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불교 최초 완화의료 전문병원
‘수행을 통해 지혜를 성장시키고, 돌봄을 통해 자비를 실현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1995년 불치병 환자들의 돌봄을 위한 호스피스 교육을 시작으로 1997년 본격적인 모금활동을 시작한 정토사관자재회는 2000년 10월 불교계 최초의 호스피스센터인 정토마을을 개원하였으며, 매년 100여 명에 이르는 불치병 환자들의 죽음에 이르는 여정에 대한 돌봄과,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여 그들의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이 유지될 수 있도록 헌신하고 있다.
이러한 정토사관자재회가 지난 4월 1일 불교계 최초 완화의료 전문병원인 자제병원 상량대법회를 봉행했다. 총 예산 7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며,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1층은 완화의료 전문병동, 2층은 더 이상 치유될 수 없는 암을 비롯한 희귀성 불치병 환자의 재활병동, 3층은 승가병동으로 구성될 자제병원은 종합의료 서비스는 물론 물리치료와 한방치료가 가능한 전문병원으로, 특히 전문호스피스와 임상상담사를 배치해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함께 돌보게 된다.
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이자 불교계 최초 호스피스 활동가인 능행스님은 정토마을에 이어 자제병원을 준비하면서 이미 전문 호스피스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2007년 마하보디교육원을 설립해 불교전문 호스피스 인력도 양성하고 있다. 24시간 의료지원 및 가정방문 호스피스 활동을 전개해 나갈 자제병원은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중증 이상의 환자, 특히 말기증상의 암환자 등을 대상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자와 가족은 상담을 통하여 적절하면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물론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죽음’에 대한 화두로,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하다

“이 모든 것은 ‘죽음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라고 말하는 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 능행 스님은 ‘죽음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이렇게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소록도와 꽃동네 등 삶과 죽음이 굽이치는 수행처를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의 곁에서 수행과 봉사를 통해 깨달음을 구했다.
“죽음이란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이며, 삶 자체에 존재하는 순리이다. 이를 고통이라 여기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며 용기 있게 수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능행스님은 1997년 어느 날 폐암으로 죽음의 기로에 선 한 스님을 배웅하는 길에서 앞으로 자신이 정진해야 할 과제를 깨닫는다. 그 비구 스님은 평생을 선방에서 수행만 하다가 마지막 가는 길에 몸 누일 곳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시설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비구 스님은 능행 스님에게 유언을 남겼다. 유언의 내용은 스님들이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을 하나 지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비구 스님의 부탁은 능행 스님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고, 스님은 보다 더 구체적인 중생제도의 도구로써 호스피스활동에 자신의 삶을 모두 던지게 되었다.
죽음의 편안한 안식처 위해 달나라를 3번 왕복

정토마을은 불교계에서 건립된 최초의 호스피스 마을이긴 하지만 스님이나 불교 신자만을 위한 곳은 결코 아니다. 암 환자뿐만 아니라 더 이상 치료될 수 없는 각종 질병들 중 특히 중증에 해당되는 다양한 희귀성 질병의 환자이면 누구든지 정토마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울산 울주군 상북면에 건립 중인 자제병원은 2013년 상반기부터 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충북 청원군의 정토마을은 “조립식 100평 규모의 건물과 열악한 환경으로 정토마을을 찾는 환자의 수요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2003년 처음 서민들을 위한 자제병원의 설립을 결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능행스님은 불교계 첫 완화의료 전문병원인 자제병원 건립을 발원했고, 그로부터 매년 15만㎞가 넘는 거리를 순회하면서 모금운동을 독려해왔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달을 3회 이상 왕복했을 거리를 순회하면서 탁발과 모금을 통해 자제병원 설립기금을 마련해온 능행스님은 “교계 큰스님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 전국 불자님들의 따뜻한 기부로 2005년 11월 울주군 간월산 자락의 병원부지 9,000여 평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지난 날 일기처럼 써온 스님의 글이 출간되어 판매수익금이 생겨 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부처님의 뜻에 따라 모두가 함께 동행

“며칠 전 활산 성수 큰스님 심부름으로 어느 분께서 다녀갔다. 어른스님께서는 격려와 지지를 아낌없이 마음에 담아 보내셨다. 마지막 눈을 감으시기 직전까지도 자제병원을 향한 어른스님의 걱정과 격려가 담긴 마음의 선물이었던 ‘열심히 해라, 고맙다’는 메시지에 벅차오르는 감동과 감사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라고 말하는 능행스님은 “처음 정토마을을 건립할 때에도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마음을 비우고 가고자 하는 길에 전념했을 때 길이 열렸었기에 지금 이 순간도 결코 힘들지 않다. 다만 나는 이 일의 중심에 있을 뿐, 부처님의 뜻에 따라 모두가 함께 동행 하고 있으므로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라고 강조한다.
앞으로 자제병원 설립을 기점으로 한국 불교계의 호스피스 사업뿐만 아니라 해외 의료 및 교육사업에도 적극 기여해 나가고자 하는 능행스님은 자신의 오랜 행보에 지역의 인사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길 바라며, 특히 기업인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자제병원의 불사가 하루 빨리 성취되어 더 이상 치료될 수 없는 불치의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덜어주며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발원한다.
죽음은 도구며 행복한 삶은 내 안에 만드는 것

“죽음은 도구다”라고 말하는 능행스님은 “지금도 죽음을 늘 가까이에서 지켜보지만, 처음으로 환자의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는 죽음이 두려웠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환자병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는 순간 늘 두려움으로 머물던 죽음에 대한 나의 느낌이 밝은 햇살을 받으면서 온몸에서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 죽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죽음은 도구다.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잇는 다리와 같은 것이며, 새로운 삶을 향해서 통과해야 하는 통로와 같은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또한 21세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수많은 갈등과 대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보니 나를 벗어난 행복한 삶은 어디에도 없더라. 내가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 타인에게 나누어 주고, 타인이 나로 인해 진정으로 행복해 하는 것,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행복이다”라고 조언하는 능행스님은 한국 불교계에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새롭고 구체적인 역할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죽음의 존엄함과 삶의 고귀함’을 전하는 불교계 최초 호스피스 활동가 능행스님의 귀한 말씀들이 ‘내일’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지혜’로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선지식을 찾아 부처님의 깨달음 ‘한 조각’을 얻어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