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봉김밥 가맹 점주에서 특허 권리를 양수한 박상아 대표를 사무실에서 만나 고봉김밥의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창업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는 그의 확신에 찬 말들을 통해 고봉김밥의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상아 대표는 “전국의 30~40만 명이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적은 돈이 아니고 대부분의 창업자금으로 2~3억을 투자하여 창업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큰 결심이고 투자인데 대박을 내는 소문은 있지만 대부분이 실패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며 “이런 분들을 위해 고봉김밥을 운영하는 것만으로 그런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거라고 자부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고봉김밥을 운영하기 전 건설에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지인으로부터 고봉김밥 창업을 제안 받고 아내의 설득과 열정으로 부산 사직점의 가맹점을 시작하게 되었다.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오후 늦은 시간에 빠뜨린 물류가 있어 물류회사에 전화했다가 물류회사로부터 짜증스러운 말을 듣고 가까운 마트에서 필요한 재료를 급히 구입해 사용했는데 가맹점을 시찰하던 체인점 사장이 이 사실을 알고는 호된 질책과 간판을 내리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다. 가까운 지인관계에서 가맹점주와 체인점 사장과의 관계로 상황이 바뀌고 불합리한 가맹관계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지만 큰돈을 들여 시작한 사업이라 이내 포기 할 수도 없었다.
체인점의 횡포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재료구입은 가맹점 물류에서만 할 것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사직점은 야구시즌의 판매량이 크고 수익도 큰 것이 특징인데 한때 포스(계산대)의 고장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가맹점의 적극적인 처리보다는 서비스업체에 연락하라는 허술한 대응으로 영업 손실과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보다 더 참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2011년 8월1일 휴가시즌에 30여개 가맹점주에게 ‘고봉’ 특허 권리자로부터 고봉김밥 간판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경고장이 가맹점주에게 날아든 것이다. 가맹점주들은 체인점 사무실로 몰려가 대책을 세워줄 것을 호소하고 고봉 특허권자와의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체인점은 권리권자와의 적극적인 면담도 없이 상표를 변경 현재 타브랜드 ○○○ 업체의 이름으로 변경하던지 아니면 가맹점주 달고 싶은 상호로 하라고 하였으나 가맹점주들은 만약에 물류를 차단시키면 장사를 못하게 될까봐 체인본부에게 더 이상 부근에 가맹점을 주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26개 가맹점이 따라갔으며 그 외 6개의 가맹점주는 소비자에게 알려진 고봉김밥의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지 않기 위해 현재의 박상아 대표에게 힘을 보탰다. 박 대표는 고봉의 상표권리자를 직접 찾아가 고봉김밥의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했고 상표 권리자는 권리권을 넘겨주어 오늘날의 고봉김밥 브랜드를 고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봉김밥을 지키는 것이 사는 길이다

가맹점주에게 물류를 강요하고 비싼 가격에 되팔아 체인점의 수익에 혈안이 되어있는 체인점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박 대표는 바르고 원칙이 아니면 안한다는 소신 경영이 한몫 하고 있는 것이다. 유사업체에서 “고봉김밥은 가짜다”라고 광고하는 데에는 사실여부가 행정심판중에 있고 고봉상표 특허가 있는 이상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 오히려 고봉 상표는 박대표 자신에 있는 만큼 언제나 정직하고 최선을 다해 점주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체인점 대표의 역할이자 기능이라고 했다.
‘체인사업의 보고서’는 가맹점주들의 행복한 입을 보세요
체인점 사업은 가맹점주들의 입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유사분식 업계에서 최고의 수익을 갱신하는 일들이 속출되고 있다. 가맹점 1차는 고향인 거제도에서 시작한 이래 현재 28개 가맹점이 생겨났다. 김밥류 업종은 물론, 타 업종과도 전혀 손색이 없다. 지면에 일일이 수익을 공개할 수 없어 아쉽지만 이미 고봉김밥은 가맹점주들의 환한 입가에서 그 답을 찾아보라 했다. 박 대표는 고봉김밥을 하려는 예비창업 문의자에게 타사를 방문하고 비교해 보라고 자신 있게 권한다.
고봉김밥은 원칙을 지킨다. 오히려 음식 맛이 더 뛰어난 기술 매너저에게 배워오는 일도 있다. 늘 배우고 수용하는 자세로 가맹점주가 더 많은 수익을 내도록 하고 고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연구하고 지도한다.
