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도플갱어 “민간인 불법 사찰 VS 워터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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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도플갱어 “민간인 불법 사찰 VS 워터게이트”
  • 이지원 기자
  • 승인 2012.05.0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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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초월해 발생한 두 유사사건에 대한 전격 해부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감시자, 절대권력자를 말한다. 소설은 끊임없이 대중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가운데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위험한 시대를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 도청장치 등을 이용해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한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이러한 조지 오웰의 소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통제와 관리를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독점했다는 사실은 소설이 제기했던 우려를 고스란히 현실화시키고 말았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예방하기 위한 감찰활동은 합법적인 정부활동이다. 하지만 이에 민간인이 포함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감찰이 아닌 사찰로 변질되는 것이며, 이 행위는 엄연히 불법행위다. 더군다나 그 목적이 현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목소리를 차단하고, 국민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불법을 넘어 위험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한국판 워터게이트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자주 비교되고 있다. 워터게이트는 1972년부터 1974년 사이 미국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일컫는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닉슨이 재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대진영인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도청시설을 설치하려다 발각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더욱 커지고 말았다. 철저한 진상규명은커녕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포착된 것이다. 결국 사건은 의회로 넘어가 탄핵수순을 밟게 됐고,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던 닉슨은 임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하야를 결정했다.
40여 년 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이러한 워터게이트 사건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불법사찰을 진행했고, 사건의 은폐의혹 논란이 일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향후 이명박 정권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권 굳히기 하려다 뺏긴 희대의 사건

워터게이트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임기말 재선을 위한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전국위원회 사무실 도청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성공하지 못했다.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발각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건물이름 ‘워터게이트’였다는 것이다. 이후 각종 권력형 비리사건을 ‘~게이트’라 이름 짓게 된 것도 이 사건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그 이후에 불거졌다. 닉슨 정부는 이 사실을 축소·은폐해 사건을 무마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미국의 정세의 핵심은 베트남전쟁이었다. 닉슨 정부가 연임하기 위해서는 베트남전쟁을 승리로 매듭짓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베트남전쟁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닉슨 정부는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전쟁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고,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에 닉슨은 공권력을 이용해 민주당 사무실을 도청을 시도했다. 민주당이 도모하고 있는 전반적인 전략을 파악하는 한편 약점을 잡아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72년 6월17일 워싱턴DC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5명의 남자가 잠입한다. 그곳에는 민주당 전국위원회본부 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도청장비 설치를 채 끝내기도 전에 체포됐다. 경찰에 인계된 이들은 침입경위에 대한 수사를 받는다. 그런데 용의자 중 한 명이었던 에드워드 하워드 헌트(E. Howard Hunt, Jr.)의 수첩에서 백악관 연락처가 발견됐다.
단순한 건조물침입죄로 묻힐 수 있었던 사건이 정권의 명운을 뒤흔드는 대형 정치사건으로 발전하는 순간이었다. 이와 함께 헌트가 닉슨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닉슨 정부는 보도담당관을 통해 백악관과는 무관하다는 요지의 짤막한 논평을 내고 침묵했다. 하지만 워싱턴 연방지방 검사국은 심문과정에서 침입자 맥커드가 전직 CIA직원으로 대통령 재선위원회 경비주임으로 그가 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건은 <워싱턴포스트>가 단독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에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정보를 얻었다고 알려졌으나, 그 결정적 제보자는 당시 FBI부국장이었다. 이 비화는 2005년에 와서야 밝혀졌다.
7월23일 닉슨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대통령 수석보좌관 해리 로빈슨 홀더먼(Harry Robbins Haldeman)과 모종의 논의를 진행한다. FBI가 이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 들고 있던 시점이었다. 닉슨과 해리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CIA를 동원하기로 했다. 실제 닉슨은 CIA에 FBI의 조사를 방해할 것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닉슨과 보좌관의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72년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법무장관이 민주당 불법도청을 총지휘하고 캠프 인사가 전국을 돌며 불법도청 등 정치공작을 벌였다는 사실이 언론이 집중보도 되면서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할 수 없었다. 
상원의원들이 상원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를 설립해 백악관 직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1973년부터 공청회를 열어 방송에 내보냈다. 이는 닉슨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이후 1974년 8월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탄핵결의가 가결되고 4일 후 닉슨은 하야했다.

