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해군기지 논란, 우 지사 퇴진 요구로 새국면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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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해군기지 논란, 우 지사 퇴진 요구로 새국면 진입
  • 지유석 기자
  • 승인 2012.06.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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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만이 출구, 우 지사의 결단 시급해

▲ 지난 5월18일 오후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강제 퇴거되자 강동균(가운데) 강정마을회장이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공방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5월25일 강정 주민들은 우근민 제주지사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해군기지 공사 정지를 위한 법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발언이었다. 주민들은 이 발언에 대해 '대도민 사기극'이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급기야 우 지사의 거취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사태가 지루한 법리 공방으로 전개될 것임을 시사한다. 

강정 주민들은 줄곧 공유수면 매립면허 취소 및 공사 중단 명령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관련법에 따르면 공유수면은 바다, 하천, 호수, 늪 등 공공용으로 사용되는 국유의 수류이며, 공유수면 매립은 이러한 곳을 매립해서 토지를 조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유수면은 또 사인(私人)간 거래 대상에서 제외되고 이를 사용하려면 해양수산부장관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으로부터 점용 또는 사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행법상 강정 해군기지의 공유수면 매립면허 취소와 공사정지는 도지사의 권한이다. 이에 주민들은 지난 해 11월24일 해군기지 공사현장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 지사에게 이 같은 조처를 요구했다. 다음 날 25일엔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날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현재 공유수면 매립면허 취소 권한은 제주지사에게 있기 때문에 우근민 지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군기지 공사를 중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 회장은 이어 "오는 28일까지 공유수면 매립면허 직권취소를 요구하는 도민 서명을 받은 뒤 이를 지사에게 전달해 결단을 기다리겠다"면서 "우 지사가 도민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제주지법에 행정소송을 제기 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민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는 듯 했다. 제주도청은 올해 3월7일 해군에 공문을 보내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를 사전 예고했다. 20일엔 해군과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처분에 따른 청문회를 열었다. 제주도측은 이날 청문에서 육지에 접한 안벽(길이 840m)의 서쪽 끝에서 동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설치된 돌출형 해군함정 부두(길이 200m, 너비 30m)를 고정식에서 가변식으로 바꾸는 것은 애초 허가받은 내용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는 실시계획 변경 승인을 받지 않고 공사를 시행한 경우에 해당해 공유수면 관리법 제52조(매립면허의 취소 등)에 따라 공사 정지명령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또 2009년 4월 제주도지사와 국방부장관, 국토해양부장관 등 3자가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이 입·출항할 수 있는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한 협약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것도 공유수면 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해군은 일단 부두를 가변식으로 변경한 행위가 설계 변경 사항에 해당된다는 주장은 인정했다. 하지만 설계 변경이 공사 정지 사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또 공유수면 매립법에 관한 집행 권한은 국토부가 갖고 있다면서 공사 중지 명령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청문회는 사실상 아무런 성과도 도출하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양측의 입장이 워낙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었다. 이후 청문회가 두 차례 더 열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러자 제주도는 4월6일 검증회의를 통해 시뮬레이션 재연을 정부에 요청했다. "국방부의 시뮬레이션 결과만으로는 제주해군기지에서 크루즈선이 안전하게 입·출항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부는 이를 수락하고 5월16일 대전에 있는 한국해양연구원에서 리얼타임 시뮬레이션을 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결정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번 실험은 15만t급 크루즈 선박의 안전한 입출항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결과에 따라선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처분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실시 직전 무산됐다. 제주도 측이 참여하지 않기로 전격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측은 실시간 시뮬레이션을 재현하는데 설정하는 상황조건 5개 가운데 국무총리실이 3개를 수용하지 않아서 불참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우 지사의 갈팡질팡 행보, 주민 반발만 사

시뮬레이션 무산 이후 제주도 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자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 처분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왔던 강정 주민들 사이엔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같은 반감은 우근민 제주도 지사의 모호한 입장으로 인해 증폭되는 양상이다.

우 지사는 5월10일 "오는 16일로 예정된 선박조종 시뮬레이션 점검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가 중요하다"고 선언했다. 또 "시뮬레이션 이전에 도지사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원만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무산됐다. 이러자 우 지사는 24일 "해군기지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에 따른 청문을 3차례 실시한 결과 정지명령이 가능한 법적근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해군기지내 15만t 크루즈선 입출항 검증노력이 선행돼야 공사정지와 관련한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즉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판단을 내리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한 셈이다.

강정 주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주민들은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 지사는 제주도민을 우롱한 것은 물론 2~3번 죽이고 있다"며 우 지사를 맹렬히 성토했다. 사실 주민들의 반발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제주도와 해군이 청문회 공방을 벌이는 사이 구럼비 발파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해군기지 사업단에 따르면 5월14일 현재 1차 발파공사는 9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제1공구는 적출장 작업을 위한 구럼비 폭파가 4월 말 마무리됐다. 2공구 케이슨 작업장을 위한 구럼비 폭파도 80% 완료된 상태이다. 공정 진행구간이 전체 구럼비의 10~13%에 해당한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강정 주민들과 시민활동가들은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끈질기게 저지 투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4월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악화되는 상황이다. 먼저 건설현장 일대에 집회 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경찰은 4월17일 강정마을회가 신청한 해군제주기지사업단 정문 앞 등 옥외집회(시위, 행진) 신고를 불허했다.
 

