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종합격투기의 메카, 강원 원주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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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종합격투기의 메카, 강원 원주 달아올랐다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2.07.09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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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 공작원 김종대, 거구의 밥샙 꺽고 이변 연출

6월16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토종 종합격투기 로드FC 8회 대회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조용하게 1회차 대회를 개최하는 듯 했으나, 불과 7회 대회 만에 국가대표 종합격투기 리그로 성장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열심히 운동하는 후배들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는 로드FC 정문홍 대표의 진정성 어린 동기가 있었고, 열심히 훈련하고 준비한 선수라면 누구나 링 위에 오를 수 있는 공정한 경기운영이 그의 진정성을 더욱 빛나게 했다.

로드FC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뿜어내다

연출한 듯 극적 승부보다도 선수들이 정직하게 실력을 겨룰 수 있도록 더욱 철저하고 치밀한 자체 룰을 정비한 것은 로드FC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는 참담하게 몰락한 일본의 리그와 확연히 구분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소수 스타에 의존해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경기 그 자체와 선수들의 투지만으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로드FC의 저력이다.
꽃은 결코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는다. 오직 그 향기로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로드FC가 회를 거듭할수록 입장관객과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독특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이 존재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미련스러우리만치 외부자본의 유입을 사양하고, 지극히 정직하고 상식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로드FC를 둘러싼 각종 화제와 관심이 나날이 커지는 것은 그들이 뿜어내고 있는 향기가 그만큼 강렬하고 향기롭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향기는 현생인류 이래로 전승되어 온 ‘가장 인간적인 향기’인 듯싶다. 진정한 종합격투기 매니아는 인간과 인간이 가장 정직하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스스로의 열정을 겨루는 이 스포츠를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운동이라 규정하곤 한다.

숨 가빴던 승부의 순간들

지난 6월16일, 아시아 최고의 종합격투기 대회인 ‘로드FC 008 FINAL4 BITTER RIVALS’가 강원도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개최됐다. 로드FC를 이끌고 있는 정문홍 대표의 고향이기도 한 원주는 사실상 침체기에 빠진 한국 MMA의 젖줄이 된 토종 종합격투기의 시발점이나 다름 없는 곳이다. 이에 로드FC 측은 “지방 순회 개최를 확정했으며 8회 대회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원주개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슈퍼코리안 데니스 강과 미국의 야수 밥 샙, 북파공작원 김종대, 감성파이터 서두원 등 국내외 유명 파이터들이 총출동해 관중들을 설레게 했다. 실제 4,500석에 달하는 경기장 내 관람석은 대회 개최 3인 전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300석의 입석표까지 동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경기는 밴텀급 챔피언 결정전이 치러졌으며, 강경호(24, 부산팀매드/㈜성안세이브)가 초대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다. 밴텀급 토너먼트 4강에서 강경호는 문제훈에 리어네이키드초크로 탭을 받고 결승전에 올라 송민종을 판정으로 꺾고온 앤드류 리온까지 2라운드 1분 19초 리어네이키드초크로 승리해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원주 출신의 김종대(원주 팀포스)는 거구의 밥 샙을 쓰러뜨려 홈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XTM의 프로그램 ‘주먹이 운다’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바 있는 북파공작원 출신 김종대는 강력한 괴력을 앞세워 명승부를 제조하는 파이터로 거듭났다.
‘슈퍼코리안’ 데니스 강(34, 아메리칸탑팀)이 손혜석(25, 일산팀맥스)을 침몰시키며 연패 사슬을 끊었다. 1라운드를 종료 10초를 남겨두고 이뤄낸 극적인 반전이었다. 데니스 강이 왼손 펀치로 손혜석의 안면에 강한 타격을 줬고, 이 펀치가 워낙 빠르고 강력했던 탓에 손혜석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졌던 것이다. 데니스 강은 쓰러진 손혜석의 얼굴에 단호한 파운딩 펀치를 날렸다. 결과는 데니스 강의 TKO승, 1라운드 종료를 불과 3초 남겨둔 상황이었다.

한편 이번 경기를 통해 “종합격투기는 단 한 순간도 한 눈을 팔면 안 된다”는 매니아 사이의 격언을 충분히 입증해 보였다. 8개월의 공백을 깨고 등장한 서두원(30, 프리)은 하라이 토루(26, 일본)를 맞이해 3라운드 종료 2대 0 판정승을 거뒀다.
서 선수는 지난 10월 ‘로드FC 4’ 이후 어깨인대와 팔근육 부상으로 케이지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8개월 만에 그는 스마트한 경기운영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통산전적은 10승 6패를 달성했고, 2009년부터 6연승을 이어갔다.
밴텀급 리저브 매치에 출전한 원주 팀포스 출신의 김수철(원주 팀포스)선수는 샤토 쇼코와 힘겨운 혈전을 치른 가운데, 연장 1라운드 닥터스톱 TKO 승을 거뒀다. 김 선수는 2라운드 중반 한 때 다운을 당하는 등 위기를 맞았으나, 이를 침착하게 극복하고 유효타를 다수 적중시켜 무승부를 이끈 후 연장 1라운드에서 화끈한 파이팅으로 승리를 거뒀다.

격투기는 ‘비인간적인 종목’인가

문명과 기술의 혜택으로 스포츠가 거듭나는 동안 전통적인 스포츠의 입지는 조금씩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양적인 입지의 축소가 아니다. 그에 대한 가치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한 때 세계를 열광시켰던 권투와 프로레슬링 등은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며 비교육적인 스포츠’로 매도되었다. 인간과 인간이 싸움을 벌이고, 관중은 이를 지켜보며 열광하는 것이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논리였다. 이는 유독 격투기 종목에서 불거지는 고질적인 시비다.
최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종합격투기 역시 이러한 매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격투기 종목 모두를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며, 비교육적이라고 싸잡아 격하시키기에는 여러 모로 무리한 측면이 있다. 이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가장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이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단지 보이는 장면이 폭력적이라 해서 이를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스포츠로 규정하는 것이야 말로 어떤 의미에서 ‘가치 규정의 폭력’이라 할 만하다.

우선 선수들은 사적 감정을 가지고 대결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싸움이 아니라 경기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경기에는 명확한 룰이 존재한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엄격한 법칙에 따라 경기가 운영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를 관리하는 심판이 존재한다.
또한 선수들은 짧게는 단 몇분 만에 끝나는 한 경기를 위해 끊임없이 훈련하고 노력한다. 그 훈련과 단련의 과정 또한 매우 과학적이다.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부터 각종 기술훈련에 이르기까지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근육과 뼈마디를 섬세하게 다듬어 나간다. 이는 곧 본능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경기를 준비하고 실시한다는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사각의 링 위에서 펼쳐 보이는 일련의 장면들은 상대를 해치기 위한 즉흥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로 단정지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보는 치열한 경기장면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승리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이 쏟아 부은 피와 땀의 결과물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기준 하나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인간과 짐승을 구분 짓는 경계선에는 현상과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 속에 녹아있는 여러 의미들과 과정들, 즉 본질을 간파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선수들이 링 위에서 펼치는 경기는 현상이다. 그리고 각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그들이 그 위에 서기까지 흘렸던 피와 땀은 곧 본질이다. 그들이 왜 경기를 하는지, 왜 이겨야 하는지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본질을 제쳐두고 단지 현상에 집착해 격투기를 ‘비인간적인 종목’으로 규정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비인간적인 판단’이라 하겠다. 오히려 어떠한 도구도 쓰지 않고 오직 몸으로 정직하게 승부를 가리는 것이야 말로 인류의 기원에서 시작된 가장 인간적인 스포츠로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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