시공을 초월한 역사의 도플갱어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사건이다. 2010년 M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PD수첩>을 통해 최초로 드러났다. 방송에 따르면 2008년 김종익 KB한마음 前 대표가 국무총리실로부터 불법사찰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 씨가 불법사찰을 받게 된 경위는 BBK와 관련 동영상인 이른바 ‘쥐코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갈무리했다는 이유였다. 또한 그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KB한마음에서 물러날 것을 강요당하고 재산을 강탈당했다고 주장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청와대의 지시로 국무총리실이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검찰이 나서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 결과 이른바 불법사찰의 몸통으로 혐의로 이인규 前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 지목됐고, 장진수, 진경락 주무관 등 7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지었다.
이로써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장진수 前 주무관의 폭로로 사건의 불씨가 되살아 났다. 장 주무관 폭로 요지는 “민간인 불법사찰의 증거인멸을 지시 받았고 그 대가로 자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류충렬 前 총리실 관리관으로부터 돈을 받았으며 자금의 출처는 장석명 前 비서관으로부터 나왔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 개입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류충렬 前 관리관은 검찰조사에서 장진수 前 주무관에게 돈을 준 것은 인정했지만 자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조사과정에서 청와대에서 국무총리실에 대포폰을 전달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가 올라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몸통논란은 청와대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영호 前 청와대 비서관이 자신이 “불법사찰을 지시한 몸통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수습에 나섰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상식적으로 2급 공무원이 “국회의원을 사찰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에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두 사건의 조사과정

워터게이트 사건은 처음엔 단순 절도사건으로 묻히는 듯 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 소속의 두 기자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세상에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훗날 이들은 퓰리처상을 받았다.
민간인 불법사찰 역시 언론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김종익 씨가 총리실로부터 불법적인 사찰을 받았다는 MBC <PD수첩>의 보도가 나가면서 사건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PD수첩>팀은 그 어떤 포상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친정부적 사장이 낙하산 인사로 취임한 이후 잦은 인사 조치와 집요한 통제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는 MBC를 비롯해 KBS, YTN, 연합뉴스 등이 언론자유를 외치며 파업을 단행하게 된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다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돌아가면, 유죄를 받은 민주당 사무소 침입자들은 재판과정에서 형량 축소를 전제로 백악관이 허위진술을 하도록 회유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닉슨은 ‘백악관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뒤집고 ‘대통령은 몰랐고 아랫사람들이 제멋대로 저지른 일’이라고 말을 바꿨다. 또 보좌관 2명을 해직시키는 선에서 꼬리자르기를 시도했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이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 고스란히 재연된다. 2010년 당시 총리실은 의혹을 인정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윗선개입 의혹을 전혀 수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실수사 논란이 일었다.

컴퓨터 훼손과 서류 파쇄 등 증거 인멸이 검찰의 수사전에 이루어 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일었다.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관련자 처벌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검찰은 꼬리 자르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2년이 지난 뒤 2012년 3월 장진수 전 주무관은 총리실로부터 증거를 인멸하라는 협박, 회유를 받고 대가성 자금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편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이 사건은 권력형 게이트가 아닌 일부 공직자의 잘못된 행동이 부른 개인적 사건”이라고 일축했다. 이후 청와대가 국무총리실에 대포폰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검찰이 이를 숨기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난 사기꾼이 아니야?”

“I’m not a crook” 닉슨의 이 발언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는 한마디다. 거짓을 거짓으로 덮으려는 거짓말. 닉슨은 결국 미국 정치사상 유례없는 탄핵이라는 불명예를 얻고 대통령에서 하야했고 희대의 사기꾼으로 남게 됐다. 닉슨은 권력을 남용한 불법도청과 사건 은폐시도 이외에도 거액의 탈세, 걸프오일 등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민심을 잃었다. 그가 일궈낸 경제적, 외교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닉슨정권이 정당성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도덕성과 진실성을 외면했기 때문일 것이다.
추악한 권력형 비리사건은 대통령을 하야시킬 만큼의 중대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불법사찰 사건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직자나 야당의원뿐 만 아니라 여당의원, 언론사, 시민단체, 재계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 심지어 현 정권에 비판적인 연예인(소셜테이너)까지 대상으로 했다는 증거가 나오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라 힘을 이용한 언론 통제로 언론이 감시자와 비판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었고, 사찰의 증거 인멸, 매수행위를 검찰이 도왔다는 정황까지 드러난 것은 워터게이트보다 훨씬 심각한 사건임을 말해준다. 다만, 이 사건이 이명박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냐, 그렇지 않으냐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국민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할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법적인 사찰의 뒤에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막고 통제하려는 무서운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총선은 끝났고, 정국은 대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사건수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가 남긴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라라면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자유를 열망하는 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비밀로 감추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문서가 공개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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