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손이나 발을 잃은 장애인. 이들을 절단 장애인이라 부른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의수 혹은 의족. 의수족과 기타 보조기를 아울러 보장구라고 한다. 국내 보장구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대표적 보장구 기업이 있다.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첨단 신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대학 및 보장구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력해 자체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해 온 기업으로 이미 여러 차례 정부 정책과제를 수행한 역량 있는 기술개발연구소는 업계 최초이다. 또한 31건이 넘는 국내 및 미국, 일본 특허 등 지적재산권의 상용화를 위해 노력을 거듭해 오고 있다. 국내 보장구 산업의 첨단화와 선진화를 위해 매년 해외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첨단 기술 도입에 매진한 결과 단순 의족, 의수 뿐 아니라 국내 최초로 스포츠 의족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지난 5월11일 창립 스물아홉 돌을 맞은 대한민국 대표 보장구 기업, ‘(주)서울의지’이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가슴이 전해지는 서울의지의 선동윤(55) 대표를 만났다.
긍정의 아이콘, 절단장애인에 봉사활동 펼쳐
인상이 선하다. 인터뷰 시간 내내 떠나지 않은 얼굴의 크고 작은 미소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 미소는 오래 전부터 연습한 결과란다.
“장애인들이 고객으로 왔을 때 제가 인상 찌푸리고 있으면 그들이 할 말도 못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연습했죠. 이거 연습 많이 한 겁니다. 하하하.”
고등학교 때부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선 대표. 그곳은 의수족을 만들던 곳이었다. 그 인연으로 졸업하고서 이 업계에 취업을 해서 의수족 제작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본인의 회사를 차려(회사를 인수한 후) 줄기차게 현재까지 이어왔다. 올해로 29년째. 이젠 보장구 업계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대략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가장 큰 난관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는데요.”
허무했다. 무심한 그의 답은 그가 무척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을 뿐. 이어 선 대표는 어떤 기준을 두고 어렵다고 말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생경한 질문에 잠시 멍해졌다. 그의 질문은 ‘어려움’이라는 상황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시쳇말로 한참 잘 나가다가 폭삭 망하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상황보다 점점 나아져 왔기 때문에 어려웠던 때가 없었어요.”
선 대표의 장남이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시절 선 대표는 아들에게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해보도록 권했다. 직접 돈 버는 어려움과 기쁨을 맛보라는 의미였다. 봉사활동도 권했다. 그 안에서 다양한 의미를 깨우치라는 것이었다. 대입 공부하기 한창 바쁠 때 그런 일을 시키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지식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어릴 때 체험케 한 것이다.
한번은 장애인이 찾아와 그와 상담한 후 가격을 듣고는 자리를 뜨려했다. 돈이 없었던 것이다. 선 대표는 즉시 그를 붙잡았다. 돈이 없어서 등 돌리고 나가는 장애인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선 대표의 봉사는 시작되었다.
“어차피 장애인 덕에 돈을 벌고 있으니 그들을 위해서 봉사하자고 결심했죠. 처음엔 1년에 10건이라도 무료로 제작해주자고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그것을 계기로 해서 봉사의 폭이 넓어졌다. “서울의지에서 일단 보장구를 한번 맞추면 A/S 수리비는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차량 내부에 보장구를 수리할 수 있도록 이동제작센터를 작은 공장처럼 꾸며놓고 소록도와 도서 산간지역을 순회 방문합니다. 소록도의 한센인들은 보장구 수리나 제작을 의뢰하고 싶어도 서울로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죠. 도서 산간지역의 노인들도 마찬가지죠.” 같은 절단장애인이면서도 여타의 이유로 소외된 그들에게 그의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선 대표는 겨울엔 ‘장애인스키·스노보드캠프’도 주최해 일반인(비장애인) 못지않은 장애인의 불꽃같은 의지를 북돋운다. 게다가 해외의 절단 장애인에게도 시야를 확장했다. 2008년에 캄보디아의 장애인들에게 의수족을 지원했고 2011년엔 아이티를 방문해 지진피해로 사고 당한 이들에게 의수족 지원 및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러시아 첨단기업 합작, 첨단의족 기술 개발
지난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막판까지 뜨겁게 달군 남아공의 양쪽 하퇴 장애인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실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일궈냈다. 국내에도 이런 하지 절단 장애를 딛고 육상선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의지의 기술자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해 자신이 만든 스포츠 의족을 직접착용하고 달린 조수현(25)씨와 절단장애 트라이애슬론선수 이준하(36)씨다. 이들은 장애인 체육대회뿐만 아니라 일반 경기에도 참가해 비(非)장애인 선수들과도 실력을 겨뤘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스포츠의족이었다. 서울의지의 대표적 첨단의족 중 하나인 스포츠의족은 놀라운 성과다. 러시아의 ‘에네르기아(Energia)'社와 보장구 공동연구 개발로 일궈낸 개가였다. ‘에네르기아’는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의 운영사이자, 보장구 개발·생산하는 첨단기업이다. 스포츠의족에는 육상뿐 아니라 스노보드 의족, 볼링 의족, 골프 의족, 러닝머신용 의족 등이 있다(스포츠의족은 육상뿐 아니라 스노보드, 볼링, 골프, 러닝머신 등도 가능하다). 선동윤 대표는 “10년 이상 기술 축적으로 외제에 비해 이탈 방지, 충격 흡수 기능 및 내구성, 경량성 등 어느 측면에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스포츠 의족을 맞춰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의지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첨단의족은 ‘당뇨용 의족’이다. 연질의 실리콘을 사용하여 환부에 자극이 적게 하고 전체적으로 가벼운 소재로 만든 이 의족은 당뇨 환자에 적합하다.
그리고 여성 절단장애인을 위한 하이힐 의족도 독특하다. 이렇듯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발상은 선 대표가 가진 커다란 장점이다. 서예와 크로키를 접목해 ‘수묵 크로키’라는 장르를 개척해낸 국내 1호 의수화가인 석창우 화백과도 인연에서도 선 대표의 창의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석 화백이 처음 사고로 의수를 만들기 위해 선 대표를 찾아왔었다. 그래서 특수한 형태의 갈고리를 부착한 새로운 의수를 제작했다. 갈고리에 붓을 끼워 그림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희의 시장점유율이 35%입니다. 절단장애인 35%는 제 몫이라는 뜻이죠”라고 말하는 선 대표의 표정에서 이전까지의 미소 띤 얼굴은 신념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마음의 고통을 받던 장애인들이 의수족을 착용하고 활짝 웃으면서 회사를 나가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는 선 대표다. 돈 주고도 못 바꾸는 그 희열 말이다. 개발 직원들에게 ‘자네가 착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들라’는 채찍은 그 희열을 이미 맛본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겠다. 그러면서도 ‘장기근속 직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회사가 대한민국 보장구업계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공을 직원들에 돌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장애인 고용에 대한 대기업의 그릇된 편견에 안타까워했다. 그들을 채용함으로써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직접 많은 장애인들을 고용하고 있는 선 대표이기에 그의 말에 신뢰가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