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을 불어 넣어 농촌 문화의 부활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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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을 불어 넣어 농촌 문화의 부활을 꿈꾸다
  • 백홍기 기자
  • 승인 2012.07.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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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의 문화적 예술적 갈증 해소 시켜주는 역할 담당

충남 ‘금산’하면 ‘인삼’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금산 지역민들이 ‘금산문화원을 통해 문화적 향기를 즐긴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러한 배경에는 올해로 4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단체인 금산문화원이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고 선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결과다. 그리고 금산문화발전의 중심에는 한 사람이 더 있다. 금산문화원 김호택 원장이다. 김 원장은 7년 전 금산문화원장으로 취임 했지만 그 시작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고향을 찾은 김 원장. 그의 고향에 대한 관심과 열정, 사랑은 글과 사회봉사활동 등 행동으로 나타났다. 오랜 시간을 지나오며 스스로 정립해온 금산의 문화발전에 대한 그의 행보는 자연스레 금산문화원장의 자리까지 이어졌다.

김 원장은 “취임하기 전부터 금산문화원은 회원들의 예술적인 욕구를 발산할 수 있는 창구의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고 했다. 더불어 “많은 주민들이 금산문화원에 모여 단체를 이루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 문화와 예술을 익히고 있다는 점이 제게 큰 힘이 되었다”고 전하는 그와 금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역 문화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여

금산 지역 주민들은 금산문화원이라는 대단한 예술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도 그럴 것이 금산문화원에는 18개의 단체들이 있다. 남·여·청소년 풍물단, 서예, 한국화, 고전무용, 판소리, 시니어 합창단, 주부 난타 공연단들과 여러 동인들의 모임, 그리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단체까지 다양한 장르의 우리 문화를 공부하고 즐기는 회원들의 모임이다.
이러한 모임들이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김 원장은 “금산문화원이 이렇게 활발한 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시인이자 문화 예술을 누구보다 사랑한 안용산 사무국장이 한자리에서 30년 가까이 헌신했기 때문”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일반적으로 다소 배타적이고 유아독존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자존심을 숙이고 금산문화원의 기치 아래 모여 같이 활동하는 것이 금산예술원의 ‘힘’이라고 한다. 이는 금산문화를 발전시키자는 공동의 목표와 진정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금산 문화 예술의 주축이라는 자부심 가져

금산문화원의 활동 분야는 다양하다. 금산에 있는 각각의 작은 마을들은 각각의 역사와 삶의 모습이 다르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켜오고 있다. 이러한 마을의 전통과 역사를 찾아가고 사라져가는 지역문화를 발굴해 마을지로 편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17개의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농악단체인 금산농악보존회는 전주대사슴놀이에서 장원을 한 기록을 갖고 있고, 초·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청소년토리패는 각종 전국대회에서 매년 대상을 움켜쥐고 있다. 이 밖에도 나아내 풍물단, 주부난타단이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문화예술단체로는 풍각쟁이(판소리), 춤사랑(고전무용), 메아리합창단 등이 있고 특히 창현회(한국화)는 연파 이종필 선생의 지도를 받아 전국대회에서 큰 상을 휩쓸고 있다. 또한 금곡서예팀은 국전 입선은 물론 전국 규모의 콘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만큼 뛰어나다. 시 동인으로는 좌도시, 산꽃시 등의 단체가 활동 중이다.

뿐만 아니라 금산하면 가장 유명한 인삼을 빼놓을 수 없다. 금산의 유명한 축제인 금산 인삼축제도 금산문화원이 주관하고 있는 행사 중 하나다. 계절별로 열리는 다양한 축제도 금산을 대표한다. 4월에는 산안 산꽃축제가 열리는데 군북면 산안리 약 1,000만㎡(300만평) 일대에서 꽃향기에 취해볼 수 있다. 벚꽃, 조팝꽃, 호랑버들 등의 꽃이 만발한 장관을 연출해 많은 사람들이 봄을 만끽하러 찾는다. 금산민속축제는 뜨거운 7월 마지막 주말에 금강변에서 금산이 자랑하는 민속놀이인 농바우끄시기와 물페기농요로 한여름 밤의 꿈을 선사한다. 가을에는 32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전국 최고의 산업형 축제인 금산 인삼축제가 열린다. 겨울에는 정월 대보름에 장동마을에서 장동 달맞이 축제가 열린다. 사계절 어느 때나 찾아도 전통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금산이다. 더욱이 이러한 축제들은 금산문화원이 구전되는 역사와 설화를 발굴하고 고증하는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기에 의미가 깊다. 금산문화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역의 민속 설화를 정리한 책을 꾸준히 편찬하고 있다. 이미 금산문화원의 마을지는 전국의 어떤 마을지와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책자들을 발간한 바 있다. 열악한 자금과 인력사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과를 내고 공로를 쌓고 있는 금산문화예술원은 금산의 문화와 예술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고, 그 의미도 매우 크다.

삶꽃문화사랑운동으로 모든 마을에 ‘흥’을 불어 넣어

이 모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금산문화원이 계획한 ‘삶꽃문화사랑운동’ 덕분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흥을 추구하고 즐기는 아름다운 문화와 역사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농촌에 남은 것은 일흔이 넘은 ‘젊은이들’뿐. 전통과 문화는 찾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이에 금산문화원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마을에 다시 ‘흥’을 불어 넣고 활기를 되찾게 하고자 노력했다. 한 달에 한 마을씩 방문해 금산문화원 모든 단체가 참여해 마을에서 즉흥적인 작은 축제를 벌였다. 마을 주민들이 준비해준 음식과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모두가 한바탕 놀다 보면 어느새 해가진다고 한다. 많은 주민들이 흥겨워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는 김 원장은 안팎으로 어려운 제반 여건의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농촌문화 부활의 롤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 원장은 “고향에 돌아올 당시 농촌 지역이다 보니 먹고 사는 것이 바빠 문화와 예술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며, “그럼에도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 지역문화를 일구자는 취지로 오랜 시간 활동 해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현재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으로는 금산이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묻혀 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각종 역사유적발굴사업에 힘을 쏟는다고 했다. 금산의 많은 역사적 사건 가운데 하나인 이치대첩만 하더라도 권율장군이 임진왜란사에서 최초로 육상전투에 승전한 사건이지만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업적을 되찾기 위한 역사 발굴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또한 동학의 최초 기포지였던 곳이 금산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금산의 역사적 가치가 재평가되는 날까지 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금산은 선사시대부터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늘 변방이자, 산골짜기였다”는 김 원장은 “그럼에도 나라의 중요한 변고가 있을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현들의 얼이 살아있는 곳”이라고 말하며 금산이 인삼뿐만 아니라 금강 상류의 청정한 기운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끝으로 김 원장은 금산문화원이 농촌문화부활의 시범적인 활동들을 계속할 것이라며 금산에 대한 더욱 많은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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