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편채널인 TV조선은 출범 초기 낮은 시청률로 인해 고전했다. 비슷한 시기 개국한 채널A, JTBC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나 TV조선은 개국특집 드라마 ‘한반도’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제작진의 면면을 보면 TV조선의 기대가 허황되지 않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불멸의 이순신’, ‘대왕세종’의 윤선주 작가와 ‘미안하다 사랑한다’, ‘나쁜 남자’의 이형민 프로듀서가 제작진에 참여했다. 주연은 황정민과 김정은이 맡았다. 총 24회 분량에 제작비만 100억 대에 이르는 대작이었다.
문제는 0%대에 그친 시청률이었다. 1~4회분 방영 당시 시청률은 1%를 약간 넘어서는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던 것이 5회분 때부터 다시 0%대로 떨어졌다. 결국 ‘한반도’는 24회분 가운데 6회분이 줄어든 18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작 드라마의 부진은 제작사에게 가장 직접적인 손해를 가한다. 하지만 그 충격파가 제작사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출연배우 역시 드라마의 부진에 따른 영향을 감수해야 한다.
키에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은 ‘스피드’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 작품 이전까지 두 사람은 그저 주목 받는 배우에 불과했었다. 이후 두 사람은 1997년 ‘스피드’ 속편이 나오기 전까지 승승장구했다. 키에누 리브스는 ‘구름 속의 산책’, ‘필링 미네소타’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졌다. 한편 산드라 블록은 ‘네트’, ‘당신이 잠든 사이에’, ‘타임 투 킬’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의 주가를 높였다.
하지만 ‘스피드’ 속편 이후 두 사람의 길은 극명하게 갈렸다. ‘스피드’의 연출자인 얀 드봉 감독은 속편에서도 두 사람을 출연시키려 했다. 산드라 블록이 출연제의에 응한 반면, 키에누 리브스는 출연을 거절했다. 이에 얀 감독은 산드라의 상대역을 제이슨 패트릭 교체해야 했다.
스피드 속편은 흥행에 참패했다. 전작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진 것이 실패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산드라 블록은 자신의 역할을 무난히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비해 상대역인 제이슨 패트릭은 키에누 리브스의 빈자리를 메꾸기에는 역부족으로 비쳤다.
흥행실패의 여파는 컸다. 산드라 블록은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예전의 인기를 만회하는데 7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그녀는 2004년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 ‘크래쉬’에 출연하면서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반면 키에누 리브스는 ‘데블스 에드버킷’, ‘매트릭스 시리즈’에 출연하며 대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산드라 블록과 키에누 리브스의 사례는 배우에게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좋은 배우의 조건은 연기력이다. 동시에 자신이 출연할 작품을 고르는 안목도 갖춰야 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해 명배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황정민과 김정은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종편방송 드라마에 출연한 데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종편방송이 출범 초기부터 특혜시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한반도’는 막대한 제작비와 호화 캐스팅으로 인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다루는 주제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였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한반도’는 조기종영이란 운명을 맞았다. 두 배우의 연기경력에도 불가피하게 영향이 미치게 됐다. 이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더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