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에덴교회는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자리하고 있다. 3만여 명의 성도가 성전으로 삼고 있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교회다. 거대한 성채를 연상케 하는 교회의 외양과 2000여 평이 넘는 대지위에 설립된 교회는 ‘프라미스 콤플렉스’라고 불리는데 ‘약속의 복합 건물’이라는 의미이다. 즐비한 아파트 단지에서 웅장함으로 단연 돋보이는 교회에서 소강석 목사는 담임 목사를 맡고 있다.
종교의 불모지를 신앙의 땅으로 개척한 ‘맨발의 소명자’
소강석 목사는 ‘맨발의 소명자’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열정과 소명으로 똘똘 뭉쳤다. 그는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안에 있는 확신입니다”라며 “그것은 모든 CEO들에게도 마찬가지죠. 회사에서는 기업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 경영자의 경영철학으로 표현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소명’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그 바탕 아래에서 꿈도 비전도 생겨납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확신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불모지에서 3M 정신으로 개척을 시작해 교인 3만 명의 목회자가 되었다. 이 역시 그가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소명’을 다한 덕분이다.
3M은 바로 맨손, 맨몸, 맨땅을 말한다. 소 목사가 송파구 가락동에서 개척을 시작할 당시 만해도 가락동은 재개발된지 얼마 되지 않은 지역이었고 성남까지 교구화 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고 한다. 가락동에서의 개척은 훗날 가까운 신도시 분당에 교회를 지을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가락동을 개척지역으로 선정하고 나서 그가 시작한 것은 지역조사였다. 그 지역에 맞는 목회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문지를 돌리고 지역사회의 유지급이나 지역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역민들의 의식구조나 종교실태, 성향조사 등을 철저히 했다. 그리고 지역이 요구하는 교회 상을 심어주며 3M 이노베이션의 역사를 열었다.
그는 당시를 ‘눈물로 얼룩진 세월’이라고 회상한다. 한 명의 멘토나 지원자도 없이 시작한 개척교회 시절은 고난의 시기 였다. 23평 짜리 지하 건물을 월세로 계약하고 예배를 드렸다. 강단 앞에서 설교를 할 때도 쥐들이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그 열악했던 상황이 짐작이 간다. 교회를 처음 찾은 사람들이 설교는 듣지 않고 쥐들을 구경하기도 했다고 한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들이 펼쳐진 당시는 처절하고 눈물겨웠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 하지 않고 전도전략을 세웠다는 소 목사. 그는 무작정 순회방문 전도를 하지 않고 준비전도, 간접전도, 직접전도를 계획하고 먼저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입소문을 타고 교회가 알려지도록 했다. 교회의 소문이 좋게 난 덕에 전도하기가 훨씬 수월 해졌고 그때부터 꾸준한 성장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교회는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부흥하였고 4년 째 되던 해에 20평 남짓했던 교회를 120평으로 옮겼지만 교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교회건축계획을 새로 세우고 미래지향적인 분당 신도시에 성전을 건축하기로 결정했다. 가락동 시절의 혹독하고 힘겨웠던 시간은 분당에서 이뤄질 폭발적인 부흥의 전주곡이 되었다.
끝없는 열정으로 양들을 사랑하는 타고난 목회자

첫째, 로드십과 신정주의 목회다. 로드십 목회는 ‘철저히 주님을 왕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서 나의 왕이 되어 주시고 교회도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교회가 즐겁고 행복하다’는 의미다. 교회 안에 제도나 형식, 회의와 같은 비본질적인 것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 말씀, 은혜, 하나님의 뜻과 같은 신정주의의 본질이 왕 노릇을 하게 하는 목회이다. 새에덴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지금까지 로드십과 신정주의 목회를 해오고 있어 단 한 번의 분란이나 분열 없이 오고 있다.
둘째, 엿장수 목회이다. 이는 성도들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는 목회다. 현대인들은 콘크리트 도시 속에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에는 수많은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런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목회다. 엿장수 목회라 이름 붙인 것은 그리스도는 어쩌면 엿장수와 같이 우리의 고물과 폐품, 무거운 죄보따리, 한숨, 고통, 눈물을 예물로 받으시고 우리에게 용서와 참된 자유, 기쁨과 행복을 선물해 주시기 때문이다.
셋째, 생명나무 목회이다. 이는 앞서 말한 두 가지 목회를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다고 한다. 새에덴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생명나무 신앙으로 무장한다. 선악을 분별하고 판단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선악과를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추구하는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신앙이다. 이런 신앙을 가진 성도는 불평하거나 염려, 절망하지 않고 고난에도 믿음으로 일어나고 은혜와 순종을 선택한다. 이는 결국 신도를 역전드라마의 축복과 기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투철한 애국심으로 사회적 책임 실천, 민간 외교관 역할 담당

소 목사의 이런 민간 외교 사역은 글로벌 공동체를 향한 비전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는 지난 2006년 2월 한일기독의원연맹의 지도 목사를 맡았다. 이에 한일기독의원연맹의 일본측 대표인 도이류이치 의원은 매년마다 3.1절 기념 예배에 참석해, 과거 일본이 식민 지배하며 저지른 만행을 머리 숙여 사죄하기도 했다. 소 목사는 “그 분의 희생은 언젠가 한일관계의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가 한미외교뿐만 아니라 한일 간의 과거 역사 청산과 창조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애국사역과 민간외교 사역을 펼치는 이유는 대형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환원을 지향하는 신공유적 목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소 목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1월 ‘마킨 루터 킹 퍼레이드 집행위원회’ 본부가 수여하는 국제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 교회보다 큰 교회도 한국에는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전통과 제도에 얽매여 규격화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성직자나 장로들의 눈치를 보는 ‘타협 목회’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목회자가 ‘소신 목회’를 할 수 있어야 교회도 창의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교회는 화석화 된 교회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소 목사가 이끄는 새에덴교회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시너지 효과를 분출 하고 있다.
봉사와 헌신으로 지역민을 섬기는 교회

이와 더불어 신도들과 지역민들을 위한 차별화된 교육 콘텐츠와 최고급 시설로 미래의 주인공이 될 자녀교육을 최우선시하여 노력하고 있다. 교육관과 문화관, 예술관 시설을 마련해 진행하고 있는 쉐마비전스쿨은 역사학교, 문화학교, 예절학교, 과학학교 등 주말학교를 진행하며 한국교회의 새로운 교육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전스쿨의 신청이 있는 날이면 학부모들이 4~5시간 전부터 줄을 설 정도로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통일한국 시대에 민족의 눈물과 상처를 치유하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통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뜨거운 소명감 하나로 달려온 소 목사의 끊임없는 눈물과 헌신은 지금도 새에덴교회의 성도들의 가슴에 불씨가 되어 타오르고 있다. 지역사회를 섬기고, 통일한국시대를 준비하는 민족성전으로 세계 복음화를 선도하고 있는 새에덴교회가 미래형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 해나갈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