고봉김밥 예비창업자를 위한 제안
고봉김밥이 상표권 분쟁으로 혼란이 오면 가맹점주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올 것을 예견하고 당시 함께 문제해결 노력을 제안했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26개 가맹점주에게 작년 박 대표는 상표법 위반으로 고소를 했다. 이들이 고봉김밥 상호를 사용하는 가맹점주에게 혼란을 주고 대응을 위해 어떠한 댓가도 원치 않은 조치이며, 무엇보다 고봉김밥 이미지에 큰 타격이 불가피해 유사상표의 폐해를 막기 위한 체인점 조치의 일환이다. “○○○이 뭐고 고봉김밥이 뭐냐”, “○○○은 진짜고 고봉김밥은 가짜다”는 헛소문이 영업의 메뉴가 되선 안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박 대표는 밝혔다.
창업자를 위한 고봉김밥은 기술과 일에 관계된 소스부분만 제공하고 나머지 물류는 최대한 자율적인 구매권을 허용한다. 제공된 가격도 점주들이 느끼는 수준 이상이 안 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가맹점 오픈 후 사후관리는 더 철저하게 살핀다. 입점위치도 점주들이 결정토록 한다. 체인점의 부동산에 개입하여 오명이 날수 있기 때문이다. 재료는 언제나 당일 만들고 색깔과 신선도를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메뉴 개발을 멈추지 않는 고봉김밥 만의 성공비법이다.
박 대표는 사직점과 해운대 제니시스점을 직영으로 운영하여 현장에서 손님응대법과 음식을 신속하고 맛있게 만들어 내는 비법을 전수, 고봉김밥으로 창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하여 창업을 통한 성공 자영업자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고봉김밥만의 특화된 마켓킹으로 승부한다

고봉김밥은 작년부터 TV 간접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이종 격투기 강경호 선수, 마카오 배명호 선수 등의 옷에 로고를 새겨 내보냈고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선수들에게도 광고가 나갔다. 이런 마케팅으로 이미지가 달라지자 주위에서는 유사업체가 덕을 보게 생겼다고 하여 최근 글씨체를 바꾸고 상표 등록하는 단계도 마쳤다. 달라진 고봉김밥은 차별화된 맛에 마케팅의 날개를 달아 서울로 광주로 대구로 울산으로 종횡무진이다.
얼마 후면 일본, 미국으로도 날아갈 태세다. 이전과는 다른 놀라운 변화로 세계화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엄선된 재료와 특화된 음식맛이 한국을 넘어 세계화로 양 날개를 펼치게 된 것은 고봉김밥 박 대표의 두둑한 배짱과 넘치는 정에서 그 원인이 있었다.
가맹점주의 아픈 부분을 경영에 반영하고 마케팅의 이슈로 담아내려는 노력은 기본이고, 원칙과 기본을 고수하려는 철학은 그 배움에서가 아니라 몸에서 체득된 당연한 결과로 비춰지고 있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나눔을 위한 발걸음은 이제 시작
가맹점주에서 출발해 프랜차이즈 대표가 되는 과정은 돈을 벌어서 대표가 된 것이 아니라 상표권 분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영업을 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시작되었다. 상표권리자에게 상표사용권에 대한 양해나 요구도 무시하고 빗나간 개념으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려고 가맹점주들을 설득해 실속을 차리는 것에 반기를 들고 시작한 것이 체인점 대표가 된 것이기에 박 대표의 마음가짐은 처음부터 달랐다. 창업의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청결과 서비스로 고객을 만족시키고 가맹점주에게는 불필요한 간섭과 요구를 일절 묻지 않는 대신 체인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하자는 슬로건으로 체인사업에 임하고 있다.
성공하는 사업자에게는 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예비창업자에게는 큰 희망과 위안이 될 수 있기에 이제는 사업초기의 감정보다는 좀 더 넓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생겼다고 했다.
고봉김밥의 박상아 대표는 “체인점 운영에서 가맹점주의 행복한 미소와 눈물이 있고, 고객의 마음에서 감동이 솟을 때 기업의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가맹점주들이 성공하는 그날의 위해 체인점의 역할을 다하는 일이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 박상아 대표는 “가맹점주에게 가야할 수입을 가로채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기업의 사회 환원적인 측면에서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고, 유니셰프와 같은 사회 기부 운동에도 기꺼이 참여하고 있고, 소년 소녀 가장을 지원하는 일도 거르지 않고 해 나갈 것이라고 하는 그의 행보에서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그만의 삶의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