▲ 공사 현장에서의 집회는 공권력에 의해 원천 차단당했다. 공사 현장에서는 종교 집회 정도만이 허가된 상태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공업체가 고용한 용역들에 의해 방해 받기 일쑤다. ⓒ 시사매거진 지유석 기자

경찰은 이 같은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공사장 출입구에서 연좌 또는 차량 통행로를 점거하면서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반발해 강정 마을회는 4월26일 관할인 서귀포 경찰서를 상대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제주지법 행정부는 5월11일 "강정마을회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옥외집회·시위 금지 처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거나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효력정지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의 조치는 사실상 기지건설 현장에서의 집회를 봉쇄했다.

여론의 관심이 점차 식는 것도 강정 주민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3월 초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해직 언론인들이 제작하는 대안언론 '뉴스타파'가 여론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뉴스타파는 2회에 걸친 현지 취재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알려 나갔다.

구럼비 바위가 갖는 상징성은 여론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해변을 따라 1.2km가량 펼쳐지는 구럼비 바위는 주민들의 삶과 밀착돼 있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바위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당시 해군은 구럼비 발파를 강행하려 했다. 해군측의 밀어붙이기식 공사 강행은 여론의 반발을 샀다. 시민단체들은 비상시국회의를 갖고 구럼비 발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뒤이어 정동영, 이정희 등 정치인들의 현장 방문이 잇달았다.

이 같은 여론은 정부의 강경방침으로 인해 잦아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4.11총선거가 다가오면서 강정은 여론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구럼비'는 해군기지 반대 여론을 결집시킨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발파작업이 이뤄지면서 이를 대체할 상징물을 찾지 못한 탓에 여론은 동력을 잃고만 것이다.

우 지사의 결단이 사태해결의 출구

저간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정부와 해군은 기지건설 강행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반대 목소리는 공권력에 의해 원천 봉쇄당했고 여론의 관심도 식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공사 중지 명령뿐이다.

하지만 정작 명령권자인 우 지사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의 갈지자 행보는 국방부가 4월26일 입법예고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 제주도와 해군이 청문회 공방을 벌이는 사이 구럼비 발파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해군기지 사업단에 따르면 5월14일 현재 발파공사는 9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제1공구는 적출장 작업을 위한 구럼비 폭파가 4월 말 마무리됐다. 2공구 케이슨 작업장을 위한 구럼비 폭파도 80% 완료된 상태이다. ⓒ 연합뉴스

이 개정안은 "크루즈선의 제주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의 입·출항과 관련해 관할 부대장 등은 관광진흥법에 따라 크루즈업을 목적으로 승인·등록된 선박의 입·출항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5월5일 보도자료를 통해 "제주 민·군복합항의 수역은 기동전단 전력을 수용할 수 있는 작전기지로서의 기능과 크루즈 선박의 입-출항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군사보호구역과 무역항계로 중복 지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정부와 해군이 취했던 기존 입장과 상충됐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해군은 줄곧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 프로젝트'라고 선전해 왔다. 하지만 개정안은 사실상 기지가 군 중심으로 운영될 것임을 시사한다.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전해지자 강정 해군기지가 당초 홍보와는 달리 군 기지가 분명해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개정안에 삽입된 "'군사작전상 장애가 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의 경우에는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는 내용의 단서조항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 했다. 

이에 대해 우 지사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민·군 복합항이니까 군함도 들어올 수 있고 크루즈 선도 들어올 수 있다"면서 "대구의 공군비행장도 민과 군의 항공기가 같이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강정항도 해군기지로 역할 하지만 크루즈가 함께 들어오는 것으로 했고 제도도 그런 방향으로 고쳐질 것"이라고 한 뒤 "앞으로 불편을 없애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강정 주민들은 이 같은 태도에 격분했다. 일부 주민들은 항의 차원에서 우 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곧 거절당했다. 이러자 이들은 삭발 시위에 이어 도청 진입을 시도하다가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설사 우 지사가 주민들의 비난여론에 못 이겨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려도 문제는 남는다. 국토해양부가 지방자치법(169조1항)을 근거로 그 명령을 직권으로 취소·정지시킬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지자체장의 자치사무에 대한 명령 처분이 법령에 위반된다고 인정될 경우 주무부장관은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명할 수 있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이를 (쟁송이 아니라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이하 민변)는 이 조항이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거부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위헌 논란과는 별개로 행정 조치와 이에 따른 법리공방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이 와중에서 주민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최악의 경우 우 지사가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공유수면 매립공사 중지명령에 대한 기대는 주민들에겐 희망고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싸움은 더욱 더 지난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투쟁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들에겐 희망조차 사치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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