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까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에 제보된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수는 155명이다. 이 가운데 이미 사망한 사람만 62명이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은 이는 138명에 이른다.
삼성은 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는 개인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근로복지공단 역시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승인을 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4월 10일 처음으로 반도체공장 직업병에 대해 산재 승인을 했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정말 삼성의 말대로 이들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 질병이 원인이었을까?
보리출판사가 지난 4월 내놓은 두 권의 르포만화집 '사람냄새'와 '먼지 없는 방'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를 소재로 삼성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 각각 132쪽, 152쪽으로 기존의 만화책보다 얇지만, 어느 장면 하나도 쉬이 넘길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린 주인공은 황상기 씨다. 그의 딸 황유미 씨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후 삼성과 싸우기 시작했다.

'먼지 없는 방'의 주인공 정애정 씨의 사례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 씨는 19살에 삼성반도체 공장에 입사해 열심히 일했다. 공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했다. 그런데 정 씨는 둘째 아이를 가졌을 즈음 남편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씨의 남편은 둘째 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치고 골수이식 수술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다.
제목 '먼지 없는 방'은 반도체 공장을 부르는 말이다. 김성희 작가는 '이 방이 정말 깨끗할까?'는 의문을 던진다. 반도체 공장은 기름때와 어두운 색깔의 작업복으로 생각되는 일반적인 공장과는 달리 티끌 같은 먼지 하나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먼지는 반도체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김성희 작가는 '먼지 없는 방' 작화를 위해 자료조사는 물론 현장 노동자들을 취재했다. 이를 통해 한 번도 제대로 공개된 적 없는 반도체 공장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은 전자제품이 흔히 쓰이는 반도체가 무엇인지, 이 반도체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노동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생생히 전해준다.
삼성은 스스로 1등 기업임을 자부한다. 하지만 삼성은 138명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언론사들은 삼성을 의식해 이 책의 광고를 꺼리는 실정이다 .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을 향해 연민어린 시선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