “재보궐 선거에서 두 번 다 이겼지만 한나라당은 아직 소수 야당이니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논의 달라”고 참석자들에게 주문했다. 박 대표는 “여당이 이번 기회에 국보법까지 폐지해 보자고 한다”며 “이런 것을 볼 때 날치기는 처음부터 의도적이었다는 것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강재섭 원내대표도 이 자리에서 “연말 수십 개 법안 있는데도 사학법을 날치기 처리해 자기들 속셈을 관철시킨 정당이 민생현안 운운할 자격 있겠나”면서 “사학법 날치기라는 탈선을 바로잡는 것만이 국회를 다시 원상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 한번 경고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이같은 의중에 따라 현재 뚜렷한 명분도 없는 상태에서 장외투쟁을 끝내고 등원할 개연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뚜렷한 성과도 없는 상태에서 섣부른 복귀는 당 장악력 등 박 대표의 위상에 큰 흠집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박 대표의 자세는 이미 지난해 말 국가보안법 등을 둘러싼 여야 협상과정에서 확인된 바 있다. 한 당직자는 “박 대표는 이번 사학법 개정이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는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론에 좌지우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등원 명분은 최소한 사학법 재개정을 논의하는 합의기구가 마련되는 등 한나라당 요구에 대해 일정한 성취가 있을 경우라고 측근들은 밝혔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여권이 사학법 개정안을 폐기하거나 재논의하지 않으면 “따듯한 봄이 올 때까지 투쟁 하겠다”는 박 대표의 투쟁의지를 받들어 사학법 장외투쟁의 수위를 높일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19일 부산, 22일 수원 등 사학법 무효 장외집회를 계속했다. 지도부의 결의는 확고해 보이는 반면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투쟁방향에 문제가 있다. 예산안은 심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류가 있지만 힘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