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동제일 보은도량 부은사
부은사는 부왕인 김수로왕의 은혜, 모은암은 모친인 허황후의 은혜, 해은암은 인도 아유타국에서 무사히 가야까지 올 수 있도록 도운 바다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2대 왕인 아들 거등왕(居登王:AD199~253년))이 창건한 사찰이다. 서기 48년 7월, 인도 아유타국의 왕자 장유화상과 공주 허황옥은 배에 파사석탑을 싣고 지금의 장유면 앞 바다에 이르렀다.
하늘의 계시를 받고 기다리고 있던 가야국 김수로왕은 황옥 공주를 왕비로 삼고 장유화상을 국사로 삼으니 우리나라 최초로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금슬 좋은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죽자 왕위를 이어받은 거등왕은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천태산에 부왕을 위해 부은사를 짓고 무척산에 모친을 위해 모은암을 지었으며 그리고 자암산(현 진영 봉화산)에 자은암을 지었다고 한다.
천태산은 가야시대 왕족의 탯줄을 묻었다는 신비의 영산이며 지금도 극락전 오른쪽 아래에는 장방형의 돌무더기 스투파(탑) 한 기가 있어 이 땅에 최초로 인도에서 불교가 전래된 사찰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또한 부은사 경내에 폭 78m쯤 되는 오래된 맷돌 모양의 석물이 있는데 이 석물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돌로서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탑과 동일한 석질로서 인도에서 직접 조각해 왔다는 전문가의 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이 석물은 인도의 힌두교 시바신의 상징으로 성기신앙의 대상물로서 요니 즉 여자의 성기라 하며 이 요니 위에 링가 즉 남자의 성기를 세워 놓고 물을 뿌리면서 생남 기도를 해왔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현재 링가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한다.

5,000 일기도로 중창불사 완공 후 단청불사 중
조선조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버린 부은암은 약 200여 년간 폐사지가 되어 전답으로 변해있던 것을 철종 11년 (1860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 학송화상(鶴松和尙)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1906년 롱산화상(聾山和尙)에 의해 극락전과 요사체등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 현재 부은사의 대불사는 태고종 대종사인 태우(泰宇)주지스님에 의해서이다.
“주지로 부임하기 전에 사재 6,200여만 원을 털어 사제 환명스님으로 하여금 부은사 진입로를 개설하기로 하고 1996년 6월20일 정식 주지로 취임을 했지요. 그러나 건물들이 너무 노후해 비만 오면 물이 새고 금방 쓸어 질 것 같아 가진 돈 다 털어 수리 보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옛 사지에 새롭게 중창불사를 하려고 했지만 부은사 주변의 임야는 일제 말기 스님들의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이미 소유권이 속인 앞으로 이전되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해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태우 스님은 천일기도에 들어갔다.
기도 중에 사찰 터의 소유권이 어느 신심(神心) 있는 노 보살의 아들 앞으로 상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몇 번의 설득 끝에 10만 7,000평을 적절한 가격에 다시 되찾게 되었고 사찰 터를 제공한 부친의 공덕비를 세워 그 덕을 기리고 있다.
1차 천일기도로 사찰 터 되찾아 불사할 터를 조성한 후 곧바로 2차 천일기도에 들어갔다.
2차 천일기도 중, 천불보전, 범종각, 화장실 등을 완공했으며 또한 천불보전에 주불인 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과 협시보살인 관음, 지장, 문수, 보현, 인로왕보살 등을 봉안하고 현겁 천불을 조성한 후 2000년 11월4일 1,000여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히 낙성식을 거행했다.
“3차 천일기도로 영산전, 삼성각, 용왕당을 지었으며 범종 일천관을 주조해 통천범종으로 명명하고, 2003년 4월20일 타종식을 거행했으며 4차 천일기도로 요사체를 완공했습니다. 아마도 산승은 임란 때 불타기 전 부은암 전생 주지였던 모양입니다. 모르는 분들이 와서 선뜻 시주를 해줄 때마다 그들과 함께 공동발원을 했습니다. 불사를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금생에 와서 이렇게 부은사 대작불사를 순조롭게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다 전생 가야국과의 깊은 불연(佛緣)이며 해동제일보은도량으로 거듭나기를 발원한 가야국 거등왕의 효심과 불자님들의 불심이 하늘에 미치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도 발원 중에 환회심이 절로 났습니다.”
특히 “4,000일 간 함께 기도하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물심양면 화주하고 시주해주신 불자님들의 지극한 불심과 효심으로 가야보찰(伽倻寶刹)을 중창하여 자손만대에 유전하게 되었다. 현재 5,000일 기도로 단청불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 모든 공덕을 부은사 불자들에게 회향할 것이며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부처님께 기도할 것 이다”라고 스님은 말했다.
2,0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사찰

1930년 마을에 살던 주원택 처사가 가을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석불 다섯 분을 발견했는데 그 중 두 분은 파불(波佛)이 되었고, 한 분은 현재 천불보전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불(경남유형문화재제476호)이다. 두 분은 외부로 반출되었는데 현재 양산 통도사 포교당에 관세음보살이 부은사 아미타불 협시보살로 판명되었으며 아직까지 대세지보살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며 스님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1688년 조선 강희 27년 경주 옥석으로 조성된 아미타불은 2009년 3월5일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그로 인해 부은사는 2009년 12월16일부로 2,000여 년 전통사찰(등록번호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부은사는 성봉화상이 팔공산 범음범패를 태우, 환명 두 제자에게 전수한 도량이며 지금도 그 맥을 계승 발전, 팔공산 팔봉 범음범패 연구보존회를 창립하여 후학들을 길러내었다.
태우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사찰을 찾는 불자들이 손쉽게 절에 올라 올수 있도록 길을 넓히는 것이 선급과제라고 하며 이 모든 불사들이 기도로 이루어졌으니 찾아오는 불자들도 좋은 기를 많이 닦아 놓은 만큼 심신 어린 기도로 소원성취를 이루기를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